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계네토기-159화 (159/238)

〈 159화 〉 티나(51)

* * *

그리고 꿀맛 같은 마지막 하루가 지나고, 능욕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평소라면 진즉에 찾아와서 나신으로 품 안에 기어 들어와 꼬물대고 있어야 할 티나는 아직도 기레스의 방에 오지 않고 있었다.

"하여간.."

그 티나의 귀여운 수작질에 기레스는 조소를 머금었다.

몇가지 어떻게 나올까 예상도 해봤지만, 설마하니 마지막 날까지 무방비 하게 있다가 마지막 날에 이렇게 배째라는 듯 나올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지간히도 더 즐기고 싶은가 보군.'

자신의 손에서 쾌락에 바둥거리며 몸부림 치며 자지러지는 티나의 치태를 생각하면서 기레스는 슬쩍 시계를 바라보았다.

'원하는 대로 어울려 줘도 나쁠 건 없지만..'

변태성이 만개해 버린 티나의 몸뚱아리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건 확실히 매력적이지만, 기레스는 티나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렇게 얼굴에 철판까지 깔아가면서 능욕을 받는 기간을 늘리고 싶어 졌다면, 그 마음을 송두리째 이용해 먹는 것이 기레스라는 인간이다.

'어디, 어떤 변명을 하는지 한번 감상 해볼까?'

'왜... 안오지?'

이불 안에서 티나는 정서불안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이리 저리 뒤척거렸다.

'30분도 안되서 바로 달려올 줄 알았는데..'

평소 능욕을 받던 약속시간은 이미 한시간도 더 지난 상태였다.

'으으..'

지금쯤 본래라면 한창 질탕하게 몸을 부비고 즐기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는지라, 티나의 몸은 욕정으로 근질 거렸다.

"후.. 하아.."

'참자.. 오늘은 안돼.......'

한차례 심호흡을 하면서 티나는 이불 안으로 몸을 넣었다.

'아니, 하지만.. 어차피 오늘은 안 할거니까..'

몸은 발정난대로 발정나, 욕구불만에 미친 티나의 눈은 혼란으로 뱅글거리고 있었다.

'저 녀석이 올 때까지 자위 정도는 해도....'

기레스가 방 안에 올 지 모르는데도 티나는 자위중독자마냥, 녹아내린 얼굴로 가랑이 근처로 가져간 손가락을 델지 말지를 수도 없이 고민했다.

"응... 아....."

넘실거리는 자신의 손가락의 열기에 아직 자위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도 이미 티나의 팬티는 흥건히 젖어 버렸다.

'조금만... 그래..! 어차피 변명하는 데에는 조금 자위를 해두는 쪽이 더 좋을거야!'

그렇게 욕망에 몸도 마음도 넘겨버린 티나는 망설임 없이 축축히 젖은 팬티 안쪽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었다.

"하읏..♥"

언제 기레스가 올지 몰랐기 때문에 최대한 신음소리는 자제하면서 티나는 침대 안에서 오무락대며 자위했다.

[똑똑]

'앗..!'

한창 물이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딴 것보다 드디어 방문이 두들겨 졌다는 기쁨에 티나는 재빨리 자위를 멈추고 이불 안으로 고개를 넣고는 생각했다.

'생각한 대로만 하면.. 괜찮을 거야. 하루 종일 연습했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티나는 최대한 초췌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드.... 들어와."

"야.. 티나..!"

"콜록.. 콜록.."

투덜거리면서 들어오는 기레스의 말을 티나의 기침소리는 그대로 짤라 버렸다.

티나는 퀭한 눈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병자 같은 몰골로 기레스를 맞이하고 있었다. 열이라도 있는지 '발갛게 물든 얼굴'에선 평소의 자신만만으로 무장 했던 표정을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으.... 콜록."

티나의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봤다면, 정말로 아프다고 생각할 정도로 티나는 필사적으로 연기했다.

'여, 연기는 맞겠지?'

티나가 개변태이며 저 발갛게 물든 얼굴은 아마도 발정이 나서 그런 것이라고 익히 짐작하고 있는 기레스마저도 '혹시 진짜로 아픈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명연기였다.

"왜 이리 안 오나 했더니만.. 어디 아프기라도 한거냐?"

기레스는 살짝 티나의 장단에 맞춰 주는 척 하면서 운을 띄웠다.

'됐다..!'

그런 기레스의 말에 티나는 자신의 계획이 잘 먹혀들었다 생각해 속으로 뛸 듯이 기뻐했다.

기레스의 능욕이 끝나는 당일에는 의심을 사지 않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능욕을 거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기레스와의 능욕을 끝내는 것보다 중요한 볼일이라는 것은 그다지 흔치 않은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아닌 우발적인 일이라면 어떨까?

갑작스레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아픈 '어쩔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면? 거기에 티나의 의도는 들어가 있지 않는 것이다.

'설마 내가 몸이 아픈 척을 하면서까지 기간을 늘리고 싶다고 생각할 리도 없을거고..!'

속으로 변명거리를 잘 준비했다고 자화자찬으로 시시덕 거리면서 티나는 파들거리는 입을 열었다.

"치...잇. 모, 몸이 너무 아파서... 오늘은 도저히... 능욕을 못 받겠어.. 콜록..."

마치 마지막 날인데 몸이 아파서 능욕을 끝내지 못한다는 게 억울하기라도 하다는 듯 티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

'좋아 여기서..'

은근히 소심한 기레스에게 도망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티나는 준비해 둔 말을 꺼내 들었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기간을 늘려도 좋으니까.. 몸이 나을 때까지만.. 쉬게 해줘.."

