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티나(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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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이긴 한데... 또 약속을 못 지키면 위약금이니 뭐니 하면서 기간 늘릴 생각인 거잖아?"
"누가보면 기간 늘리려고 작정하고 속이기라도 한 줄 알겠네. 이년아 말은 바로해야지. 기껏 삭감시켜준 기간이 늘어난 건 위약금 때문이 아니라 네가 절조도 없이 오줌까지 지려가면서 가버린 거 때문이지 위약금 때문이 아니잖아. 거기다 안 지키면 누구 좋으라고 피 같은 2주를 삭감 시켜주겠냐? 안 지켰을때의 페널티가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냐?"
"읏.."
빼도박도 못할 정론에 티나는 살짝 말문이 막혀 버렸다.
'평소에는 팔푼이 같이 굴면서..'
오랜 시간 마을 단위의 괴롭힘을 당해온 기레스는 괴롭힘이 사라진 지금도 표면적으로는 굼뜨고 어벙하며 소심한 척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평소에는 전혀 기레스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티나지만 이렇게까지 능욕을 당하게 되면 당연히 기레스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기레스라는 인간은 언제나 비굴하고 모자란 병신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나 능수능란한 기레스를 바로 눈 앞에서 보고 휘둘려 가면서도 티나는 기레스에 대한 방심을 거두지 않는다. 이 약점 잡힌 노예 기간만 청산하면 저 기고만장한 태도는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티나는 백치처럼 천진난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 좋아하는 척 연기를 하라는 거야?"
"너랑 내기하고 있을때는 반드시 가버리게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만 해서 몰랐는데 말이지. 이렇게 마음의 여유를 찾고 나니까 하나를 즐겨도 제대로 즐겨야 겠다. 싶더라고"
'마음의 여유 좋아하네.'
"그래서 생각한 게 느끼는 척 연기를 해라? 내가 딱히 느끼지 않더라도?"
티나는 팔을 저으며 비아냥거리는투로 대꾸했다.
"원래는 그냥 솔직하게 반응해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말이지. 그렇게 나오면 오줌싸개까지 자처했던 네 성격상 뻔뻔스럽게 느끼지 않았다고 잡아 떼면서 무반응으로 나올 것 같아서 말야."
"잡아 떼긴 누가.."
"아.. 그럼 그때 그건 진짜로 오줌이었다?"
"그.... 그래."
"아무래도 좋은데 일단 널 못 믿겠으니까, 네가 느끼든 말든 성심성의껏 느끼는 척 야하게 반응이나 해달라는거야. 그런 척 해주는 것만으로 이 지옥같은 능욕을 2주나 빼준다니까?"
이미 티나에게 능욕의 시간은 지옥이 아니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척, 마치 엄청난 선심이라도 쓰는 것마냥 기레스는 능청 떨며 말을 이어 나갔다.
"네가 날 싫어해서 이렇게 반응 안려고 노력하는 건 알겠는데 솔직히 너한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잖아? 아니면 정말 나랑 질펀하게 한 달을 꽉 채워서 즐기고 싶은거냐?"
"뭐? 그럴 리 없잖아?"
앙칼지게 반응하긴 했지만 그럴 맘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티나다.
사실은 무반응으로 골릴 때로 골려주면서 한달 정도 느긋하게 기레스를 이용해 기분좋게 자위를 만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아냐? 하는 생각이 티나의 머릿 속을 멤돌고 있었다.
"근데 나 연기하고 싶지도 않고, 연기에 자신은 없는데? 괜히 했다가 연기 못했다고 위약금만 더 물면 나만 손해 아냐?"
"알았다. 알았어. 그럼 위약금으로 추가 요금은 안 받을게. 만약 니가 무반응하다거나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삭감했던 2주만 되돌려 받는걸로 해주면 손해는 없지?"
"뭐야? 혹시 미쳤어?"
티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할거야 말거야? 그거나 말해."
"흐음~ 그렇게까지 부탁하면 오히려 더 하고 싶지 않아지는데?"
