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티나(54)
* * *
철두철미하게 도망다닌 기레스가 사실은 자신에게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티나의 마음은 상당히 편해졌다.
지금까지는 기레스가 자신을 철저하게 피해댄 나머지, 능욕을 당할 마음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흥분할 수 있을 다른 남자까지 찾아나선 티나였다.
그런 마당에 기레스가 사실은 자신에게 흥분해서 피해다녔다는 사실은 티나에게는 가뭄에 단 비 같은 소식이었다.
딱히 기레스가 자신에게 흥분한다고 능욕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닌데도 티나는 연신 싱글벙글 거리며 침대 위를 데굴데굴 뒹굴렀다.
"아흐응..♥"
기레스가 자지를 세우고 헐레벌떡 올라가는 꼴을 상상하면서 티나는 기분 좋은 절정을 맞이했다. 기레스와 함께 할 때의 진한 절정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쾌락만으로도 티나는 정말 감지덕지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까.. 날 보고 흥분 했다는 건.. 그 녀석도..!'
기레스도 자신을 보고 이렇게 자위하고 있을 것을 떠올린 티나는 절정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파르르 떨면서 삽시간에 또다시 발정나 버려서 정신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자지러 졌다.
"하아.. 하아아응.. 하으으...♥"
몸을 빳빳히 세우고 만족스러운 또 한번의 절정 뒤, 티나는 요염하게 입맛을 다시며 생각했다.
'내 몸으로 발정났다 이거지..?'
".........!"
티나가 과거 능욕을 당할 때, 기레스를 피하고 싶어도 집이어서 피할 수 없었듯이, 기레스도 마찬가지로 집 안에서는 티나를 완전히 피해다니는 건 불가능 했다.
오늘 티나는 현관 앞이 아니라 방 앞 2층 난간에 몸을 기댄 채로 기레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괜히 방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척 하다가 티나는 기레스가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더워 죽겠다는 듯 손으로 셔츠를 까딱 거렸다.
"후우.... 앗.."
편한 면티를 입고 가슴 부근을 펄럭이면서 더위를 달래다 기레스를 보고 살짝 놀라는 그 모습은 기레스가 아닌 누구라도 발기를 참기 힘들 정도로 귀여우면서도 선정적이었다.
"우으..!"
그런 티나의 요망한 모습을 보자마자 기레스는 단번에 성기를 빳빳히 세우고는 당황한 척, 허리를 슬쩍 앞으로 굽히면서 황급히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후훗..'
그런 기레스의 모습을 보면서 티나는 만족스럽게 요망한 눈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이 위치는 조금 별로 같네.'
자신의 유혹 때문에 당황한 기레스가 후다닥 방 안으로 들어가는 반응을 정면에서 만끽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기레스와 스치는 공간이 없어서 냄새를 진하게 들이키지 못한 티나는 기레스가 떠나간 자리의 잔향만을 킁킁거리며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크크.. 귀여운 년."
방으로 돌아 온 기레스는 비열한 웃음을 흩뿌렸다.
그렇게 자신을 싫어해서 필사적으로 피해다니며 혐오했던 티나가, 자신의 몸을 은근히 어필하면서 살근살근 유혹해 오는 상황은 기레스에겐 극상의 만찬이라 할 수 있었다.
'하여간 단순하다니까..'
철저하게 피해다니면서 자신이 흥분했다는 척을 눈치채자마자, 저렇게 보란듯이 유혹해 오는 점이 티나다워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기레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꼬라지를 보아하니, 슬슬 다음 준비를 시작해 둬야 겠구만.'
"으...."
기레스를 유혹하면서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냈어야 할 티나의 얼굴은 꽤나 굳어 있었다.
확실히 며칠 간, 기레스를 유혹하면서 그 유혹에 당황하는 기레스를 볼 때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유혹해대도 그 이상의 무언가가 일어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시발...'
내심 자신 때문에 미치도록 발정난 기레스가 못 참고 한번 정도 성희롱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던 티나였지만, 기레스는 흥분하고, 머뭇대고, 당황하며, 발정하기는 해도 자신의 몸에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냄새에 발정해 자위를 만끽하는 것도 한 두번이지. 스쳐지나가는 냄새는 어디까지나 스쳐지나가는 냄새에 불과했다.
살에 푹 잠겨 마음껏 냄새를 음미하는 것과는 비교할 꺼리도 안되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티나의 몸은 예전 기레스에게 능욕이 끝났을 때처럼 욕구불만으로 점점 메말라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하아...."
기레스가 옷 위라도, 단 한순간만이라도 좋으니 손가락을 살짝 걸어서 자신의 속살을 간지럽혀 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이전의 자신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정신 나간 생각을 하면서 티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자새끼.. 찌질한 새끼.. 겁쟁이 새끼..!'
속으로 기레스를 욕하는 말을 늘여 놓으면서 티나는 속으로 울분 어린 투정을 시작했다.
'실수인 척 살짝 건드려 봐도 좋을텐데.. 왜 그렇게 머리가 나쁜거야!'
이제는 그냥 애무한답시고 직접적으로 덮치거나 건드리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자신의 살을 건드려만 줘도 좋겠다고, 안달이 날대로 난 티나는 괜히 기레스를 탓하며 침울해 했다.
'조금만 만져주면..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을텐데..'
그저 일용할 딸감을 얻을 수 있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여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티나는 뺨을 삐죽였다.
'도저히 못참겠어. 저 병신이 그럴 마음이 없다면...'
