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티나(52)
* * *
그렇게 능욕이 끝나고 티나는 그야말로 미칠 것만 같은 지옥을 맛봤다.
"아읏.. 이.. 시발..!"
자정이 가까워져 올 때면 어김 없이 찾아오는 미칠 듯한 욕구불만을 반찬삼아 같잖은 자위로 몸을 가라앉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3일이 지나고 부터는 이미 습관적으로 자위할 뿐, 별다른 느낌도 감흥도 없는 티나였다.
'뭐야, 도대체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거야!'
물 맛 같은 밍밍한 쾌락과 절정에 티나의 속은 그야말로 천불이 날 정도로 이글거렸다.
'찌질이 새끼.'
그 날 이후, 기레스는 지금까지 그렇게 능글 맞게 자신을 괴롭히던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철저히 티나를 피해 다녔다.
가끔 마주쳐도 인사 하나 없이 괴롭힘을 당하던 무렵처럼 눈치를 살피며 지나가는 기레스를 떠올리자 티나의 속은 안달이 나, 더욱 지글지글 거렸다.
'떡정도 정이라면서....!'
기레스가 능글맞게 자신에게 치근덕거려주면 싫은 척 쏘아 붙히면서 간이라도 볼 수 있을텐데, 완전히 자신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기레스가 티나는 너무나도 미웠다.
자신의 눈치를 보면서 피하는 기레스를 상상하니 또 몸이 근질 거린다.
'지금 이 시간이면..'
잠도 못 자고 새벽까지 끙끙 앓아 눈치채고 보면 지금은 기레스의 자지를 빨아 깨우는 시간이다.
"아우...! 꿀꺽"
후덥지근한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 기레스의 육봉을 빨아 제끼는 상상을 하면, 조건반사처럼 티나의 입 안은 침이 넉넉히 고여 버린다. 그 뒷 상상까지 하면 머리는 더욱 오싹하게 저려 버려서 티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몸을 정신없이 뒤척이면서 자위했다.
"시발새끼.."
그렇게 오늘도 티나의 잠들지 못하는 밤은 천천히 지나갔다.
"하이.. 씨.."
끝내 참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홀랑 샌 티나는, 엉망으로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 트리고는 일어났다.
'그래.. 어쨋든 끝난 거야. 항상 바래왔던 거잖아? 이제는 저 병신한테서 멀어져야지. 어쩔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어쩔 수....'
머리로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속에 남는 깊은 아쉬움은 숨길 수가 없다.
뭔가 중간에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기레스를 잘 구슬렸다면 지금쯤 쾌락 삼매경으로 한 두어 달 정도는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짝 짝]
'이미 끝..... 나 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어.'
원하던 것을 빼앗긴 어린아이마냥 울먹이는 표정으로 티나는 방 밖으로 나갔다.
"오, 티나 잘 잤어?"
때마침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나온 하일즈의 속 편해 보이는 말에 티나는 뭔가 괜히 짜증이 치밀었지만 애써 미소 지으며 답했다.
"으응."
'음? 잠깐..'
하일즈를 보자 문득 티나의 머릿 속에 지금까지는 잊고 있던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맞아! 꼭 그 병신일 필요는 전혀 없잖아..!'
지금까지는 기레스에게 흠뻑 빠져 잊고 살았지만 분명 처음 냄새로 흥분하는 변태인 것을 알았을 때에는 다른 사람의 냄새로라도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티나였다.
"??? 티나 그럼 난 먼저 내려갈게."
뭔가 티나의 표정이 오락가락 하는 것을 보면서 하일즈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아래로 내려갔다.
"좋아...!"
"크허억.."
복부에 매섭게 꽃히는 주먹에 하일즈는 꼴사납게 몸을 기역자로 꺾으며 바닥에 쓰러져 내렸다.
"하일즈. 요즘 너무 단련을 게을리 하는 거 아냐?"
"끄으윽.."
하일즈는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격통에 신음을 흘리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뭐지..?'
클로에의 말과 다르게 하일즈는 단련을 전혀 게을리 하지 않았다.
최근 클로에와 대련을 할 때마다 전과는 다르게 확연히 밀리기 시작했던 까닭에 클로에 몰래 늦은 밤까지 특훈까지 할 정도로 하일즈는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클로에와의 격차는 심각하게 벌어져만 가서, 이제는 대련 자체가 성립되기 힘든 수준까지 와 버렸던 것이다.
'말도 안돼.. 클로에와 내 재능이 이정도나 차이 난다고?'
적당히 밀리는 수준이라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만 이렇게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은 자신의 재능이 송두리 째로 부정 당하는 느낌이라 참을 수가 없는 하일즈다.
'후우.. 역시 아줌마와의 단련이 꽤나 효과가 있는 모양이네.'
