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 티나(70)
* * *
"저.. 기레스. 잠깐만. 할 이야기가 있어."
"허억.. 허억.. 어?"
체력 단련 도중 클로에는 기레스를 잠시 불러 세웠다.
"헉.. 후우우... 무슨 일이야?"
"응.. 아무래도 티나가 날 의심하기 시작한 거 같아.."
"티나가?"
"요즘, 학교에서도 날 미행했는데, 엊그제는 우리 집까지 찾아왔던 모양이야."
"그렇구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기레스를 보고 클로에는 의아해 하며 물었다.
"어째 여유로운 것 같다?"
"그야, 티나가 그런 행동을 보이는 거, 나 때문일테니까.. 순조롭게 함락되고 있는 거 같아 다행이잖아?"
"다행은 무슨..!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고 있는 걸 티나가 용납할 리가 없잖아.. 어떻게 다시 만났는데.."
기레스와 다시 떨어지고 싶지 않은 클로에의 목소리에는 애절함이 뚝뚝 서려 있었다.
'뭐 날 죽일 뻔 하면서까지 다시 만났을 정도니까..'
지난 날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면 클로에가 저렇게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기레스는 생각했다.
"그래도 용납하지 않으면 티나가 어쩌겠어?"
"응?"
"이걸 대비해서 엄마를 이용해 공인받기로 한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어차피 엄마나 남들이 볼때 우린 그냥 리움 사관학교에 가기 위해서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 뿐이잖아?"
기레스는 클로에의 보름달처럼 봉긋 솟은 가슴을 스치듯 쓸어내리며 말했다. 기레스의 손가락이 얇은 천 위를 따라 기어, 유두를 스치고 지나가자, 클로에는 찌릿거리는 쾌락에 단숨을 내쉬며 말했다.
"으응.. 그렇긴 한데.. 아흣..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른 거 아냐?"
"싫어?"
애간장을 녹이는 기레스의 애무에 클로에의 입에서 싫다는 말이 나올 리가 없다.
"치사해.. 응, 아읏♥"
기레스가 음흉한 손길로 유두근처를 둥글게 돌려가며 어루만지자 잔뜩 흥분해버린 클로에는 걱정한 자신만 손해보는 기분이 들었는지, 뾰루퉁한 표정으로 신음소리를 내며 반응했다.
"우리만 있을때면 몰라도 엄마가 저렇게 공인해 주는 이상, 우리만 '떳떳하면' 티나는 손가락 빨면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거지."
"하으읏.. 으응.. 그런... 가? 으읍."
자연스럽게 예쁜 입술을 비집고 들어오는 기레스의 혀에 단단한 성벽처럼 고지식했던 클로에의 사고는 두부처럼 부드럽게 물렁물렁 풀어져 버렸다.
"우리를 헤어지게 만든 티나한테 작게 복수해 주고 싶지 않아?"
"복.. 수?"
쾌락과 함께 달콤하게 귓가에 속삭여 오는 기레스의 말에 클로에의 몸이 파르르 떨린다.
하일즈에게 비밀로, 더 나아가 바로 근처에서 소피아마저 속여가면서 밀회하고 있다는 배덕감의 맛에 빠질대로 빠진 클로에에게 기레스의 말은 너무나도 감미로운 것이었다.
"나도 지금까지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라서 티나도 지금 상당히 발정나 있을거거든?"
기레스의 그 말에 쾌락에 흐느적이던 클로에의 눈썹이 까딱였다.
자신의 달콤함으로 가득했던 기레스와의 환락의 나날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티나 본인은 기레스의 애무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속이 상할 정돈데, 그것도 모잘라 이번에는 이 밀회마저 방해하려 들려는 티나를 생각하니 없던 복수심도 생겨버린 클로에였다.
'.....'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괘씸해서 클로에의 복수심은 불에 기름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복수.. 하고.. 싶어.. 할래애."
클로에는 기레스를 유혹하기라도 하는 듯한 애교섞인 늘어지는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여 왔다.