시간을 슬쩍 확인하고 자신이 일용할 양식은 자신이 구한다는 마음으로 티나는 슬그머니 속옷을 벗어 던지고는 바리바리 옷을 챙겨 입고 방 밖으로 나갔다.
"응? 티나 여기서 뭐하고 있어?"
2층 난간 앞에서 기레스를 기다리는 티나를 보고 하일즈는 말을 걸어왔다. 벌써 일주일도 넘게 티나에게 사과를 하지 못해 하일즈는 마음이 매우 불편한 상태였다.
'으.. 왜 하필 여기서 오빠가...'
정작 하일즈의 막말 따위는 머릿 속에서 까맣게 잊은 티나는 하일즈의 접근이 달갑지 않기만 했다.
'곧 그 녀석이 올 지 모르는데..'
"티, 티나.. 저번에 있었던 일 말인데.."
'저번에 있었던 일?'
최근 기레스의 냄새를 쫓으랴, 기레스를 은근히 유혹해대랴, 하일즈의 막말 따위는 이미 먼 옛날의 일이 되어버린 티나는 잠시 생각해도 짐작 가는 일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으음.. 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으니까.. 괜찮아 오빠."
생각나는 일이 없음에도 얼른 하일즈를 보내야 겠다는 일념으로 티나가 대충 둘러대자 하일즈는 티나의 덤덤한 반응에 슬쩍 놀라며 말했다.
"어? 어.. 미안했어 티나. 내가 그 때 너무 속상한 일이 있어서.."
'아.. 그 때 그 이야기였구나..'
그제서야 뒤늦게, 티나는 지금 하일즈가 무슨 일을 사과하는지 눈치 챌 수 있었다.
'휴우...'
티나가 사과를 받아줬다는 것에 마음이 풀린 하일즈는 티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마른 침을 삼켰다.
최근 집 안에서의 티나의 차림새가 많이 가벼워 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대놓고 많은 노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째선지 색기가 흘러 넘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생 앞에서 무슨 생각을..'
그러면서도 티나의 몸 요소요소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하일즈였다. 그 정도로 기레스에게 능욕 당한 티나의 색기는 물이 올라 있었다. 괜히 마을에서 손꼽히는 미남한테 고백을 받은 것이 아닌 것이다.
흘끗 거리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하일즈를 보면서 티나는 속으로 불만스레 생각했다.
'오빠는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람? 얼른 사라져 주면 좋겠는데..'
곧 기레스가 돌아올 시간이라 초조해진 티나는 더 참지 못하고 자신을 은근히 감상하고 있는 하일즈에게 말했다.
"오빠, 무슨 볼일 있어서 나온 거 아니야?"
"잠시 외출할 일이 있긴 한데 아직 시간이 좀 있어서 괜찮아."
'으으...'
"그럼 얼른 볼 일 보러 가. 나도 요즘 좀 속상한 일이 있어서 오빠의 마음 아주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실제로 능욕이 끝난 며칠의 지옥 같은 시간에는 하일즈고 뭐고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던 티나는 그렇게 자신의 경험을 살려 하일즈를 타이르면서 제발 좀 빨리 내려가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랬어?"
여전히 느긋한 하일즈는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아 티나의 속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곧, 그 바보가 온단 말야...!'
야심차게 기레스가 건드리지 않겠다면 자신이 기레스를 건드리겠다는 굳은 각오를 하고 나온 티나는 하일즈가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쾌락에 미쳐 은근히 자신을 기레스에게 어필한다고 해도 하일즈의 앞에서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소, 속상하면 말이 헛 나올 수도 있지. 뭐. 나 정말 신경 안 쓰고 있으니까... 괜히 마음쓰다 늦지 말구 나가도 돼. 오빠."
"난 정말 괜찮은데.."
'내가..... 방해라고..!'
티나는 아주 짧은 시간 독살스러운 눈을 째릿 거리며 하일즈를 노려 보았지만, 티나가 자신의 사과를 받아주었다는 사실에 마음을 푹 놓고 있는 하일즈는 그 티나의 사나운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다.
"ㅅ, 사실.. 혼자 조금 생각하고 싶은 게 있어서 나와 있는 거였거든.. 미안한데 오빠가 이렇게 붙어 있으면 생각이 정리가 안되서.."
더는 참지 못하고 티나는 아예 혼자 있고 싶다고 하일즈의 앞에서 못을 박아 버렸다.
"아.. 그랬어? 저.. 티나 화난 건 아니지?"
뭔가 티나의 날이 선 듯한 반응에 하일즈는 혹시나 아직도 티나가 자신이 했던 발언에 화가 나 있을까 싶어 되물었다.
그 눈치 없는 질문에 티나는 하일즈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게 이를 갈았다.
[으득]
"아, 아냐... 정말.... 아니니까.. 그냥 혼자 생각 좀 하고 싶은 것 뿐이니까.."
'제발 좀 방해말고 가줘...'
하일즈를 쫓아내기 위해 정말 필사적으로 웃는 연기를 하면서 티나는 그렇게 말했다.
하일즈도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오는 티나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어서 산뜻하게 인사하면서 아래로 내려갔다.
"알았어. 그럼 나갔다 올게. 고마워 티나."
하일즈의 말에 티나는 대답도 않고, 또 말을 걸어올까 싶어 필사적으로 마음을 풀었다는 듯한 표정을 연기 하면서 하일즈가 빨리 사라지기만을 고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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