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티나(23)
* * *
'피곤하긴 했지만 이렇게 정신없이 자버릴 줄이야..'
인사불성으로 잠들어 있었던 기레스는 티나가 무엇을 했는지 전혀 볼 수 없었다.
'흐음~'
하지만 직접적으로 목격하지 않아도 티나가 무엇을 했는지는 다름 아닌 티나를 보면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새하얀 얼굴에 물든 홍조, 당황으로 살짝 떨리는 목소리와 아쉬움이 깃든 욕정의 눈길에 이르기까지.. 머뭇거리는 티나의 몸에선 발정난 여성의 음탕한 분위기가 한껏 배어나오고 있었다.
멀직이 떨어져 있던 것도 아니고, 침대를 넘어와 지근거리에서 자신을 깨우지도 않은 채 야한 냄새를 폴폴 풍겨가면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산전수전을 다 겪은 기레스가 그 답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후우."
붉게 물든 얼굴로 제 딴에는 들키지 않았다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은 기레스의 입꼬리를 귀에 걸리게 만든다.
'마침 잘됐군.'
마음가짐이 달라졌기 때문인지, 능욕을 받을 준비를 위해 주섬주섬 옷을 벗는 티나의 행위에는 어느샌가 망설임의 색이 많이 옅어져 있었다.
"뭐해? 얼른 안오고."
기레스보다 먼저 준비를 끝낸 티나는 침대 위에 올라가 퉁명스레 물었다.
"오늘따라 뭔가 적극적인데? 그렇게나 내 물건을 빨고 싶었냐?"
"흥. 빨리 끝내고 싶은 것 뿐이야."
기레스의 뻔히 보이는 도발에 걸리지 않겠다는 듯, 쿨한 척 콧방귀를 뀌면서도 티나는 은근히 기레스의 사타구니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자기는 자기 나름대로 기레스를 이용하겠다는 그 심보 자체가 기레스에게는 유희 중 하나라는 것을 그녀는 알아채지 못한다.
"크읏.. 할 수 있으면 해봐!"
"풋."
그렇게 열등감에 살짝 언성을 높히면 티나는 자신이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잊고 요망하게 눈웃음 지으며 기레스의 육봉을 향해 고운 얼굴을 망설임 없이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쯔읍 후룹 아음.. 으응.."
자신의 음부를 딸랑 거리며 핥아내는 기레스의 '적당히' 기분 좋은 혀놀림을 마음껏 느끼면서 티나는 육봉을 핥아 나간다. 이전처럼 대놓고 몸을 씻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식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감도는 시큼한 냄새에 기레스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파묻은 티나는 자신도 모르는 음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레스를 빨리 사정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2주라는 시간을 그것만을 생각하면서 지냈던 티나의 혀는 꿀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끈적하며 음탕하게 움직여 나간다.
입 밖에서 코로 흡입하고 안에서 물씬 올라오는 냄새에 티나의 몸은 쾌락에 흠뻑 젖어 버린다.
'아니, 잠깐만..'
벌벌 거리면서 기레스의 육봉이 슬슬 사정의 전조를 보이기 시작하자, 티나는 욕정에 젖은 눈을 위로 굴리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이대로 바로 사정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평소 같았으면 5분은 멀쩡했을 기레스의 육봉은 채 2분도 되지 않아 금방 싸버릴 것만 같이 바들바들 거리고 있었다.
이미 몇번이고 쥐어 짜왔기에 티나는 사정이 머지 않았다는 것을 쉬이 예상할 수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빠르게 능욕을 끝낼 수 있다고 좋아했을테지만 지금의 티나에겐 배고파 미칠 것 같은 상황에 맛있는 음식의 간만 맛본 것 같은 깊은 아쉬움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오늘 세상 모르고 자던 기레스의 냄새에 은근히 욕구불만으로 발정해 버린 티나는 어딘지 이렇게 빠르게 기레스를 가버리게 하는 것은 아깝다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괜찮지 않을까?'
