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티나(53)
* * *
'그냥 단순히 구리기만 해서 좋은 게 아닌거라고?'
[스읍]
티나는 복도를 걸으며 남자들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뭘 발랐는지 좋은 냄새에 티나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이게 아냐!'
[스읍]
'시발..'
그렇다고 구린 냄새가 좋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이미 적응할대로 적응해서 좋아 죽겠는 기레스와는 다르게, 흥분 이전에 생리적인 혐오감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오줌까지 마셔대면서 좋아 죽는 자신이라면 기레스처럼 구리면 구린 것 그자체로 흥분할 줄 알았는데 사실은 영 아니라는 사실에 티나는 안도하면서도 짜증이 치밀었다.
'역시 그 녀석이 아니면 안되는 거야..?'
기레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티나는 괜시리 씩씩 거렸지만, 한켠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 하일즈 하나만 바라보고 결벽증처럼 철통 같은 가드를 굳혔던 티나다. 구리기만 하면 누구든 좋아서 헤롱 거리는 것도 티나에겐 전혀 반가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 해도..'
티나는 예쁜 눈썹을 까딱거리면서 고민했다.
이제와서 싫어하는 기레스의 냄새로 흥분한다는 사실 자체가 짜증이 나는 건 아니지만, 이상적인 취향의 냄새를 가진 기레스는 이제 자신을 능욕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이는 것이다.
"저, 저기.."
"응?"
기레스를 생각해 또 성욕으로 몸이 달아오르고 있는 와중 누군가가 티나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저, 전부터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사귀어 주세요!"
남자는 뒤에 숨겨둔 꽃다발을 티나에게 내밀며 대뜸 고백을 시도했다. 밑도 끝도 없는 어이없는 고백에 티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대를 확인했다.
'레이그잖아?'
같은 반도, 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티나는 눈 앞의 남자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고백을 해 온 남자는 마을 내, 최고의 미남으로 손꼽히는 남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레이그는 하일즈처럼 모든 영역에서 뛰어난 남자는 아니었지만, 외모 하나만큼은 하일즈보다도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나 있을 정도로 훌륭한 미색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레이그는 외모 외에도 다른 의미로도 상당히 유명 했는데, 그 잘난 외모를 가지고도 티나처럼 단 한번도 여자를 사귀어 본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다른 남성에게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는 티나가 괜히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그가, 지금 티나에게 고백을 해 온 것이다.
외모 하나만으로 고백 프리패스가 가능할 정도로 미남 그 자체인 레이그였지만 티나에겐 그야말로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다.
"흐음~"
티나는 슬쩍 레이그의 근처에 다가가 요리 조리 레이그를 흝어 보았다. 뱀처럼 요사스럽게 자신을 살피는 티나의 시선에 레이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쭈뼛 거렸다.
다른 여성이었다면 그 쑥스러워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귀엽느니 순수하니 곱게 바라봤을지도 모르지만 티나는 레이그 따위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스읍]
'이새끼도 아냐..'
이미 티나의 사람에 대한 가치판단의 우선순위는 냄새로, 좋은 향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레이그의 고백이 성공할 가능성은 0이 되어 버렸다.
냉랭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티나는 레이그의 꽃을 받아 들였다.
"아.."
고백을 받아 들이나 싶어 레이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지만 그의 기대는 곧바로 곤두박질 쳤다.
티나는 맨손으로 꽃다발을 찢어 발겨 버리며 그대로 레이그의 앞에 꽃을 내던져 버린 것이다.
"미안한데, 거절할게. 그리고 앞으로 절대로 말 걸지 말아줬음 좋겠어."
말로는 미안하다 하지만 티나의 표정에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듯, 보면 넋이 나갈 것만 같은 요사스러운 미소만이 감돌고 있었다.
한번 고백해 온 남자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티나식 거절에 레이그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평범한 여성이었다면 동정심에 사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야 할 것만 같은 표정이었지만, 티나는 미안해 하기는커녕 속이 시원하기만 했다.
'남은 속이 뒤집혀 죽겠는데 고백은 뭔 고백이야?'
티나의 속 사정을 레이그가 알 수 있을 리 없지만, 티나는 괜히 자신의 화를 레이그에게 전가 했다.
'잘생기긴 했지만, 저런 녀석이어도 하나 흥분도 안되네.'
좌절하고 있든 말든, 이제는 관심도 없다는 듯, 레이그를 뒤로 하면서 티나는 생각했다.
'역시...... 그 병신이 아니면..'
'좋아..'
티나는 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가 재빨리 방문을 열고, 쏜살 같이 1층으로 내려가서 식당과 현관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두리번 거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현관 문이 열렸다.
"후우... 힘들다.. 어..?"
