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클로에(22)
* * *
"어 어째서? 아직 안마는 다 끝나지 않았잖아?"
"사실은 말야."
기레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이제 네게 알려줄만한 안마가 그다지 남지 않았거든."
물론 거짓말이다. 여성의 성감대를 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기레스는 안마만으로도 한참은 더 신선한 쾌락을 주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레스의 속사정을 모르는 클로에는 곧이 곧대로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뭐?"
"클로에 널 안마하면서 내가 아무런 연구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 나도 말야. 나름대로는 방학 때 널 안마할 때도, 빡세게 생각하고 연구하면서 최적의 안마를 해주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제 어지간한 건 거의 다 실험해 버렸거든."
"그게... 안마를 그만 두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데?"
클로에의 목소리에는 작은 짜증이 섞여 있었다. 절정의 순간에 방해받은 몸은 근질근질 저려오고 있었고, 그럴 때마다 하일즈의 안마가 떠올라 마치 쇠꼬챙이에 몸이 고정된 것만 같은 불쾌함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아니 무슨 관련이라니?"
되려 기레스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반문해 왔다.
"나는 이 이상으로 연습할 방법이 없고, 그렇다면 너도 마찬가지로 이제 그다지 배울만한 게 마땅치 않을거 아냐?"
"으읏.."
불만으로 가득찬 클로에의 짜증 섞인 투정은 기레스의 정론에 단칼에 반박당해 버렸다.
애초에 둘 사이의 비밀의 안마는 연습이라는 명분하에 묶여져 있었다. 기레스는 자신의 연습을, 클로에는 하일즈에게 행해주기 위한 연습을, 그 연습이라는 근본적인 명분이 깨져 버리게 되면 이 관계는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사실은 나도 더 연습을 하고 싶기는 했지만.."
기레스는 아쉽다는 듯한 어투로 적당히 말을 흘렸다.
"더 연습할 게 없어서 그만두겠다고 한 거라며?"
어쩐지 가시 돋친 말로 클로에는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은근히 기레스의 말에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지금은? 그게 무슨 뜻이야?"
"아니 그게.."
기레스는 눈을 내리 깔면서 허둥댔다. 기레스의 그런 모습은 어지간해서는 나오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을 클로에는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잘 알수 있게 기레스가 주입시켰다.
그것은 기레스 본인이 아닌, 타인을 배려할 때 나오는 행동이었다.
"똑바로 말해."
클로에는 기레스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똑부러진 어조로 물었다.
"그러니까 말야. 예전에 한 말 기억 나냐?"
"뭘?"
"원래 처음에는 그 허리를 안마해도 되는지 물었었잖아."
"아.. 그랬었지. 아... 으으.."
그제서야 클로에도 기레스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깨닫고는 얼굴을 홍당무처럼 물들였다.
"그런거라고.. 뭐 나도 안마의 연구를 그만할 생각은 없으니까 앞으로 안마를 하지 않을 건 아니지만, 한동안은 다른 방법을 열심히 강구해 보려고 생각중이야."
"......."
"지금은 조금 쉬겠지만, 혹시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또 다시 부탁해도 될까?"
기레스는 초롱초롱해 보이는 눈으로 후일을 기약해 클로에와의 연습을 순순히 포기하는 척 순박함을 연기했다.
"......"
"클로에?"
".... 어디까지.. 안마를 할 생각인데?"
클로에는 고개를 돌려 기레스를 쳐다 보지 않고 퉁명스레 물었다.
"그걸 왜 물어? 어!? 설마.. 허락해 주려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설마 가슴이나 그 그..."
고지식한 클로에는 차마 그 다음의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야한 짓을 할리가 없잖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가슴이나 보지 같은 건 당연히 제외지."
"직접적으로 말하지 마!"
숫처녀 답게 클로에는 시뻘건 얼굴로 기레스에게 소리쳤다.
'어쩌란 거냐.'
"음.. 만약 다음 안마를 하게 되면 그런 야한 부위를 제외하면 대부분을 주무르게 될걸? 에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걸 클로에한테 부탁하는 건 조금 그렇지."
기레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멋대로 납득하는 척을 해나간다.
"........ 좋아."
그 말을 들은 클로에는 잠시 망설이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응?"
"좋다고!"
"정말?"
기레스는 답지 않게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몇번이고 말하게 하지 마. 어차피 너니까 약속은 지켜줄거고.. 나도 이 이상의 안마를 배울 수 있으면 나중에 하일즈를 기쁘게 해 줄 수 있을테니까.. 배워둬서 나쁠 거 없잖아?"
이미 누가봐도 거기까지 허용하는 것은 이상했지만, 클로에는 다소 창피하다고는 생각할지언정 그것을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타인이 생각하는 기레스와 그녀가 생각하는 기레스의 인상은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뭐 기레스니까...'