그 간드러진 교태스러움에 기레스는 참지 못하고 음흉하기 짝이 없는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헤읍. 아흐응♥ 기레스.. 잠깐만.. 하흐으.."
클로에는 다급히 핫팬츠를 벗어 나뭇가지에 걸었다. 요새 소피아 몰래 땡땡이를 칠때면 흠뻑 젖을 바지를 벗어두는 것은 습관이 되어버린 클로에다.
"그러니까... 거기서.. 네가 조금만 더 뻔뻔스럽게 나가면..."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끝마치고 기레스에게 매달리 듯, 몸을 섞으며 클로에는 기레스의 달콤한 속삭임과 함께 불안함 따위를 싹 날려버리는 달콤한 절정을 만끽했다.
격일로 데이트나 대련을 한답시고 하일즈와 만나는 날을 빼면, 아무리 노력해 봐도 클로에의 뒤를 잡을 수 없었던 티나는 며칠을 허탕치고 나서야 생각을 바꾸었다.
'미행하는 대상을 바꿔야 겠어.'
클로에를 미행할 수 있다면 그 편이 가장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차선책을 노릴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클로에가 '기레스를' 만나는지 아닌지의 여부지, 클로에가 은밀하게 어디로 가는지 또 누구를 만나는 지는 지금의 티나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하일즈를 위해서라도 클로에의 저 비밀스런 행보에 관심을 가져야 정상이었겠지만, 기레스의 잠꼬대에 한눈이 팔린 티나에게 클로에의 은밀한 행보는 이미 뒷전이 된 지 오래였다.
'어차피 언니를 미행해 봐야 놓치기만 할 뿐이니까.. 바보 오빠를 노리는 거야.'
클로에를 노릴 수 없다면 기레스 쪽을 쏘면 된다.
클로에가 만나는 사람이 기레스만 아니면 된다는 건, 반대로 생각해 보면 기레스가 만나는 사람이 클로에만 아니면 된다는 뜻이었기에, 티나는 어차피 미행할 수 없는 클로에는 무시하고 기레스를 미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좋아.'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티나는 수업을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수업이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방과 후, 티나가 미행하는 줄도 모르고 기레스는 속 편히 약속장소로 향했다.
마을 외곽 인적이 드문 변두리를 너머 숲으로 향하는 기레스를 보면서 티나는 속으로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뭐야 어디까지 갈 생각이지? 뭐하러 위험하게 이런 곳까지..'
마을의 치안은 너무나도 좋아서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었지만, 티나는 이런 변두리까지 마을 공용 노예였던 기레스가 오는 것이 탐탁치 않았다.
엄폐물이 없는 가도에선 혹여나 들킬까 싶어 거리를 벌리고 기레스의 발자취만을 차근차근 더듬어 숲으로 들어간 티나는 얼마 안 있어 기레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휴우.."
그리고 숲의 안쪽에서 기레스를 기다리던 인영을 발견한 티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잖아..?'
사실 클로에보다 소피아를 더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혹시나 클로에는 아닐까 걱정한 자신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 티나는 풀숲에 숨어 소피아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뭐야 저 복장..'
최근에는 집에서도 상당히 대담한 편인데, 여기서는 더욱 대담한 소피아의 복장에 티나는 뭔가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반짝이는 햇살에 비치는 새하얀 속살에 클로에보다도 풍만하면서도 자신보다 늘씬해 보이는 폭발적인 굴곡의 매력을 마음껏 뽐내는 소피아의 복장만으로도 속이 답답한데, 기레스와 뭔가 조잘대면서 하하호호 거리고 있는 것을 보니 속은 답답하다 못해 부글거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만나는 사람은 엄마였구나..'
정말 다행이야. 라고 속으로 안도하던 티나는 그 뒤에 나타난 인물에 표정이 차갑게 굳어 버렸다.
청은색으로 반짝이는 생머리를 휘날리며 원조답게 소피아 못지 않은 대담한 복장으로 나타난 여인은 다름아닌 클로에였던 것이다.