특훈을 끝내고 땀에 잔뜩 젖은 상태로 돌아온 기레스는 현관 앞에서 티나를 발견했다. 매일 같이 티나는 기레스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은근히 기레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기레스의 싱싱한 땀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생각에, 티나의 전신과 정신은 기대의 꿀로 가득 차버렸다.
"요즘.. 이 시간에 자주 보는 거 같다?"
'어?'
왠일로 기레스가 말을 걸어오자, 어찌나 오랜만이었는지 티나는 심장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후우. 집인데 마주치는거야 당연한 거 아냐?"
티나는 이상할 게 뭐 있냐는 듯 앙칼지게 쏘아붙히면서 깊게 숨을 들이켰다.
어딘지 달달한 듯한 기레스의 땀내에 몸은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해서 손가락 하나만 가져다 대면 좋은 절정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항상 이 시간에 보이길래.."
'오늘따라 묘하게 말 걸어주네.'
이왕이면 말을 길게 이어가고 싶지만, 견원지간의 입장 상 티나는 기레스에게 퉁명스레 따지고 들 수밖에 없었다.
"네가 이 시간에 온다고 피해다니기라도 해야 돼? 왜 내가 널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아?"
그 말은 기레스가 이 시간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지만, 기레스는 모른 척 해주며 말을 내리 깔았다.
"으음.. 확실히 그건 아니지. 그, 그럼 난 먼저 올라간다!"
'아...'
오랜만에 이야기를 해서 냄새도 더 맡고 좋았는데 또 다급하게 말을 끊고 올라가 버리는 기레스가 티나는 야속하기 짝이 없었다.
'병신새끼, 왜 이렇게 못 피해서 안달이야? 그래도 가족인데 말 몇마디 더 나누면 어떻다고.. 이전처럼 좀 더 능글거리면서 반박해도 좋잖아! 응?'
그렇게 속으로 불만을 내뱉으며 마지막 냄새라도 진하게 맡기 위해 살짝 시선을 돌린 티나는, 황급히 자신의 옆을 지나가려는 기레스의 사타구니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것을 보았다.
'저, 저건..'
기레스가 바지 위로 발기한 것을 한 두번 본 티나가 아니다. 기레스가 자신을 무시하며 재빨리 지나가기는 했어도 기레스는 분명히 발기를 하고 있었다.
타타탁거리는 소리를 내며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는 기레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티나는 의기양양하게 헤벌쭉한 미소를 띠면서 좋아라 했다.
'역시 원숭이 새끼는 어쩔 수 없다니까~'
방금 집 안으로 들어올 때는 힘드니 뭐니 지껄였던 것을 생각하면 기레스는 분명 전혀 발기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후후."
기레스가 발기를 한 것은 틀림없이 현관 앞에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신한 티나는 전에 없을 정도로 해맑게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만날 때면 항상 도망치듯 지나갔던 게...'
이제사 생각해 보니 퍼즐이 딱딱 들어 맞는다. 자신을 보고 주책도 없이 발정나 흥분해 버린 나머지 기레스는 자신을 의도적으로 피해 버렸던 것이다.
'하긴.. 나만 해도 이렇게 발정나서 미칠 거 같은데 지깟 게 어쩌겠어.'
티나는 기레스가 안을 수 있는 여자는 자신 뿐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왕따였던 기레스는 여자친구는커녕 일반 친구를 사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생 동정으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 할 기레스가 자신의 몸 맛을 잊지 못하고 발정이 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찌질한 새끼. 그렇게 흥분하면 좀 더 봐도 좋은데.. 그 편이 나도 좋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티나는 기레스의 묘하게 고집 있는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노예생활 도중에도 기레스는 언제나 묘한 자존심이 있어서 주인으로서 지킬 필요가 없는 약속도 지키려고 지랄발광했던 인간이었다.
그랬던 기레스가 노예기간이 끝난 뒤, 자신을 능욕하지 않고, 의심조차도 사지 않기 위해, 발정 한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기고 피했던 것은 꽤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헤헷.."
티나의 표정은 헤실헤실 풀어져 버렸다.
발정나서 미칠 것 같은 변태는 자신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거기다 그 대상이 기레스라는 사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응? 어.. 저기.. 티나."
식당에서 물을 마시고 나오던 하일즈는 싱글거리고 있는 티나를 보고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얼마 전,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이 티나에게 했던 말이 너무 심했다고 생각한 하일즈는 지금까지 은근히 사과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티나는 항상 묘하게 날이 서 있어서 말을 걸기가 힘들었는데 마침, 기분이 좋아 보이는 티나를 발견한 것이다.
"아, 오빠? 나 지금 좀 바빠서 그런데 할 말이 있으면 다음에 해줘!"
그렇게 하일즈를 뒤로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곧장 방으로 올라간 티나는 꿀맛 같은 달콤한 자위행위를 마음껏 음미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