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티나(18)
* * *
"....."
기레스의 사정이 끝나고 티나는 잠시 쾌락의 여운을 만끽했다. 몸 안에 넘실거리던 흥분의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차갑게 식어버린다기보다는 기분 좋게 단잠에 빠지는 것처럼 푸근한 느낌이다. 지금까지의 욕구불만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 티나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핫!'
자신의 미소를 자각한 티나는 살짝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곱상한 얼굴을 일그러 뜨렸다. 필사적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와중에도 어딘지 표정은 크게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내가.. 내가 이런 변태라니...!'
스스로의 치부를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이렇게 잔혹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들이 밀어지면 어쩔 도리가 없다.
자신이 기레스의 냄새에 흥분하는 변태라는 사실은 이미 티나의 안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되어 버렸다.
'어쩔 수 없지..'
순순히 티나는 속으로 그 사실을 인정했다. 눈 가리고 아웅하면서 자신을 속이는 것도 한계가 있지, 여기까지 와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자신의 본심을 속일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이 '쾌락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냄새로 흥분하는 변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티나는 슬쩍 눈을 돌려 기레스를 바라 보았다. 음탕한 구강성교로 사정해 기운이 쪽 빠져 버렸는지 기레스는 자신을 놀릴 생각조차도 잊고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로 같잖게 침대 위에 널부러져 분을 삭히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끈질기게 버텼던 오늘의 대결을 생각해 보면 저 분해하는 감정도 무리는 아니라고 티나는 생각했다.
'병신'
하지만 그건 그거고 기레스를 싫어하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다. 기레스의 냄새에 흥분했다고 해서 기레스가 좋아지거나 하는 형편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뭐 좋아.'
빼도 박도 못할 정도의 증거가 들이밀어지면 인정하는 것도 평소보다 시원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기레스에게 자신이 변태라는 것이 발각되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지금 이 자리, 이 세상에서 자신이 변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인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티나는 곧장 자기자신과 타협하기 시작했다.
'냄새로 흥분한다지만 딱히 기레스의 냄새로만 흥분하는 것도 아닐테니까..'
자신의 성벽이 기레스의 손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티나가 '나중에 하일즈 오빠의 속옷이라도 훔치면 어떨까?' 싶은 치녀나 다름없는 속편한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차피 냄새로 흥분한다는 것을 아는 이상, 필요하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냄새를 취해서 홀로 변태짓을 즐겨 욕정을 해소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보다 더 변태스러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변태스러운 망상이었지만 변태라고 인정하고 넘어가도 좋을만큼 티나에게 이 비밀스러운 변태적 망상은 감미롭기 짝이 없었다.
'일단 지금은... 어쩔 수 없으니까.. 이 병신을 자위 도구로 이용해 버려야지...'
썩은 해골물도 마음 먹기에 따라 꿀맛으로 느껴진다고 능욕도 마음 먹기에 따라 그 느낌은 천양지차로 달라지게 된다.
섹스에 환장에 걸레같이 남자를 따먹고 다니는 여자와 혼전까지 순결을 유지해 온 여자의 섹스 한번의 무게와 느낌이 다르듯, 기레스의 능욕도 한꺼풀 뒤집어 생각해 보면 남녀 사이의 유사 성행위나 다를바 없는 것이다. 상대가 '기레스만 아니었다면',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면', 기본적으로는 기분이 좋은 게 당연한 것이다.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 했던가. 남은 한달 반 동안 기레스의 능욕을 피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이다.
이미 스스로가 변태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겠다, 생전 처음 맛보는 감미로운 쾌락에 눈을 떠버리기도 했겠다. 티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기레스의 능욕을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자위의 도구로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꼴을 보아하니까 오늘처럼 애무하면 금새 싸버릴 테니 섹스할 필요도 없을거고..'
방금 전 기레스의 껍질의 안쪽을 게걸스럽게 애무하던 자신을 떠올리자, 티나의 입에는 어느샌가 군침이 넉넉히 고여 버렸다.
'냄새만 있으면 방금 같은 쾌락을 얻는 건 문제 없으니까..'
딱히 몸을 합치지 않아도 티나가 원하는 쾌락은 전부 얻을 수 있다. 그 쾌락을 얻는 것이 일반적인 남녀 간의 성교보다도 더욱 변태적이라는 게 문제라는 것은 이미 티나의 머릿 속엔 존재하지 않았다.
'역겨워 하는 척 정도만 하면 신나서 비꼬기나 할 바보 하나를 요리하는 것 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기레스는 자신이 이런 변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변태라는 사실은 티나에겐 치부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역으로 돌려서 생각해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기레스의 능욕 앞에서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우위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당해왔던 복수를 하기 위해 시작된 기레스의 능욕이 실은 자신이 즐기기 위한 자위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티나의 마음을 우쭐하게 만들어 실실 미소짓게 만들었다.
"크윽.. 창녀같은 년.."
