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계네토기-64화 (64/238)

〈 64화 〉 클로에(20)

* * *

"다리라고!?"

하일즈는 클로에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아는 클로에라면 안달복달하며 사정해도 다리를 주물러 주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바람이 분거지?'

하일즈는 안마라는 연결점이 있음에도 클로에가 변화한 원인을 제공한 것이 기레스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형식상으로는 형이라곤 하나, 따로 이용할 일이 있거나 눈에 밟히는 게 아니면 기레스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 하일즈라는 인간인 것이다.

'아무렴 어때.'

곧 하일즈는 답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하일즈에게 있어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클로에가 자신의 다리를 안마해 주려 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클로에는 하일즈의 다리를 정성껏 주물렀다. 기레스마저도 만족시킨 그녀의 솜씨는 하일즈가 지금까지 단단히 쌓아올린 자존심을 단번에 흐물거리게 만들어 버린다.

더운 열기 속에서도 서늘한 느낌을 만드는 고운 손이 단단한 하일즈의 종아리를 문지르고 주무르면 한껏 긴장해서 부풀어 오른 근육은 올이 나가는 옷처럼 사르르 풀려버린다.

'어머니도 이런 느낌이셨겠지?'

하일즈는 자신의 기술에 소피아가 만족했다는 것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물론 소피아는 그렇게 보이도록 연기만 했을 뿐이지만,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는 자부심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하일즈다웠다.

클로에는 정성껏 하일즈를 안마해 나갔다. 기레스가 가르쳐 준대로 순진하게 그녀는 자신의 체중을 실어 하일즈의 발목을 살포시 누르고 천천히 돌려 나갔다.

단순히 클로에의 매끈한 손 뿐만 아니라 보드라운 살결이 느껴지는 그 안마 행위에 하일즈는 기쁨 반 놀라움 반이 섞인 심정으로 그녀의 안마를 음미했다.

"으하아.."

지금까지 잔뜩 쌓여 온 피로가 싹 풀려 나가는 청량함에 하일즈는 헤벌쭉한 표정으로 신음성을 내뱉었다.

"아팠어?"

"아니..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거야."

설사 다리가 잘려 나가는 아픔이라 해도 하일즈는 아픔을 참아냈을 것이다.

"후훗."

평소 같았으면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고 쏘아 붙혔을 클로에는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띄우고 손끝을 세워 하일즈의 무릎부터 발목을 팔로 쓸어 내려 갔다.

"으으.."

하일즈의 다리에 몸을 밀착시키고 마치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미끄러지는 클로에의 손은 은근히 애무를 하고 있는 것만 같은 음란함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안마의 절도는 잃지 않는다.

기레스가 가르쳐 준 그대로 클로에는 안마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 선을 지키면서 은근히 하일즈의 음심을 자극해 버린다.

[꿀꺽]

하일즈는 더운 햇볕 아래에서 한차례 땀을 시원하게 흘렸음에도 어디서 침이 고였는지 목 안에 가득 찬 군침을 삼켰다. 정성껏 안마를 하는 클로에의 살 구석구석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보인다.

일전에는 등 뒤에서 안마를 했기 때문에 보지 못했던 클로에의 모습이 하일즈의 뇌리에 선명히 박혀 나갔다.

한여름의 대련에는 움직이기 편하면서도 얇은 옷을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차피 손대중 하는 것에는 도가 튼 하일즈와 클로에이기에 별다른 보호 장비는 필요 없었다.

평소처럼 그저 만나 단순하게 데이트 하거나, 정신없이 대련을 할 때는 애써 자각하기를 피해왔던 클로에의 매력적인 육체는 하일즈의 눈앞에서 아른 거리고 있었다.

몸 구석구석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따라 하일즈의 시선이 이동한다. 그다지 맵씨가 있다고 볼 수는 없는 털털한 면옷은 땀에 살짝 젖어 클로에의 속살이 보일 듯 말 듯하게 비쳐 보인다. 그리고 마치 결정타라도 보내듯 밀착된 몸에서 은은히 올라오는 클로에의 잔향은 하일즈의 코를 찔러나갔다.

클로에의 안마를 받는 지금, 한여름의 살짝 후덥지근한 열기는 하일즈에게는 그야말로 포상이나 다름 없었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흐뭇한 미소를 서리게 하는 클로에의 아름다운 몸은 후끈한 열기로 인해 클로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남성의 아래에서 열심히 봉사하듯 다리를 안마를 해 나가는 절정의 미소녀를 바라보는 광경은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혹하며 바랄 법한 로망이었기에 하일즈는 더할나위 없는 행복을 느꼈다.

