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계네토기-175화 (175/238)

〈 175화 〉 티나(67)

* * *

저녁 식사가 끝나고 해가 저물 무렵, 티나는 조심스럽게 1층으로 내려와 거실과 부엌 근처를 어슬렁 거렸다.

"티나, 무슨 일 있니?"

도둑이라도 들었나 생각했는지, 자연스럽게 감시를 하러 나온 소피아는 계속해서 어슬렁 거리는 티나를 발견하곤 말을 걸었다.

"아, 엄마.. 그거 오빠한테 가져다 줬어요?"

"그거?"

"그 수면의 비약인지 뭔지 하는거요."

저녁이 끝나고 계속해서 어슬렁 거리고 있던 만큼, 아직 기레스가 수면의 비약을 가지러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티나는 짐짓 모른 척 물었다.

"오늘은 아직 안 왔는데 왜?"

"저.... 어제 너무 잘 자는 바람에, 저도 혹시 한번 더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전 날, 소피아의 입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라는 것을 들은 티나는 머뭇거리는 척을 하며 말했다.

"물론이지."

"엄마. 정말 고마워요! 아, 그리고 이왕 제 꺼 가지고 가는 김에, 오빠 것도 겸사겸사 가져다 주게 오빠 것도 같이 준비해 주세요."

"응? 하일즈는 딱히 수면의 비약이 필요 없는데?"

평소 아직까지도 티나가 기레스를 꺼려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피아는 의아해 하면서 물었다.

"아, 알아요. 기레스 오빠 거.. 가져다 주려구요."

"!!? 티나 넌 기레스를 아직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저라고 언제까지나 애처럼 굴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가족인데.."

"티나도 철이 다 들었네!"

소피아는 감동 받아 기쁜 듯이 해맑은 함박웃음을 띠면서 티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소피아는 물병을 꺼내 수면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 이건 기레스 거, 이건 티나 거,"

"?? 오빠 거랑, 제 거랑 뭔 차이가 있어요?"

"아무래도 남자랑 여자니까, 섞는 양을 좀 조절해 뒀어. 어느 쪽을 먹어도 자는 데에는 문제 없지만, 6시간 쯤 잘 수 있도록 기레스 쪽에 '조금 더' 비약을 넣어뒀기 때문에 바뀌면 자는 시간이 조금 차이날 거야."

"아... 그렇구나.. 그럼 저 올라가 볼게요. 고마워요 엄마!"

"응. 좋은 밤 되렴."

콩닥이는 기대로 방방거리며 방으로 돌아가는 티나는 소피아가 요사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좋아.. 일단 내 약은 방에 가져다 두고..'

티나는 자신의 약을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두면서 생각했다.

'이게 오빠 거지? 헷갈리면 안돼.'

기레스 쪽 수면제에 좀 더 많은 비약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들은 티나는 다시 한 번 더 되뇌이면서 제대로 기레스의 수면제를 들고 방 밖으로 나왔다.

[똑똑]

"누구세요?"

"어.. 음... 나, 난데.."

냉전이 시작된 후, 정말 아득히도 오랜만에 말을 걸어 멋쩍은 탓에, 티나는 살짝 말을 더듬었다.

"뭔데?"

자신이라는 것을 밝히자마자, 싸늘한 태도로 확 돌변한 기레스의 모습에, 괜시리 티나는 무거운 철구라도 하나 떨어진 것처럼 마음이 철렁 내려 앉았다.

애써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에 실망해서 저러는 것이라고 생각하려 해도, 이렇게 대놓고 질색하는 태도를 보면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 엄마가 이거 가져다 주라고 해서.."

"응? 아.. 그, 그래.."

기레스는 어쩐지 당황한 듯, 재빨리 티나의 손에서 수면제를 빼앗아 들었다.

'아..'

"요즘 잠을 못 자나봐?"