쓰러진 채로 좌절하는 하일즈의 모습을 보면서 클로에는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사실, 조금 봐주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기레스 덕분에 클로에는 하일즈가 어떻게 해주면 즐거워 하는지 이제는 나름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요즘은 마음이 전혀 내키지 않았다.
어차피 하일즈에게 잘 보이든 말든, 결혼은 결정된 상태고, 마음은 이미 기레스에게로 끝까지 기울어 있는 클로에는 이제 더 하일즈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막 대해서 하일즈가 제 발로 자신을 차주면 그거야 말로 클로에에게 좋은 일은 없을 정도였다.
'지금쯤 기레스와 아줌마는..'
거기다 자신이 하일즈와 대련하고 있는 지금, 기레스와 소피아는 단련을 하고 있을거라 생각하니 속이 부글부글 거려서 클로에는 지저분하게 치밀어 오른 화를 하일즈를 향해 풀어 버렸던 것이다.
'괜히.. 야하게 차려 입었나..'
소피아의 잘 빠져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면서 클로에는 입술을 잘근 거렸다.
소피아가 자신의 차림을 어떻게 받아 들였는지는 몰라도, 자신이 그렇게 차려 입고 갔기에 소피아의 복장이 바뀌었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소피아와 기레스의 사이는 상당히 좋아 보였다.
자신이 없을 때, 그 색기 넘치는 차림으로 무릎 베개나, 꽁냥 거릴 기레스와 소피아를 상상해 버린 클로에는 안절부절 못하고는 하일즈에게 물었다.
"하일즈. 오, 오늘의 대련은 여기까지만 할까?"
대련 한다고 만난 지, 꼴랑 10분 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는 말이다.
"뭐?"
"바, 방금 맞은 부위 어디 잘못 맞은 거 아닌가 싶어서.. 크게 다친거면 오늘은 이만 하고 쉬는게 좋지 않을까?"
클로에 답지 않게 어딘지 어수선하게 당황한 모습에 하일즈는 살짝 자신을 자책했다.
'클로에는 이렇게 내 몸을 걱정해 주는데.. 나란 놈은..'
얼른 대련을 끝내고 기레스한테 달려가고 싶어서 하는 말이라고, 하일즈가 상상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클로에는 저래 봬도 성실하니까.. 리움 사관학교의 시험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노력을 더 했을 수도 있겠지. 실제로 최근이 되기 전까지는 별 차이가 없었으니까..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아냐, 클로에. 괜찮으니까 한 수 더 부탁할게."
"아... 응."
살짝 차갑게 일그러진 클로에의 표정을 하일즈는 눈치채지 못했다.
'젠장.. 젠장..!'
그 날, 하일즈는 클로에에게 철저하게 유린 당했다.
괜히 자신도 더 노력해 보겠다고 클로에의 시간을 길게 잡아 끌면 끌수록 클로에의 주먹은 점점 더 매서워져만 갔다.
젤가의 고문기술 같은 건 모르는 클로에였기에, 얼굴은 때리지 않았다지만 복부에는 멍까지 들어 있을 정도로 클로에는 사정 봐주지 않고 하일즈를 쥐어 패주었다.
이전에는 어찌어찌 노력하면 충분히 넘을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의 클로에는 그야말로 넘을 수 없어 보이는 벽 그 자체였다.
시퍼런 멍까지 들어 있었지만 아픔보다 열등감에 하일즈의 속은 썩어 문드러져 버렸다.
"아..! 오빠."
집으로 돌아가자 반갑게 맞이하는 티나의 모습이 보였지만 하일즈는 그에 대꾸조차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 하일즈의 속사정 따위를 알 리 없는 티나는 조심스레 눈으로 하일즈의 흘러내리는 땀을 끈적하게 바라보았다.
"클로에 언니랑 있다 온거야?"
평소 같았으면 귀엽게 봐줬겠지만 오늘의 열등감에 찌들대로 찌든 하일즈는 그럴 기분 상태가 아니었다.
"티나, 미안한데 귀찮게 하지 말아줄래? 오늘 내가 너무 기분이 안 좋아서.."
"아,, 으응.."
아무리 열등감에 짜증으로 머리가 맛이 간 상태였다지만, 그야말로 형편없는 화풀이에 티나의 기대로 밝았던 표정은 그야말로 삽시간에 일그러져 버렸다.
'무슨 일이 있으셨나보네.. 뭐, 됐어. 오빠랑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기분이 조금 언짢기는 했지만 하일즈가 자신에게 매몰차게 대하든 말든 '그딴 것'은 이미 티나도 뒷전이었다.
티나는 방에 올라가려는 하일즈의 곁에 은근히 붙어서 하일즈가 눈치채지 못하게 숨을 들이켰다.
[스읍]
'어.........?'
