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티나(2)
* * *
리움사관학교의 시험에 열을 올리는 건 하일즈와 클로에도 마을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기본적인 실력도 실력이지만, 거기에 순위까지 더해지면 더더욱 그들의 합격은 반석이나 다름 없었음에도 하일즈와 클로에는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내심 하일즈는 그렇게까지 수련에 열을 올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명분을 내세워 최선을 다하자는 클로에의 말을 듣고 있을 뿐이다.
'어차피 합격은 정해져 있는데, 클로에는 왜 저렇게까지 노력을 하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하일즈는 이 고지식한 노력이 클로에답기는 답다고 생각했다.
"하아!"
클로에의 늘씬한 어깨가 그대로 복부를 쳐 하일즈의 자세를 무너트린다. 그대로 클로에는 목에 목검을 겨누며 하일즈를 제압했다.
시험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의 차이 때문인지 최근들어 하일즈는 클로에의 실력을 따라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전에는 클로에에게 밀리기는해도 내용적으로는 선방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간의 실력은 종이 한장의 차이였지만, 요즘은 하일즈도 제 딴에는 꽤나 노력하는데도 실력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져 갔다.
"후우.. 졌어 클로에."
'쳇.'
자존심이 세기로는 마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하일즈지만, 그가 기분이 나쁜 이유는 비단 수련에서의 거듭된 패배 때문만은 아니었다.
"후우.. 수고했어 하일즈."
"저기 클로에. 이번 주의 훈련은 오늘로 마지막이잖아? 오늘 한번 어때?"
격렬한 움직임 때문인지, 음욕 때문인지 모를 홍조를 띄며 그는 넌지시 조심스럽게 클로에에게 권유했다.
"하일즈.. 애무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잖아. 시험때까지는 조금만 자제하자고 했잖아."
"하지만 그래도 벌써 일주일째인데.."
하일즈의 말에 클로에는 살짝 짜증이 섞인 말투로 쏘아붙힌다.
"시험때까지 애무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걸 참지 못하는 거야?"
얼마 전 클로에는 손가락을 교묘히 놀리면서 하일즈에게 '시험날까지는 애무를 적당히 줄이고 수험에 집중하자'고 하일즈에게 어필했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고, 결혼을 약속받은 이후 하일즈는 클로에의 말이라면 껌벅 죽는 게 일상이 되었는지라, 이성을 증발시켜버리는 클로에의 여린 손길에 취한 하일즈는 그만 그녀의 그 말을 받아 들였던 것이다.
벌써 클로에의 손길을 맛보지 못한지도 일주일 째, 하일즈의 발정은 극에 달해 있었다. 클로에와의 실력 차이가 벌어지는 것도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지만, 그런 씁쓸한 현실조차도 클로에의 애무를 받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따위로 치부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욕정에 미쳐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시험이고 뭐고 다 때려 치우고 당장에라도 클로에를 겁탈하고 싶었지만,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고삐를 쥔 쪽은 클로에였다.
"하일즈는 시험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단 말야. 그러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나와 같이 리움사관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거야?"
클로에는 마치 하일즈의 애무를 줄이고자 한 이유가 같이 리움사관학교에 가고 싶어서라는 듯 포장해 말했다.
"가고 싶고, 중요하다고도 생각하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금욕적일 필요는 없잖아?"
"그런 것 치고는 이렇게 참아가면서 대련하고 있는데도 요즘 하일즈는 그다지 변한 게 없는 것 같단 말이지. 대련을 해봐도 예전만큼 날카롭지도 않고.."
클로에는 실망한 듯 냉랭하게 시선을 내리 깔면서 말했다. 그 말에 하일즈는 상대가 클로에 너여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거기까지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그것을 말한다는 건 같은 시간을 노력해도 차이가 벌어진다는 현실, 즉 클로에와의 재능의 격차를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실이 그렇고 클로에를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본인의 입으로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하일즈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도 눈에 불을 켜고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잖아?"
한결 누그러진 어조로 클로에는 다독이듯이 하일즈를 설득해 나갔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벌써 일주일이고.."
하일즈는 부모에게 거역할 수 없는 어린아이가 시무룩해진 상태로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말끝을 흐리며 끈질기게 달라 붙었다.
"하아.. 알았어."
클로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보란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정말?"
그 클로에의 허락에 하일즈의 얼굴은 마치 거액의 돈을 적선받은 거지처럼 비굴한 화색의 빛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오늘은 안돼. 다음 주 쯤 적당히 느긋하게 빌 때 날을 잡도록 하자."
'쳇.. 오늘 받고 싶었지만 그래도 약조를 받은 게 어디냐.. 정말 다행이야..'