기레스가 당황한 틈을 놓치지 않고, 티나는 이때다 싶어 말을 걸어 보았다.

"너 이게 뭔지 알고 있었냐?"

"수면제잖아? 나랑 잘 때는 깨우기 전까지 잘만 자더니.."

"내가 같이 자달라고 하면 자줄 것도 아니면서 신경 끄시지?"

'읏..'

기레스가 자신에게 부탁하고, 자신이 그것을 받아 들이면, 얼마 전 음락의 나날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떠올린 티나의 입은 바짝바짝 말라 비틀어 졌다.

뭔가 손 하나만 잘 뻗으면 닿을 것 같으면서도 손을 내밀 수 없는 너무나도 먼 현실에 애간장이 타버리는 티나였다.

'응?'

그렇게 애가 타서 속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사이, 티나는 약병을 받아든 기레스가 은근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에휴.."

가만히 보면 기레스는 자신의 몸을 흘끔 거리고 있었다.

잠옷 하나만을 걸친 가볍기는 해도 큰 노출은 없는 복장이었지만, 티나의 예쁜 몸매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어서, 기레스는 시선을 흘끗이는 것을 멈추질 못하고 주책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흐응~♥'

정색이 아닌, 저런 실없는 한숨소리를 얼마만에 들어보는지, 티나는 너무나도 반가워 미칠 것만 같았다.

보아하니 잠자리 이야기를 꺼낸 까닭에 애가 타버린 자신처럼 기레스도 흥분해 버린 것만 같아 보여서 티나의 마음은 보글보글 좋은 느낌으로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이 색골 오빠도..♥'

이전 같았으면 구역질이 났어야 정상인 기레스의 음흉한 시선을 보고, 역시 자신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하며 행복해 하기만 하는 티나였다.

"쳇.. 꿀꺽꿀꺽."

더는 흥분해서 못참겠다는 듯, 외마디 혀를 차면서 기레스는 손에 들고 있는 수면제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

"여튼.... 볼 일 끝났으면.. 얼른 꺼... 져.. 으음.."

제 딴에는 정색한답시고 한 모양이지만, 싸늘함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늘어진 말투로 기레스는 부스스 감기는 눈을 부비적 거리면서 문을 닫았다.

그 필사적으로 아닌 척 하려는 모습을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티나는 한차례 배시시 웃고는 잠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분 후, 티나는 방음 마법을 사용하고 소리 하나 없이 살금살금 기레스의 방 안에 들어왔다.

[스읍 하아]

마치 자신만을 위한 공간에 도착하기라도 한 듯, 티나는 기레스의 방에서 빙글 거리면서 숨을 들이킨 뒤, 욕정이 그득한 눈으로 기레스의 침대를 향했다.

"......"

정말 오랜만에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기레스의 모습을 보자, 방탕하게 지냈던 날이 떠오른 티나는 절로 온몸이 흥분해 버렸다.

뭔가 기레스의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면 한발 입으로 빼고, 받아 마시면서 깨우고 싶어 목이 근질근질 거리는 티나다.

'안돼 안돼. 아무리 수면제의 효과가 좋다고 해도 수면제는 어디까지나 수면제일 뿐이니까.. 조심하지 않으면..'

기레스는 잠들어서 애무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닌데도, 굳이 티나는 자신의 몸에 두르고 있던 잠옷을 벗어 내렸다.

"헤헷.."

그리곤 기다렸다는 듯, 헤실헤실 녹아내릴 듯한 표정으로 티나는 기레스의 품 안에 쏙 들어가 버렸다.

'아아~ 좋아!'

기레스 금단현상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사방팔방에서 스며드는 기레스의 체취에 티나는 헤롱거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거야. 이거..'

