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 클로에(41)
* * *
"일단 들어갈까?"
기레스의 권유에 클로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교실 안에 가득히 퍼져 있는 낯익은 온기에 클로에는 혼란했던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 추운 날에 밖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냐?"
"뭐? 뭐라니!?"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기레스의 직설적인 질문에 클로에는 화들짝 놀라며 대꾸했다. 제정신을 차리고 스스로의 행동을 돌이켜 보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스스로의 가슴을 애무했던 자신의 치태는 누가봐도 변태 그 자체였다.
"하아.. 다 본 거냐."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하는 클로에의 앞에서 기레스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는 손으로 눈을 가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저러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것은 자신임에도 기레스가 몰려 있는 기묘한 상황을 클로에는 이해할 수가 없어 의아해 했다.
"기레스?"
"그 태도를 보아하니 내 꼴사나운 모습을 다 본 모양인데.. 교실까지 왔으면 그냥 들어올 것이지. 왜..."
'아아..'
그제서야 클로에는 기레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 허공에서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주물거리는 그 연습은 변태 같기만 한 우스꽝스러운 기행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정작 클로에 본인은 기레스가 홀로 연습을 하는 행위에 흠뻑 취해서 기레스에게 직접 듣기 직전까지는 기레스의 행위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기는커녕 예술적이라고 찬미하고 있었지만 기레스는 짐짓 그것을 모른 척 하며 쑥스러운 척 투덜거렸다.
"내가 바보였지. 이곳에서 연습하는 게 아니었어."
그렇게 자신의 바보같은 짓을 후회하는 척 하며 그는 살짝 클로에를 의심스레 쳐다보았다.
"기껏 교실까지 왔다면 그냥 들어오면 좋았을 텐데.. 들어오지 않은 건.. 나를 바보 취급 하고 싶었던 거냐?"
"아 아냐!"
그런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았기에 클로에는 답지않게 다급히 손을 내저으며 항변했다.
"그럼 뭣 때문에 교실에 들어오지도 않고 몰래 밖에서 내 연습을 본 거야?"
기레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오해를 할 법한 상황이기는 했다. 클로에가 교실의 앞까지 몰래 와서는 들어오지도 않고 기레스의 기행을 몰래 훔쳐 본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클로에가 생각하고 있는 기레스는 그녀의 숨겨진 치태를 모른다. 기레스를 보면서 클로에가 자위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리가 없다면, 달리 밖에서 자신의 치태를 보고만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기레스가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어쩌지.'
'밖에서 기레스를 보면서 자위하고 있었다'라고는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도 이야기 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숨어 있었던 사실에 대한 마땅한 변명이 있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클로에는 눈을 질끈 감으며 각오를 굳혔다.
"사 사실은.."
한참을 망설여 생긴 긴 정적 속에서 클로에는 입을 열었다.
"나도 곧 안으로 들어가려고는 했는데.. 저번에 그 일 때문에.."
"그 일이라니?"
기레스는 눈치없이 클로에의 말을 되물었다.
"그... 젖었던 일 말야!"
클로에는 귀까지 빨개진 얼굴로 기레스에게 소리쳤다.
"아아.. 그게 왜?"
기레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부끄러워서 들어오지 못했던 거라고.."
클로에는 입을 삐죽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본래라면 기레스라고 해도 쉽게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지만, 기레스가 먼저 '창피함'을 당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같은 창피함이라도, 혼자만 창피한 것과 같이 창피한 것은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일방적으로 자신만이 부끄러움을 느낀 게 아니라, 기레스도 교실 안에서 기행을 보여 '함께' 창피하다는 사실은 클로에의 한껏 날이 선 심리를 느슨히 풀어지게 만들었다.
"그렇구만.. 요 며칠 간 왜 나오지 않는 건가 싶었더니만.."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거잖아."
남들에게는 말도 못할 은밀한 흑역사를 공유했기 때문일까?툴툴 거리는 어투에는 방금 전과는 다른 안정감과 친근감이 느껴진다.
"여자의 마음 같은 건 잘 몰라서 말야.."
기레스는 능청을 떨면서 어깨를 들썩 거렸다.
"거기에 그딴 일로 창피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거든."
"그딴이라니.. 그것보다 창피한 일이 또 뭐가 있어?"
누구보다 고고했던 클로에에게 기레스의 앞에서 음부가 흠뻑 젖었던 일은 무엇보다도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성숙해진 아이가 이불에 오줌을 지려 지도를 그린 일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것이다.
"아니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야. 확실히 그건 창피한 일이기는 하지만, 새삼스러운 일이잖아?"
"새삼스럽다니 뭐가?"
기레스는 살짝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버리는 것을 한번 두번 본 것도 아니잖아?"
'그럴 리가.. 내가 가버린 것은 그때 외에는 없었을 텐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절정을 느낀 적이 있었나 싶은 생각에 클로에는 덜컥 불안감을 느꼈다.
"거 왜.. 연습이긴 했지만, 너도 항상 내 사정을 보고 있었잖냐."
기레스는 눈을 내리 깔고 멋쩍은 듯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아.. 그 이야기구나.'
기레스를 애무하는 것에 즐거움마저 느낄 정도로 흠뻑 빠져 있었던 클로에는 기레스의 사정이 이상하다고는 거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남성의 사정행위를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와 말하는 거지만 나도 조금 부끄럽기는 했으니까 네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긴 한데.."
클로에의 몸과 입에 마음껏 사정하며 즐겼던 주제에 기레스는 입에 기름칠이라도 한 것처럼 술술, 클로에가 듣기 좋은 거짓말을 늘여나갔다.
"나도 몇 번이고 사정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네가 고작해야 그런 것에 부끄럽다고 생각할 줄은 몰랐거든. 애시당초에 하일즈에게도 젖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고도 했고..."