티나는 눈을 살짝 흘기면서 기레스를 놀리듯 도발했다. 머리색도 생김새도 몸매도 다르지만 그 도발적인 눈초리는 꼭 소피아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요망함을 머금고 있었다.
"아.. 그러니까 고작 나 좆되어보라고 2주나 더 능욕을 당해가는 수모를 겪으시겠다?"
"까짓 거 못할 거 뭐 있어?"
"그럼 시발 나도 하일즈한테 다 까발려 버리지 뭐."
"뭐? 무슨 헛소리야?"
"이게 승부나 제안 같은걸로 사정 봐주니까 아주 사람을 호구새끼로 아나. 니가 왜 내 노예가 됐는지 잊었냐?"
"읏."
"그래도 시발 이런 건 자발적으로 하게 만들어야 꼴린다고 생각해서 내 피같은 시간을 그냥 퍼다주려 했더니 뭐? 오히려 더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마 이년아. 그냥 나 죽고 하일즈 가슴에 대못 박고 끝내자고."
노발대발하면서 기레스는 망설임 없이 일어나 성큼성큼 문짝으로 걸어갔다. 정말 망설임이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는 난폭한 발걸음에 티나는 다급히 기레스를 잡아당겨 침대로 끌여들였다.
"어... 어?"
화장실에서 클로에한테 당겨지던 것 같은 빨아들여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기레스는 휘청이면서 그대로 침대로 고꾸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티나가 팔로 허리를 휘감아 껴안고 서로를 마주보는 자세가 되어 있는 참이다. 갑자기 기묘한 자세로 분위기를 잡은 꼬라지가 되자 티나는 마주친 고개를 훽 비틀곤 모기만 한 소리로 말했다.
"미, 미쳤어? 진짜 죽고 싶어서 그래?"
"죽고 싶겠냐? 근데 네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서 보이콧하면 나로선 이거 밖에 할 게 없잖아? 애초에 이거 하나로 시작한 능욕이었고."
"미친새끼... 그거 하나 안 들어줬다고 자폭을 해?"
티나는 원망스럽다는 듯, 기레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원망에는 숨길 수 없는 선명한 애틋함이 서려 있다.
기레스가 성큼성큼 문짝을 향했을 때, 티나의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아쉽다는 생각이었다.
이대로 기레스가 하일즈에게 보고하게 되면 하일즈를 지킬 수 없게 되는 것이 아쉽다..
그렇게 기레스가 하일즈에게 보고하게 되면 지금까지 하일즈를 지키기 위해 해온 자신의 이 노력이 아쉽다..
그리고.. 하루를 꼬박 기다린 이 행위가.. 거기에 2주가 될런지 4주가 될런지 모를 기레스를 이용한 '자위행위'가 이자리에서 곧바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쉽다.. 라고 몸이 먼저, 그리고 마음이 따라 느껴버렸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쾌락에 마음이 좀먹혀 버린 티나는 아쉽다는 생각 속에 지금까지 쌓아온 겉만 번지르르한 변명들을 차곡차곡 끼워 넣는다.
끌어 안아 당겨진 기레스의 닿을랑 말랑한 신체의 열기는 아지랭이처럼 아른거리면서도 선명하게 티나의 피부에 느껴진다.
그 몸의 잔열만으로도몸이 달아 올라 애가 타서 티나의 앵두 같은 유두는 주책도 없이 찌르르 떨리며 빨딱 서버렸고, 이미 흥건했던 음부는 더욱 질척하게 젖어버렸다.
"그래서 어쩔거야? 안 할거면 좀 놓으면 안되냐?"
기레스의 말에 티나는 미간에 인상을 찍 쓰고는 팔에 부드럽게 힘을 줘 기레스의 신체를 잡아 당겼다. 그런 자잘한 태도 자체가 남자의 음심을 자극한다는 것을 모르면서도 티나는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행동해 버린다.
"지금까지 한 게 아까워서라도 이대론 못 보내."
"뭐?"
"시발. 원하는 대로 반응해 주면 될거 아냐?"
이렇게 결국에는 기레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게 몇번째인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딘지 친숙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럽게 툴툴대면서 티나는 또다시 기레스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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