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 티나(19)
* * *
"하아암."
오전의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기레스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했다. 수업이 끝나면 클로에 이상가는 소피아의 훈련이, 그리고 그 훈련이 끝나면 티나를 조교한답시고 정액을 빨리는 나날을 보내는 기레스가 피곤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피곤하다고 수업을 등한시 할 수는 없다. 클로에와 소피아의 도움을 받아 쪽집게 족보나 다름 없는 치트키로 나름대로 성적을 끌어 올리기는 했다지만, 제국 내에서도 제일 간다는 리움 사관학교의 커트라인에 들기 위해서는 게으름이라는 사치를 부릴 틈은 없기 때문이다.
'클로에는.. 나갔나?'
여전히 클로에와 같은 수업을 몇가지 듣고 있는 기레스였지만, 이전과 다름 없이 기레스는 클로에와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있었다. 티나를 조교하기 전에도 딱히 교실 안에서 아는 체는 하지 않았지만, 티나를 조교하는 지금은 더욱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티나가 같은 수업을 듣는 것은 아니지만, 교내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인기있는 티나는 부릴 수 있는 수많은 감시꾼들이 널려 있었다. 이미 소피아를 통해 그런 낌새를 진즉에 알고 있었던 기레스는 가급적이면 클로에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우.. 화장실이라도 다녀올까."
책상 위에 앉아 있다가 자신이 꾸벅 졸았다는 것을 자각한 기레스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곧 도착한 남자화장실에 들어가려는 찰나 기레스의 몸은 그대로 순식간에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우억!"
블랙홀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불가항력으로 빨려 들어간 곳은 남자화장실이 아닌 여자화장실 쪽이었다.
말 그대로 눈 깜빡 거릴 사이에 여자화장실의 칸막이로 빨려 들어온 기레스는 뒤늦게 정신을 가다듬었다.
침착해지고 나자 기레스는 그제서야 자신을 부드럽게 찰싹 끌어안고 있는 가녀린 팔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짓이야. 클로에."
"아.. 음."
클로에는 아쉽다는 듯 머뭇머뭇거리면서 찰싹 붙어 기레스를 끌어 안고 있던 손을 천천히 풀었다.
"용케 나라는 걸 알았네?"
어딘지 만족한 얼굴로 클로에는 타인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는 미소를 기레스의 앞에서 배시시 지어 보였다.
"너랑 얼마나 뒹굴렀는데 그런 걸 모를 것 같냐?"
저질스러운 성희롱이나 다름 없는 말임에도 클로에한테는 자신을 특정 짓는 기레스의 말이 마냥 기쁘게만 느껴졌다.
"그나저나 티나를 포로로 만들기 전까지는 만나지 않기로 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이렇게 학교에서 만나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비단 티나의 일이 아니더라도 기레스와 클로에가 친근하게 이야기 하는 것, 더 나아가서는 화장실에서 밀회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발각 당하게 되면 좋을 게 없었다.
"그건 걱정 마. 아무도 본 사람은 없으니까. 사실은 나도 참으려 했는데.."
"참으려 했는데?"
"마침 아무도 없을 때 기레스 네가 화장실에 오는 것을 봐버리는 바람에.. 오랜만에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져서.."
기레스와 한 약속을 어겼기 때문인지 클로에는 살짝 수줍어 하면서 쭈뼛쭈뼛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면 좋기는 한데.."
피곤에 쩔어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기레스 본인이 생각해 봐도 방금 전 복도에는 신기할 정도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우연이 좀처럼 나타날 리가 없기에 클로에가 충동을 이기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안마라도 해줄까?"
"무슨 소릴 하는거야. 방금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졌다고 말했잖아."
'뭐야? 핑계가 아니었나?'
"그것만으로 괜찮아?"
"그야 나도 마음 같아서는 조금 받고 싶기야 하지만., 장소도 장소고.. 그냥 목소리만으로도 응앗."
욕망에 솔직하면서도 기레스를 배려해 필요 이상으로 욕망을 요구하지 않는 그 기특한 모습에 기레스의 손가락은 클로에의 가슴을 쓸어 내리고 지나갔다.
애무라고 하기도 뭣한 투박한 손놀림이지만, 기레스가 자신의 가슴을 건드렸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클로에의 정신은 아찔해져 버렸다.
"기, 기레스. 여기서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클로에는 자신의 허벅지를 부비면서 간절한 얼굴로 기레스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갈팡질팡거리는 바램을 기레스는 넉살 좋게 비집고 들어와 버린다.
"하으응♥"
단추를 하나 둘 벗겨 내고는 그 사이로 손을 집어 넣어 가슴을 푹 움켜쥐면 그대로 클로에는 쾌감에 못이겨 몸을 숙여 버린다.
그러면 기레스는 기다렸다는 듯 벽에 몰려 쾌락에 온몸을 배배꼬는 클로에의 몸에 끈적하니 밀착해 협소한 공간을 이용해 몸을 비비며 애무해 나가는 것이다.
