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클로에(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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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클로에는 기레스의 말을 곱씹으며 지금까지 하일즈와 지냈던 시간들을 되새김질 해보았다. 기레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확실히 자신은 무뚝뚝한 여자였다.
하일즈는 그녀가 무뚝뚝하게 대응했을때도 언제나 행복해 보였고, 그랬기에 그녀는 그렇게 살아도 좋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일전 기레스에 의해 하일즈에게 안마라는 선물을 해준 클로에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행복해 보이는 하일즈의 얼굴을 봐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손에 만족해 하는 하일즈를 떠올리고는 낮에 있었던 기레스의 안마를 떠올렸다.
'어라..?'
순간 그녀의 몸은 살짝 달아올랐다. 주변의 온도가 몇도 정도 순식간에 올라가 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다.
'나도 참.. 하일즈가 기뻐할 얼굴에 너무 기대해 버렸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는 흘끔 자신의 무릎을 바라보았다. 클로에의 다리는 불빛 아래서 고운 살색으로 빛이 나, 너무나도 단아하면서도 아름다운 자태를 고스란히 내뿜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리면 나도 주무를 수 있는 거네?"
어깨는 혼자서 안마하기 힘들지만, 다리라면 혼자서 안마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자신의 안마는 어떤 느낌일까 싶어 천천히 자신의 가녀린 손을 다리로 가져갔다.
"흐음."
잠시 자신의 다리를 주무른 그녀는 실망스러운 숨을 내쉬었다. 비단 안마가 아니어도 타인이 만지는 것과 스스로가 만지는 것의 느낌은 천지차이다. 아무리 다리를 주물러도 클로에는 기레스가 해줄 때의 시원함을 느끼지 못했다.
같은 장소를 같은 힘으로 주물러도, 여러가지 변화를 가미시켜 보아도, 기레스가 주물러 주었을 때의 그 느낌은 오지 않는다.
한참을 그렇게 찰흙을 빚는 것처럼 다리를 주무른 클로에는 뭔가 가슴이 아슬아슬하게 간지러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기레스와 똑같이 주무르고 있어도 자신의 손은 기레스의 손과는 완전히 달랐다.
'기레스가 능숙한 건지.. 내가 미숙한 건지..'
기레스의 손길에서 느껴지던 시원하면서도 짜릿한 느낌이 자신의 손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간질 거렸던 느낌은 어째선지 가려운 느낌이 되어 기레스가 안마를 해주기 전보다 더 답답해 진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괜시리 클로에는 짜증이 치밀어 올라 자신의 다리를 살짝 내리 쳤다.
'어째서.. 이렇게 짜증이 나는 걸까?'
어디까지나 기레스가 자신에게 해준 것은 안마이며, 몸이 시원해 졌을 뿐이라는 생각뿐인 클로에는 자신의 몸 깊숙한 곳에서 좀먹고 있는 쾌감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일즈에게 이런 미숙한 안마를 해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인간은 보이는 곳에서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다. 짜증이 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주변에서 적당한 이유를 가져다 붙히는 것이 인간이다.
"후우.. 내일 기레스에게 물어 볼까?"
다음 날 잠을 설친 클로에는 평소보다 저기압인 상태로 방과 후 기레스에게 물었다.
"그랬는데 말야. 혹시 하일즈는 나를 위해서 기분 좋은 척을 한 건 아닐까?"
'과연..'
전날 안마를 받고 쌩쌩하게 간 클로에가 뭔가 초췌해져 있다 싶었던 기레스는 그녀의 질문에 속으로 조소를 머금었다.
"그건 단언코 아냐. 조금 미숙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확실히 네 안마에 만족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나도 기레스로 연습했었지."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내게 어떻게 했는지 시범을 보여줄 수 있겠어?"
기레스가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클로에는 기레스를 바라보고는 살짝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이전까지의 클로에라면 기레스의 다리를 정성껏 주물러 줄 생각 따위는 절대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기레스를 신뢰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구교사의 교실에서 남자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는 상황은 제 3자가 보기에는 경박해 보이는 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을테지만, 정작 안마를 하고 있는 클로에에게 그런 자각은 없었다.
기레스라면 사심을 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안마가 기분이 나쁜지 확인하는 것 뿐이다.
하일즈를 더욱 더 기쁘게 만들어 주기 위한 연습이다.
지금까지 기레스와 함게 쌓아 온 추억은 그녀의 위화감을 지워 버렸다. 설사 있다고 해도 '하일즈를 위해서' 참을 수 있을 정도로 거부감은 작기만 했다.
한여름이었는데도 클로에의 손은 너무나도 서늘하게 기레스의 다리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소피아 같은 요염함은 없지만 풋풋하면서도 생기 있는 그야말로 명품 안마의 손길이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아는 천재답게 그다지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클로에는 요령을 깨치고 있었다.
'아직 멀었지만..'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안마여도 기레스가 보기에는 풋내기에 불과했다. 애초에 안마 밖에 익히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시간만 넉넉히 주어지면 여자의 성감대를 찾는 것은 물론 조절까지 자유롭게 해내는 기레스와 클로에의 실력은 비교할 거리도 안되는 것이다.
