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 티나(48)
* * *
'으으....'
친구네 집에서 하루를 지내고 이틀 째의 밤, 기레스의 능욕에서 벗어난 티나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첫 날 낮에는 기레스에게 후려진 날이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문제는 밤에서 부터였다.
'하으.. 시발..'
기레스가 있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요사이 당연한 듯이 기레스의 방에서 극상의 음락을 만끽 했던 티나는 밤이 되자마자 순식간에 욕구불만으로 발정이 나버렸던 것이다.
몸만 쾌락을 얻고 싶어 근질근질 거리는 게 아니라, 욕정하기 시작하니 시도 때도 없이 기레스의 음행이 떠올라 몸이 달아올라서 티나는 자신이 주도한 모임에 전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나"
"응?"
"티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거야? 아까 식사시간에도 멍 때리더니.."
"아..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티나는 딱 부러진 거 같으면서도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친구의 허울뿐인 말은 티나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으으..'
티나의 눈은 자연스럽게 방 안의 시계를 향했다.
본래라면 지금쯤 기레스의 방에서 옷과 속옷을 하나씩 벗어 던지고, 슬그머니 이불 속 기레스의 품 안으로 기어 들어가 살갗을 부비적 거렸을 거라 생각하니, 이 자리에 있는 시간이 아까워 죽을 것만 같았다.
음란한 척, 유두를 기레스의 팔에 비벼 짜릿함을 느끼면서 기레스의 살내음을 맡는 상상을 한 티나는 뜬구름 속에 누워 있는 것처럼 황홀한 느낌을 받았다.
".......나"
"어?"
"아니, 티나도 참, 자기가 다 불러 모아 놓고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고, 곧 리움 사관학교의 시험이 있잖아. 그게 좀 걱정이 돼서.. 그런데 무슨 이야기 중이었지?"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 티나도 알다시피 무르와 난,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잖아. 티나 정도라면 좋은 사람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을텐데.. 티나는 좋아하는 사람 없어?"
그 질문을 듣자마자 티나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랑스러운 오빠인 하일즈를 떠올렸다. 하지만 떠오른 것은 하일즈 뿐만이 아니었다. 건방지기 짝이 없이 음흉하게 자신을 협박해 대는 기레스가 떠올라 버린 것이다.
'지, 지금은 발정나 버렸으니까..'
"난, 좋아하는 사람 같은 거 없어."
기레스를 떠올린 것에 당황한 티나는 애써 속으로 변명하면서 단칼에 친구의 질문에 답했다.
"그, 그래?"
단호한 말투에 약간 당황한 친구의 모습을 보고 티나는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불러 놓고선, 딴청만 부리던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좋지 않겠지..?'
기레스와 보이지 않는 눈치 싸움 공방을 펼쳤던 티나는, 원활한 인간 관계를 위해서 여기선 조금 거짓 정보를 풀면서 친구들에게 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지 납득 시키는 쪽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사실 있잖아.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하일즈 오빠는 꽤 잘난 편이잖아?"
"응? 그렇지. 나도 한번 고백한 적도 있으니까."
"뭐? 정말?"
"뭘 그리 놀라고 그래. 어차피 클로에 씨도 있겠다. 방금 티나가 단호하게 말했던 것처럼 단번에 거절 당했는데."
'전혀 몰랐어..'
자신이 사랑하는 하일즈에게 고백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차였기 때문일까, 티나는 별다른 느낌은 들지 않는 티나였다.
"크흠. 어쨋든 그래서 그런지 나도 조금 눈이 높아져서 말야.. 성에 차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어떻게 보면 오만한 말이었지만 티나의 친구들은 질투는 할 지언정, 딱히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빠가 마을 제일가는 엄친아 그자체인 하일즈인데다, 티나 본인의 외모가 저정도로 뛰어나다면 자연스럽게 납득은 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흐음~ 그렇구나."
"난, 티나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좋아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뭐? 그럴 리 없잖아! 나도.."
"나도?"
티나는 앗차 싶었지만 분위기를 초 치지 말고, 적당히 자신의 치부를 까발리는 것으로 얼른 이 떡밥을 넘기기로 결심했다.
"나, 나도..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하일즈 오빠를 좋아하거나 하기도 했고, 남자를 싫어하거나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란 말야."
