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계네토기-111화 (111/238)

〈 111화 〉 티나(3)

* * *

마을 내에서 티나는 유페르 가문의 영애답게 클로에 못지 않은 재색을 겸비하고 있었다.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칼에 비쳐 보일 정도로 투명한 피부, 소피아를 닮아 빼어난 몸매와 마을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에 이르기까지 티나는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곳 없는 여성으로 성장했다.

클로에가 별다른 노력 없이도 수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훔친 것처럼, 티나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와도 사귈 수 있는 능력과 외모를 갖추고 있었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남자들과 사귀어 본 경험이 없었다.

클로에처럼 연인이 있는 것도 아니요, 매력은 마을의 누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티나지만 그녀에게 고백을 해오는 남성은 이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녀는 마을 내에서도 가장 유명한 철벽녀이기 때문이다.

기레스를 대할 때를 제외하면 매사 감정표현이 크지 않은 클로에와 달리, 티나는 자신의 숨기지 않아도 되는 감정은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성격이었다.

어려서 부터 소피아의 딸답게 인형처럼 예쁜 티나의 매력은 남달랐다. 클로에와 같은 나이였다면 좋은 승부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넘칠듯한 매력에 티나는 어린 시절부터 수를 헤아리지도 못할 정도의 남자아이들에게 고백을 받아왔지만, 언제나 그녀는 그 고백을 무참히 짓밟아 꺾어 버렸다.

클로에가 미안한 기색은 없어도 덤덤히 거절을 하는 타입이라면, 티나는 고백을 해온 남자들의 마음을 일부러 비틀어 벌려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거절을 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렇다고 티나가 남성들을 따로 혐오한다거나 꺼려하는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단 한가지, 연인의 사이가 되기 위한 고백을 받는 것만 아니라면 그녀는 성별에 관계 없이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녀와 친한, 그리고 더 친밀한 관계가 되고 싶은 남성들은 섵불리 그녀에게 고백을 할 수가 없었다. 어쭙잖게 고백을 하게 되었다가 거절을 당하게 되면 그 뒤로 티나는 그 사람을 친구는커녕 인간취급도 해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수년 후, 모아서 쌓아 올리면 작은 산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티나에게 연심을 품은 남성들은 넘쳐 흘렀음에도 그녀에게 고백을 해오는 남성은 단 한사람도 없게 되어 버렸다.

티나가 그토록이나 남성의 고백을 극렬하게 거절하는 철벽녀인 이유는 그녀의 오빠인 하일즈 때문이다. 너무나도 완벽한 오빠를 둬서 눈이 높아진 까닭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아쉽게도 그녀가 남성들을 거절하는 이유는 눈이 높아서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친오빠인 하일즈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세계 사람들은 대부분 미남 미녀라곤 하지만, 어차피 미적 기준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잘생긴 사람 안에서도 더 잘생긴 사람은 존재하는 법이며, 그 안에서도 우열은 나뉘기 마련이다. 이세계의 여인들 대부분이 아름답다 해도 모두가 소피아나 클로에만큼 아름다운 것은 아니며, 그것은 남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자 측에 클로에가 있다면 남자 측에는 하일즈가 있다 해도 좋을 정도로 하일즈의 외모와 몸은 누가봐도 조각같이 아름답고 멋진대다 하필 그의 친동생인 티나에게는 개인적으로도 더더욱 이상적인 취향 그 자체나 다름없어서, 철이 들 무렵 즈음, 해서는 안되는 금단의 사랑은 이미 은밀하게 티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마음 안에 품고 있는 이상의 남자를 그대로 뽑아 구현시켜 놓은 것만 같은 연모하는 사람이 자신의 오빠라는 사실은 여동생인 티나에게는 저주나 다를 바 없는 현실이었다. 특히나 사랑하는 남자에게 혼인을 약속한 여인이 존재한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오빠가 벌써 결혼을 하게 되다니..'

소피아에게 부탁 받은 심부름을 하러 가는 길. 티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오빠를 사랑한다는 게 금기만 아니었다면 기레스를 그토록이나 잔혹하게 괴롭힌 티나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녀의 사랑은 어떤 의미로는 순수하다 할 수 있었다.

