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티나(84)
* * *
"그렇지? 기레스?"
"네? 어... 뭐... 그렇죠."
소피아의 물음에 기레스는 우물쭈물 떨떠름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렇긴 뭐가 그렇다는 거야? 오빠는 괜찮은 거 같은데 왜 엄마가 나서서 지랄이람?'
누가봐도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기레스의 어투에 티나는 속으로 소피아를 욕하면서 씩씩 거렸다.
"아니 왜요? 엄마도 오빠랑 섹스니 애무니 다 하면서.. 섹스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얼마나 기분 좋은 건지 궁금하니까 애무만 한번 당해보겠다는건데.."
"애무가 그렇게도 궁금하고 받아보고 싶어?"
"그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가 그렇게까지 좋아하시니까..."
고지식할 정도로 온화하며 자애로웠던, 어딜 내놔도 자랑스러운 어머니인 소피아가 자신의 딸 앞에서 부정을 저지르면서 저렇게 자지러지는 것이 궁금해 참을 수 없다는 듯, 티나는 은근히 어필하면서 웅얼거렸다.
"흐응~ 하고 싶단 말이지?"
"그, 그냥 얼마나 기분 좋은지 경험해 보고 싶은 것 뿐이에요."
흘끔 티나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자존심까지 다 꺾어가면서 애무 받고 싶어하는 것을 알아달라는 듯' 기레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티나와 눈이 마주친 기레스는 뭔가 우쭐 거리는 건방진 얼굴을 하면서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기레스한테 티나는 원수잖아?"
그렇게 기레스와 눈빛을 교환하는 와중, 소피아의 말이 티나의 정신에 죽비를 때렸다.
"네?"
뜬금없이 튀어나온 원수라는 말에 티나는 흠칫 몸을 떨며 반문했다.
"워, 원수라니..."
"티나가 그렇게까지 기레스의 애무를 경험해 보고 싶어 한다면 말이지, 복수를 위해서라도 오히려 절대로 해주면 안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기레스?"
"네? 음...."
귓가에 달라붙은 소피아의 간교한 속삭임을 들은 기레스는 잠시 곰곰히 생각하다가, 심술궂은 표정으로 티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그렇지?"
그렇게 요부처럼 교태스럽게 기레스의 옆에서 부추겨대는 소피아가 얼마나 얄미운지, 티나는 부들거리면서 피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지, 진심이야? 내, 내가 애무 당해 주겠다고 한다니까?"
자위를 한답시고 살작 흐트러진 예쁜 몸을 은근히 어필하면서 티나는 기레스에게 쏘아붙혔다.
"당해주기는, 애무 안해주면 한대 칠 거 같아서 무서울 정도구만.."
'아..'
여기서는 좀 더 소피아처럼 유혹했어야 했다고 티나는 살짝 후회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너를 애무해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냐."
"그, 그럼.."
"하지만 확실히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애무하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복수를 위해서라면 난 널 애무하는 권리조차 포기할 수 있다. 이 말이야."
자랑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빳빳히 들고 말하는 기레스의 표정을 보고 티나는 굶주린 살쾡이 같이 사납게 따지고 들었다.
"보, 복수는 이미 했잖앗! 그렇게 날 가지고 놀아 댔으면서!"
"야! 티나, 엄마 앞이야. 말은 바로 해. 그건 복수가 아니라 거래였고, 거기다 그 뒤로도 네가 날 얼마나 호구 취급 했는지 잊은 건 아니지?"
"그읏.."
'이 쫌생이 새끼...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리 나름대로 솔직해진 지금이라도, 사실은 애무 받고 섹스하고 변기 취급 받고 싶어서 돈을 핑계로 대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가지고 놀아? 흐응.. 그래서.."
짐작 가는 게 있다는 듯 눈을 흘기며 혼잣말 하는 소피아를 보면서 티나는 생각했다.
'뭐야? 엄마한테는 날 범하던 거.. 비밀로 하고 있었나보네?'
순간 티나의 뇌리에는 여기서 기레스의 비밀을 폭로해 버리면 어떻게 될지가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하긴 엄마는 하일즈 오빠랑 내가 괴롭힌 것에도 그렇게 대쪽 같이 혼내고 정색하셨으니까.. 그때의 괴롭힘과는 비교도 안되는 육변기 취급을 해댄 걸 아시면 대노하실 것 같긴 해.'
소피아에게 호되게 당한 전력이 있는 티나는 기레스가 굳이 비밀로 한 것이 쉬이 납득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여기서 다 까발려 버리면.. 엄마도 이전에 하일즈 오빠랑 나한테 했던 것처럼 정색하거나 하시는 거 아닐까?'
그렇게만 된다면 당연히 기레스는 덩그러니 혼자 남게 될테고, 혼자 남게 되기만 하면 열등종 그자체인 기레스가 자신의 차지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만약 정색하면서 혼내지는 않는다고 해도, 저 바보가 나랑 바람 피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을 리는 없을테니까...'
사사껀껀 자신을 방해해댄 소피아가 얄미워서 참을 수가 없었던 티나는, 어떻게든 자신이 지금 치를 떨고 있는 것처럼, 소피아에게 한방 먹여주고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고 싶었다.
"네~ 네~ 저 색골 오빠는요. 지금까지 제 약점을 잡아서 육변기 취급을 해댄 쓰레기 새끼라구요."
남의 상처를 물어 뜯어 발겨놓는 것은 선수인 티나는 신나게 비아냥 거리는 어투로 소피아에게 말했다.
"육변기...?"
"어디 순진해 빠진 착한 아들이라도 기대하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소피아를 실망하게 만든다는 일념 하나로 신랄하게 기레스를 비판하던 티나의 말은 소피아의 달콤한 목소리에 보기 좋게 끊어져 버렸다.
