소설리스트

이계네토기-200화 (200/238)

〈 200화 〉 티나(92)

* * *

눈앞에서 기레스가 희롱 당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 클로에는 어디까지나 말로만 기레스와 티나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었다.

기레스와 며칠 간을 함께 지낼 수 있다고 냉큼 하일즈의 권유를 받아들여 유페르 가문의 집에 올 때까지는 좋았다. 티나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편한 복장이랍시고 대놓고는 아니라지만 속살이 은근히 비치는 얇은 옷차림으로 자신을 맞이하는 티나를 보자마자 이미 기레스에게 티나의 공략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들었던 클로에의 속은 삽시간에 편치 않아졌다.

그 매혹적인 복장만 가지고도 뭔가 심장이 움켜 죄이는 느낌이었는데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기레스에게 음탕하게 치근덕 거리는 티나의 모습이라니..

'.................'

이성적으로는 기레스가 티나를 조교하게 되면 저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실제로 보는 것과, 말로 듣기만 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일이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숟가락을 찾겠다고 기레스의 밑으로 손을 가져가 주섬주섬 거리는 행위가 무엇인지 이미 기레스와 불장난을 저지르고 있는 클로에가 모를 리가 없다.

티나의 은밀한 장난을 본 클로에의 머릿 속에는 기레스와 티나가 서로의 속살을 비비며 사랑을 속삭이는 광경이 선명히 떠올라 버렸다.

물론 기레스와 티나의 관계는 클로에가 생각하는 꽃밭 같은 관계와는 상당히 달랐지만, 그런 식으로 밖에 경험해 보지 못한 클로에는 자연스럽게 자신과 기레스의 경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저렇게..!'

자신은 단련할 때나, 공부를 봐줄 때, 방과 후에나 짧은 시간 밖에 기레스를 만나지 못했는데, 티나는 유페르 가문의 집 안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가족의 눈을 피해 은밀히 뒹굴렀을 거라고 생각하니 속이 까맣게 그을린다.

모두가 있는 식사 시간에도 하일즈의 눈을 피해 자신의 앞에서도 저렇게 장난질을 해대는데,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얼마나 질펀하게 굴러댔을까, 클로에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침착해..'

말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숟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기레스의 사타구니에 안겨 꼼질대는 티나의 행동에 머리가 까마득해진 클로에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찾았다! 미안해 오빠."

앙증맞은 티나의 말에 클로에는 간신히 정신을 차려 평소의 무표정을 필사적으로 가장하려 애썼다.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겠지..?'

기레스와 자신의 관계는 비밀이기에 필사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을 지어 보지만, 그렇게 자랑하던 무표정에 자신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방금까지 자신이 어떤 얼굴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 클로에였다.

잠시 후, 하일즈가 준비한 요리가 도착하고 넷은 식사를 시작했다.

"요리는 어때?"

"맛있어."

평소처럼 시원스럽게 단답으로 대답하는 클로에의 말에 하일즈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시발년..'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티나는 속으로 냉소하면서 클로에를 슬쩍 바라보았다.

기레스가 철두철미해서 캐내기 힘들다면 클로에를 노린다고, 티나는 기레스에게 음란한 장난을 걸면서 클로에의 반응을 살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기레스에게 몸도 마음도 빼앗겨 버린 지금, 클로에가 기레스에게 연심을 품고 있다면 티나는 그 감정을 자신이 놓칠리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정말 기레스에게 티끌만큼의 연심도 없다면, 여동생인 티나가 기레스에게 은밀히 찝쩍거리는 것에 클로에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반응이래봐야 기껏해야 당황하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클로에가 자신을 보면서 보여준 표정은 단순한 당황이 아니었다.

제 딴에는 필사적으로 표정을 억누르고 무표정을 연기하면서 아닌 척 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티나가, 클로에의 '질투심'을 놓칠 리가 없었다.

티나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조목조목 살펴봐도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껏 숱한 시간을 질투심에 얼룩졌던 티나는 클로에의 표정을 보자마자 단번에 그녀의 연심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언니도..... 오빠한테 빠져 있었다 이거지..?'

자신에게 발각되기 전부터 빠져 있었는지, 아니면 자신에게 발각된 후에 쾌락을 잊지 못하고 기레스에게 빠져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티나는 클로에가 기레스에게 빠져있다는 것 하나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하일즈 오빠랑 약혼까지 했으면서... 거기다 나도 그걸 지켜 주겠다고 능욕까지 당했는데..'

티나는 하일즈는 물론이고 자신까지 배신하고 기레스와 뒹구른 클로에가 그렇게 가증스러울수가 없었다.

'하일즈 오빠면 됐잖아....'

그 가증스럽다고 느끼는 진짜 원인이 하일즈와 자신을 향한 배신이 아니라, 기레스마저도 노리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제는 티나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물론 이유의 진짜 원인이 무엇이든 가증스럽다고 느끼는 결과가 어디 가는 건 아니다.

'단련할 때 그런 복장을 입을 때부터 알아 봤어야 했는데.. 그럼... 단련을 할 때도 그런 복장으로 오빠랑 남몰래 즐겼다는...?'