"아하으으."

그렇게 클로에의 몸을 감상하는 사이 클로에는 마지막 안마를 들어갔다. 다리에 힘을 쏙 빼놓아 버릴 정도의 시원함에 하일즈의 입에선 한심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온다.

"후우.. 어땠어 하일즈?"

클로에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물었다. 묻지는 했지만, 굳이 답을 듣지 않아도 하일즈의 한심하게 녹아내린 표정만으로 그녀의 마음은 만족감으로 가득 찼다.

"너 너무 좋았어. 중독이 되어 버릴 정도야."

"그 그렇게 기뻐해 주니 나도 기뻐."

클로에는 머뭇 거리면서 살짝 수줍게 하일즈에게 말했다. 언제나 시원하고 날카롭고 차갑고 늠름한 매력만을 보다가 그런 새콤한 클로에의 말을 들은 하일즈는 감격에 연신 입가의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클로에!!"

"뭐 뭐야 갑자기."

하일즈의 격한 기쁨을 표하는 외침에 클로에는 살짝 당황해 했다.

"사실 나도 저번에 클로에에게 안마를 받고, 네게 해주고 싶어서 따로 열심히 연습을 해보았거든. 대련에 안마로 힘들었을텐데, 이번에는 내가 널 안마해 줘도 될까?"

'이런 분위기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일즈는 부풀어 오른 기대심을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년 간을 남자친구로 지냈음에도 아직까지 이렇다 할 스킨쉽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하일즈는 클로에의 성격상 거절 받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음... 좋아."

'어라?'

하지만 의외로 클로에는 순순히 하일즈의 말을 받아 들였다. 날아갈 것 처럼 기쁜 와중에도 하일즈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클로에 요즘 뭔가 분위기가 바뀐 것 같은데?"

"그래? 역시 티가 나는 건가... 사실은 말야. 친구에게 너한테도 그렇게 쌀쌀맞냐는 이야기를 들었었거든.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조금 더 네게 다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해 보고는 있는데.... 하일즈는 어떻게 생각해?"

다소 의미심장한 질문이었지만 죄의식을 전혀 느낄 리 없는 클로에는 하일즈의 말을 너무도 태연히 받아냈다. 그 태연한 클로에의 태도에 하일즈의 속에서 살짝 피어오르던 의심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그런 거였어? 나야 당연히 좋지."

"이전의 나와 비교하면?"

"둘다 좋지만.. 역시 지금쪽이.. 더..."

하일즈는 얼굴을 붉히면서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 하일즈의 모습에 클로에는 시원스런 얼굴로 자신의 찰랑이는 은청색 머리를 살짝 정돈하고는 생각했다.

'역시 기레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네.'

하일즈가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클로에의 마음 안에는 기레스의 조언을 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차곡차곡 쌓여 나간다.

"그럼 하일즈 부드럽게 부탁할게."

클로에는 자신의 등을 하일즈에게 맡기며 부드럽게 안마를 요구했다.

"맡겨만 둬!"

"후우... 후우.."

하일즈는 흥분하고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그는 클로에의 탱글탱글한 피부를 내려다 본다. 클로에 본인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오늘 입고 온 옷은 위에서 내려다 보면 그녀의 예쁜 모양으로 솟은 가슴의 굴곡이 그대로 하일즈의 시선에 들어오는 차림이었다.

고지식한 클로에는 그 나이가 되어서도 하일즈에게 음심까지는 품은 일이 없었지만, 하일즈는 전혀 달랐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찼을 무렵, 하일즈는 클로에의 아리따운 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창 때는 클로에를 상상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자위행위를 하면서 성욕을 풀어 제낀 일도 있을 정도다. 그런 그가 클로에에게 스킨쉽을 주장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자신의 성욕 이상으로 클로에가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좋아 이번 기회에 내 기술로 클로에를 빠지게 만들어야지.'

안마는 시작이다. 이 안마를 계기로 클로에와 더욱 진도를 빼 나가자는 야심찬 상상을 품으며 그는 실실 웃음을 흘린다.

'내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하일즈는 기레스와 소피아가 만들어준 기술의 신뢰에 흠뻑 심취해 있었다.

"그럼 간다."

