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 티나(81)
* * *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야!"
방문을 열어제낀 티나는 씩씩거리며 언젠가 클로에에게도 따졌던 낯익은 말을 꺼냈다.
그때도 지금도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같았지만, 분노하고 있는 이유만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윽... 티나..?"
마치 티나가 문 밖에서 관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듯 기레스는 움찔거리며 당황하는 척 말했다.
"어라? 티나 네가 왜 여기...."
'으으..'
티나를 본 소피아는 화들짝 놀라 당황하는 척 뒷걸음질 치면서 슬그머니 기레스의 가슴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 모양새에 티나는 가뜩이나 불편한 마음이 더욱 언짢아져 버렸다.
"몸이 좀 안 좋아서 합숙은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이게... 이게.."
티나의 분노에 찬 말을 들으면서도 기레스의 품에 달라붙어 있는 소피아는 유혹이라도 하는 듯, 흐늘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보드랍게 잘 익은 농염하기 짝이 없는 뽀얀 가슴이 기레스의 살결에 슬근 슬근 비벼지는 것을 바로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는 티나의 마음은 그야말로 새까맣게 그을려 버렸다.
"저.. 티나.."
"왜? 이번에도 억지로 범했다고 변명해 보시게?"
티나는 콧방귀를 끼면서 신랄하게 비아냥거렸다. 클로에 때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방금 소피아와 기레스의 정사는 어느 누가봐도 억지가 아니었다.
애교 섞인 목소리로 기레스와 사랑을 나누던 소피아의 모습을 떠올린 티나는 눈을 질끈 감고는 버럭 따지기 시작했다.
"시발..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거야!"
"언제부터냐고 묻는다면.. 네가 기레스를 괴롭혔을 무렵부터려나?"
화를 주체하지 못해 따지고 들던 티나는 소피아의 나긋나긋한 한마디에 말문이 턱 하고 막혀 버렸다.
티나에게 있어서 기레스를 괴롭혔던 일은 흑역사 중의 흑역사, 그것이 기레스의 앞에서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티나는 온몸에 벌레가 자글자글 기는 것처럼 수치심과 미안함이 들끓어 버렸다.
그것 뿐이랴, 티나가 기레스를 괴롭혔던 무렵은 한두달 전의 일이 아니다. 벌써 년 단위가 지난 옛날 옛적의 일인 것이다.
"괴롭혔을 무렵이라니... 벌써 몇년 전이잖아요!"
'그럼... 그럼..... 클로에 언니가 처음도 아니고..... 엄마가... 처음인데다... 언니 빼고 평생 동정이었던 것도.... 쑥맥도..... 아니었단 말야....?'
순간 눈물이 왈칵 고여버리는 것을 티나는 필사적으로 꾸역꾸역 참아냈다.
"음.. 그렇게 되려나?"
그렇게 가볍게 되뇌이면서 소피아는 보란 듯이 기레스의 몸에 얼굴을 기대고 들었다.
"뭐에요...........? 지금...?"
어머니고 뭐고, 티나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태워버릴 것만 같은 이글거리는 눈초리로 소피아를 부라리며 정색했다.
"뭐가?"
"이상하잖아요!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걸려 놓고도 미안한 기색도 없이 뻔뻔하게....!!! 엄마는 아빠나 저희한테 미안하다는 생각도 없어요?"
"그야 당연하지. 내가 기레스와 몸을 섞게 된 건, 다 너희 때문이니까.."
"네..? 그게 무슨.."
"젤가나 너희들이 기레스를 괴롭히지만 않았어도 내가 기레스한테 몸을 허락하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란다."
"그게 무슨.."
"배신은 너희를 믿고 있던 내가 당했으면 당했지. 기레스에게 그렇게 잔혹한 짓을 해놓고선 티나야 말로 너무 뻔뻔스럽지 않아?"
기레스를 괴롭힌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티나는 속이 욱씬 거려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 것 때문에 아들이랑 섹스를 해요? 미쳤어요?"
"처음에는 그렇게 괴롭힘을 당했던 기레스가 불쌍해서 위로해 주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그럼 위로만 했어야지...."
말이 짧아졌지만 티나도 소피아도 그런 사소한 일은 내색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기레스의 어리광을 받아주었을 뿐이었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거든. 뭐... 기분이 좋았어도 젤가나, 너희들이 날 배신하지 않았다면 기레스와 이런 관계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할짝."
"우우.."
마치 과시라도 하는 듯, 티나를 바라보면서 소피아는 기레스의 목덜미를 너무나도 맛있다는 듯 요염하게 빨아 올렸다.
'으... 으으..'
여자가 봐도 질투심이 일 정도의 마성의 매력이 물씬 거리는 소피아가 기레스에게 몸을 허락한 계기가 다음아닌 자신의 괴롭힘이었다는 아이러니한 현실 앞에 티나는 이를 가는 것을 숨길 생각도 않고 분개했다.
겉으로 보면 어머니의 부정에 분노한 딸 같은 느낌이지만, 속내는 전혀 달랐다.
"그래도 티나한테는 감사하고 있어."
"뭐... 뭐라고요?"
"어떻게 보면 기레스를 괴롭혀준 덕분에 내가 기레스와 이렇게 이어질 수 있었던 거니까 말야. 그 점 만큼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으득...]
티나 본인도 진즉 후회하고 있었지만, 같은 말이어도 누구한테 듣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고, 소피아에게 마음이 후벼파진 티나는 약이 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하라는 반성은 안하고.... 아빠한테 다 말해 버려도 상관 없어요?"
"뭐?"
