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 티나(79)
* * *
그날 밤, 기레스의 침대 안에서 티나는 초조한 속을 자위로 달래고 있었다.
"으으..."
[스으ㅡ]
'시발.. 난 왜 이렇게 운이 나쁜거야..'
기레스의 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면서 티나는 자신의 기구하기 짝이 없는 처지를 푸념했다.
'합숙으로 주말을 참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는데... 뭐..? 수면제가 다 떨어져!!?'
엎친 데 덮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틀의 합숙으로 주말동안 기레스를 만나지 못한다는 현실도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그 합숙의 날이 수면제가 다 떨어져 버리는 날이라니...
"흐흑.."
설마하니 소피아가 이런 상황이 되도록 유도했다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하고, 티나는 기레스의 살에 조각 같이 예쁜 얼굴을 부벼대며 서러워 했다.
'이제 이런 나날도 끝이란 말야?'
그렇게 기레스의 살결에 얼굴을 맞대다 보니 괜시리 발정나 버린 티나는 더욱 애가 타버렸다.
기레스의 방에 들어와 변태라는 말도 아까울 정도의 달콤한 행각들이 끝날거라 생각하니 눈앞이 핑핑 돌아버리는 티나였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야한 짓 하면 나밖에 생각이 안나도록 세뇌시킬 수 있었는데..'
생각을 곱씹어 볼 때마다, 티나는 하필 '지금' 수면제가 고갈된 게 너무나도 아쉬웠다.
요즘 그 철벽같은 기레스가 거듭된 조교와 세뇌로 엄청나게 의식하던 것을 고려하면, 시간만 넉넉했다면 충분히 자신의 매력에 허우적 거리도록 조교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뭔가 항상 한 끗차이로 매번 일이 틀어지는 까닭에 속이 시리다 못해 헐어버릴 정도로 문드러진 티나는 그렁그렁 애증어린 시선으로 기레스를 바라보았다.
"푸우... 후.."
자신의 속도 모르고 기레스는 속편히 잠들어 새근거리고 있었다. 쾌락을 탐하지 못하게 된 것도 못하게 된 것이지만, 이제는 저 수면제에 취해 태평하게 자는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볼 수도 없다는 생각에 티나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당연한 듯이 누리고 살아왔을 때는 몰랐지만, 사라질거라 생각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무엇하나 놓치기 싫을 정도로 전부 아깝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므우, 츄읍."
속에서 올라오는 충동을 참지 못한 티나는 기레스의 위에 올라 타, 입을 맞추고는 혀를 집어 넣었다.
"음음.. 푸흡."
살짝 바동대는 기레스를 부둥켜 안고 자신의 말캉이는 살을 살근살근 부벼대면서 티나는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탐욕스럽게도 혀를 뒤섞었다.
'아...'
그 음탕한 행위에 속옷 위로 자지가 빳빳히 서는 것을 느낀 티나는 재빨리 기레스의 팬티를 내리고 요사스러운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까지 해왔던 변태 같은 행위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복습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티나는 기레스의 전신을 물고 빨고 돌린 후, 자신의 음부에 기레스의 자지를 받아들였다.
"하읏.."
기레스 위에 주저 앉아 속살 한 덩이도 놓치기 싫다는 듯이 보짓살은 벌름거리며 육봉을 꼭 죄였고, 쾌락을 탐하는 허리는 잔혹한 현실을 잊고 싶다는 듯, 요리조리 빙글거리며 정신없이 흔들거린다.
"우으..."
기레스와 살을 섞는 이 순간만큼은 잡스러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마치 걸신들리기라도 한 듯이 티나가 탐욕스레 허리를 흔들자, 기레스는 외마디 신음성을 내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사정을 조절해 가면서 즐겼을 티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오늘의 티나에겐 평소의 여유 따위 단 한 점도 찾을 수 없었다.
"끄으.."
"아..."
꿀렁이며 안에 쏟아지는 정액과 함께 절정에 다다른 티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평소와는 달리 포근하면서도 달콤한 절정의 여운이 아니라, 우울하기 짝이 없는 현자타임을 느끼며 티나는 기레스의 품 안에서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싫어어...........'
