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계네토기-135화 (135/238)

〈 135화 〉 티나(27)

* * *

"그럼 오늘은 어떻게 하면 되는데?"

티나는 틱틱거리며 쏘아붙히듯 말했다.

"오늘은 직접적으로 자지를 애무하는 건 없는걸로 하자고. 아니 한동안은 가급적이면 사정하는 건 피해야겠어."

'으...'

욕구불만으로 발정나 버린 티나에게 기레스의 그 말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제안이었다.

"애무를 안하면 뭘 하라고."

"뭘 하긴 뭘 해? 어제 했던 것처럼 그냥 내 몸이나 적당히 빨아."

"후우..."

티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면서 옷가짐을 벗어 던지고는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살근살근 기레스의 품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스읍."

'하아..'

깊게 들이킨 숨에 티나는 기분이 좋아 살짝 소름이 돋아 버렸다. 기레스가 명령하지 않아도 티나는 마치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듯 자신의 예쁘장한 얼굴을 기레스의 맨살에 부벼가며 혀를 돌돌 굴려 정성껏 핥아 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잔이슬 같은 쾌락에 흠뻑 젖어버린 티나는 따로 애무를 받지 않아도 기레스에게 봉사한다는 이 굴욕적인 상황만으로도 홀로 자위를 하는 것 이상의 간접적인 쾌락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항상 기분이 좋을 때 맡았던 기레스의 냄새. 그리고 그 품 안에서 기레스에게 강제로 봉사할 때 느꼈던 쾌락은 조건 반사처럼 티나의 몸 속 깊은 곳에 자리매김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할 때보다 기분 좋아... 기분은 좋은데...'

그저 기레스의 살에 자신의 살을 비비는 느낌만으로도 분명 아침에 자위를 할 때의 그 퍽퍽한 느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한 쾌락이 온몸에 스며들었지만 티나는 어딘지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감질나 미치겠네."

기레스는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탐스러운 혀로 빨아나가는 티나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살짝 쓸어넘기며 매만졌을 뿐인데도 뭔가 부족했던 감각은 메꿔지다 못해 넘쳐나 티나의 몸은 펄떡 튀어 버린다.

"꺄앗. 뭐하는 거야!"

"사정만 안하면 되니까.. 나도 조금만 즐겨보려고. 불만 있냐?"

"있으면? 안하기라도 하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기는..'

도발적으로 쏘아 붙히는 티나의 앙칼진 목소리를 속으로 가볍게 비웃으며 기레스가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냐? 내 위에 올라타서 뒤로 누워."

"뒤로? 그, 그럼 몸을 못 빨게 되는데 상관 없는거지?"

못 빨게 되서 당황한 듯 변명하는 티나의 말에 기레스는 바로 꽥 소리를 지르며 반박했다.

"상관 없기는! 이게 틈만 났다 하면 꾀부리네? 고개만 돌리면 내 입은 빨 수 있잖아."

기레스의 그 말에 티나는 처음 자신의 입을 빼앗겼던 오늘 아침의 일을 떠올렸다.

이전의 그녀였다면 첫 키스를 잃었다는 압도적인 상실감에 불쾌함을 먼저 떠올렸을테지만, 욕구불만으로 뇌가 흐물흐물 녹아버린 지금의 티나의 머릿속에선 상실감보다 그때 마저 다하지 못한 쾌감에 대한 기대심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으읏."

색기어린 불긋한 색을 잔뜩 머금은 새하얀 얼굴로 티나는 분하다는 듯 신음하며 기레스의 위에서 몸을 돌렸다. 그런 티나의 허릿춤을 기레스의 팔은 요령 좋게 쓸어내리며 감싸안듯 안았다.

서로 몸을 포갠 그 자세는 기레스가 뒤에서 끌어 안은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읏....'

성기에 비하면 허리같은 건 별 것 아니라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이렇게 맨살을 포갠 상황에서 팔로 허리를 감싸 안는 행위는 티나에겐 순수하게 성기를 비비는 것 못지 않게 남사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기레스의 위에 올라 타 이렇게 부둥켜 안겨있는 상황은 마치 사랑을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져, 차라리 강제로 능욕을 당하는 게 마음은 편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아주 잠시 뿐이다. 기레스의 뱀처럼 흐느적 거리는 음탕한 손놀림에 티나의 작게나마 피어올랐던 거부감의 불씨는 금새 꺼져 버렸다.

"고개 돌려."

자신의 바로 옆 어깨 위에선 평소에는 느끼지 못할 기레스의 뜨끈한 숨결이 느껴진다. 살살 간질여지는 허리에서 올라오는 쾌감에 흠뻑 취한 티나는 순순히 고개를 돌리고는 작은 입을 슬며시 열어 도톰하게 반짝이는 혀를 내밀기 시작했다.

"쥬웁.. 쪼옥."

기레스의 혀가 닿자 얽히자마자 티나는 가뭄에 단비처럼 촉촉히 스며드는 쾌감을 느껴 버렸다. 아침식사때도, 점심의 학교 때도, 그리고 능욕을 당하기 직전까지도 바래왔던 머리를 새하얗게 만들어 버리는 기대하고 기대했던 그 쾌감이었다.

"응.. 츄릅.. 힛?"

기레스의 혀에 정신을 쏙 빼놓고 있던 티나는 가슴에 느껴지는 음란한 손길에 흠칫 놀랐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도착한 기레스의 손은 어느샌가 티나의 가슴을 애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레스는 슬슬 티나의 야들야들한 가슴을 손가락으로 동글동글거리며 음탕하게 돌리다가, 유방의 민감한 부분을 푹 하고 부드럽게 찔러 넣었다. 음탕하기 짝이 없는 애무에 푹 익어버린 먹음직스러운 몸은 감싸쥔 손가락을 따라 춤이라도 추는 듯 흔들린다.

