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티나(50)
* * *
여느 때와 다름 없는 단련의 시간, 소피아를 앞에 둔 클로에는 미간의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으...'
오늘도 그렇고, 기레스의 시선을 유혹하는 도발적인 옷을 입어 소피아 몰래 즐긴 것 까지는 좋았지만, 설마 그게 소피아의 복장까지 해금하는 것이었을 줄은 생각치도 못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수수한 차림을 억지로 노출시키며 기레스를 유혹했던 소피아는 오늘은 상당히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꾸며 입고 나왔다.
클로에가 소피아를 의식해서 비슷한 노출을 한 것처럼, 소피아도 보란 듯이 클로에와 비슷한 복장을 차려 입었던 것이다.
사실 수수한 천옷을 배꼽 티를 만들어 입으나, 맵씨 있게 옷을 차려 입으나, 어느쪽이든 소피아의 매력이 가실 일은 없었지만, 차려 입는 것은 차려 입는대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매력이 돋보이는지라 클로에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늘씬하게 잘 빠진 각선미에, 풍만하면서도 보기 좋게 솟은 엉덩이와, 골반과 유방의 매력을 배로 끌어올리는 도자기처럼 잘록한 허리, 넉넉히 모양좋게 부풀어 오른 가슴에 화룡점정으로 옷 위로 솟은 콩알같은 돌기까지, 음란함과 아름다움이 한껏 뒤섞인 소피아의 자태에 클로에의 마음이 편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줌마도.. 주책..'
나잇값도 못하고 주책스럽다고 속으로라도 매도하고 싶은 클로에지만, 그럴 수도 없다. 나이고 나발이고, 소피아에게 저런 옷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는 사실은 눈 앞에서 보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읏.'
흘끗 기레스를 곁눈질 해보면, 기레스도 뭔가 헤벌쭉 흥분한 듯한 기색이 느껴진 클로에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라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만약 기레스의 여자친구였다면, 나를 앞에 두고 뭐하는 짓이냐고 혼쭐을 내주고 싶을 정도로 클로에는 답지 않게 마음이 요동쳤지만 속을 꾹꾹 눌러 참았다.
기레스의 행동을 절제시킬 수 있는 여자친구라는 입장도 아닐 뿐더러, 소피아의 매력은 여자인 자신이 봐도 기레스가 한 눈을 파는 게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될 정도로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일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속은 시큰 거리고 몸은 열기로 달아오른 클로에는 하일즈를 떠올렸다. 지금이라면 자신과 굳이 결혼까지 하고 싶어 했던 하일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쨋든 지금은 아줌마와 대련하는 것에 집중해야지.'
클로에는 소피아가 어떤 복장을 입었든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대련이지, 질투 따위가 아니다. 소피아에게 질투를 하고 있다면 클로에는 더더욱 이 소중한 시간을 알뜰하게 써먹어서 성장해야만 했다.
본래라면 클로에가 젖 먹던 힘을 다해 죽일 듯이 달려 들어도 소피아에게 유효타를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지금 하고 있는 대련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클로에가 기레스와 대련할 때, 기레스의 힘에 맞춰 주는 조건을 달았 듯이 소피아도 클로에를 상대할 때는 의도적으로 힘을 빼고 상대해 주고 있었다.
클로에 수준 조차도 아니고 흡사 기레스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소피아는 신체능력을 극한까지 빼고 클로에와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클로에도 아주 승산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힘을 빼고 싸운다고 호락호락하거나 하지는 않아서, 마을 제일가는 기재인 클로에를 상대로도 밀리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 소피아였다.
"후우... 하아.."
'오늘은... 꼭...!'
클로에는 보기 드물게 열의를 불사르면서 소피아에게 달려 들었다.
한 편,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미녀들의 대련을 기레스는 진중하면서도 음흉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기레스 본인도 음흉하게 바라볼 생각은 없지만, 아무래도 소피아나 클로에나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몸매이니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냥 존재 자체가 화보집일 정도의 미모를 뽐내는 두 여인이 미끄러지듯 합을 겨룰때마다 넘실넘실 보기 좋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름 성장하고 싶어 집중하는 기레스의 마음도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정말 대단한데..'
제3자가 되어 지켜보는 소피아의 움직임은 기레스보다도 더 느리게도 느껴질 정도로 절제되어 있었다.
"으윽.."
단순한 신체스펙만 따지면 클로에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함에도 뭔가에 홀린 듯이 균형을 잃고 휘청이거나 넘어지는 것은 언제나 클로에 쪽이었다.
'......'