마음 같아서는 티나는 누구에게든 좋으니 어린애처럼 생떼를 부리고 싶을 정도몄지만 그런 티나의 소리없는 아우성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중한 시간은 물처럼 빠르게 흘러, 이윽고 합숙하는 날이 찾아왔다.
"하아아........"
마치 사형을 앞두고 있는 사형수마냥 티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뭔 한숨을 그렇게 깊게 쉬냐?"
'어?'
"웬일이야? 나한테 말을 다 걸고?"
"딱히 걸 생각은 없었는데 오늘 하일즈랑 합숙을 경사스러운 날인데도 한숨을 쉬는 게 궁금해서 말 걸어 봤지."
"경사는 무슨 놈의 경사야?"
"너 하일즈 좋아.. 아니지, 사랑하고 있잖아?"
'끄으...'
기레스에게 하일즈를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티나는 가뜩이나 불편한 속이 더 답답해져 버렸다.
"어차피 친남매라 이루어지지도 않을 사랑인데 뭔 의미가 있어?"
기레스가 괜한 오해를 하는게 못마땅했던 티나는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하일즈와 자신은 친남매라는 것을 은근히 어필하고 들었다.
"아.. 그래서 한숨 쉬고 있었던 거냐? 매사 안하무인인 너답지 않구만."
"안하무인은 누가 안하무인이야!"
기레스는 티나에게 은밀한 비밀이야기라도 하는 듯, 조용한 말투로 속삭이듯 말했다.
"어디서 봤는데, 우리 세프람 제국에는 황제의 인정을 받으면 친족 간의 혼인이나 일부다처제도 가능하다고 하더라."
"응?"
"너도 노력해서 공적만 제대로 쌓으면 하일즈와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지. 어떠냐 좀 솔깃하냐?"
'솔깃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시발..'
자신의 사정 따윈 하나도 모르고 속 뒤집어 지는 소리를 해대는 기레스의 주책없는 말에 티나는 미간에 힘을 주며 눈살을 찌푸렸다.
"알았어. 이년아. 시간 더 안 뺏을테니까, 얼른 사랑하는 하일즈랑 합숙이나 가버려. 에휴 한숨 좀 쉬었다고 걱정한 내가 미친놈이지. 시발."
'응? 아... 아냐... 시발..'
또 되도 않는 오해를 하는 기레스에 티나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기레스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뒤였다.
"그럼 다녀오렴!"
"다녀오세요."
"다녀오겠습니다."
"소피아 갔다올게."
기레스와 소피아의 배웅에 활기차게 인사하는 젤가와 하일즈와 달리, 티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기레스를 은근히 노려보다가 집을 나섰다.
'바보 같은 게, 맨날 이상한 오해나 쳐 해대고... 내가 얼마나 자기한테 잘해주는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한동안 기레스와의 음행이 끝난다는 불안과 초조로 며칠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티나는 퀭한 눈으로 터벅터벅 힘없이 걸으며 기레스에게 서운해 하면서 씩씩 거렸다.
가뜩이나 몸도 지치고 피곤한데, 기레스의 오해 때문에 마음까지 쌍으로 지쳐 버리는 티나였다.
꽤나 걸어 1차 합숙 장소인 오두막에 도착할 무렵, 어딘지 지쳐보이는 티나의 행색을 눈치챈 하일즈는 티나에게 잘 보이려는 듯 자상한 어조로 물었다.
"티나, 어디 안색이 안 좋은거 같은데 괜찮아?"
'어......?'
하도 절망해서 며칠 동안 아무 생각도 없었던 티나는 하일즈의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거야..!'
"으.. 오빠아.."
과거 기레스의 앞에서 병에 걸린 신들린 연기를 했던 경험을 살려 티나는 시들시들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무슨 일이야?"
"사실, 나 몸이 좀 안 좋은 거 같아... 콜록.."
"뭐? 정말? 근데 왜 지금까지 말을 안했어?"
"오, 오빠가 합숙을 기대하고 있는 거 같길래, 너무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티나는 입에 기름칠이라도 한 것처럼 술술 거짓말을 내뱉었다.
"아주 많이 아픈 건 아닌데, 뭔가 몸살이라도 난 것처럼 몸이 쳐져서... 아무래도 합숙은 힘들 것 같은 느낌이야."
"아버지!"
"응?"
"티나가 몸이 아프다고 하는데요."