'어, 어째서..'
바로 나서서 클로에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소피아도 있겠다. 티나는 일단, 경과를 지켜보기로 마음 먹었다.
'거기다 엄마는 그렇다 치고, 언니는 왜 저런 복장을..'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클로에의 몸에 티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분개했다.
클로에나 티나나, 여성의 매력은 물이 오를대로 올라서 우열을 가릴 수는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클로에보다 볼륨감이 떨어지는 티나는, 한창 때 소피아를 질투했던 클로에처럼 남의 떡이 더 커보이기만 했다.
넉넉히 차올라 예쁜 골을 만들고 있는 클로에의 가슴에 질투어린 시선을 떼지 못한 티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생각했다.
'지금까지 저런 복장으로 저 색골 오빠를 만나고 있었다고...?'
기레스가 어째서 잠꼬대로 클로에의 이름을 말했는지, 저 숨막히는 자태를 보면 백마디 말이 필요 없어서 풀숲에서 바득바득 이를 가는 티나였다.
'어디 가는 거지..'
체력 단련을 하기 위해, 기레스와 클로에가 함께 달려나가는 것을 보고 티나는 울컥 했지만, 풀숲을 나갈 수는 없었다. 기레스라면 몰라도 클로에에 소피아까지 있는데, 여기서 들키지 않고 움직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평화롭게 기레스와 클로에를 기다리면서 책을 읽고 있는 소피아와 달리, 티나는 풀숲에 쭈그려 앉아 온갖 의심과 질투와 망상에 속이 들렸다 놓였다 난리도 아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숨을 헐떡이는 소리와 함께 기레스와 클로에가 돌아왔다.
'......'
헉헉대는 기레스와 호흡은 거의 흐트러지지 않았지만 어딘지 상기된 듯한 얼굴의 클로에의 모습에 티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라 애가 탈대로 타 버렸다.
겉으로만 보면 그냥 체력단련만 하고 온 것 같지만, 얼핏 무표정한 듯 보이는 클로에의 새하얀 얼굴에 아주 살짝, 보일 듯 말 듯한 발간 기운이 감도는 것이, 여자의 육감이 쿡쿡 찔리는 것이다.
뭔가 가슴은 콕콕 찔리는데, 이렇다 할 물증은커녕 심증조차도 마땅치 않아서 입 안 가득 고구마가 차버린 것처럼 답답하기 짝이 없는 티나였다.
'달려서 열이 난 거겠지.. 그래.. 그럴거야..'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티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클로에를 노려보면서 생각했다.
곧이어, 클로에와 소피아가 체력단련을 위해 자리를 비우자, 홀로 남은 기레스는 머뭇거리다 엎드려 자세를 잡았다.
"후욱.. 후욱... 후욱..."
언제도 한번 오두막 아지트에서 보았던 팔굽혀펴기에 티나는 시선을 빼앗겼다.
클로에와의 체력단련으로 어찌나 땀을 흘렸는지, 땀으로 몸에 착 달라붙은 옷 위로 보이는 잔근육에 티나의 코는 주책도 없이 근질근질 거린다.
'으... 으읏....'
최근 기레스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곁잠은 잘 수 있었어도, 소피아의 지독한 견제로 짠내나는 기레스의 속옷은 단 한개도 모으지 못했던 티나는 땀에 절은 싱싱한 기레스의 셔츠에 눈이 돌아가 버렸다.
'하아.... 아으..으응.. 핫!'
마음 같아선 당장 기레스의 옷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고 싶어 몸이 한껏 달아오른 티나는 다리를 배배 꼬면서 습관적으로 보지로 가져갔던 가녀린 손가락을 화들짝 놀라며 떼었다.
'이 중요한 시기에 무슨 짓을 하는거야 나란 년은!'
그렇게 속으로 자신의 변태성을 저주하며 티나는 나뭇가지로 팔을 꾹꾹 눌러가면서 필사적으로 발정난 몸을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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