거기에 기레스는 자신조차도 열락에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릴 정도로 짙은 쾌감을 선사하는 소피아와 벌써 수없이 많은 시간동안 몸을 섞어 왔다. 하일즈라면 몰라도 기레스에게 클로에의 기술은 아무래도 가볍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재능은 재능, 기레스의 요령이 새겨진 안마는 확실히 기분 좋은 것이었다.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진 않지.'
짙은 꿀단지 속에서 희롱 당하는 것마냥 극한의 열락을 주는 소피아와는 다르게 클로에의 안마는 아직 성을 모르는 건전한 상큼함으로 가득하다. 매일같이 육즙 넘치는 고기를 먹게 되면 가끔은 채소를 먹고 싶듯이 클로에의 산뜻한 안마는 그런대로 기레스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어 주었다.
거기에 그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클로에가 자신의 다리를 별다른 저항 없이 정성껏 안마한다는 상황은 육체적인 쾌감을 떠나 정신적인 만족감을 충족 시켰다.
클로에는 가는 손으로 기레스의 다리를 어루만진다. 기레스가 보여준 애무와 안마의 경계선상에 있는 그 손놀림이었다. 본인은 애무라는 자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에는 안마로 비치지 않을 것처럼 다소 음란해 보이는 손놀림이다.
그 움직임에 기레스의 음심도 살살 달아올라서 당장이라도 클로에의 성욕을 일깨워 주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찼다.
'아직.. 안돼. 참아야지.'
클로에가 자신의 체중을 이용해 기분 좋게 발목을 지그시 누르는 것을 보며 기레스는 마른 침을 삼켜 나갔다.
"저기.. 어때?"
"......"
"기레스!"
"아.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잠시 졸아 버렸는데."
기레스는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띠며 클로에를 놀렸다.
"뭐야 빈말하지 말라고."
"빈말이 아냐. 도대체 어째서 네가 기분 나빴는지 모를 정도라고."
물론 기레스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자신만 아는 클로에의 성감대를 자극하는 비밀의 루트로 그녀를 절묘하게 요리했기 때문이다.
기레스와 그 음탕하게 살을 섞어온 나날을 보내온 소피아라고 해도 기술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기레스는 교묘하게 클로에의 숨은 성감대를 적절하게 이용했다.
그녀가 시원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은 아주 자그마한 성욕의 해방을 이용했다는 것을 클로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일즈나 기레스가 클로에의 안마를 받는다면 상쾌한 안마겠지만, 클로에만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녀가 겪고 있는 '기레스의 안마'는 이미 단순한 안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아직 몸을 애무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욕구불만의 전조를 보이다니.. 고지식한 것 치고는 의외인걸.'
민감한 신체를 일깨웠을 때 클로에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는 기레스도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었다.
"그럼 어째서.."
'여기선 일단 의심을 지워주도록 할까.'
"그러고 보니 말야. 짐작 가는 게 하나 있어."
"짐작? 뭔데?"
"혹시 너 혼자서 귀를 파본 적이 있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아니 진지한 이야기야. 예전에 나는 한번 엄마에게 귀를 청소 받은 적이 있었거든. 그게 너무 기분이 좋았던 거야. 그래서 나중에 혼자 도구를 이용해서 귀를 파보았는데 그때의 기분이 살지 않더란 말이지."
실제로 타인이 만져주는 느낌과 자신이 만지는 느낌은 같은 부위를 만져도 확연히 다르다. 그런 것은 클로에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것을 타인의 입으로, 특히나 자신보다 어떤 방면에 뛰어난 사람에게 공언 받으면 신빙성이 있어 보이게 된다.
"자기가 변태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변태라니! 타인에게 받는 느낌과 자기가 자신에게 하는 느낌은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아니,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니까. 나중에 하일즈에게 한번 해달라 해보던가.."
기레스의 답답해 하며 발끈하는 모습에 클로에는 살짝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이라는 친구가 생겨서 기레스도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진 것이다. 빚을 갚았다라는 생각보다 먼저 기레스의 변화 그 자체에 그녀는 마음이 들뜨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기레스도 나 못지 않게 감정 표현을 안하는 것 같은데.'
클로에는 이내 기레스라면 충분히 그럴만 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만나기 전까지 기레스는 감정표현을 잘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로 친구 하나 없는 고독한 나날을 보내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클로에는 평소 감정 표현을 크게 하지 않는 사람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기레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어딘지 더 친해졌다는 느낌이 물씬 피어오른 것이다.
'나도 조금 더 하일즈에게 솔직해져야..'
혼자서는 무리지만 누군가가, 기레스가 등을 떠밀어준다면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았어. 그러니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는 거지?"
"그래. 그러니 염려말고 하일즈에게 실력을 보여주고 오라고."
"응. 언제나 고마워. 기레스."
그렇게 자신을 격려해주는 기레스에게 클로에는 하일즈에게는 보여준 적 없는 해맑게 반짝이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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