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클로에(31)
* * *
"다녀왔어."
"아.. 언니 어서 와."
클로에가 집으로 돌아오자 그녀의 동생 니나는 발발거리며 뛰어 내려와 환하게 그녀를 맞이해 주었다. 현관문 앞에서 니나는 클로에의 얼굴을 빤하게 올려다 보았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으응."
니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말했다.
"언니가 즐거워 하는 것 같아 보여서."
클로에는 가는 손으로 자신의 부드러운 뺨을 살짝 만지고는 거울을 바라 보았다.
"평상시의 모습이잖아?"
그 말에 니나는 방방 뛰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냐! 언니는 항상 입이 이랬단 말야."
니나는 자신의 두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내려 보이는 시늉을 했다. 클로에는 딱히 집이라고 밝거나 하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밖에서 잘 웃지 않고 냉정한 모습을 보이는 만큼, 집에서도 그녀는 그다지 쉽게 미소를 띄우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니나의 말을 듣고 다시 클로에는 거울을 바라 보았다. 거울 안의 자신은 미세하지만 확실히 가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즐거웠었나?'
욕실에 들어온 클로에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에이.. 단순히 기레스의 안마가 상쾌해서 그런 거겠지."
제대로 이유를 숙지하고 있음에도, 클로에는 그 이유에 대한 의문만은 품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씻기 위해 자신의 옷을 하나 하나 벗어나가기 시작했다. 상의부터 시작해 하의에 속옷까지.. 나신이 되기 위한 작업을 척척 진행해 나간다.
'어라?'
마지막으로 순백의 팬티를 벗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무슨 얼룩이지?'
이세계에는 성교육이라는 게 없다. 물론 성교육이 없다고 해도 알 사람들은 성행위에 대해 대부분 알음알음 하고 살아가지만, '모르는 사람'은 섹스를 하기 직전까지 성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경우도 정보를 얻는 것이 한정적인 이세계에선 흔한 일이었다.
섹스는커녕 스스로 자위다운 자위도 해본 경험이 없는 클로에는 그 얼룩의 정체가 자신의 애액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
'땀이라도 흘렸던 걸까? 기레스한테 미안하네..'
그녀는 그런 상태로 기레스를 깔고 앉았던 것을 생각하며 얼굴을 붉히며 미안해 했다.
'다음에는 조금 신경써야 겠어.'
그렇게 자연스레 그녀는 '다음' 연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크 클로에.."
"응..."
하일즈의 둔탁한 손놀림에도 클로에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뱀처럼 요사스러운 손을 요리조리 놀려 나갔다. 그녀의 가녀린 손은 보는 것만으로도 매끌거리면서, 간질거리고, 기분을 고조시켜 성욕이 넘쳐 흐르게 만들 정도의 음탕함을 머금고 있었다.
'음.'
여전히 하일즈는 자신의 몸을 더듬어 나간다. 기레스의 손을 거친 지금 하일즈의 손은 더욱 더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었지만, 그것 뿐이었다.
너무나도 농밀해 뇌새적인 기레스의 안마를 '참으며' 안마를 해본 클로에는 거부감을 느낄 지언정, 그 손에 휘둘리지는 않게 되었다. 기레스의 안마를 참으며 사정시키는 것에 비하면 하일즈의 안마는 기분이 나쁜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 하아.. 너무 좋아."
하일즈보다 더욱 알기 쉽게 반응하면서도 하일즈보다 오래가는 기레스를 애무하며 쌓아 올린 클로에의 기술은 하일즈의 육봉을 순식간에 사정으로 인도했다.
"우햐아아."
성욕의 덩어리가 꿀렁거리면서 클로에를 향해 발산된다. 클로에는 능숙하게 방울 하나 놓치지 않고 휴지로 능숙하게 자신의 몸을 가드해 나갔다.
'음.'
하일즈가 사정감에 바들거리는 것을 보고 클로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기레스야..'
자신의 남자친구인 하일즈가 만족을 하면 할수록 그녀는 '기레스와 연습해서 좋았다'는 해서는 안 될 생각부터 떠올렸다.
'기레스와의 연습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일즈를 만족시키지는 못했겠지..'
그녀는 기레스와 연습하기 전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던 자신의 애무를 떠올렸다. 기레스와 기술을 연습한 지금이라면,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비밀기지의 모포 안에서 하일즈와 클로에는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외모면 외모, 능력이면 능력, 애정이면 애정까지 이상적인 커플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둘의 사이는 좋아 보이기만 했다.
'하일즈의 애무가 부족한 건 아쉽지만..'
안마에는 개인의 차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클로에는 그런 안마의 사소한 문제점 따위는 하일즈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에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부족한 부분은 서로 메꿔가면 되고..'
흥분에 겨운 하일즈의 씩씩 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분명 기레스도 도와줄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의 입고리가 올라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자각하지 못했다.
"별일이구만. 기레스."
털털한 어조로 마을의 중진, 랄크는 기레스를 맞이했다.
"네가 먼저 나를 찾아오다니 말야."
