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 티나(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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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하아.. 여기도 없나.."
호기롭게 클로에를 찾아 나선 것까지는 좋았지만 클로에가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는 기레스는 닥치고 갈 법한 곳을 찾아 다녀야 했다.
'집에도 없었는데 여기도 없으면..'
제일 먼저 들렀던 장소는 집이었지만 클로에는 없었다. 여동생인 니나의 반응을 보면 없는 척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기에 기레스는 곧장 오두막으로 향해 보았지만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잘못하면 마을 구석구석을 뒤지게 생겼네.'
소피아에게 맡기면 위치 정도는 금방 찾을 수 있겠지만 기레스는 아무리 소피아가 만능인이라고 해도 이번 만큼은 도움을 요청하는게 모양새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기레스는 온 마을을 뒤지든, 학교에서 만나든, 이번 클로에의 일은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구교사의 복도를 전력으로 내달려 기레스는 곧장 교실의 문을 열었다.
"후욱.... 허어... 찾았다."
"앗...!"
순수하게 기레스와 둘만의 비밀장소였던 구교사의 교실에서 클로에는 황급히 창문으로 달아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내달렸다고 해도, 정말 마주치고 싶지 않았으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을텐데..'
미처 달아나지 못한 것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 못지 않게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기레스는 클로에가 창문을 통해 달아나기 전에 말로 족쇄를 걸어 버렸다.
"거기서 도망치면 앞으로 다시는 안 만날거야."
"읏.."
기레스는 허언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클로에는 그 말 한마디에 도망치는 것을 단번에 포기했다.
"후아... 다행이다."
클로에를 찾느라 쉬지않고 마을 곳곳을 내달린데다, 혹여나 놓칠까 싶어서 조금 떨어진 복도에서 그야말로 힘줄이 끊어져라 전력 질주한 기레스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기레스..!"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해 소피아의 앞을 막기까지 했던 클로에는 주저 앉는 기레스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달려왔다.
"난 괜찮아. 그나저나 왜 도망친거야?"
기레스는 유심히 클로에의 모습을 살펴 보았다. 항상 가지런 했던 청은빛 생머리는 바람에 휘날리기라도 했는지 꽤나 헝클어져 있었고, 눈시울은 방금까지 울기라도 한 것처럼 불그스름 해서 언제나 정갈한 클로에와는 꽤나 다른 느낌이었다.
"......"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않아도 되긴 한데.."
"아니, 기레스 난 널 만날 자격이 없는 여자야."
클로에는 뭔가 마음을 굳힌 듯, 착 가라앉은 자조적인 목소리로 기레스에게 말했다.
'이건 또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뭔 소리야 만날 자격이 없다니?"
"난... 아까 널 죽여버릴뻔 했어."
"흐음... 그래?"
"???"
클로에는 예상보다 덤덤한 기레스의 태도에 살짝 당황하며 물었다.
"저.. 기레스 죽여 버릴 번 했다니까?"
"제대로 들었어. 사실 클로에 솔직히 네가 거기서 왜 도망쳤는지 의문이었는데 죽일 뻔 했다니까 바로 납득했어. 엄마가 죽을 뻔 했다고 말한 게 비유가 아니라 진짜 죽을 뻔 했다는거지?"
"....."
클로에는 죄인처럼 기레스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레 꾸벅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고의는 아닐거고.. 어째서 실수한 거야? 네가 이런 걸 이유도 없이 실수할 리가 없을텐데?"
"이유..... 는..."
무표정의 달인인 클로에는 답지 않게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우물 거리며 망설였다.
"이유..는........"
고지식하기에 예상 밖의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클로에지만, 고지식하기에 클로에는 자신의 치부를 적당히 둘러대고 넘어갈 줄 모른다.
"소피아 아줌마가 가르친 게 쓸모 없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개미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클로에는 속삭이듯 말했다.
"뭐? 고작 그런 이유로 날 죽일 뻔 했다는 거야?"
'무서운 년..'