티나는 자신이 하일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 사랑이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하일즈를 사랑하는 감정을 끊을 생각은 없었지만, 딱히 하일즈와 맺어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맺어질 수 있다면 자신이 맺어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면 너무나도 사랑하는 자신의 오빠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여동생인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녀의 사랑은 맹목적이며 순종적이었다.

'그래도 클로에 언니라면..'

어린 시절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하일즈를 따라 자주 클로에와 놀았던 티나는 하일즈가 클로에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하일즈를 향한 연심을 확실히 자각을 하기도 전의 흐르기 쉬운 어릴 적, 티나는 미래에 연적이 될 클로에에게 질투심이라는 마음을 품기도 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클로에를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감정표현이 서툰 클로에지만 그 무심해 보이는 표정 뒤에 언제나 아직 어린 자신을 돌보아 주었던 세심한 노력을 티나는 진심으로 좋아했다.

마음도 마음이지만 능력이나 외모도 클로에가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도 티나에게는 호감포인트여서, 티나는 내심 다른 어중간한 여자들은 몰라도 클로에라면 마음 놓고 자신의 사랑하는 오빠를 맡길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때문에 언제나 하일즈를 따라 찰싹 달라붙어 클로에와 함께 놀았던 티나는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 하일즈의 사랑이 무르익어가기 시작할 즈음, 슬쩍 소꿉장난을 졸업하는 아이마냥 은근스레 두 사람의 시간을 위해 스스로 자리를 비워 주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찾아가는 창고도 클로에 언니와 함께 만들었었지.'

지금와 생각해 보면 즐거운 추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제 자신의 오빠와 그런 추억을 만들어 나가지 못할 것이 머릿속에 떠오른 그녀는 살짝 울상지은 얼굴이 되었다.

클로에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하일즈를 사랑하는 것은 한 때의 미혹이나 장난이 아니다.

하일즈를 사랑하는 마음은 클로에를 좋아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무거운 것이다. 머리로는 몇번이고 납득하고 각오도 다졌어도, 역시나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을 한다는 현실은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티나는 힘없이 너털걸음으로 마을 외곽을 빠져 나와 젤가와 함께 만들었던 오두막 집으로 향했다.

"어?"

아직 해가 완연히 지지는 않은 노을빛이 곱게 깔려 있는 시간대였지만, 눈이 밝은 티나는 오두막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놓치지 않았다.

"뭐지? 설마.. 도둑인가..?"

젤가와 함께 만든 나무집은 집이랍시고 여러 가구들을 넣어두기는 했지만, 유페르 가문의 창고처럼 쓰이는 곳이었는지라 그녀는 기척을 죽이곤 조심스레 발걸음을 놀려 집으로 향했다.

"..아... ... .하으...."

멀리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티나의 발걸음 소리는 더욱 더 신중해 졌다. 집을 향해 한걸음 접근할 때마다 끊어질 듯한 신음소리는 더욱 선명히 그녀의 귀에 멤돌기 시작했다.

"!!!!?"

티나는 순간 자신의 눈이 받아들인 정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젤가와 하일즈와 클로에 그리고 자신이 함께 만든 '추억의 장소'에 있어서는 안될 두 남녀가 알몸이 되어 살을 뒤섞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서로 뒤엉켜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클로에는 거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고, 기레스만이 꼴사납게 필사적으로 자신의 허리를 낑낑거리면서 여자가 봐도 반해버릴 것 같은 클로에의 아름다운 나신을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의 제일가는 재녀인 클로에와 마을의 제일가는 쓰레기인 기레스가 몸을 섞고 있다는 사실은 티나의 상식에서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녀는 화내는 것조차 잊고 멍하니 그 일방적인 교미를 지켜보았다. 기레스가 허리를 찔러 넣으면 클로에의 몸은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삐걱이며 미약한 반응을 보인다.