그 풍만하고 잘록한 몸매를 고스란히 뽐내는 옷차림으로 야외에서 기레스와 은밀히 살을 섞는다니 너무나도 부럽고도 화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클로에가 티나가 집 안에서 기레스와 정신없이 뒹굴렀다고 질투했듯이, 티나는 티나대로 클로에의 은밀한 야외정사에 깊은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다.

'시발 하일즈 오빠한테 미안하지도 않나?'

자신이 하일즈의 마음을 쑥대밭으로 헤집어 놓은 것은 까맣게 잊고 티나는 불만스럽게 클로에를 슬쩍 노려보았다. 아무리 영민한 티나라도 그 미안함 마저도 이미 쾌락의 소스가 되어버린지 오래라는 것까지 알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럼... 난, 두번째도 아니고.. 세번째인거야? 도대체 이 색골은 여자를 얼마나 후려댄 거야!?'

자신의 옆자리에서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한 표정으로 밥만 쳐먹는 기레스를 째릿 노려보면서 티나는 속으로 세번째조차도 아니면 어쩌지? 하고 마음을 졸였다.

'흥. 뭐 좋아. 어차피 엄마도 클로에 언니도 다른 남자랑 즐긴 걸레같은 년이라 이거잖아? 아무튼.. 오빠한테만 안긴 내가 가장 순결하니까..'

기레스의 취향도 모르고 그렇게 우월감으로 자위하면서 티나는 깨작깨작 무슨 맛인지도 느껴지지 않는 식사를 끝마쳤다.

식사가 끝나고, 하일즈는 셀린을 보러가자는 핑계를 대며 클로에를 데리고 셀린의 방으로 향했다.

자연히 식당에는 기레스와 티나가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일단 티나를 잡아 둬야겠어.'

기레스는 티나의 속내도 모르고, 아주 소악마 같은 개변태가 다 되어버린 티나의 고삐를 단단히 잡아둬야 겠다고 생각했다.

"야! 티나 너.. 시발 아까 뭐하는 거야?"

"응? 내가 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능청을 떨면서 티나가 반문했다.

"하일즈야 요리 하느라 신경 안 쓰고 있었다지만 클로에 앞에서.. 미쳤냐?"

"문제될 거 없잖아?"

"문제될 게 없다니 미친년아. 아무리 클로에가 순진해도 바로 앞에서 그런 지랄을 하면.."

"어차피 언니야 내가 아직도 오빠한테 능욕이나 당하고 있을거라 생각할텐데 뭐.. 오빠한테 명령 받아서 억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하지 않겠어?"

"하일즈한테 말하거나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클로에의 고지식한 성격 몰라?"

"퍽이나 말하겠다."

"어?"

이미 클로에가 기레스에게 푹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티나의 입장에서 기레스의 능청스러운 변명은 같잖게 느껴진 티나는 대놓고 기레스를 비웃는 조소를 머금고는 말했다.

"오빠.. 사실대로 말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잔잔하면서도 무거운 티나의 분위기에 압도된 기레스는 한걸음 뒤로 물리며 말했다.

"뭐, 뭘...?"

"클로에 언니랑 무슨 관계야?"

'이, 이녀석..'

쾌락에 미쳐서 변태짓만 하는 바보가 다 된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꽤나 눈치가 빠른 티나에 기레스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관계냐니... 그야 뭐.. 채무..."

"더 둘러대면 하일즈 오빠한테 다 꼰질러 버릴 줄 알아. 언니랑도 한 거지?"

'혹시 방금 대놓고 애무한 건 변태성을 참지 못해서가 아니라 클로에의 반응을 살핀 건가?'

반쯤이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있는 티나의 말투에 기레스는 티나를 너무 바보취급 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바보취급 당할줄만 알았지. 상대를 바보 취급하다 역으로 몰린 것은 꽤나 오랜만의 일인지라, 기레스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확신하는 건 아닐 수도 있으니까 변명해볼까..?'

"하다니..? 아! 너도 봤잖아. 왜 그때 오두막에서.."

'와.. 여기까지 와서도 둘러대네.'

만약 이전까지의 자신이었다면 껌벅 넘어가서 속아버릴 정도로 기레스의 능청맞은 바보 연기는 수준급이었지만, 이미 클로에의 연심을 읽어 기레스의 음흉함을 아는 티나에게 그런 변명과 연기가 먹힐 리 없었다.

'헤헤. 뻔뻔스럽기는..'

여기까지 와서도 저렇게 뻔뻔스럽게 둘러댈 수 있는 인간이 자신 하나 안아보겠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거라 생각하니 속이 달아올라 미칠 것 같은 티나였다.

"오빠 부른다? 오...옵"

기레스는 잽싸게 움직여 꽤나 높은 소리로 하일즈를 부르려 하는 티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에.. 에응."

자신의 입을 막은 기레스의 손가락에 혀를 걸어 음탕하게 할짝이면서 티나는 좋다고 음탕한 미소를 지었다.

손가락을 간질이는 요망한 혀의 돌기를 고스란히 느끼면서 기레스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에이.. 이 변태같은 년.. 알았어. 시발년아. 그 뒤로도 계속 해댄 거 맞으니까.. 그만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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