기본적으로 소피아나 클로에가 하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오냐오냐인 기레스도 오늘의 일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클로에를 놀려보겠다고 돌발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연기까지 한 소피아와, 소피아가 가르친 게 쓸모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뻔한 클로에라니.. 죽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죽었다면 촌극도 이런 촌극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제압하기가 힘든데다 기레스 네 체력도 거의 다 바닥난 거 같아서, 체력이 다하기 전에 무리하게 제압해서 증명하려 하다 보니까... 읏..."
클로에는 이를 악 물고 분개했다. 칼이라도 있다면 할복이라도 할 것 같은 클로에의 귀기 서린 축 처진 분위기에 기레스는 분위기를 풀고자 가볍게 자화자찬했다.
"흐음.. 그럼 클로에 네가 쉽게 제압하기 힘들 정도로 나 성장한거야?"
그 말에 클로에는 째릿 거리는 눈초리로 기레스를 쳐다보고는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응...."
"난 전혀 못 느끼겠는데.. 물론 지금까지 고생해온 게 있으니까 방어기술 정도는 확실하게 늘었다고 생각하지만.. 네가 그렇게 정색하지 않으면 제압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 않아?"
둔감하지 짝이 없는 기레스의 발언에 클로에는 괜히 질투 해서 폭주해 버렸다고 자신을 질책했다. 기레스는 소피아가 가르쳐 준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자신과는 달리 요만큼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기 기레스 눈 좀 감아볼래?"
"눈? 눈은 왜?"
"감아보면 알아."
'무서운데..'
소피아든 클로에든 기레스는 악당 답지 않게 꽤나 신뢰하고 있었지만, 신뢰와는 별개의 사태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기레스는 괜시리 불안해 졌다. 하지만 여기서 눈을 감지 않으면 않는대로 지금까지 쌓아온 대인배스러운 이미지가 망가질 것이라 생각한 기레스는 망설이는 기색 없이 선뜻 눈을 감았다.
'음...'
잠시 정적의 시간 뒤에 기레스는 뭔가 어른거리는 느낌에 신경이 바짝 곤두섰고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몸은 멋대로 움직였다.
"우왁!"
시큰 거리는 팔의 아픔에 다급하게 눈을 떠보니 기레스의 팔은 관자놀이를 향해 휘두른 클로에의 팔을 정확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이제 알겠지?"
"뭘? 네가 이 정도로 날 죽이고 싶다는 거?"
순간 오금이 저려서 농담으로 쏘아 붙히기는 했지만 막은 팔이 시큰 거리는 게, 만약 막지 않았다면 단순히 아프다 정도로 끝날 것 같지가 않은 공격이었다.
"아냐!내가 그럴 리 없잖아!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소피아 아줌마가 네게 가르쳐 준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느껴보라는 거였는데..."
기레스의 대답에 클로에는 버럭 화내면서 속사포처럼 투덜거렸다.
"그러고 보니.."
'내가 눈을 감고 클로에의 공격을 받아내다니..!'
다시금 곱씹어 보면 실로 달인이나 할 수 있을 법한 기술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소피아 아줌마가 네게 가르쳐 준 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해."
"기술이 아니라니?"
클로에는 분한 듯 입술을 질근거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기레스의 반문에 힘 없이 대답했다.
"재능... 그 자체를 심어준 느낌이었어."
"에이.. 그렇게 거창하게 말해봐야 너도 눈 감고 막는거 정도는 할 수 있을거 아냐."
기레스의 기준으로 따지면 신기에 가까운 기술이지만, 기레스는 이세계에서도 내로라할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클로에라면 눈을 감고 막는 것 쯤은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것만 같았다.
"난 그렇게 정확하게는 못해. 그리고 소피아 아줌마가 가르쳐 준 건 단순히 눈을 감고 막을 수 있냐 없냐 하는 그런 단순한 게 아니야."
"뭐가 더 있어?"
"눈을 뜨고 막거나, 눈을 감고 막거나, 막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잖아? 단순히 그것 뿐이면 내가 제압하는 게 힘들 리가 없지."
'그건 그렇긴 하지.'
"그럼 바로 제압하지 못한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거야?"
클로에는 소피아의 위업을 기레스에게 해설해 주는 게 마땅찮았지만, 자기가 잘못한 것도 있고 기레스의 은근히 상기된 얼굴을 보니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이야기를 해주었다.