"하아.. 아응.. 앗? 읍."
쾌락에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가면서 취해 기분 좋게 신음성을 내가던 클로에는 몸을 목석같이 빳빳히 세우고는 당황해 하기 시작했다.
"뭐야?"
"쉿!"
기레스의 입을 손으로 틀어 막고 클로에는 검지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얼마 안있어 여학생 둘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여학생인가..'
기레스는 흘끗 클로에를 흘겨 보고는 클로에의 풀어 헤쳐져 보기 좋게 부풀어 있는 옷가짐 안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
클로에는 그녀 답지 않게 당황한 표정으로 기레스에게 무언으로 항의 했지만 기레스는 여유롭게 클로에의 옷 안 손가락을 꼬물꼬물 거리며 놀리기 시작했다.
'무, 무슨.. 으으응...!'
이런 긴박할 때 무슨 짓이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따질수도 없거니와 기레스가 선사하는 이 은근하면서도 지글지글 거리는 쾌감은 불안과 초조를 양념삼아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쾌락을 클로에에게 맛보여 주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하는 말이 뭔지 알아? 어차피 안될테니까 지금이라도 리움 사관학교를 포기하고 시집 갈 준비나 하라고 하더라?"
"진짜?"
이용하라는 화장실은 이용 안하고 두명의 여학생들은 세면대에서 덧없는 장래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거리 상으로는 3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얇은 벽 하나만을 경계로 두고 기레스의 손에 희롱되고 있다는 사실에클로에는 금방이라도 숨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물이 가득 찬 물잔에 한방울씩 천천히 물방울을 얹어 넘쳐 흐르기 직전까지 포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처럼 몸 안에 가득 찬 쾌락은 클로에의 머릿 속을 정신없이 휘저어 버렸다.
"하아으.. 읍."
입까지 틀어막아가면서 참는다고 참아봤지만, 결국 클로에는 참지 못하고 한가닥 간드러진 신음성을 흘려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음?"
'아, 아앗.'
그렇게 예상 밖의 변수에 입술을 벌벌 떨며 당황하는 클로에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기레스는 넘칠듯 넘칠듯 넘치지 않았던 클로에의 쾌락의 댐을 무너뜨려 버렸다. 초조함이 심장을 움켜쥐는듯한 시큰 거리는 느낌마저도 이 절정 앞에서는 지고의 조미료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으.. 으.."
"뭐지?"
'어, 어떡해...'
그 총명했던 머릿 속은 아찔한 절정과 당황으로 백지장처럼 새하얘져 간다. 그런 클로에의 앞에서 기레스는 기침을 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으.. 콜록 콜록. 에취! 크.. 쿠흐응."
기침을 하는 연기를 하는 와중에도 살근거리는 애무는 그치질 않는다.
"괜찮아요?"
"네, 네.. 조금 사레가 들려서요. 케으흑. 으읏...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요. 케흐응."
"아 네."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고 나오면 외부인이 딱히 나설 틈은 없다. 곧 두명의 여학생들은 자리를 뒤로했다.
"하우.. 하아... 으.. 기레스 들켰으면 어떻게 하려고 이런 짓을 한 거야!"
"쉿. 복도에 들리겠다."
"아무도 없어."
얼마나 당황했는지 눈물이 살짝 고인 클로에는 이례 없을 정도로 애증섞인 싸늘한 눈빛으로 기레스를 바라보았다.
"이로써 학교에서 몰래 만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았겠지?"
"네가 멈추기만 했어도 아무 문제 없었잖아."
"물론 그렇기야 한데.. 나도 널 만난 게 오랜만인지라 참기가 힘들었다고.. 이 천금 같은 시간을 놓칠 수 있겠냔 말이지."
"말이나 못하면.."
클로에는 기레스가 얼마만큼이나 쾌락에 대한 의지력이 뛰어난 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이 그냥 둘러대는 소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매력을 인정받은 듯해서 당황과 불안과 초조로 엉망진창 헝클어졌던 마음은 거짓말처럼 흐물흐물 풀어져 버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마 걸리지는 않았을 거야. 보통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무슨 소리를 내든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아주 대놓고 교성 소리를 내지 않는 한은 말이지."
이런 일이 처음인 클로에와는 달리 이미 기레스는 전생에 이런 발정난 짐승 같은 장난은 수십번도 더해본 망나니였기에 클로에가 정신줄을 놓고 교성소리를 내지르지 않는 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건.. 그럴지도.. 후우.."
영원처럼 긴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막상 지난 시간은 고작해야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미안 미안."
"미안하면 쉬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는 이야기야."
"뭐야. 그거 그냥 한 말 아니었어?"
클로에의 요청에 따라 화장실 칸막이 안쪽에서 기레스는 클로에의 물음에 하나 둘씩 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럼 티나는 아직도 그다지 진척이 없는거야?"
아직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지 않은 기레스는 클로에에게 티나를 자신의 냄새에 발정하는 여자로 만들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할 수는 없어서 적당히 얼버무려 설명해 주었다.