"뭐? 정말이냐?"
티나는 기레스와의 음탕한 망상을 떠올리면서 발그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봐도 어딘가 아픈 것처럼 느껴지는 연기에 젤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프면 진작에 말했어야지! 합숙 따위 시간만 낼 수 있다면 언제하든 상관 없는데.."
'!!'
이대로 합숙이 미뤄지면 '나중에는' 또 합숙을 가야된다는 말이었기에 티나는 흠칫 놀라며 입을 열었다.
"그냥 저 빼고 아빠랑 오빠 둘이서 다녀오면 안될까요?"
"그런..."
"오빠도 합숙을 엄청 기대했던 것 같고.. 며칠 전부터 준비한 합숙이고 이제 리움 사관학교 시험도 얼마 안남았는데 저 때문에 오빠가 합숙을 못하게 되면 너무 미안할 것 같아요."
"미안하기는.."
"아냐. 오빠 정말로 미안해서 앞으로 같이 단련할 때도 계속 '신경 쓰일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사관학교 시험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되면 내가 발목을 잡아 버린 셈이 되어버리잖아?"
"으음... 그럼.. 일단 집까지라도 데려다 줄게."
하일즈의 그 말에 티나는 고개를 저었다.
"합숙의 특훈은 힘들 것 같지만, 이대로 우르르 몰려서 돌아가야 될 정도로 몸이 안 좋은 건 아니야. 살짝 몸살이 난 것처럼 기운만 없는거니까.. 그냥 나 혼자 돌아가도 돼. 아직 해도 안 저물었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몸이 아프다는데.."
"이대로 같이 돌아가면 내가 쪽팔리단 말야. 그렇게 인사를 다 하고 나와 놓고는,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로 아픈 것도 아닌데 아빠랑 오빠까지 우르르 돌아와 봐. 내가 뭐가 돼?"
"후우.. 뭐 위험한 길도 아니고 별일은 없겠지마는, 아픈 애를 홀로 돌려 보내는 것도 그러니 중간까지만 같이 가도록 하자. 티나 네 말대로면 집까지만 가지 않으면 되는거니까.."
'뭐 그정도라면..'
"네에.."
"그럼, 아빠, 오빠 합숙 잘 지내고 와!"
"그래. 티나. 몸조리 잘 하고 있어."
"다녀오마."
마을 안에 들어와 티나는 손을 흔들며 하일즈와 젤가를 배웅했다.
'좋았어...!'
하일즈와 젤가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티나는 언제 아팠냐는 듯 깡충 뛰면서 좋아라 했다. 주말이 끝나면 기레스와 즐기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본래라면 즐기지 못했던 주말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솔깃? 웃기고 자빠졌네. 이왕 마지막 만찬이니만큼 오늘 밤에는 진득하게 본때를 보여줘야지.'
숨겨놨던 쌈짓돈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깃털처럼 사뿐거리는 발걸음으로 티나는 정겨운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티나는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
'오빠한테도 말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거창하게 배웅 받아놓고 들어가려니까 뭔가 좀 쑥쓰럽긴 한데.. 그나저나.. 1층에 엄마가 없는 모양이네? 어디 계시는 걸까?'
원래 이 시간이면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거나, 남은 집안 일을 정리하고 있을 소피아가 1층에 보이지 않자, 티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ㅡㅡ앙 아ㅡㅡ 으ㅡㅡ 츄ㅡㅡ"
"????"
2층으로 올라가는 도중, 뭔가의 소리에 티나의 발걸음이 멎었다.
작아서 잘 들리지 않는 소리, 하지만 변태인 티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익은 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있었다.
"ㅡㅡㅡ아응 ㅡㅡ아 , 츄릅"
"......"
발소리를 죽이고 한걸음 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던 소리에는 선명함이 깃든다.
조금씩 소리가 선명해질 때마다, 티나는 그야말로 숨이 멎어 버릴 것만 같았다.
'아냐....'
"아우음, 아응~ 츄릅."
'아닐...거야... 사탕이라도...? 빨고 있는..? 거겠지...?'
기레스의 방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보면서 티나는 무너져 내릴 듯한 미소 아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하앙♥ 기레스으...♥"
그런 티나의 헛된 기대는 소피아의 애교섞인 간드러지는 교성소리 한마디에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