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티나(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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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기레스의 행동은 이전과는 사뭇 달라져 버렸다. 집 안에서든 오두막에서든 둘이 있을때면 언제나 능글능글한 태도로 티나를 골려 먹으며 실실 거리던 기레스는 티나를 슬슬 피해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집에서 둘만 따로 만나는 일은 극히 적었기에 단순히 기레스가 티나를 피해다니는 것 뿐이라면 티나에게는 그다지 나쁠 게 없는, 아니 되려 좋다고 해도 좋을 상황이었지만 문제는 그것 뿐이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으읏...'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기분이 좋았어야 할' 능욕의 시간, 티나는 불만 가득한 찌뿌둥한 얼굴로 기레스의 손을 받아 들였다.
'어째서...'
언제나 들떠서 천둥벌거숭이마냥 날뛰었던 기레스의 애무에는 자신감이 사라져 버렸다.
가슴이든 허리든 엉덩이든 뭔가 신나게 만지락거려 쾌락이 움트려고 할때면 기레스는 자신의 손을 움찔움찔 미적거리며 몸 안에 뜨끈하게 넘실거리는 쾌락에 찬물을 끼얹었다.
티나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쾌락으로 고문을 받는 기분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 기레스의 손이 음탕하게 달라 붙어서 만지락 거릴 때면 몸은 달아올라 미칠 것 같은데 기분이 한껏 고조되려고 할때면 명곡의 클라이맥스를 방해하는 불협화음같이 머뭇거리는 손길이 쾌락의 절경을 방해해 버리는 것이다.
덕분에 티나는 꿀맛 같았던 기레스의 능욕의 시간에 쾌락다운 쾌락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것 뿐이랴.. 그날 이후 기레스는 몸을 깨끗히 씻기 시작해 능욕하는 시간만 되면 맡기 싫어도 맡을 수 밖에 없었던 체취조차도 전혀 느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자지라도 빨 수 있으면..'
이전처럼 껍질 안쪽을 빨아 넘기면.. 아니 그게 아니어도 기레스의 더러운 정자를 사정하게 만들어 입 안에 담을 수 있다면 자신의 이 한껏 일그러진 변태같은 성욕을 조금이라도 더 해소할 수 있지는 않을까 입맛을 다시며 생각해 보지만 '사정을 금하려 하는' 기레스는 그놈의 내기를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후.. 오늘은 이만한다."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그 머뭇거리며 미적이는 손길에도 은근히 적응해 간질간질 무언가 쾌감 비스무리한 느낌이 몸 안에서 오락가락 거리며 꿈틀대기 시작할 때면 기레스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그렇게 끝을 고하고, 냅다 손을 떼 별다른 감상이나 대화도 없이 오두막을 나가 버리는 것이다.
지글지글 끓어 오르는 속을 풀기 위해 도발을 하든, 한껏 비꼬든 기레스를 골려주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내기를 하지 않으니 사정을 하는 건 아니기에 조루라고 매도할 수도 없을 뿐더러, 맥아리 없는 애무는 티나의 표면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되려 고마워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곰곰히 되돌아 생각해 보면 능욕 아닌 능욕을 받는 이 상황은 티나가 기레스와 내기를 시작하기 전에 바랬던 이상적인 상황이었지만 그 이상적인 상황 앞에 놓인 티나의 얼굴에는 어둠만 짙게 내리깔려 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똑똑]
주말의 이른 아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티나는 흠칫 놀라며 눈을 떴다. 투박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일전 아침에 자신의 입술을 빼앗아 갔던 기레스의 소리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이 시간에... 기레스라고..?'
조건반사적으로 티나의 입 안에는 달콤한 침이 고여 버린다. 그날 기레스가 서먹하게 나가버린 이후 3일 간, 기레스는 언제든지 티나를 능욕할 권리를 굳이 한 달이라는 시간을 삭감해 가면서 구했음에도 단 한번도 티나를 집에서 따로 호출하지 않았다. 그런 기레스가 주말 아침이라는 이 시간에 자신의 방에 찾아온 것이다.
3일 동안이나 기레스의 어눌한 애무로 쾌락에 굶주릴대로 굶주려 바짝 말라 비틀어진 티나에게는 이미 '집 안'에서의 능욕이라는 거부감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희미하기만 할 뿐이었다.
"누구세요?"
기레스일 것이라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티나는 짐짓 모른 척하며 문을 열었다.
"나야."
문 밖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차갑게 대답하는 기레스가 있었다.