자신은 어차피 냄새에 흥분하는 변태니까 굳이 기레스가 아니어도 냄새만 어떻게든 맡을 수 있다면 이 지옥 같은 시간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 티나지만, 하일즈의 냄새에 티나의 몸은 일말의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는 좋은 냄새지만.. 설마, 이정도로만 좋아도 흥분할 수 없는거야? 아니, 그 병신도 씻고 올 때가 있었는데..'
기본적으로는 구리구리한 것을 선호하는 개변태인 자신이지만, 나중에는 평범한 냄새에도 얼마든지 발정했었던 것을 티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하일즈의 뒤에서 자신도 방으로 향하는 척 하면서 귀엽게 눈을 감고 냄새를 음미하기 위해 귀엽게 코를 킁킁였지만 티나의 몸은 전혀 흥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땀냄새처럼 보이지만 냄새 평론가인 티나에게 하일즈의 냄새와 기레스의 냄새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났던 것이다.
'말도 안돼. 하일즈 오빠 걸로 못 느끼면..'
하일즈의 냄새로 흥분해서 자위하겠다는 생각이 야심차게 무너져 내린 티나는 계단에 멈춰 하늘이 무너진 것만 같은 표정으로 절망했다.
"???"
계단에서 멍하니 멈춘 티나를 보고 하일즈는 의아해 했지만 남을 위로할 처지가 아닌 상태였기에 그대로 티나를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냥 구리기만 한 게 아니라... 내 취향의 냄새를 찾아야 하는거야?'
티나는 기레스의 능욕이 끝난다고 생각했을 때처럼 몸을 파르르 떨었다.
'도대체 왜 하필 그 병신의 냄새가... 취향인건데! 이 변태!'
그렇게 자학하면서 절망으로 바작바작 말라가는 몸은 뭔가의 냄새에 순식간에 달아 올랐다.
"저.. 티나, 길 좀 터줄래?"
'아.... 아아아아앗....!'
익숙한 냄새에 티나의 몸에 가뭄에 단 비가 내린다. 그 느낌에 티나는 그야말로 눈물이 핑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뭐, 뭐야.."
괜히 퉁명스레 티나는 퉁기며 기레스를 내려다 보았다.
소피아와의 특훈으로 땀으로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은 옷이 눈에 띤다. 하일즈의 조각 같은 몸은 아니라지만 이전보다는 확실히 좋아진 몸에 머리와 목을 따라 흐르는 땀 한방울을 티나의 눈은 짧은 사이에도 놓치지 않았다.
며칠 씻지 않은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땀에 푹 절여진 남자 특유의 체취가 물씬 거려 티나는 정말 오랜만에 흥분하고 있었다.
"뭐라니.. 길은 막고 있는 건 너잖아. 얼른 좀 비켜. 씻으러 가게."
'아까워.......'
씻으러 간다는 기레스의 말에 티나는 입 안 가득 고여버린 군침을 꿀꺽 삼키며 아쉬워 했다. 어차피 능욕이나 애무를 당할 수 없다면 여기서 기레스의 체취라도 조금만 더 즐기고 싶었다.
"그.. 요즘 말 안 걸더라?"
기레스가 옆으로 지나가려고 하자, 티나는 슬그머니 길을 막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툴툴 거리며 말했다. 조금이라도 더 이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수작이다.
"그야, 노예 생활은 끝났으니까.. 그렇게 괴롭혀 놓고서 말을 걸 수 있겠냐? 너도 나 같은 놈이 말 안 걸어주니 좋잖아? 그런 건 왜 묻는 건데?"
'크읏..'
여기서 솔직하게 말을 걸어달라고는 죽어도 말을 못하는 게 티나라는 여자다.
"ㄱ, 괜히 말을 하나도 안 거니까.. 이상한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거 아닐까 싶어서 물은거다. 왜?"
"그런 거 전혀 없으니까 길이나 비켜."
뭔가 기레스는 다소 다급한 듯이 티나의 사이를 비집고 올라갔다.
'아아..'
더 막아보려 했지만, 차마 거기까지 악착 같이 막을 수는 없어서 티나는 속으로 발만 동동 구르며 기레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스읍]
'아흐응..♥'
거기다 그 지나가면서 찐하게 스치는 냄새에 티나의 며칠 간 욕구불만으로 말라 비틀어 졌던 몸은 짧은 절정에 이르렀다.
짧지만 어찌나 굵게도 감미로운지 티나는 정신적인 쾌락에 한껏 취해 방 안으로 돌아갈 생각도 못하고 벽에 등을 기대곤 헤롱거렸다.
[덜컥]
기레스가 방 안으로 들어간 것을 보고 티나는 안타까움에 녹아 내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습관적으로 손가락을 흥건히 젖은 가랑이 사이로 가져 갔다.
"핫..!"
'이, 이럴 때가 아냐!'
음부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쾌락에 정신을 차린 티나는 그대로 황급히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가 기레스의 잔향을 반찬 삼아 오랜만의 광란어린 극상의 자위를 만끽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