클로에는 안한다고 딱 잘라 떼면 뗐지 허언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일즈는 잘 알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 째 하일즈의 사타구니는 클로에의 야들야들한 손길을 받고 싶어 상상만으로도 폭발할 것 같을 정도였지만, 이미 몇차례나 조급해 하다가 큰 코를 다친 적이 많은 하일즈는 여기서 더 강하게 클로에에게 주장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클로에가 얼마나 애무를 줄일 것인지는 몰라도 괜히 들쑤셨다가 그게 한달이고 두달이 될지도 모른다 상상하면 머리가 아득해져 버리는 것이다.
"알았어."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연인이라면 당연히 해도 좋을 애무였음에도 하일즈는 자신도 모르게 애무를 허락해 준 클로에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느끼고 있었다. 시험 때문이랍시고 지금까지 애무를 줄였던 것에 대한 불만은 곧 찾아올 클로에의 매혹적인 손길에 대한 열망으로 깨끗히 씻겨져 버렸다.
"그럼.. 오늘도 수고했어."
룰루랄라 좋아라 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껑충껑충 집으로 돌아가는 하일즈의 모습을 보는 클로에는 입가에는 요염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미안 하일즈.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어. 기레스가 시험을 이유로 섹스해주지 않으니까..'
기레스의 체력은 유한하다. 성행위를 밤새도록 즐긴 이후에 수련해도 체력적으로 끄떡없는 클로에에 비해 연거푸 한 두번 사정을 하게 되면 반쯤 탈진 상태가 되어 버리는 기레스는 클로에에게 시험날이 다가올 때까지는 성관계를 줄여오자고 부탁해 온 것이다.
'클로에 너와 리움 사관학교에 가고 싶으니까! 지금은 좀 더 노력하고 싶어!' 라는 오글거리는 말을 눈도 깜박 안하고 내뱉는 기레스의 모습에 이미 콩깍지가 씌일대로 씌여버린 클로에는 절로 가슴을 콩닥거리면서 뒷감당은 생각도 않고 그의 말을 승낙해 버렸다.
'으...'
그리고는 벌써 2주라는 시간이 흘러 클로에의 몸은 발정으로 근질거리고 있었다. 얼마나 발정 났는지 클로에는 마음 같아서는 스스로 기레스를 붙잡아 범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몸이 달아 올라 있었다.
참다참다 못한 클로에는 섹스가 안된다면 이전처럼 애무라도 해달라고 부끄러움을 참고 권해 보았지만 기레스는 클로에와 애무를 하게 되면 분명 섹스를 참지 못할 것이라며 일축해 클로에를 피했다.
기레스가 그런 쪽으로는 자신 이상으로 대쪽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다 돌려서 생각하면 그만큼 기레스는 자신을 매력적이라 생각하는 말이었기에 클로에는 결국 반박하나 하지 못하고 포기해 한사코 기레스가 자신을 불러주기를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참으며 기레스를 기다려 나가던 일주일 전, 하일즈의 간절한 바람에 한번 애무행위를 허락한 그녀의 몸은 불에 기름을 끼얹어 버린 것처럼 음열로 들끓어 버렸다.
기레스와 섹스를 즐길 수 있다면 하일즈의 역겨운 애무는 조미료라도 될 수 있지만, 없다면 하일즈의 애무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진다는 것을 그녀는 기레스의 섹스가 없을 때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없기만 하면 다행이지. 하일즈와 애무를 하게 되면 아무 잘못이 없는 하일즈가 괜시리 미워질 정도로 마음이 차갑게 식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주일 전, 발정이 날대로 나버린 클로에는 하일즈의 마음을 살살 호려가면서 기레스가 자신에게 말한 리움사관학교의 시험 날까지 애무를 줄이고 좀 더 노력하자는 말을 그대로 전해 기어코 하일즈에게서 승낙을 받아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2주라는 인고의 시간이 지난 오늘 기레스는 오랜만에 정사를 하기 위해 클로에를 불러들였다. 만약 오늘 기레스와의 약속이 없었다면 클로에의 입에서 하일즈와의 애무의 승낙이 나올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하아.. 하아.. 기레스.'
연인인 하일즈가 클로에의 허락에 뛸듯이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갈 때, 클로에는 아랫도리는 곧 기레스를 만난다는 기대로 바지에 얼룩이 질 정도로 축축히 젖어들고 있었다.
"티나!"
소피아의 부름에 티나는 총총걸음으로 내려와 그 부름을 받았다.
"네 엄마. 무슨 일이에요?"