몸매가 끝내줘서가 아니라, 클로에를 상대하는 동작의 아름다움에 기레스는 넋을 잃고 집중했다. 배우기 전만 해도.. 아니, 클로에가 자신에게 재능을 가르쳐 줬다고 일러 줬을 때만 해도 어딘지 수수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던 소피아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금의 기레스는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마치 공기나 물 같이 형체를 잡지 못하는 무언가를 상대하는 듯한 느낌으로, 신체능력상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는 클로에는 기레스보다 못한 소피아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흡사 교보재로, 기레스는 홀린 듯이 소피아의 동작을 몸에 새기고 있었다.
'음....'
그렇게 소피아와 클로에의 대련을 보고 있노라면 기레스는 어딘지 자신도 머리가 아니라, 감각적으로 소피아처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레스는 주먹을 불끈 쥐고, 정말 기레스 답지 않은 순수한 열의를 보이며 생각했다.
'빨리 겨뤄보고 싶다.'
꿀맛 같은 시간은 바람처럼 지나간다.
"아이 씨.."
3일 간의 지옥을 맛보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얻었을 때가 어제 같은데, 꿈만 같은 쾌락에 빠져 깨고 보니 남은 시간은 고작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어쩌지..'
야심차게 친구 핑계를 대면서 기간을 연장할 때는 얼마나 늘려줄까 기대로 잔뜩 설렜지만, 꼴랑 일주일이라는 시간만을 연장 받은 티나의 속은 기레스에 대한 원망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시발새끼.. 3일이나 걸렀는데 고작 일주일 밖에 안 늘린다는 게 말이 돼? 한달까진 아니어도 2주 정도는 늘려야지.. 기회를 줘도 못 쳐먹고 지랄이야!'
기간을 늘리기 위한 다음 변명을 생각하려고 하니 티나는 살짝 머리가 아파왔다.
기간을 늘리기 위한 변명거리는 썩어 넘치지만, 그것을 자연스럽게 기레스에게 어필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와서 더러워서 꼴리는 연기를 못하겠다고 잡아 떼볼까...? 아니, 너무 늦었잖아..!'
지금까지 잘만 버티며 즐겨놓고, 꼴랑 이틀만 참으면 해방인 상황에 연기를 못하겠다고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속이 너무 들여다 보이는 일이었다.
'애초에.. 그러고 싶지도 않고..'
이제와서 교성소리와 야한 반응을 하지 말라니, 티나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팥 없는 찐빵 같은 일이었다. 기레스와 살을 섞으면서 야한 반응을 하지 말라는 것은 이제 티나로선 상상조차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지각이라도... 해볼까?'
티나는 입술을 오믈거리면서 더 늦으면 기간을 늘려 버리겠다는 기레스의 건방진 말투를 생각했다. 기레스의 건방진 말투에 살짝 미소가 떠올랐지만, 역시 이틀 남은 이 상황에 뜬금없는 지각은 쾌락에 미친 티나가 생각해도 넌센스였다.
'아우... 씨..'
아무리 기레스와 더 뒹구르고 싶어도 기레스에게 '자신이 능욕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들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오해를 사지 않고 기간만을 적당히 늘릴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 끝내야 하긴 했으니까 큰 맘 먹고 여기서...'
하지만 이내, 3일 간의 지옥을 떠올린 티나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려 버린다.
머리로는 끝이 온다는 것도, 여기서 그만둬야 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미 쾌락에 절여질 대로 절여진 몸이 그 생각을 허락하지 않았다.
'역시 싫어. 끝나는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라도 벌고 싶어.'
자기 자신에게까지 마음에도 없는 변명을 늘여 놓는 게 그야말로 티나다운 생각이었다.
'야심도 없는 찐따새끼. 일주일? 일주일.....!?'
티나는 분을 참지 못하고 배게를 팡팡 쳐대면서 씩씩거렸다.
능욕이 끝나는 것보다 중요한 '어쩔 수 없는' 사정을 만들어 내기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터무니 없이 짧았다.
남은 시간이 두 달, 아니 한 달 정도만 되어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을 만들어 낼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터였다.
"하아...................."
'좀 미리미리 늘려둘 걸.'
자신이 변태라는 것을 자각하고 쾌락에 빠진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금만 더 일찍 수작질을 부렸다면 지금보다 못해도 한 달은 더 기간을 늘릴 수 있었을 것을 생각한 티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면서 뒤늦게 후회했다.
'어떡하지... 어떡해.....'
몸을 뒤척이고 이불 안에서 손톱을 물어 뜯는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면서 티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앞으로 밤에 기레스에게 당했던 능욕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자 온몸은 어디 병이라도 생긴 것처럼 쓰리고, 머리는 며칠 밤이라도 샌 듯이 지끈거리며, 기운은 쭉 빠지는데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오싹하다 못해 허해진 티나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했다.
"어...?"
'아..... 그래!'
티나는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곧 끝날지도 모르는 능욕을 연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티나는 방금 전까지 전전긍긍하면서 기운 없던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기운을 되찾았다.
'좋아. 그렇게만 하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