이미 그녀의 안에서 기레스에 대한 신뢰는 반석으로 다져져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지금까지 그 엄청난 시간동안 기레스는 자신의 몸을 주물러 왔지만, 안마 이상의 행동은 단 한번도 보인 적이 없었고, 자신을 전력으로 지원하며, 하일즈의 사이를 응원해 준 것이다. 고작해야 일주나 1개월 같은 정도로 짧은 시간도 아니다. 기레스를 만난지도 벌써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참인 것이다.
천천히 클로에의 안에서 차곡차곡 쌓인 기레스의 이미지는 본래라면 절대 열리지 않았을 굳건한 성문을 클로에 스스로 열게 만들고 있었다.
'거기에...... 궁금하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기레스는 온갖가지 안마로 그녀를 충족시켜 주었다. 새로히 다른 부위의 안마를 받게 되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하자 그녀의 입에는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둔 것처럼 군침이 고였다.
'아냐 아냐.. 이건 순수히 하일즈를 색다른 방식으로 기분좋게 만들기 위해서.. 그래! 하일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야.'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면서 애써 그녀는 자신의 안마에 대한 기대를 포장해 나간다. 자신의 안마를 받으면 너무나도 좋아하는 하일즈를 상상하고 나서야 그녀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 졌다.
성인군자라고 해도, 생각을 유리하게 포장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그저 재능이 출중할 뿐인 미성숙한 클로에는 사랑하는 하일즈를 이용해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냈다.
"그럼 혹시 오늘부터 한번 시험해 봐도 될까?"
천연덕스럽기 짝이 없는 기레스의 물음에 클로에는 자신의 얼굴을 칠하는 석양빛에 부끄러움을 살짝 숨기며 대답했다.
"응..."
"아 맞다."
시작하기 전 기레스는 손벽을 살짝 치며 클로에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말야. 안마가 부담스럽거나, 기분이 나쁘거나, 하기 싫어지면 눈치보지 말고 말해줘. 개선하거나 혹은 네가 원한다면 바로 그만두도록 할 테니까."
클로에의 마음의 빈틈을 기레스는 꼼꼼히 메꿔 나갔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만두고 내려도 좋다는 기레스의 말은 클로에의 마음을 심리적으로 안정시켜 주었다.
'그렇게 되게 두지 않겠지만.'
요는 기분이 나빠지게 만들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클로에 같은 고지식한 타입은 너무 쾌락을 한번에 주게 되면 지레 겁을 먹게 될테니까.'
직접적인 쾌락은 주지 않는다. 안마라는 완충제로 좋은 기분을 천천히 적시게 만든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전신이 쾌감에 젖어 있도록 요리해 나간다. 기분은 좋게 하지만 너무 좋아서 겁을 먹게 되지는 않도록 클로에의 육체를 천천히 숙성시켜 나가는 것이다.
"기레스. 시작 안해?"
짧은 말이지만, 얼른 시작하기를 원하는 클로에의 무의식이 담겨 있는 발언에 기레스는 속으로 조소하며 말했다.
"아 저기... 지금까지는 항상 다리를 앞으로 뻗게 했었잖아. 하지만 이번 안마는 다르게 하고 싶은데.. 엎드려 주지 않을래?"
"음... 알았어."
이제와 클로에는 기레스를 의심하지 않고, 이어 붙힌 책상 위에 엎드렸다. 기레스의 안마를 받기 전보다 더욱 성숙해 져서 흠 잡을 곳이 없는 물오른 신체가 무방비하게 기레스의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도마 위에 놓여진 너무나도 맛좋은 극상의 생선같은 느낌에 기레스는 입맛을 다시며 클로에의 몸에 손을 가져갔다.
'음..'
기레스는 능숙하게 클로에의 살을 매만져 나간다. 주무르는 게 아닌, 처음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안마답지 않다고 생각할 야한 손놀림이었지만, 지금까지 천천히 이것이 기레스식 안마라고 유도당한 클로에는 이상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피로를 모아서 나중에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거였지.'
앉아 있을 때와는 또 다르게 눕는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기분은 한결 더 느슨해 졌다.
'앉아서 받을 때보다 더 기분이 좋은 것 같아.'
그것은 단순히 클로에의 기분 탓이 아니다. 실제로 기레스는 조금 더 쾌락을 느낄 수 있도록 한껏 개발한 그녀의 성감대를 주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보다 아주 조금 더 기분이 좋도록.. 그녀가 선택한 이 선택이 틀리지 않다고 기레스는 애무나 다름 없는 안마를 통해 천천히 세뇌시켜 나간다.