"역시 기레스야~ 할짝."
기레스를 혼내는 것도 아니요, 질투를 해대는 것도 아닌, 애욕이 뚝뚝 묻어나오는 표정으로 기레스에게 아양 떨기 시작한 소피아를 보고 티나는 어이없어 하면서 필사적인 어조로 소피아를 설득하려 들었다.
"아니, 엄마! 오, 오빠가 절.. 육변기 취급 했다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취급을 당하고도', 기레스한테 애무를 당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잖아? 역시 기레스는 대단해♥"
마치 사이비 교주라도 모시는 열렬한 신자마냥 그게 당연한 진리기라도 한다는 듯, 혼내기는 커녕 질투심조차도 한 점 느껴지지 않는 황홀한 표정으로 소피아는 기레스를 연신 물고 빨아가면서 찬양하고 있었다.
"아.. 으으...."
"그나저나 기레스. 티나가 너보고 쓰레기라는데?"
소피아는 가소롭다는 듯 여우같은 눈으로 티나를 내려다 보면서 남심을 후리는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기레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앗... 아, 아냐... 그건 그.."
소피아를 엿 먹여 주고, 최종적으로 기레스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까댄 것이라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티나는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해, 울먹거리면서 뒷걸음질 쳤다.
"에휴.. 시발.. 기대도 안했어. 네 생각이야 뻔하지. 보나마나 내 애무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으니까 발정도 나버렸겠다, 자위도구로 '호구 취급하면서' 날 이용해 먹고 싶었던 거지?"
티나는 정곡 아닌 정곡을 찔려 움찔 거렸다.
'아냐.... 맞긴 하지만....! 달라...'
실망한 듯한 기레스의 말투에 티나의 마음은 나락을 너머 밑바닥의 밑바닥 심해까지 철렁 내려 앉았다.
차라리 복수한다고 능글맞게 자신을 희롱하면서 가지고 노는 게 낫지, 호구 취급을 해댄다는 오해만은 사고 싶지 않은 티나였다.
"아니.. 난 그냥.. 기분이 좋아지고 싶어서..."
"방금 전에는 쓰레기라며? 물론 쓰레기 짓 한 건 맞긴 한데, 대놓고 그렇게 쓰레기 취급까지 당하고 나니까, 없던 복수심도 생겨버리는 것 같다. 야."
"잠깐..."
"그렇게 애무 당하고 싶으면 그 좋아하는 멋쟁이 오빠인 하일즈한테나 가서 해달라 하라고 좀!"
입으로는 기대도 안했다고는 했지만 꽤나 속이 상한 듯, 기레스는 티나에게 버럭 열등감에 찌든 고함을 내질렀다.
'아.. 아으...'
티나가 생각하는 기레스는 은근히 자신을 신경쓰는 열등감 덩어리인 오빠.
그런 기레스가 자신의 생각없이 내뱉은 말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티나는 제멋대로 생각을 부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실수했어. 아무리 엄마한테 약이 올랐어도 오빠를 그렇게 까는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후회는 언제나 늦은 법이고,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
"그렇게 됐으니까 티나.."
살짝 고개를 든 티나에게 소피아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선고했다.
"애무는 포기하고 구석에 가서 딸이나 치면서 구경하렴?"
"앙, 하아아앙ㅡ 하히이ㅡ"
'응으으..'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구석에 기어온 티나는 이제는 눈치볼 것도 없겠다. 소피아와 기레스의 달콤한 정사를 반찬으로 삼아 티나는 처량하기 짝이 없는 자위를 시작했다.
'도대체 난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기레스에게 애무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괜한 혹만 더 붙혀버린 티나는 멍하니 쾌락만을 쫓아 가랑이 안,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저 바보는 자위도구..... 그랬어야 했는데... 달라? 뭐가?'
자기 속 안에서 튀어 나온 변명을 곱씹어 본다. 분명히 자신은 기레스를 자위도구 취급하려 했음에도 지금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흐으응~"
소피아의 달콤한 교성소리에 보지는 자신의 몸이 아닌 것마냥 정신없이 떨리고, 마음은 움직이다 못해 소용돌이처럼 요동친다.
'정말 자위도구라면.. 엄마랑 하든 말든 상관 없었잖아......'
언제부턴가 기레스와 관련된 일이면, 침착할래야 침착할 수가 없고, 냉정하지 못하고 실수만 연발이다.
'하일즈 오빠한테나 가서 해달라 하라고?'
그런 거 부탁할 수 있을 리도 없지만, 설사 부탁할 수 있다고 해도 '부탁하고 싶지도 않은' 티나였다.
자위도구로서든 사랑해서든 아무리 하일즈를 생각해 보려 해도, 기레스를 생각할 때와는 달리 마음은 견고한 성처럼 단 1mm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일즈 오빠한테는 나름대로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기레스의 앞에서만큼은 아주 작은 솔직함을 가지는 것 조차도 너무나도 힘이 든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잖아....? 하일즈 오빠가 엄마한테 범해져도 이런 기분은 들리가 없는걸..'
소피아와 기레스의 앞에서 한결 솔직해진 티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일즈와 소피아가 부정을 저질러도, 분노는 할 지언정 '질투'는 할 리가 없다는 것을, 소피아에게 기레스를 '빼앗긴' 지금의 티나는 잘 알 수 있었다.
'역시.... 나는............ 나는............... 저 바보 오빠를.....'
"좋아... 해..."
그렇게 자신만 들을 수 있는 개미 발소리보다 더 작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티나는 한없이 덧없는 절정을 맛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