'으....'
차마 생전 처음으로 조수에 흠뻑 젖었던 것이었다고는 말을 할 수는 없었던 클로에는 예쁜 눈동자를 굴리면서 하일즈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을 해나갔다.
"네게 보여준 건 처음이었으니까..."
분명 클로에의 말은 거짓말은 아니었다. 기레스에게 보여준 것이 처음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런 치태를 누군가에게 보여준 것 자체가 생전 처음이지만 클로에에게 그런 불편한 진실을 기레스에게 알려주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런가.. 하긴 연인도 아닌 친구한테 그런 걸 보여주는 건 부담이 될 수밖에 없겠지."
'으읏..'
"그런 거야."
그래도 적당히 잘 수습했다 싶어 클로에는 속으로 만족스러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의 연습은 조금 힘들겠구만."
"뭐?"
"안마의 연습이라면 몰라도 말이지. 몸을 애무하는 행위에는 클로에 너도 이렇게 구교실에도 며칠이나 나오지 못할 정도로 부담을 느꼈다는 것 아냐?"
'기레스의 애무행위가 여기서 끝이라고..?'
순간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자 클로에는 표정관리도 하지 못하고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방금전까지 기레스의 손기술에 의해 온몸을 펄떡거리고 있었던 클로에다. 이제와서 기레스의 일방적인 연습의 파기가 달갑게 여겨질 리가 없는 것이다.
기레스에게 개발된 몸은 이성에게 항의라도 하는 것처럼 불만스럽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몸 뿐 아니라, 클로에의 이성조차도 기레스의 애무가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았다.
이미 기레스의 시선 밖에서 음탕하게 자신의 몸을 자위하며 더욱 깊은 쾌락을 스스로 맛 본 클로에는 기레스와의 연습을 딱 잘라 끊어낼 수가 없었다.
여기서 기레스의 말을 승낙한다면, 더는 애무의 연습을 할 명분을 얻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자 그녀의 몸은 오슬오슬 떨리기 시작했다.
"그럼 너는 어쩌고? 아까도 허공에 대고 그렇게 연습을 하고 있었으면서. 미래를 위해서 연습하고 싶은 것 아니었어?"
클로에는 기레스의 애무를 자신이 나서서 변명해 주는 것같이 기레스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처음으로 사귄 친구와 절교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널 구교사에서는 못 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
이미 정보통인 소피아를 통해 클로에가 자신을 관음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기레스는 쓸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이야기 했다.
'기레스가 그런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나도 그랬으니까..'
애초에 클로에도 같은 이유로 고민을 하며 구교사를 찾아왔기에, 클로에는 마지막 기말고사를 고작해야 3일 앞두고 있는 지금 기레스가 저런 불안을 느꼈던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클로에를 구교사에서 만나지 못했다면 자연스럽게 방학에도 볼 일이 없었을 것이고, 더 나아가 다음 학기에도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비밀스러운 관계라는 것은 그만큼 찢어지기도 쉬운 법이다.
물론 설사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기레스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뒤에서 열심히 공작을 해댔겠지만, 그런 기레스의 본성을 알 리 없는 클로에는 이렇게 기레스에게 '들킬 수 있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기레스와 이 비밀스러운 연습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인연이 끊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마음 속 깊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야. 내가 부담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연습을 해야 되지 않을까?"
클로에는 담담한 어조로 시원스레 기레스에게 말했다.
"뭐?"
"기레스 너는 내가 하일즈와 잘 되었으면 좋은거지?"
그녀는 기레스를 설득하기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자신의 연인의 이름을 입에 대고 있었다.
"그야 그렇지."
"이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하일즈의 애무로는 아직 조금밖에 젖지 않았었어."
그마저도 하일즈가 아니라 기레스의 안마로 인해 젖었던 것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거짓말의 사례를 진실처럼 포장해 가면서 그 사실을 이용해 나갔다.
"만약에 나중에 그렇게 젖게 되었을 때, 하일즈에게 비슷한 수치심을 느껴서 지금처럼 꺼려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이미 그런 자신의 치태를 술술 내뱉고 있다는 것 자체가 수치심을 이제 거의 느끼고 있지 않는다는 반증임에도 그녀는 기레스의 애무를 놓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해나갔다.
어디까지나 기레스의 애무를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일즈를 위한 것이라며 클로에는 자신의 거짓말에 빠져 스스로를 교묘히 속여 넘긴다.
"그리고 아직 내가 모르는 여러 애무의 종류도 있을테니까. 그런 것에 일일히 수치스러워 하면 하일즈도 싫어하지 않을까? 남자로서는 어떻게 생각해?"
마치 여성인 자신은 남자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처럼 클로에는 기레스에게 답을 요구해 온다.
"음.. 역시 수치심보다는 좋아하는 게 좋으려나."
클로에 정도로 매력있는 여성이라면 부끄러움에 못이겨 화를 내거나, 마냥 수줍어 하거나, 기뻐하는 모든 표현 하나하나가 즐겁지 않을 리 없었지만, 여기서는 클로에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 유일한 정답이라는 것을 기레스는 잘 알고 있었다.
또 어쭙잖게 창피를 주어 다 잡은 고기를 놓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란 여자는 젖은 것도 오.. 오줌으로 착각하는 그런 상식없는 여자니까.."
음부가 젖은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겨서 구교사에 들어오지도 못했던 여자의 발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말을 클로에는 입에 담았다.
"조금만 더 나를 도와 연습을 도와주지 않을래?"
그렇게 클로에는 일그러진 용기를 내어 더욱 더 깊은 쾌락의 늪을 향해 스스로 한걸음을 내딛어 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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