하일즈는 기레스에게 '배운 대로' 클로에의 살을 만져 나간다. 소피아의 살을 만질때도 그랬지만, 클로에의 몸 또한 소피아 못지않게 만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분이 샘솟는 극상의 신체였다.

'음....?'

클로에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낯선 손이 자신의 어깨에 닿는 느낌은 이걸로 두번째. 당연히 그녀는 하일즈의 안마도 첫번째 기레스의 것처럼 기분이 좋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뭐야 이게..'

하지만 그녀의 어깨에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도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주물거릴 때는 순간적으로는 시원한 것 같지만, 그 부분에서 손을 떼면 무언가 텁텁한 느낌이 밀물처럼 치밀고 들어온다. 마치 주무를때마다 어깨 안에 작은 추가 하나 둘 주렁주렁 달리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으읏!"

작게 클로에는 신음소리를 내었다.

'역시 클로에도 기분이 좋은가 보네.'

하일즈는 그 신음소리가 소피아의 신음소리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더욱 더 신나게 클로에의 몸을 열심히 주물러 나간다. 하일즈가 열정적이 되면 될수록 클로에의 표정은 점점 더 미묘해져만 갔다.

클로에는 천재다. 그렇기에 하일즈의 저 안마가 딱히 틀린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차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아주 조금 다를 뿐이다. 딱히 아예 시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주무르는 순간에는 뭉친 어깨가 풀려나가는 시원한 느낌도 드는 만큼, 하일즈의 안마도 보통의 사람이라면 시원하다는 '착각'을 할 수 있을 수도 있을 그런 안마였다.

기레스의 손맛을 알지 못했다면 말이다.

'어째서...'

어째서 조금의 차이일 뿐인데 자신은 이정도로 기분이 처지는지는 클로에 본인도 알 수가 없다. 하일즈가 신나서 안마를 하면 할수록 그녀는 더욱 더 기레스의 안마를 선명히 떠올리게 된다.

하일즈의 안마도 딱히 뿌리쳐야 할 정도로 엄청나게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레스와 비교를 하면 할수록 불쾌함은 그녀의 어깨선을 따라 스멀스멀 전신에 퍼져 나간다.

"어때? 클로에! 며칠동안 너를 위해 연습해 봤어."

"어? 그 그랬어?"

하일즈의 흥분에 찬 콧김이 그녀의 머리에 살짝 느껴진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마음만 받겠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이전의 클로에였다면 분명히 냉정하게 하일즈의 안마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려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클로에의 뇌리에 기레스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일즈의 앞에서도 그러는 건 아니겠지?'

'하일즈는 인정받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같았거든.'

'으으...'

하일즈는 자신을 위해 성심성의껏 안마를 준비해 왔다. 준비 뿐 아니라, 저렇게까지 기뻐하면서 하일즈는 자신을 위해 열정적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물론 하일즈의 속내는 전혀 달랐지만 기레스의 말에 한껏 유도된 클로에는 하일즈의 그 기뻐하는 모습에 초를 칠 수가 없었다.

'여기서 하일즈를 칭찬해 주면..'

그 뒤의 하일즈의 반응은 클로에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래 하일즈가 미숙하다고 해도, 뭐 못 견딜 정도도 아니고.. 하일즈가 나를 위하는 마음은 진심이니까..'

불쾌한 건 어디까지나 기레스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기에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다소 어깨가 답답해지기는 해도, 객관적으로 보면 못 버틸 정도로 괴로운 것은 아니었다.

하일즈가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노력한다면 자신도 하일즈를 위해서 칭찬의 한마디를 못할 것도 없는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잔뜩 안마를 받았음에도 어쩐지 어깨가 뻐근하다는 느낌이 치고 올라올 무렵 하일즈는 클로에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물었다.

"어땠어? 클로에."

하일즈에게 클로에의 조각 같은 몸을 음미하며 안마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포상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지친 기색도 없이 함박웃음을 짓고는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물었다.

"후으으.... 너무 기분 좋았어."

클로에는 자타공인으로 고지식하기에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지극히 순수한 선의의 거짓말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눈 하나 깜짝 않고 클로에는 짤막한 신음소리와 함께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처음의 거짓말을 전했다.

"얏호!"

항상 체면치레를 하며 점잖떨기 일수인 하일즈지만 그 순간만큼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하일즈를 보면서 클로에는 거짓말을 한 자신이 선택이, 그리고 기레스의 조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곱씹어 나갔다.

'그래 이걸로 된 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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