괜히 또 1주일이니 2주일이니 짧은 시간만 연장할까 싶어 티나는 아예 자신이 나서서 기간의 범위를 달 단위로 확 늘려 은근히 어필했다.

'내 입으로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감당해준다 했으니까.. 아무리 병신이어도 최소한 한 달 정도는 늘린다고 지랄해대겠지?'

벌써부터 최소 한 달이라는 시간을 벌어 능욕을 당할거라 생각하니 목구멍이 달달하게 근질거리는 티나였다.

'근데 왜 대답이 없지?'

티나는 최대한 아픈 척하기 위해 초점이 안 맞게 시선을 처리하다 기레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라본 기레스는 뭔가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동안 고생 많았다."

"뭐..?"

아픈 척 해야 한다는 연기조차 잊고 티나는 또렷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내가 아무리 복수에 눈이 먼 복수귀여도 그렇지. 이렇게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아픈 것까지 미끼로 삼아가면서 짐승새끼 같은 짓을 할 수는 없지."

"아, 아니.."

"거기다 이미 약속했던 두 달도 지나서 나도 나름 만족하기도 했고, 혹시라도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면 슬슬 풀어주려 생각하고 있기도 했었어. 봐, 그래서 자정을 넘기고 온거잖아."

"뭐? 네가?"

"생각해 봐라. 네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내가 좋다고 그걸 약점 잡아서 기간을 늘려대면, 니가 잘못한 거지만 또 나보고 약속하나 안 지키고 억지로 늘려대는 새끼라고 지랄해댈 거잖아?"

'그딴 짓.... 안해..!!'

하지만 평소 자신이 기레스에게 억지를 부리며 땡깡 부렸던 것을 생각하면 티나도 기레스가 저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물론 이해 한 것과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거기다 아무리 너랑 내가 원수 같은 사이라고 해도, 형식상으로는 남매사인데 명분을 잡았다고 쥐어짜대가면서 평생 원수로 살아갈 수는 없잖냐."

[으득...]

"이미... 원수거든...?"

이제 티나는 아픈 척도 잊고 분노를 숨기지 않고 쏘아 붙혔다.

'도대체 왜.. 이럴 때만 착한 척이냐고!!'

평소에는 하지 말래도 능글거리는 주제에, 꼭 자신이 원치 않을 때만 청개구리처럼 행동하는 기레스의 행동에 티나의 가슴은 텁텁하게 막혀왔다.

"하긴 이렇게 능욕을 해댔으니 원수라 불려도 할 말은 없지. 에휴.. 그래도 떡정도 정이라고 이렇게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까 이런 걸 기회로 더 늘리지는 못하겠더라. 어때? 나 좀 다시 보이냐?"

'.......'

이제 티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될지도 알지 못했다. 아픈 척 연기고 나발이고 이미 여기까지 와서는 다 부질없는 짓인 것이다.

"그리고.. 대신이라고 하긴 뭣한데 말이지."

기레스는 살짝 머뭇 거리는 태도에 티나는 혹시나 가끔씩이라도 자신의 몸을 만지게 해달라는 기레스 다운 찌질하면서도 추잡한 부탁을 하려나 싶어 귀를 쫑긋 거리며 기대했다.

"능욕 늘릴 수 있는데도 그냥 끝내 줬으니까, 딱 한번만 오빠라고 불러주면 안되냐?"

마치 그게 능욕연장을 포기한 진짜 목적이기라도 한 듯한 태도로 기레스가 말했다.

물론 그 말을 들은 티나의 분노가 천장 끝까지 올라간 것은 두 말이 필요 없는 일이었다.

"나가! 찌질이 병신새끼야! 뭐? 오.... 죽어도 말 안해. 꺼져!"

티나는 손에 쥔 베개를 기레스에게 붕붕 휘둘렀다. 기레스는 여유롭게 배게를 막고 흘리고 피하면서 거리를 벌렸다.

"아니! 시발. 너.. 아픈 거 맞아?"

"왜? 내가 아픈 척이라도 하는 거 같아?"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였지만 여기까지 밑밥을 깔아놓고 기레스가 그런 말을 할 리 없었다.

"아니 뭐... 근데 결국 오빠라곤 안 불러 줄거냐?"

[으득]

티나는 얄밉기 짝이 없는 기레스를 향해 있는 힘껏 배게를 던졌다. 상당히 거칠게 던졌음에도 기레스는 한걸음만으로 홱 피하고는 티나의 방문을 열고 얼굴만 빼꼼 들이 밀고는 말했다.

"끝까지 사납기는.. 여튼 지금까지 노예 생활 수고 많았다."

그렇게 말하고 미련도 없이 도망쳐 버리는 기레스를 보고 티나는 처량한 얼굴로 배게가 없는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시발... 찐따보다 못한 개새끼...복수귀는 시발 병신같은 게 이게 무슨 복수귀야!뭐? 오빠? 그딴 것 때문에 날 능욕하는 걸 포기해?'

살짝 눈물까지 맺힐 정도로 울먹이는 얼굴은 톡 건드리면 왈칵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떠먹여 줬잖아. 한 달, 두 달, 참아 주겠다고 했잖아!'

침구를 내리쳤지만 티나의 갈 곳 없는 분노는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빠? 오빠라고?'

마음 같아서는 오빠라고 백번도 더 불러줄테니, 능욕을 계속해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지만, 이미 기레스와 티나의 능욕은 끝이 나버렸다.

"기레스... 오빠....."

만반의 준비가 산산조각이 나버려, 한껏 발정 났던 성욕마저도 싸늘하게 식을 정도로 충격을 받아버린 티나는 그렇게 흐느끼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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