"기레스 너한테 공격을 하면 말이지. 일단 맞추기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기껏 적중 시켜도 적중시킨 느낌이 들지 않고 뒤틀린다고 해야되나? 몸의 균형이 엄청나게 흔들려서 제대로 공격을 이어가기가 힘들었어."
기레스는 처음 소피아가 시범을 보일 때 농락당했던 일을 떠올렸다. 자신보다 아득하게 느린 움직임으로 소피아가 움직여도 기레스는 그녀의 옷깃 하나 스칠 수 없었고,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나뒹구르기 바빴다.
'그런 느낌이었을까?'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상대의 힘을 흘린다거나 역이용 했다는 느낌으로 뭔가 수수해 보이지만, 그 상대가 클로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세계 최악의 열등종인 자신을 상대로 최고의 수재인 클로에가, 그것도 냉정침착하기로 소문난 클로에가 쉽사리 제압을 하지 못해 진심을 다하다가 큰 실수를 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왜 그런 바보같은 실수를 했는지 알겠지..?"
클로에의 자조적인 말투에 기레스는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알기는 뭘 알아? 클로에 너답지 않게 뭐 이딴 거에 질투를 하고 그래?"
"하지만... 나는 해줄 수 없는 걸 아줌마가 해줬는걸. 내가 기레스한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가치는 그것 뿐이었는데.."
"유일한 가치 좋아하네. 클로에 넌 매사에 너무 진지하게 생각해서 탈이야. 엄마는 엄마고 너는 너야. 엄마가 지금보다 더한 걸 해줘도 널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봐라? 엄마가 나한테 처녀를 줄 수 있냐?"
"응!? 아, 아니 그건 이야기가.."
기레스의 뜬금없는 처녀 타령에 클로에는 눈을 껌벅이며 손을 파닥거리며 당황했다.
"못 주잖아. 내 생애 첫 처녀를 따먹은 경험을 엄마가 줄 수 있냐?"
"으... 으..!"
기레스의 막무가내식 물음에 방금까지만해도 축 늘어져서 죽을 상이었던 클로에는 뺨을 홍당무처럼 물들였다.
기레스의 천박하기 짝이 없는 말투에 클로에의 서슬 퍼런 질투심은 사르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네가 아니면 내가 리움사관학교를 갈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냐?"
"아.."
제 집처럼 편안한 구교사의 방에서 기레스는 슬금슬금 클로에한테 접근했다.
"날 가르쳐 주는 것도 네가 처음이었고, 리움 사관학교 지명권도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고, 또 몸은 어떤데?"
입김이 선명히 느껴질 법한 거리에서 기레스의 음란한 손가락은 클로에의 아랫도리를 향해 슬금슬금 기어 들었다.
"아응..♥"
"엄마가 널 대신할 수 있냐? 유일한 가치는 뭔 놈의 유일한 가치야?"
물론 단순한 성욕처리는 소피아가 충분히 대신해 줄 수 있지만, 클로에라는 여성의 매력까지 소피아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그렇네. 기레스와 이렇게 몸을 섞을 수 있는 건... 나 뿐이야. 기레스의 어머니인 소피아 아줌마는 이런 건 못해주니까...'
기레스는 한마디도 소피아와는 섹스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는 그 교묘한 언변에 클로에는 그래도 이렇게 기레스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자신 뿐이라는 생각으로 속이 달달해 졌다.
아까 전 질투했던 자신이 그저 바보에 천치 같이 느껴질 정도로 클로에의 몸은 푸근하게 달아올랐다.
"아음. 츄릅. 파아..♥"
자연스럽게 기레스와 클로에는 입을 맞추고, 쫄깃한 혀를 뒤섞는다. 시퍼렇게 멍이 들었던 마음은 그 행위 하나만으로 씻은 듯이 나아 버린다.
부산스럽게 클로에의 손이 움직인다. 기레스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너 나 할 것 없이, 실로 오랜만의 구교사에서 기레스와 클로에는 허겁지겁 옷을 벗어 던지고 서로의 몸을 게걸스럽게 탐해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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