단순히 잠을 청하기만 하는 것은, 소피아가 건네 준 수면제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그런 걸로는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애초에 티나는 잠을 자고 싶은 게 아니라, 이 변태적인 쾌락을 추구하고 싶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스읍 스읍]

기레스의 가슴에 찰싹 달라붙어 마음껏 숨을 들이키던 티나는 지렁이처럼 꾸물꾸물 머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해보지 못했던 짓들도 '기레스가 잠든'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최대한 몸에는 닿지 않게 조심하면서 티나는 기레스의 가슴부터 시작해 목덜미 쪽으로 마음껏 냄새를 음미해 나갔다.

[킁킁, 흡흡]

"하으.."

기레스의 애무에 신음소리를 내긴 했어도, 이렇게 냄새에 취해 황홀해 하는 신음을 내어 본 적은 없었던 티나는, 배덕적인 해방감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아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애무를 받은 것도 아니요, 애무를 한 것도 아닌데도 몸은 근질근질 쾌락의 꿀에 절여진 지가 오래여서, 티나는 더 참지 못하고 헐레벌떡 게걸스럽게 손가락을 자신의 음부를 향해 가져가기 시작했다.

"응흐으읏~♥"

냄새를 맡으면서 자위를 하고 있을 뿐인데, 음욕으로 잔뜩 절여진 신체는 평소와 달리 어디를 만져도 달큼하니 톡톡 튀어 기분이 좋다.

"스으으읍. 하아앙. 응하아ㅡ♥"

몸이든 음부든 어딜 만져도 간질간질 꼴릿하기 짝이 없어서 실로 티나는 오랜만에 살아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으응.."

얼마나 기레스의 잔향에 파묻혀 만끽 했을까, 이미 쾌락으로 이성이 반쯤 날아간 눈으로 티나는 군침을 삼키며 머뭇거렸다.

'이, 이런 짓...'

탐욕스러운 시선이 기레스의 구석을 향한다.

'이 바보 오빠가.. 명령 하지도 않았는데..'

기레스가 명령 '해주질 않아서' 못했던 일들도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머뭇 거리던 티나는 기레스의 겨드랑이 쪽으로 몸을 얼굴을 가져가 코를 쫑긋거리기 시작했다.

시작이 어렵지, 한번 코를 가져가기 시작하면 그 뒤는 일사천리다.

[스읍 킁, 킁, 스읍 하ㅡ]

"아흣.. 앗, 아아.. 하으응~♥"

어차피 씻고 왔겠다, 냄새가 다르면 얼마나 다르며 구리면 또 얼마나 구리겠냐마는, 이미 냄새 소믈리에가 될대로 된, 티나는 기레스의 살내음으로 가득한 겨드랑이 냄새에 맞춰 신체를 벌벌 떨면서 자지러져 버렸다.

[흐흡, 킁 킁킁, 스읍]

'하으...'

절정의 여운에 몸을 파들파들거리면서도 고개를 돌려 쉴 새 없이 냄새를 음미하다가, 문득 혀로 낼름낼름 핥을 수 있다면 더 좋을텐데 하는 생각에 티나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 했다.

'그래도...'

슬쩍 티나는 기레스의 팔을 들어 올리곤 속 얼굴을 들이밀고는 아늑한 냄새를 맡으며 황홀경에 빠졌다.

핥지는 못해도 기레스와 만나지 못해서 벌벌 기었던 지옥같은 날들에 비하면 지금 이 상황은 하늘이 내려준 은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거기다.. 스읍. 자고 있는 바람에 이런 짓도 할 수 있고..♥ 역시 이거.. 좋아♥'

맛있는 절정도 느꼈겠다, 살짝 기레스에게 안긴 자세로 티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늘은 너무 좋았어. 아무래도 오빠 놈도 이정도로는 깨지 않는 모양이고, 이렇게 딱 세시간만 푹 잔 다음에 몰래 방으로 돌아가야지!'

"헤헤헤.."

그렇게 싱글거리면서 티나는 기레스의 품 안으로 기어 들어가 바라고 또 바랬던 달콤한 잠을 만끽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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