이제는 새콤달콤하게까지 느껴지는 체취와 더불어 낑낑거리면서 자신을 가버리게 만들기 위한 기레스의 필사적인 혀놀림은 지금도 방심하면 표정이 살짝 풀어져 버릴 정도로 너무도 기분이 좋았지만, 어찌어찌 절정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의 자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를 둥실둥실 취하게 만드는 쾌감이지만, 쾌락에 비해 기레스의 체취와 애무는 안정적이게 견딜만은 하다는 것을 2주간 능욕을 받아온 티나는 몸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혹시 갈 것 같으면 재빠르게 보내 버리면 되니까.. 좋아.'
"끄앗! 뭐, 뭐야!?"
혀를 냘름거리면서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티나가 쫄깃하게 빨아제끼던 혀의 움직임을 풀자, 기레스는 활어처럼 몸을 팔딱 거리면서 반응해 버린다. 그와 동시에 이제는 어째선지 싫지않은 비릿한 액체가 티나의 입 안에 쏟아져 버린다.
'어??'
순간 벌어진 일에 티나는 벙찐 얼굴로 어이없어하기 시작했다.
"젠장..!"
'이.. 시발..'
언제나와 같은 데쟈뷰와도 같은 광경. 예상 밖의 상황이라지만 오늘 하루의 능욕이 끝이 나 기뻐해야할 상황임에도 티나는 조금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기쁨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티나는 기레스가 자신을 보지 못하고 분해하는 틈을 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인상을 구길 정도로 분개하고 있었다.
'조루새끼! 그렇게 힘을 빼줬는데도 못 참아!?'
일전에도 한번 깨끗하게 몸을 씻은 기레스의 애무에 영문 모를 짜증이 치밀었던 적도 있었지만 이번은 그때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어째서 화가 나는지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했던 당시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솔직하게 기레스라는 자위도구로 자위를 '더 만끽하고 싶은데도' 계속하지 못하게 된 이 상황에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특히나 사정을 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오늘은 사정하지 말라고 적당히 힘을 빼주기까지 해준 티나에게 기레스의 이번 사정은 더더욱 고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크윽.. 설마하니 거기서 힘을 빼버릴 줄이야..... 예상도 못했군."
'놀고있네. 시발새끼.'
평소 같았으면 자학하는 기레스에게 단번에 매도를 퍼부었을테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분위기를 풍기며 어째선지 만족하는 듯한 기레스를 보니 가뜩이나 부글거리는 속에 기름이 부어지는 것 같이 바짝 약이 올라 비꼴 여유조차 생기지 않는다.
"후.. 어쩔 수 없군."
"뭐가 어쩔 수 없어?"
티나는 시퍼런 칼날 같은 냉랭한 어투로 기레스에게 쏘아붙힌다.
'또, 뭔 음흉한 생각을 하는 거야? 사정 참는거나 집중할 것이지.'
"아직 포기한 건 아니다만, 솔직히 이대로는 쥐어 짜이다가 끝나기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야."
"그래서? 뭐? 처녀는 못 빼앗을 거 같으니까 강제로 겁탈이라도 하게?"
"그럴리가.. 방금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 거 못 들었냐? 나는 약속은 지킨다고. 네 처녀는 내 실력으로 가져갈테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폼잡기는.. 조루 주제에.'
괜시리 방금 전 기레스가 찍 싸버린 일이 떠오른 티나의 표정은 다시 사납게 일그러졌다.
"다만 이대로는 내 원한을 풀기도 전에 쥐어 짜이기만 하다가 끝날 가능성도 있을 것 같으니.. 제안을 하나 하려고."
"제안?"
"그래. 이 제안을 들어 준다면 남은 시간 중에 한달을 삭감해 주마."
"하, 한달이라고? 진심이야?"
"좋아할 때냐? 그만큼 지독할 걸 시키겠다는 생각은 안들고?"
"그래도 한달이면.."
