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 티나(91)
* * *
방과 후, 젤가와의 수행도 없겠다, 티나는 일찍 집으로 돌아와 클로에에 대한 일을 생각했다.
'언니는 오빠의 제안을 받을까?'
이제는 어딘지 미덥지 않은 하일즈의 제안을 클로에가 어떻게 생각할 지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는 티나였다.
'오지 않는다면 않는대로 좋지만, 온다면 오는대로 확인해 줘야지.'
먹잇감을 노리는 뱀 같은 표독스러우면서도 음란함이 감도는 표정으로 티나는 다시한번 다짐했다.
"후우.. 덥다."
그렇게 다짐하고 있는 사이 집으로 돌아온 경박한 기레스의 목소리에 티나는 움찔거리면서 반응했다.
'아.. 그렇지. 오늘 언니는 하일즈 오빠를 만나기로 했으니까..'
역시나 소피아도 클로에도 없는 기레스에게는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한 티나의 입꼬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올라갔다.
"후우우..."
당장이라도 접근 해서 곁에서 알짱거리고 싶었지만 티나는 깊게 심호흡을 하면서 욕구를 참았다.
'지금은 안돼. 아직 보모가 있는 건 둘째치고, 정말 오빠가 날 이렇게 미치게 만든 게 계획적이었다면 눈치도 빠를테니까..'
학교에서 기레스가 누구하고도 이야기 하지 못하는 외톨이라는 것을 티나는 잘 알고 있었다.
자연히 오늘 하일즈가 클로에를 초대한다는 사실도 기레스는 알 수 있을 리 없다.
'일단은 오빠가 모르는 편이 더 확실하게 알아차릴 수 있을테니까.. 일단 오빠는 무시하고..이왕 시간도 남는 거 셀린을 어떻게 보는 게 좋은지 아줌마한테 물어보기나 해볼까..?'
그렇게 티나는 꾹꾹 욕정을 눌러 참으며 보모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윽고 보모도 나가 저녁이 다 된 시간이 되어서야, 하일즈는 집으로 돌아왔다.
'흐음~'
현관 근처 거실에서 속살이 은근히 보이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하일즈가 오기를 기다리던 티나는 현관 앞에 서 있는 또 하나의 인영, 클로에를 보고 가는 웃음을 지었다.
기레스의 앞에서는 그렇게 색기가 폭발할 것만 같은 복장을 입더니만, 하일즈의 앞에서는 단아한 차림을 입은 클로에를 보자 눈썹이 의심으로 까딱 거리는 티나였다.
"언니?"
짐짓 모른 척 하면서 티나는 살짝 놀랐다는 듯,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온 클로에의 이름을 불렀다.
"아.. 티나. 오랜만이네."
'음? 아...'
뭔가 멋쩍은 듯한 클로에의 반응에 티나는 한발짝 뒤늦게 상황 파악을 했다.
바로 어제 기레스에게 혼이 빠질 정도로 후려진 까닭에 너무나도 행복한 나머지 잊고 있었지만, 클로에와의 마지막 만남은 끝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울면서 도망쳤었나?'
그렇게 서운하게 '기레스에게' 거절을 당하다니 다시금 생각해 봐도 울만한 일이었다고 티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혹시 그것도 오빠랑 엄마의 계획이었다면...?'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티나는 머리가 오싹 저려 한번 몸을 부르르 떨면서 흥분했다.
그게 정말 기레스의 계획이었다면 자신을 함락시키기 위해 그정도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주어서 좋고, 계획이 아니라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기레스가 자신을 바라봐 주기 시작한 게 좋아 죽는 가불기가 걸린 티나였다.
"티나?"
어쩐지 미안한 듯한 어투로 재차 물어오는 클로에의 말에 티나는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크흠. 오랜만이네 언니. 우리 집에는 놀러온 거야?"
"으응.. 부모님이 안계신다고 하일즈가 하도 부탁하길래."
마치 하일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왔다는 듯한 어투로 클로에는 슬쩍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기레스는?"
"형은 이 시간이면 항상 방에 틀어박혀 있으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돼.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알아서 내려 올테니 그때 말하면 될 거야."
악담 아닌 척, 은근히 기레스를 까내리는 말투에 클로에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질책했다.
"하일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잠깐 놀러온 것도 아니고 며칠 묵고 갈 생각인데 그건 예의가 아니지."
'흐음...?'
뭔가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무표정이었지만 어딘가 다른 것 같은 느낌에 가늠이라도 하는 듯, 티나의 눈썹이 쫑긋 거리며 움직였다.
"그럼 내가 불러올게."
[덜컥]
"오빠아!"
"깜짝이야.. 넌 노크도 모르냐? 뭐야 갑자기?"
"클로에 언니가 왔으니까 얼른 내려와."
"뭐?? 클로에?"
'뭐야.. 갑자기 클로에가 여긴 왜.. 부모님이 없다고 놀러왔나?'
정말 예상하나 못한 뜬금없는 일이 벌어진 까닭에 기레스는 살짝 당황하다가 티나에게 말했다.
"음.. 근데 클로에가 왔는데 내가 굳이 내려갈 필요가 있냐? 그냥 하일즈랑 놀려고 집에 온 거 아냐?"