되묻는 소피아의 말에 티나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살짝 말을 누그러 뜨리면서 말했다.
"지, 지금이라도 오빠랑 섹스하는 거... 그만두면 아빠한테는 말하지 않을게요. 엄마도 아빠한테 이런 사실이 들통나는 건.. 싫잖아요?"
"들통나는 건 싫지만..."
"그러니까.. 오빠랑..!"
지금까지의 섹스는 다 잊어줄 수 있으니 티나는 제발 소피아가 그만두겠다고 말하기를 간절히 빌었다.
"기레스와 섹스하지 못하게 되는 게 더 싫으니까.."
기레스에게 안겨 애교섞인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는 소피아의 말에 티나는 답답함에 숨이 턱 막혀왔다.
아무리 기레스와 금단의 행위를 했다고 해도 소피아는 소피아. 젤가한테 말한다는 협박 정도면 나름대로 설득의 카드가 될 거라 생각한 티나였지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 버린 것이다.
'물론 아쉽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미 기레스에게 변태성이 만개할 정도로 몸이 개발되어 버린 티나는 소피아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납득해 줄 수 있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아빠한테 말하면 우리 가족이 어떻게 될 지 엄마도 알잖아요! 가족이 중요하지도 않아요?"
"가족은 중요하지. 다만 기레스가 더 중요할 뿐이야."
"읏...."
소피아의 저 잔혹한 말이 몸에 사무치도록 이해가 된다는 현실이 티나는 너무나도 속 쓰렸다.
소피아의 저 부정의 말을 듣고 있는 지금도, 자신이 기레스와 저런 관계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치밀고 올라오는 티나였다.
"하지만, 티나 네가 정히 말해야 겠다면 어쩔 수 없지. 젤가에게 말한다면 나랑 기레스는 평생 네 눈앞에서 꺼져줄게."
"네?"
화들짝 놀라며 토끼눈을 뜨고 되묻는 티나에게 소피아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실을 젤가나 하일즈한테 들키고도 뻔뻔스럽게 웃으며 가족으로 지낼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나랑 기레스가 사라져 주겠다는 거야."
'오빠가 이 집에서 나간다고? 그것도.. 엄마랑...........?
숨은 턱턱 막히고, 가슴은 칼바람이라도 이는 듯 시렸으며, 눈에는 금방이라도 방심하면 흘러 내릴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버린다.
'그건... 싫어어...................'
협박을 하는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샌가 티나는 소피아에게 협박을 당하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티나,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거 아니? 모르긴 몰라도, 젤가나 하일즈도 가족이 뿔뿔히 흩어지는 그런 미래를 바라지는 않을거야. 그렇지?"
기레스의 색에 잔뜩 물들어 버린 소피아의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이 티나의 귀를 간질인다.
확실히 젤가나 하일즈라면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할 것만 같은 기분이 안 드는 것도 아니고, 애시당초에 티나는 기레스와 소피아의 사이를 찢어놓고 싶었을 뿐이지, 젤가와 하일즈가 어떻게 되는지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선의의 거짓말..."
"그러니까 티나... 너만 입 다물어 주면 '가족 놀이' 정도는 해줄게."
소피아는 평소 그토록이나 온화하고 자애로웠던 어머니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요망한 미소를 지으며 티나에게 말했다.
"너무해... 너무해요. 아빠랑 하일즈 오빠를 속이는 것도 그렇지만, 애시당초에 엄마랑 저 바보는 모자관계잖아요..! 그런 관계.. 허락될 리가 없는데..!"
자신은 잘만 기레스를 면간해댄 주제에 티나는 어떻게든 소피아와 기레스의 관계를 찢어보고 싶어서 어린애가 투정 부리듯 아우성을 질렀다.
"응? 아냐. 티나. 지금 이 자리에서 꺼낼 이야기가 맞나 싶기는 한데.. 사실 기레스는 말이지. 양자란다."
'끄윽...'
바로 며칠 전, 젤가에게 들었던 기레스와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는 '행복하기 짝이 없던 소식'은 최악의 상황에서 티나에게 되돌아와 버렸다.
"야.... 양자......."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멈추질 않는다.
"응, 기레스와 난 피가 이어지지 않은 관계.. 엄밀히 말하면 아줌마라고 봐도 무방하다는거지. 그러니까 티나, 너만 입 다물고 있어주면 문제가 불거질 일도 없을거고, 아무도 상처받지 않을거야."
"제, 제가 상처 받는 건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이런 일, 최대한 안 걸리도록 주의 했어야 했는데, 오늘 오랜만에 기레스와 하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만.."
새하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곤 기레스와 몸을 맞대고 아양이라도 떠는 듯, 탐스러운 속살을 부비적 거리는 소피아의 모습에 티나는 분노와 부러움과 서러움이 정신없이 뒤섞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길래...'
방문을 열어 놓고 있었으면서도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도 못 들었을 정도면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생각하니, 몸과 속이 절로 달아오르고 음부가 찌르르 떨려오는 티나였다.
"저... 티나..?"
"왜요?"
눈을 사납게 치켜뜨며 티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어차피 네가 뭐라 말하든 난 기레스와 헤어질 마음은 없거든?"
"으...."
분명 불륜 행각을 발견해 칼자루를 쥐고 있는건 자신이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티나는 찍소리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젤가와 하일즈가 오랜만에 집을 비우는 날이고, 이제.. 즐기고 싶으니까 말야."
"아으..."
이제 자신의 입장도 다 밝혔겠다. 사랑하는 딸, 티나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기레스의 자지를 가녀린 손가락으로 후리면서 소피아는 요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방해하고, 슬슬 나가주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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