'그런데 안마 자체는 이전에 했던 부위만을 반복하는 것 같은 느낌이네.'
아직까지도 기레스는 이전에도 안마했던 다리 부분을 중심적으로 안마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평소보다 기분이 좋았지만, 클로에는 자신도 모르게 그 '다음'을 기대하고 있었다.
'엇..?'
"하읏..!"
클로에의 몸이 움찔 거리며 튀었다. 뒷 무릎을 조물 거리던 기레스의 손이 조금 더 올라가 그녀의 허벅지에 닿았기 때문이다. 평소 만져진 적이 없는 장소가 만져진다는 미지의 느낌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상상했던 것보다도 더욱 기분이 좋았다.
"앗! 괜찮아? 혹시 부담되면.."
"괘.... 괜찮아."
홍조를 띄고 목소리를 쥐어 짜며 대답하는 그 모습은 평소와는 달리 너무나도 요염했다. 기레스는 심술궂게 웃으며 헤엄치는 물고기마냥 클로에의 늘씬한 허벅지를 노닐었다.
숫처녀인지라 다소 성욕에 둔감한 클로에의 몸은 민감하기 짝이 없는 소피아와 달리 하루가 멀다할 정도로 성감대를 요리조리 바꿀 수는 없었지만, 반년이라는 시간이 있다면 없던 성감대도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것이 기레스의 실력이다.
이미 클로에의 몸에는 그녀 스스로도 모르는 보이지 않는 표식으로 가득해 있었다.
'너무 몰아치면 좋지 않겠지.'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으로도 클로에에게 이전의 소피아가 느꼈던 절정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것도 가능했지만, 기레스는 그 방법이야말로 클로에에게는 가장 해서는 안될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음... 아.. 으응.."
클로에의 목에서 절로 기분 좋은 소리가 새어나온다. 클로에의 말캉거리는 여린 허벅지에는 기레스만 아는 여러 성감대가 존재했지만 그는 그 성감대를 묽게 퍼트려 클로에를 기분좋게 만들어 주었다.
'기분 좋아.. 처음에는 깜짝 놀랐는데.'
머리에 직접 쾌락을 주입하는 것만 같은 찌릿한 느낌은 처음뿐이어서 그녀는 처음 낯선 부위를 허락한 탓에 적응하지 못해 느낀 탓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하지만 기분 좋았지.. 기레스에게 말해주는 게 나으려나..? 아니 하지만 이런 건 좀....'
아무리 기레스를 신용한다고 해도 그때의 그 느낌을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은 고지식한 클로에에게는 너무나도 큰 부담이었다. 어차피 지금 기레스의 안마만으로도 너무 기분 좋았기 때문에 금새 그녀는 자신의 절정을 잊고 기레스의 손에 집중했다.
'그나저나.. 허벅지는 이런 기분이구나... 부끄럽긴 하지만, 받지 않았다면 인생의 손해였을지도....'
자신의 은밀한 속살이 만져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안중에도 없이, 클로에는 자연스럽게 기레스에게 안마를 허용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조금 더 안쪽에서 시원하게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느낌은 평소 받아 왔던 부위와는 또 다른 신선함과 상쾌함을 그녀에게 가져다 주었다.
'음 시원해.. 어라?'
몽롱한 상태로 정신을 차려보니 언제부턴가 기레스의 손길이 멈춰 있었다.
"기레스?"
"음. 클로에. 다 끝났는데..?"
"뭐? 그럴리가 아직.."
재빨리 시계를 확인한 클로에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벌써 한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기 때문이다.
'처 처음에도 이랬었지만.. 내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니..'
"왜 그래? 혹시 기분이 나빴어?"
"아니. 그런 건 아냐."
"뭔가 덜 시원하다거나?"
"그것도 아냐."
평소처럼 피로를 싹 모아서 날려 버리는 그런 시원한 안마는 아니지만, 그냥 받는 것만으로도 의식이 붕 떠버리게 만들어 피로를 녹여 없애 버리는 좋은 안마였다고 클로에는 생각했다.
실제로 하일즈에게 안마를 받아 찝집하게 남아 있었던 불쾌함은 단 한조각도 그녀의 몸에 남아 있지 않았다.
"조금 피곤했나.. 조금 졸아버렸던 것 같아."
"아하. 안마는 어땠어?"
기레스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너구나 싶을 정도로 조.... 좋았어."
"이야.. 처음이라 조금 불안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클로에의 칭찬에 기레스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해맑게 웃었다.
"음.."
클로에는 자신이 누웠던 책상을 흘겨보면서 가녀린 손을 짚어 보았다. 아직도 자신의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다. 그녀는 조금만 더 그 책상 위에 누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그 생각을 실천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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