있어서는 안될 두 남녀의 치태에 티나는 눈이 저리고 온 몸은 부글부글거리면서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세상 누구보다도 하일즈를 사랑했기에 그의 행복을 바라면서 자신을 희생하고 참아왔던 울분과 분노는 전신의 피를 바짝바짝 말려버릴 정도로 격렬하게 마음 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아... 하아.."

쾌감때문인지 고통때문인지 알기 힘든 클로에의 신음소리에 티나는 분노를 더 참지 못하고 문을 열어제꼈다.

[덜컥]

"클로에 언니... 기레스!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티나에게 기레스라는 존재는 가문의 오점이자, 내쫓아 버리고 싶은 흉물 그 자체였다. 물론 처음부터 티나가 기레스를 그렇게 혐오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기레스에겐 그래도 좋다고, '그렇게 대하는 게 좋다'고 배워왔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사랑마저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되돌려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것을 미워하는 것에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티나는 하일즈가 기레스를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일즈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녀는 기레스를 열심히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녀가 더욱 독하고 더욱 잔혹하게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하일즈는 너무도 즐거워 했고, 그에 티나는 점점 더 기레스를 괴롭히는 것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티나는 하일즈를 사랑하는 자신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기레스를 괴롭히는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것쯤은 어린 나이에도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어렸던 그녀는 그 잘못된 행동을 잘못된 행동이라고 인정하기 싫었고, 기레스라는 존재는 자신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기 위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기레스를 싫어해야만 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쌓아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녀의 안에서 기레스라는 인간은 구제할 수 없는 역겨운 짐승 이하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런 오물이 하일즈의 아내가 될, 티끌 한점 없이 깨끗해야 할 클로에를 더럽히고 있었던 것이다.

"티... 티나!"

클로에는 당황해하며 이불로 자신의 몸을 황급히 가리면서 티나를 불렀다.

'내가 이런 실수를!!'

클로에는 기레스와 살을 섞을 때면 언제나 주변의 기척을 살피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소피아를 감지해 내지는 못했지만, 클로에가 작정하고 집중하면 소피아를 제외한 마을의 누구든 그녀의 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기레스가 선사해 주는 미칠 듯한 쾌감에 도저히 이성을 유지할 수가 없어 티나가 문을 여는 그 순간까지도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설마 기레스가 일부러 자신을 자지러지게 만들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클로에는 스스로의 미숙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티나는 아무 말 없이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클로에를 노려 보았다.

"어떻게... 언니가 이럴 수가 있어!"

티나는 하일즈와 클로에를 위해 사랑을 억눌러 가면서까지 클로에에게 양보했는데, 그 마음을 배신한 클로에가 그렇게 가증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기레스와 클로에의 신체능력의 차이는 갓난아이와 성인보다 더할 정도라는 것을 티나는 잘 알고 있었다. 티나의 눈에는 기레스 혼자 일방적으로 낑낑 거린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결국 암묵적으로 기레스의 섹스에 클로에가 동조를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티나의 말에 클로에는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게 죄스러웠으면 이런 행위를 하지를 말았어야지!'

분노로 머리 끝까지 열이 오른 티나는 클로에의 고개를 떨군 모습에 불쌍해하기는커녕 이를 갈면서 분개했다. 하지만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죄책감으로 고개를 떨군 듯 보인 클로에의 본심은 티나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어떡해...'

그 순간조차도 클로에는 죄책감보다 이제 앞으로 기레스와 만나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구만.."

기레스는 클로에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나지막이 자조하는 듯한 혼잣말을 중얼 거렸다.

'기레스..?'

기레스는 티나가 눈치챌 수 없게 은밀히 이불 안에서 살포시 클로에의 보드라운 허벅지를 쓸어 내렸다.

한마디의 말도 없고, 눈빛의 교환조차 없는 은밀한 장난처럼 느껴지는 애무였지만 그 행위는 마치 안심하라는 듯 너무나도 상냥해서 티나가 눈앞에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불 안 클로에의 음부에서는 주책없이 애액이 줄줄 새어나왔다.

"젠장~ 설마 여기서 걸려버릴 줄이야.."

기레스는 비열한 웃음을 흘리면서 티나가 보란듯이 이야기해 나가기 시작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