일주일이나 이주일도 아니고, 한달 삭감은 남아 있던 한달 반이라는 까마득한 시간이 단번에 2주 안쪽으로 줄어들게 되는 엄청난 기간이다.
기레스가 무엇을 시킬까 걱정하기에 앞서 능욕이 2주 밖에 남지 않게 된다는 사실에 현혹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뭘 시키고 싶은 건데?"
"청소."
"뭐?"
"네 몸으로 내 몸 청소를 시킬거야."
"몸 청소?"
갸우뚱 거리는 티나를 보면서 기레스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크크... 지금까지 열심히 생각해 왔지. 섹스를 제외하고 뭘 시키면 네가 가장 굴욕스러워 할지 말야.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보아 너는 내 씻지 않은 물건을 볼 때 가장 역겨워 하는 것 같았어."
기레스의 말은 지극히 상식적인 정론이다. 티나가 기레스의 말마따나 개변태가 아니라면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발언인 것이다.
하지만 이미 기레스에 의해 변태성이 개화되어버린 티나에게 기레스의 굴욕의 제안은 굴욕은커녕 쾌락의 만찬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린지 오래였다.
"어때 정곡이지?"
'정곡 좋아하네.'
속으로 그렇게 기레스를 비웃으면서도 '정곡이 아닌 쪽'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자각은 하지 못하는 티나였다.
"....."
보란 듯이 살짝 표정을 구기는 척을 하는 티나를 보면서 기레스는 야심찬 느낌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승부로는 진득하게 너를 능욕할 수가 없으니까 말야. 승부는 승부대로 하되, 이제부터는 추가로 내가 원할때면 노예답게 네 혀로 내 몸을 닦아내 줘야 겠어. 요컨대 육변기 취급을 하겠다는거지"
'미친새끼..'
"원할때면이라니? 집에서도 하겠다는 건 아니지?"
"시발 한달이라는 시간이 좆밥으로 보이냐? 그럼 여기서만 깔짝 거리고 끝낼 생각이었어? 아주 날로 먹으려고 작정을 하셨구만?"
"그럼 하루 종일 하라고 하면 해야 된다는 거야?"
그런 말을 하는 티나의 울긋불긋한 표정에는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종췌 알기 힘든 오묘함이 감돌고 있었다.
"왜? 싫어?"
"싫은 게.... 당연하잖아!"
"그럼 하지 말던가."
"어?"
심드렁한 표정으로 시원스레 받아치는 기레스의 말을 듣고 티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뭔가 기레스에게 휘둘리는 것 같긴 하지만, 놓치기에는 기간으로든 쾌락으로든 너무나도 아깝기 짝이 없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말했잖냐. 이건 거래야 거래. 한달 삭감 받고 싶어? 그럼 내가 원하면 하루 종일이든 나발이든 복종하던가. 그게 도저히 안되겠으면 거절하고 한달 반동안 느긋하게 내 정액을 짜 마시던가. 시발 내기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공짜로 따먹고 이렇게 능욕했을텐데.. 그놈의 내기 때문에 능욕기간 한달 삭감까지 걸어 줬더니만 이것도 싫다고 지랄하고 있네? 아주 배가 불러 터져서는.. 그러니까 싫다는 거지?"
"자, 잠깐만..!"
칼 같이 정리해 버릴려는 기레스를 보면서 티나는 다소 다급하게 기레스를 만류했다. 기레스의 몸을 조금 더 맛볼 수 있다는 것과 무려 한달이라는 시간을 삭감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변태중의 변태로 조교 되어버린 티나에게는 이득밖에 없는 보상이나 다름 없다.
기레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라는 제안조차도 좋게 좋게 생각하면 기레스를 도구삼아 이 저열한 쾌락을 추가로 더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진대, 기레스의 이 매력적인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티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뭐야?"
"한다고! 하면 될 거 아냐. 쫌생이 같은 새끼. 고민할 시간도 안 주냐?"
퉁명스레 쏘아붙히며 티나는 그렇게 기레스와 새로운 계약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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