어디까지나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는 듯, 부끄러워하며 툴툴거리는 티나를 보면서 친구들은 티나의 속마음에 여러가지 의미로 신나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꺄꺄 거리면서 신나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티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평소처럼 기레스에게 능욕을 받았다면 티나도 친구들과 나름 즐겁다는 착각이 들 수 있을 정도로 어울릴 수 있었겠지만, 욕구불만에 찌든 티나는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저 짜증만 치밀어 오르기만 했다.
"말이 나온 김에, 티나는 뭐 좋아하는 취미 같은 건 없어? 남자도 남자지만, 티나는 뭘 좋아하는지 잘 이야기 하지 않잖아."
"취미?"
그 말에 티나는 멈칫 거렸다. 곧바로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기레스와의 질펀한 정사와 그걸 떠올리면서 자신의 방 안에서 하는 자위행위였다. 물론 친구들의 앞에서는 절대 이야기 하지 못할 변태 그 자체인 이야기다.
'잠깐만..'
순간 티나는 머리가 오싹해 지는 생각을 떠올렸다. 며칠 전, 방 문앞에서 하일즈와 이야기 했던 기억을 떠올린 티나는 요염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취미라면 없는 건 아닌데... 냄새를 맡는 거려나..?"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변태성을 은근히 드러낸다는 변태적인 행위에 티나의 온몸은 흥분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냄새라니? 꽃 향기 같은 거?"
티나의 집에 가본 적이 있었던 친구는 유페르 가문의 집 앞 안뜰의 화단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것도 있고, 향수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냄새를 수집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야."
수집이라고 하면 딱 들어맞는 말은 아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요사이 기레스의 살내음이라면 구리든 좋든 어느 쪽이든 흥분해대서, 품 속의 냄새에 파묻혀 이것저것 소믈리에마냥 킁킁이며 미묘한 변화를 즐겼던 티나였기 때문이다.
"아아... 향수..!"
"그 밖에는... 으음.."
티나는 살짝 우물거리는 척을 하면서 간을 보기 시작했다.
"그 밖에는 뭔데?"
물어오는 친구들 앞에서 티나의 눈동자에는 가볍게 절정이라도 한 것처럼 황홀한 기색이 깃들었다.
"놀리지 말아줘... 취미라고 하긴 미묘하지만.. '맛있는 걸' 핥아 먹는 걸 좋아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서 부끄럽다는 듯, 티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애 같지?"
치부를 드러내긴 했다. 친구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치부를 말이다. 어느 누가, 저 결벽증처럼 보이는 티나가 맛있는 것을 핥아 먹는 것을 좋아 한다는 게 자지를 핥는 거라 생각하겠는가?
애 같다는 말까지 곁들인 까닭에, 그 자리에 있는 친구들 모두는 자연스럽게 티나가 사탕 같은 것을 핥아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애 같기는..! 하지만... 확실히 티나가 말 못했던 게 이해될 정도로 의외긴 하네."
"그치? 맛있는 걸 빨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취미라니.. 나 답지 않잖아?"
'아아아......!'
그렇게 말하는 티나는 기레스의 자지를 입에 머금고, 쫄깃쫄깃 요리조리 혀를 굴리며 맛 보는 자신을 상상하며 도착적인 쾌락에 흠뻑 빠져 버렸다.
자신의 치부에 대해 친구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배덕적인 해방감에 개변태 그자체인 티나는 아랫도리가 촉촉히 젖어 버릴 정도로 잔뜩 흥분해 버렸다.
"그나저나 티나가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건 처음 보는 거 같네?"
티나는 클로에처럼 말이 없는 편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이야기 할 때의 대부분은 타인데 대한 이야기들 뿐이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최소화 하거나, 의미 없어 보이는 대화 뿐으로 이렇게 다소 부끄러울 수 있는 속마음을 이야기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여서 티나의 친구는 적잖게 놀라고 있었다.
"이렇게 같이 지내다 보니까 좀.. 분위기에 취해 버렸나봐."
티나는 무너져 내릴 듯한 요사스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속사정을 전혀 모르는 친구들은 티나의 그 표정을 부끄러움에 못 이긴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쪼, 쪽팔리니까 오늘 이야기 한 것들은 일단 우리들 만의 비밀로 해줘?"
그렇게 못을 박으며 티나는 적당히 친구들과 이야기 한 뒤, 흥분으로 잔뜩 절여진 몸으로 이틀 째의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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