그런 생각을 하면서 티나가 속으로 즐거워 하고 있는 도중, 기레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티나를 매도했다.
"차, 창녀!?"
"그렇게 변태처럼 빠는 게 창녀가 아니면 뭔데?"
"으읏.."
이미 자신을 변태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기레스로부터 창녀 취급을 받으면서도 의외로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은 티나였지만, 여기서는 기레스의 장단에 맞추어 호들갑을 떨어주는 것이 자신의 변태성을 숨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티나는 수치심이라도 느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 나라고 그렇게 빨고 싶었는 줄 알아! 니가 질질 거리면서 버티지만 않았어도.."
티나는 여기선 은근히 기레스를 띄워 주면서 수치를 느끼며 실언하는 척을 하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했다. 기레스가 실력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티나도 자신의 성벽을 숨기기 위해서는 적당히 가면을 쓰는 쪽이 효율적인 것이다.
"음? 으음.. 그렇단 말이지."
티나의 말을 들은 기레스는 흡족한 표정으로 실실 쪼개며 티나를 위 아래로 훑기 시작했다.
은근히 조루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이라도 받았다는 듯한 만족이 철철 넘치는 표정에 티나는 속으로 같잖다는 듯 기레스를 비웃었다.
'역시 쉬운 녀석이라니까..'
"뭐, 뭔가 착각하고 있나본데.. 나는 능욕을 받고 싶지 않은 입장이니까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어서 무리한 것 뿐이야. 거기에 그렇게 버티려고 안간힘을 써도 결국 얼마 버티지도 못했잖아?"
"그, 그래도 이전보다는..!"
열등감을 잔뜩 머금은, 억울해 죽겠다는 듯한 기레스의 말을 듣고 티나는 속으로 살짝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이전보다는 잘 버틴단 말야.'
지금까지는 노예 취급과 능욕의 심적 부담이 너무 심해서 자각하지 못했지만, 여유를 찾은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최근의 기레스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의 애무에 적응을 해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전에는 진심으로 입을 놀리면 1분도 걸리지 않아 사정 시켰을 자지는 어느새부턴가 음탕하게 빨아 제껴도 호락호락 찍 싸지는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봐야 빠르지만..'
만약 지루같을 정도로 기레스가 잘 버틴다고해도 인정해 줄리 없을진대, 여전히 사정이 빠르다면 생각할 가치도 없다.
"이러니 저러니 변명해봐야 결국 빨리 싼 건 싼거고 조루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잖아? 짐승도 지면 꼬리를 내리는데, 그런 건 끝까지 버티고나 말하지 그래? 이 조루오빠야."
분위기를 탄 티나는 승자의 권리라도 누리는 양, 적나라하게 기레스를 도발하면서 여유롭게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어깨부터 허리까지 하얗게 반들거리는 굴곡어린 뒷태의 매력은 옷을 입는 와중에도 빛이 바래지 않는다.
티나의 도발에 기레스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찍소리도 못하고 입만 우물거리며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척을 했다.
이러니 저러니 변명해가며 티나를 비꼬는 시늉을 해보기는 했지만, 오늘 연기를 객관적으로 직시해 보면 결국 티나의 말마따나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티나의 창녀보다 더 음탕한 입을 버티지 못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쥐어 짜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속으로는 그깟 조루 취급 따위야 안중에도 없고 티나의 변태성을 깨웠다는 사실에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것을 내색할 기레스가 아니다.
"그럼 난 간다~"
그런 기레스의 숨은 속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티나는 기레스의 침통스러운 표정에 몸도 마음도 마냥 상쾌하기만 할 뿐이다.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고 싶다면 결코 벗어서는 안될 족쇄를 풀어버린 까닭일까, 창문 너머 총총 걸음으로 집을 향하는 티나의 모습을 보면 너무도 홀가분해 보인다.
바로 방금 전까지 능욕을 당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발걸음이다.
'귀여운 녀석.'
티나는 티나 나름대로 제대로 자기 자신을 연기했지만, 기레스를 속이기에는 어림도 없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 부모에게 어설픈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더 훤하게 눈에 보이는 것이다.
티나가 자신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기레스를 속이고는 은근히 우쭐해 하는 모습은 그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는 기레스에게는 어린아이가 재롱을 떠는 것보다 귀엽게 느껴지기만 할 뿐이다.
그토록이나 지독하게 자신을 괴롭히고 혐오하며 질색하는 것을 숨기지 않았던 티나가 자신의 더러운 치구를 게걸스럽게 물고 빨면서 쾌락을 갈구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각별해서 소피아나 클로에처럼 호감도를 만들어 놓고 시작한 것과는 또 다른 유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꽤나 빨랐군.'
열심히 노리고 티나의 몸을 희롱하기는 했지만, 사실 기레스는 티나라면 좀 더 번민하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보기에는 고지식하지만 실은 자신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는 타입인 건가?'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볼까?"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머금고 기레스는 다음 조교를 궁리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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