"아니니까 내려오라는거지. 오늘부터 언니, 우리 집에서 며칠 간 같이 묵기로 했나봐."
"뭐!?"
누가봐도 당황한 듯한 기색이 느껴지는 기레스의 말투에 티나의 눈썹이 재차 까딱거렸다.
"뭘 그리 놀라? 그래서 언니가 인사하겠다고 나보고 오빠 불러오라는데?"
"알았어. 내려갈게."
"아. 기레스. 안녕."
"어..."
'하일즈의 앞에서' 기레스와 말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인지 클로에와 기레스는 꽤나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칫.. 하일즈가 있으니까 이야기 하기 힘든데..'
아직까지 하일즈의 앞에서 기레스는 클로에와는 면식도 제대로 터놓지 못한 찌질하고 못난 형이어야만 했기에, 클로에에게 허물없이 굴 수가 없었다.
클로에는 클로에대로 '몰래' 기레스와 불륜 행각을 하고 있는 처지였기에 스스럼 없이 대할 수 없어서 둘 사이에는 한없이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오늘부터 주말까지 머물기로 했으니까 잘 부탁해."
결국 얼음가면을 쓴 클로에가 시원스럽게 상황을 정리하고 넘어가자 기레스는 멋쩍어 하면서 대답했다.
"어어.."
그런 어색한 대화를 듣고 있던 하일즈는 티나를 살짝 불러서 조용히 말했다.
"봐라. 티나, 괜히 불러서 분위기만 상했지?"
기레스의 일이라면 신이나서 주접을 떨어대는 통에 티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빠 괜히 그런 이야기 언니한테 해대면 실망만 할거니까 앞으로는 하지마."
"어? 무슨 이야기?"
"기레스 오빠 헐뜯는거 말야. 클로에 언니가 나........ 처럼 기레스 오빠를 까대는 걸 좋아할 것 같아?"
"아.. 그건 그렇지.. 하지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니까 아까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딱히 거짓말 한 것도 아니잖아? 가급적이면 클로에도 기레스를 싫어해주는 편이 좋기도 하고.."
클로에의 대쪽같은 성격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기레스를 까고 싶어 안달이 난 하일즈를 티나는 원망스럽게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애시당초에 하일즈 오빠가 클로에 언니를 잘 잡고 있기만 했어도...'
자신이 이렇게 자질구레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하면서 티나는 하일즈에 대한 원망감을 눈덩이가 굴러가는 것처럼 키워갔다.
지글지글 재료가 익는 소리와 함께 향긋한 냄새가 주방에 퍼져 나간다.
대충 기레스와 클로에의 어정쩡한 인사가 끝나자, 슬슬 출출한 시기도 되었겠다, 하일즈는 모두에게 저녁식사를 권유했다.
"그러고 보니 하일즈의 요리를 먹어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네. 집에서는 자주 요리도 하고 그래?"
"전혀? 언니가 왔다고 멋 부리고 싶은거겠지 뭐."
"티나..!"
하하호호 담소를 즐기는 척 하면서 티나는 슬쩍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좋아.. 지금이야..'
"아앗~"
하일즈가 요리하느라 정신이 팔려있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티나는 반찬을 먹는 척 하다가 숟가락을 보기 좋게 옆자리인 기레스의 가랑이 사이로 떨어뜨렸다.
"어..?"
"아.. 오빠아... 미안.."
싱긋 소악마 같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면서 티나는 기레스의 가랑이 사이로 예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가랑이 사이에 보기좋게 얹어진 들어야 할 숟가락은 안 듣고 기레스의 솟아 오른 자지만을 옷 위로 살근살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으읏.. 야.."
티나에게만 들릴까 싶은 작은 목소리로 기레스는 손을 쳐대며 질책했지만, 그런 기레스의 만류 따위 들을 티나가 아니다.
마치 가로 막고 있는 바지까지 이용할 듯한 기세로, 티나의 음란하고도 예쁜 손가락은 자지 위를 춤추듯이 거닐었다.
'이 미친년이 클로에랑 하일즈 앞에서 뭐하는 거야?'
색욕따위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기레스는 스님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필사적으로 무반응을 연기했지만 애시당초에 티나의 목적은 기레스가 아니었다.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클로에에게 대놓고는 아니지만, 경험이 있다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애무하지는 않을까 싶은 야릇한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참는다고 참는 기레스의 묘한 무표정과 조물조물 대는 것만 같은 움직임에 클로에의 무표정에 이채가 서린다.
[땡그랑]
"아~ 오빠 잠시만.."
가랑이 사이에 있는 숟가락을 퉁겨 바닥에 떨어트린 티나는 기레스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기댄 묘한 자세로 바닥에 떨어진 숟가락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기레스의 바지 위로 빨딱 선 자지에 뺨이나 얼굴을 문대면서 음탕한 짓거리를 멈추지는 않는 티나였다.
"찾았다! 미안해. 오빠."
시간상으로는 1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티나의 비밀스러운 장난은 끝이 났지만 그 작은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
숟가락을 찾아 고개를 든 티나는 자신의 야릇한 장난을 보던 클로에의 표정이 '가까스로 무표정으로 돌아간 것을' 확인하곤 입꼬리를 올리며 확신했다.
'시발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