"아직이라니 고작 2주 지났어."
"고작이라니.. 내 입장에서는 벌써라구."
'널 함락시키는 데는 1년을 썼는데 말이지..'
물론 그것이 기레스의 계획이었을 것이라고 클로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티나는 나를 정말로 싫어하는 모양인지라 조금 힘들더라고."
기레스의 약한 발언에 클로에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걱정의 색이 깃들었다.
"그, 그런데 말야. 혹시 이대로 티나를 함락시키지 못하면 지금처럼 만나지 못하게 되는 거 아냐?"
"그때는 뭐.. 어쩔 수 없지."
클로에가 뭐라 따지려 들기도 전에 기레스는 말을 이어 나갔다.
"오늘처럼 몰래라도 만나는 수밖에.."
"어?"
"아무리 티나라고해도 오늘처럼 클로에 너와 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수는 없을 거 아냐? 지금이야 티나를 함락시키기 전까지는 만에 하나라도 걸리면 안되니까 조심해야 겠지만, 이대로 티나를 함락시키지 못해서 수가 틀어져 버리면 어쩔 수 없지. '걸릴 각오로라도' 몰래 만나야지 어쩌겠어. 아, 물론 네가 괜찮다면 말이지만."
"나야.... 괜찮지.."
하일즈에 이어 티나까지 배신한다는 말을 속삭이면서도 클로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클로에는 이렇게 밀회를 해서라도, 아니 그보다 더한 부정인 티나를 함락시켜 떨어뜨려서라도 기레스와 계속 만나는 것이야 말로 정상이 되어 버렸다.
"후.. 그렇단 말이지."
원체 표정이 도드라지게 드러나지는 않는 클로에지만 나름 오랜 시간 클로에의 변화를 보아왔던 기레스는 그녀의 표정이 한결 후련해진 것을 느꼈다.
'뭐야? 그런 걸 고민하고 있었나?'
기레스의 본모습을 아는 소피아와는 다르게 클로에는 기레스의 본모습을 알지 못한다.
때문에 입으로는 밀회니 뭐니 떠들며 둘러대는 기레스가 사실은 얼마나 저열하게 티나를 조교하고 있는지 또 함락을 시킬 수 있을지 긴가민가했던 클로에는 2주라는 시간 동안 '혹시나' 싶은 생각에 홀로 귀여운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까 껴안을 때 느낀건데.."
"어?"
"몸이 굉장히 좋아진 거 같은데.. 어떻게 된거야? 요즘은 내가 없어서 제대로 훈련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클로에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은근히 기레스에게 물었다.
"몸이 좋아졌다고?"
"나와 훈련할 때보다 더 속이 찬 것 같은 느낌이던데.. 잠깐만.."
"읏... 뭐, 뭐야?"
클로에는 방금 기레스가 자신의 옷을 풀어 헤친 것처럼 기레스의 단추를 벗기고는 옷을 걷어 속살을 조물거리기 시작했다. 산뜻하게 만지는 듯 하면서도 쫀득하니 음탕한 게, 기레스의 음심을 은근히 끌어 오르게 만드는 손놀림이었다.
"역시... 나 때보다 좋아졌어. 요즘도 혼자서 훈련을 하고 있는거야?"
"아.. 사실은 말야. 어머니한테 부탁해서 훈련을 도와달라고 하고 있거든."
"어머니? 소피아 씨 말야?"
소피아 개인만을 보고 국가 차원으로 마을에 지원을 해주고 있다는 속사정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명물 중의 명물인 소피아의 재능은 클로에도 익히 알고 있었다.
기레스의 이야기를 들은 클로에는 여자가 봐도 넋을 놓을것만 같이 아름다운 소피아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래. 아무리 내 실력으로 리움 사관학교를 노릴 수 없다고 해도 최소한의 노력은 해둬야 하니까. 근데 아무래도 나 혼자서는 제대로 훈련하기 힘들거 같아서 그동안 네가 도와준 부분을 어머니한테 부탁해서 도와 달라고 부탁해 봤거든. 덕분에 지금은 죽을 맛이란 말이지. 낮에는 훈련하랴, 밤에는 티나를 함락시키랴. 지금도 잠이 너무 와서 세수나 할 겸, 화장실에 온거거든."
어린애처럼 투덜거리는 기레스를 클로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지그시 바라보았다.
"......"
"뭐야?"
"아, 아냐. 슬슬 쉬는 시간이 끝나가니까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자. 수업이 시작하고 나서 둘이 들어가게 되면 아무래도 티나의 의심을 사게 될테니까."
"그렇긴 하지."
"잠깐만...."
클로에는 눈을 감고 집중하고는 기레스에게 손짓으로 신호를 주었다.
"다행히 지금 밖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먼저 나가서 돌아가."
"알았어."
혹시나 누가 나올까 싶어 호다닥 화장실을 나간 기레스를 보면서 클로에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천천히 교실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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