평소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그저 예쁘니 마니 하는 정도로 지나가듯 가볍게 생각했던 티나였지만, 애무하는 건 분명 기레스였음에도 티나는 순간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신체가 얼마만큼이나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니 탐스러운지 자각해 버렸다.

그 느낌이 어느정도냐면 어째서 남자인 기레스가 자신의 몸을 희롱하며 즐거워하는지 여자인 자신이 이해 할 수 있을 것만 같을 정도였다.

"슈읍.... 쮸읍 므에에...?"

티나 자신이 기레스의 혀를 닦는답시고 슬슬 혀를 적극적으로 움직일 정도로 분위기가 고조되어갈 무렵, 기레스는 화들짝 입을 떼며 찬물을 끼얹었다.

"!??"

"후아.. 그만하자."

"응..?"

"더 했다가는 싸버릴 것 같으니까 그만하자고."

기레스는 티나의 가랑이 사이에 단단히 발기한 육봉을 쫑긋 쫑긋 거리며 말했다.

"으윽.."

쫑쫑거리며 스치는 기레스의 육봉이 가랑이 사이의 음부를 간질이는 그 느낌은 또 활활 타오르고 있는 티나의 음심에 기름을 끼얹어 버린다.

기레스와 서로의 성기를 핥아가면서 질펀하게 능욕당했던 그 때와는 다르게 무언가가 너무나도 부족하다. 물고 빨고 즐길 때에는 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지만, 단지 그것 뿐인 것이다.

괜히 어설프게 쾌락이라는 짐승의 꼬리만 밟아서 화만 돋우게 만들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티나는 이전의 능욕들과는 다르게 전혀 후련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 시발. 싸버릴 수도 없고.."

"흥.. 한 두번 싼다고 죽기라도 한데? 남자가 무슨 엄살이 그리 심해?"

얼핏 기레스의 한심함을 질타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말에는, 그냥 이 자리에서 싸지르면 뭐 어때? 싶은 티나의 은근한 바램이 담겨 있었다.

"죽지는 않겠지만.. 피곤한 건 사실이거든. 너는 남자가 아니라 잘 모르나 본데, 남자는 말야 한번 싸고 나면 급격하게 피곤해 진다고. 근데 이렇게 안 싸버니까 안 싸는대로 또 뭔가 근질근질 거린단 말이지."

티나는 자신처럼 기레스도 발정났다는 사실에 살짝 안도하면서 생각했다.

'그렇게 근질거릴 정도면 어차피 집에 가서 잠도 제대로 못 잘텐데 그냥 제대로 해버릴 것이지.'

발정나서 밤새 잠을 설쳤던 일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티나는 멋대로 기레스도 자신처럼 미칠 것만 같이 발정 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며 속으로 툴툴 거렸다.

'그나저나 나도 이대로는 잠을 못 잘거 같은데..'

살짝 말을 멈추면 몸에서 피어올라 근질거리는 쾌락이라는 독에 정신줄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흠..'

티나는 살짝 눈알을 위로 굴리면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 뒤 기레스에게 말했다.

"그럼 내기는 내가 이긴거지?"

"이건 또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피곤해서 앞으로는 사정을 참는다면서? 아무래도 능욕은 계속 해나가겠지만.. 사정시켜야 되는 내기는 내가 이긴거잖아."

"이게 또 기어오르네. 가급적이라는 말 몰라? 내가 언제 이제부터 끝날때까지 사정하지 않겠다고 했냐?"

"흥. 직접 애무를 하지 않는 지금도 그렇게 못 버티면서 꼴에 이길 생각은 있나봐?"

그렇게 티나는 어쩐지 즐거워 보이는 것 같은 미소까지 띄며 기레스를 살살 도발해 나간다.

'이렇게 도발하면 금방 달려들겠지...?'

자신의 승리로 내기를 끝낸다는 것은 누가봐도 말이 안되는 억지였지만 기레스를 도발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소잿거리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열등감을 톡톡 자극해 주면 언제나 씩씩 거리는 한심한 모습으로 달려드는 게 티나가 알고 있는 기레스라는 인간이었다.

"....."

곧장 반박하면서 길길이 날뛸거라 생각했던 기레스의 반응은 한동안 잠잠했다.

'뭐지?'

"후.... 꼭 그렇게 끝까지 후벼대야 속이 시원하냐?"

'어라?'

평소 같았으면 분을 못 참고 씩씩 거리면서 보지나 내밀라고 호통을 치거나 했을 기레스의 반응은 어딘지 착 가라앉아 있었다.

가만 보면 씁쓸한 표정을 짓고 풀이 죽어 있는 듯한 기레스의 모습이 보인다.

'어, 어...? 이게 아닌데..'

기레스의 모습은 능욕을 당하기 전의 티나가 봤다면 그야말로 박장대소를 하며 즐겁게 비웃어 주었을 정도로 처량했지만 바로 지금 그 진풍경을 보는 티나의 마음은 어째 그다지 편치 않았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뭔가 잘못 건드린 것 같은 느낌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와서 장난이었다면서 자신의 말을 번복할 수는 없다. 기레스와 티나는 장난을 주고 받는 살가운 사이가 아니라 원수 그 이상이나 다름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단순하다가 왜 지금 이리 궁상을 떠는거람! 언제나같이 바보처럼 씩씩대며 달려들기나 할 것이지..'

욕구불만도 욕구불만이지만, 티나는 어딘지 불편하고 답답한 마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발. 간다."

그렇게 티나가 혼자 끙끙거리며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옷을 다 챙겨 입은 기레스는 그대로 질색한 듯이 오두막 밖으로 훌쩍 나가 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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