긴 금발을 아래로 묶어 늘어트리고 앞치마를 두른 소피아는 싱긋 웃으면서 티나를 맞았다.
"심부름 좀 해줄래?"
"심부름? 뭔데요?"
"그 예전에 아빠와 네가 같이 만들었던 집 기억나니?"
클로에와 몇번이고 자신들이 만들었던 그 집을 애용했던 하일즈와 달리 티나는 몇년 간 그 집에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젤가와 자신의 오빠인 하일즈와 함께 했던 좋았던 추억만은 그녀의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그런데 그게 왜요?"
"다른 건 아니고, 물건 하나를 가져와 줬으면 해서 말야.."
소피아는 요염한 미소를 머금고 자신의 친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순간 넋을 잃어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장미를 연상시키는 미소였지만 그 미소의 심처에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아름다운 장미꽃의 가시 같은 진득한 요망함이 서려 있었다.
"아흑.. 하아. 아아.. 기레스!"
2주일 만에 맛보는 기레스와의 섹스는 너무나도 각별했다. 클로에는 팔과 다리로 기레스의 온 몸을 끌어 안아 엉덩이를 들썩이며 기레스의 육봉을 맛보고 있었다. 멋대로 기레스와의 섹스를 기대하면서 한껏 민감해진 몸은 기레스의 육봉이 오갈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쾌감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머리를 땅땅 울리는 쾌감에 클로에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2주라는 시간을 들여 성욕을 한없이 증폭시킨 클로에의 몸은 쑤시면 쑤시는대로 전신에 쾌감의 매를 맞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 너무 좋아."
"그간 참아와서 감도가 좋아진 거 아냐?"
"그.. 그런거야?"
섹스라고는 기레스 한명밖에 해보지 않은 클로에는 기레스가 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백치처럼 무지했다. 이미 창부 저리 가라할 정도로 남자의 몸을 후리는 기술을 익혔으면서도 순수하기 짝이 없는 그 반응에 기레스는 클로에의 쫄깃한 보지에 허리를 쭉 찔러 넣었다.
"아으.. 하.. 앗, 하으응.."
전에 없던 기레스의 격렬한 섹스에 클로에의 안에 혹처럼 응어리져 있었던 욕구불만의 덩어리는 기레스가 주는 쾌락에 의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꿀렁거리고 있었다. 클로에가 기레스에게 절정을 느낀 것은 오늘 내일의 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욕구불만을 증폭시키고 이렇게 집요할 정도로 성감대만을 골라 몸을 희롱당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히이이...!"
한번의 쑤심에 클로에는 몸을 꼬아 들썩 거리며 반응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쾌감이 파도처럼 몰려온 클로에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사방팔방에서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휘몰아치는 쾌감의 소용돌이에 그녀의 의식은 술에 인사불성이 된 것처럼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보통의 섹스였다면 기레스의 부드러운 움직임에 맞추어 클로에도 허리를 흔들며 같이 즐겼겠지만, 지금의 클로에에게 그럴 여력은 없었다.
덕분에 기레스는 단 한번의 사정도 없이 클로에의 몸 전신을 어루만지면서 벌써 수십 번의 절정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입이면 입 목이면 목, 가슴이면 가슴, 허리면 허리, 마치 전신이 성기가 되어 버린 것처럼 기레스의 손길이 닿으면 아찔한 절정감이 그녀의 뇌리를 휘저어 버린다.
"하읏.. 아아.."
얼마나 절정을 느꼈을까.. 그 총명한 머리로도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지독하게 절정을 맛보았음에도 아직 기레스의 절정은 끝나지 않았다.
한번의 움직임에 한번씩 정신을 날려버리는 절정 한번. 소피아였다면 기레스와 느긋하게 음탕한 말과 신음을 주고 받으면서 즐길 수 있는 절정이었겠지만, 태어나서 이렇게 단기간에 수십번의 절정 세례를 맛보는 것은 처음인 클로에는 그저 기레스가 가져다 주는 절정에 하염없이 자신의 의식을 홀라당 맡겨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는 쉬지 않고 연이어 폭발하는 이 절정이 너무나도 기분이 좋다는 것 단 한가지 뿐이었다.
"....아... 하아.."
[덜컥]
분노와 다급함이 섞인 문소리가 들려온다. 평소라면 문소리는커녕 집에 접근하기도 전에 반응했어야 정상인 클로에는 문소리가 들리고 나서도 아주 잠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뒤늦게 고개를 돌린 문앞에는 단풍잎처럼 붉은 머리칼을 날리며 분노에 찬 시선으로 이를 갈면서 기레스와 자신의 치태를 노려보는 티나의 모습이 보인다.
"클로에 언니... 기레스!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