"저 저번에 선물을 주신 것 감사했습니다."
아직 이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만 같이 와들거리며 기레스는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깍듯하게 인사했다.
"선물? 아아.. 그 뭐였더라? 즐겨 읽던 책에 나오던 무기라 했었나."
'별것을 다 기억하고 있군.'
적당히 둘러댄 이야기였기 때문에 기레스 본인도 흐릿하게 기억하는 변명을 랄크는 꼼꼼하게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네 요즘도 잘 가지고 놀고 있어요."
클로에와 연습을 해야 해, 정자를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기레스는 최근 랄크가 준비해 준 장난감을 이용해 소피아와 종종 놀곤 했기에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선물해 준 보람이 있구만. 그래.. 오늘은 무슨 볼일이 있어 왔지?"
"저 저기... 이런 걸 부탁할 사람이 마땅치가 않아서.."
기레스는 몸을 떨면서 랄크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 기레스의 머뭇거리는 기레스의 태도를 보고 랄크는 선뜻 먼저 물어 주었다.
"뭔가 원하는 거라도 있는 거냐?"
"저 저기.. 사실은 얼마 전.. 학교에 다른 아이들이 그..."
기레스는 답답할 정도로 랄크를 흘끔거리며 머뭇 거렸다.
"그?"
"성행위를 실은 화보를 구해온 것을 조금 본 적이 있었는데요."
"어... 어?"
내심 기레스가 숨기고 있는 게 있지는 않을까 기대했던 랄크는 그 기대 이하의 발언에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냥 모자란 꼬맹이일 뿐이었나?'
"다 다시한번 그런 걸... 보고 싶어서... 그 근데 구할 방법이 전혀 없어서.."
이세계 그레이브에는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없다. 자연히 어린아이가 구할 수 있는 물건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아니 성인이라고 해도, 그런 춘화를 구하는 것은 그다지 손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를 찾아 왔다?"
마을 내에서도 유페르 가문 다음으로 강한 권력을 가진 랄크가 들어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역시 랄크는 무린가.'
마치 발정한 것처럼 몸을 부비는 시늉을 하면서 기레스는 랄크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소피아를 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마을 내에서도 깨끗한 이미지로 유명한 소피아에게 이런 일을 부탁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랄크를 한번 더 이용하면서 덤으로 자신에 대한 환상도 거두어 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어차피 하일즈처럼 지켜야 할 자존심 같은 것도 없었기에 성행위에 눈을 떠, 욕정해 한심한 모습을 보이는 척 따위야 기레스에게는 식은 죽 먹기만큼 간단한 일이었다.
랄크는 기레스를 가늠하듯이 위아래로 흘겨 보았다. 그도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기레스의 현재 처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레스가 학교에서도 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게 된 순간부터 기레스에게 신경 쓰는 것을 포기했던 랄크였다.
'친구가 아닐테니 당연히 빌려달라 할 수는 없었을 거고, 그런 물건을 부모에게 사달라고 조를 수도 없었을 테지. 애초에 쉽게 구할 수 있을 만한 책도 아니고.. 그래도 보통 이런 걸 부탁하러 오나?'
벌벌 거리면서도 사타구니를 부비며 안달내는 기레스를 랄크는 한심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정 반대의 말이었다.
"크하하핫. 기레스 너도 어느새 어른이 다 됐구만.. 좋아 이 아저씨가 아주 멋진 걸루다가 하나 구해다 주마."
'응?'
기레스는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다. 특히나 수년 간을 괴롭힘 당해온 그는 타인의 멸시를 민감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랄크가 자신의 요구를 냉정하게 묵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달랐다.
"저 정말요?"
"그래. 그래. 다음에도 부탁할 게 있다면 얼마든지 부탁하렴."
분명 내키지 않을 게 뻔한데도 언제든 다시 오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 수완에는 기레스도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능글맞구만.'
기레스는 젤가처럼 대놓고 멸시하는 것보다 랄크같은 타입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로 '본인'이 저렇게 상대를 속여 나가는 것을 가장 잘 애용하기 때문이다.
랄크에게 물건을 구할 때는 오히려 있어 보이게 포장하는 쪽이 더 승산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심한 척을 해가며 부탁을 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했는데, 아직 내가 무슨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겠지.?'
그건 그다지 좋지 않다. 사람을 속이기 위해, 철저한 준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의 방심이기 때문이다. 랄크를 이용하든 안하든, 자신의 본모습을 아는 사람은 적은 쪽이 기레스에게는 유리했다.
'아니면 단순히 유페르 가문의 불쌍한 장남에게 적선을 해서 환심을 사려는 생각일까.'
어느 쪽이든, 랄크가 순수한 의미로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했다.
'역시나 마을의 실세.. 만만찮구만..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고.. 지금은 얌전히 도구를 받아두도록 할까?'
"네! 넷.. 감사합니다."
랄크가 여우라면 기레스는 뱀이다. 기레스는 아직 철이 덜 든 아이가 보물을 손에 넣은 것만 같이 기뻐하는 척 하며 연신 랄크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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