어쩐지 어깨를 축 늘어 뜨리고 칙칙한 죽은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그 모습은 하일즈와 함께 괴롭혔을 때의 기가 죽었던 기레스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무, 무슨 일이야?"
티나는 마치 이른 아침에 능욕을 당하게 되어 당황하기라도 한 듯, 수세에 몰린 것처럼 연기하며 말했다.
그런 자잘한 태도조차도 기레스에게는 훌륭한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티나는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실로 여우같은 생각을 품은 티나는 흘깃흘깃 기레스를 곁눈질하면서 기레스가 '무슨 일은 무슨 일이야!' 라며 호통을 치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아니 뭐 별건 아니고.."
'으읏..'
기대했던 반응과는 달리 자신감 없는 늘어진 반응이 나오자, 티나는 표정관리도 못하고 곧장 인상을 구겨 버렸다.
"오늘 능욕은 없다고 전해주려고."
"뭐어!?"
기레스가 풀이 죽은 이후로도 저녁 능욕만큼은 걸러진 적이 없었기에 티나는 순간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놀라 소리쳤다.
티나의 그 반응에 기레스는 속으로 조소하면서도 스스로 나서서 티나를 포장해 주었다.
"시발년.. 꼭 그렇게 소리까지 내며 '좋아'해야겠냐?"
'으윽..'
전혀 좋아서 낸 소리가 아니지만, 그것을 좋아서 소리친 게 아니라고 곧이 곧대로 말할 수는 없다.
"그, 그럼 능욕을 거른다는데 싫어하기라도 하라는 거야?"
기레스가 눈치채지 못하게 이를 갈면서 티나는 애써 기레스의 말을 받아들여 자신을 포장했다.
기레스를 자위도구 삼아 쾌락을 느끼고 싶다는 속마음은 이제와선 애써 자신에게 변명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과 기레스에게 능욕 받고 싶다는 자신의 생각이 들키는 것은 완전 다른 문제인 것이다.
쾌락을 얻고 싶어 온몸을 배배 꼬며 빌빌거리는 지금도 티나에게 기레스라는 존재는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속아 속편히 써먹히는 자위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여야만 했다.
"하긴.. 어쨋든 그런 줄 알고 있어. 후우.."
깊게 한숨을 내쉬며 기레스는 그대로 미련 없다는 듯, 티나의 방을 뒤로했다.
'한숨을 쉬고 싶은 게 누군데...!'
그렇게 기레스가 나가자 분을 삭히지 못한 티나는 침대 위의 배개를 집어 던지며 씩씩 거렸다.
'밴댕이! 소갈딱지!'
지난 3일 간 티나는 홀로 있는 시간이면, 지금까지는 아무리 놀려도 바보처럼 달려 들었던 기레스가 왜 이제와서 저런 행동을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지금껏 평생 기레스에 대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골똘히 생각해 본 결과 그녀는 기레스가 자신의 도발에 적잖게 상심해 삐졌다고 결론 지었다.
티나가 본 기레스는 그야말로 열등감 덩어리나 다름 없는 인간이다.
그 열등감을 극복한답시고 자신의 살을 파먹는 되도 않는 약속까지 해가면서 씩씩 거리며 아무 생각 없이 달려드는 머저리라는 것이 기레스에 대한 티나의 평가였다.
능욕할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초창기에는 기레스도 아직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남아 있으니 씩씩거리며 달려들 여유와 자신이 있었을테지만 이제 단 1주일 밖에 남지 않은 지금, 기레스에겐 열등감을 극복할 기회가 턱없이 부족하게 되어 버렸다.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능욕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스스로의 능력에 깊은 열등감을 품고 있는 기레스에게는 큰 압박이 아닐 수 없다.
3주라는 긴 시간을 다 날리고 남은 짧디 짧은 1주일이라는 시간동안 티나를 가버리게 만들지 못하면 기레스는 그야말로 무능력에 여자 하나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남자 실격이 되어 버리게 된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몰려 있었기에 티나는 기레스가 자신의 도발에 그간 꾹꾹 눌러 참아왔던 열등감이 폭발해 버린 것이라 생각했다.
무려 3주라는 시간동안 그놈의 열등감을 극복한답시고 내기까지 걸어가면서 능욕해왔는데 돌아온 결과라고는 자신이 한심한 조루라는 사실 뿐이었으니 기레스를 싫어하는 티나가 생각해 봐도 확실히 기레스의 입장에서는 확실히 속이 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너무 생각없이 놀렸나..'
하지만 이내 티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다시 생각했다.
'그렇다 해도..! 그 바보는 남자면서 자기를 놀린 건방진 여자 하나 가버리게 만들겠다는 배짱 하나 없어?'
생각해 보면 전조는 있었다. 자신의 입으로는 자신있게 처녀는 실력으로 가져가겠다고 말했지만 자신을 육변기 취급 하기 위해 한달이라는 기간의 삭감을 투자했던 기레스는 분명 '이대로는 쥐어 짜이기만 하다 끝날 것 같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말인 즉슨, 이대로는 가버리게 못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이렇게라도 너를 더욱 괴롭혀 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남은 시간이 없으면 더 열심히 해서 이길 생각은 안하고...'
기껏 남은 능욕기간을 삭감해 자신을 변기로 만든 결과가 그 자신감 없이 머뭇거리는 기레스의 태도라는 것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간 티나는 애꿎은 자신의 침대에 분풀이로 팡팡 주먹질을 해대며 볼멘소리로 불만 가득한 한마디를 토로했다.
"찌질이 새끼..."
그 뚱한 얼굴은 영락없이 자신을 능욕하지 않은 기레스에게 삐져버린 소녀의 모습이었다.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씩씩 거린지 얼마나 지났을까. 살짝 마음이 후련해진 티나는 퀭한 눈으로 침대에 다소곳히 앉아 생각했다.
'그래.. 좋게 좋게 생각하자. 솔직히 기분 좋은 자위를 능욕이 끝날 때까지 못하게 된 건 아깝지만.. 어차피 능욕이 끝나고 나면 기레스를 사용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지금부터 미리 적응해 나간다고 생각하면... 응. 그래.'
그렇게 애써 티나는 자기합리화를 해가면서 괜히 기레스 때문에 달아오른 몸을 가라앉히기 위해 침대 속으로 기어 들어가 자신을 위로 했다.
"어이."
그로부터 다시 3일 후.. 아침 식사를 끝내고 등교 준비를 하려 방으로 돌아가려는 티나에게 기레스가 말을 걸었다.
"뭐야?"
퀭한 눈으로 도끼눈을 뜨고 티나는 매섭게 쏘아붙혔다.
"뭐, 뭐야..? 말 한번 걸었다고 사람 잡을 듯이? 따로 호출도 안하고, 능욕도 자제해 주고 있는데 뭘 그렇게 화내는 거냐? 고마워 하지는 못할망정."
'시발새끼..'
"내가 너랑 시시덕 거릴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 원수면 몰라도.. 용건이나 말해. 왜 오늘도 거르시게?"
능욕을 걸러져도 전혀 기쁘지 않다는 티를 풀풀 풍기면서 티나는 기대도 안한다는 듯이 쌀쌀맞게 물었다.
"오빠한테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아쉽지만 반대다."
"반대?"
그 말을 들은 순간 티나는 심장이 떨리는 것을 느껴버렸다.
"너한테는 안된 일이지만..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능욕.. 아니 내기의 승부를 해주셔야 겠어."
기레스의 한마디에 티나의 겨울바람처럼 쌀쌀했던 태도는 봄바람처럼 푸근하게 누그러져 버렸다.
"무,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여기서 괜히 기레스를 도발해 의욕을 꺾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티나는 한풀 꺾여 당황한 척을 하며 기레스의 말에 되물었다. 표면상으로는 여전히 쌀쌀맞은 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그녀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바람은 무슨.. 이대로 내가 끝날때까지 내기를 포기라도 할거라 생각했냐? 하여간 여전히 자기 좋을대로 생각하는 년이라니까.."
오랜만에 듣는 기레스의 건방진 말투에 티나의 속은 살살 달아올랐다.
"요즘은 꼬리 만 개처럼 피해다니길래 이미 승부는 포기한 줄 알았지."
'이, 이정도는 괜찮겠지?'
티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전전긍긍 눈치를 보면서 기레스에게 질새라 한마디를 쏘아 붙혔다.
"포기 같은 소리 하네. 오늘부터 끝나는 날까지 쉬지 않고 범할거니까.. 각오나 해두시지?"
'쉬지 않고..'
기레스의 말을 들은 티나의 목젖이 꿈틀거렸다. 듣는다면 누구라도 당황하고 화가 나야 정상인 말이었음에도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제멋대로 달콤하게 떨려 버린다.
"각오는 무슨..."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온 '어차피 내가 이길텐데..' 라는 말을 아끼며 그대로 티나는 기레스를 지나쳤다. 기레스를 뒤로한 자신의 얼굴에 미소가 한가득 번져 있다는 사실은 자각하지도 못한 채 티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달콤한 하루의 시작을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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