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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네토기-61화 (61/238)

〈 61화 〉 클로에(17)

* * *

"음... 으응.."

클로에는 눈을 감고 기레스의 안마를 음미했다. 기레스가 처음 안마를 했을 때의 긴장으로 날이 서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편안한 표정이었다.

"음... 핫?"

클로에는 화들짝 놀라면서 다리를 들었다. 소피아나 티나 못지 않게 늘씬하게 잘 빠진 그녀의 매끄러운 다리를 기레스의 손이 주무르기 시작한 까닭이다.

"뭐 하는 거야?"

클로에는 노기 서린 눈으로 기레스를 살짝 노려보면서 말했다.

"뭐라니?"

그 클로에의 반응에 대답하는 기레스의 억울하다는 듯 반문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약속 했었잖아. 팔이나 다리는 괜찮다고."

"아.."

기레스의 말을 듣고 클로에는 처음에 기레스와 했던 정해둔 규칙을 떠올렸다.

'분명 허리는 거절했지만, 다리는 거절하지 않았었지.'

클로에는 실제로 안마를 받기 전까지는 팔이나 다리에 대해서는 그다지 경각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어깨의 연장선상인 팔과 그에 대칭하는 다리정도는 허용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실제로 안마를 받게 되어 다리를 만져지게 되자, 단순히 어깨나 팔을 주무르는 것과는 달리 굉장히 부끄럽게 느껴진 것이다.

"다리는 하지 말까?"

기레스는 클로에의 눈치를 살피면서 살짝 클로에의 정강이를 쓸어 내리던 손가락을 떼었다.

"어? 으음.."

기레스의 손가락이 떼어지자 클로에는 무언가 가슴이 텁텁해 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만 더 하면 개운해 질 것만 같은데, 그것을 중간에 방해 받은 듯한 아쉬운 느낌이 안개처럼 그녀의 마음에 피어 올랐다.

기레스는 클로에가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 시원스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다리도 금지인 걸로 하고.."

'이 녀석은 이런 녀석이지.'

기레스는 클로에가 부담스러워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내게 준 돈을 이용해서 안마의 연습 정도는 요구할 수도 있을텐데..'

자신이 정말로 힘든 부분에 대해서는 돈을 불살라가면서 까지 강제로 전달하는 무대포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런 부분에서 기레스는 깔끔하게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고지식한 성격 탓일까 클로에는 기레스의 그런 부분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문득 클로에의 머릿속에는 연습이라는 말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래.. 나는 기레스의 연습을 도와야만 할 의무가 있어.'

최근 들어서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아 깊히 묻어 두었던 빚을 그녀는 마음 속에서 꺼내 들었다. 기레스는 하일즈와 자신을 위해 3500만 에보나라는 거금을 자신을 위해 선뜻 내어 주었는데 정작 자신은 부끄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레스의 '연습 상대' 조차도 되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살짝 가슴이 시큰 거리는 것을 느낀다.

"....."

하지만 이미 부담스럽다는 티를 낸 이상 기레스에게 자신의 입으로 '안마를 연습할래?'하고 말을 꺼내기는 부끄러운 클로에였다.

'아..... 그래!'

"혹시.. 하일즈는 다리를 안마를 해주면 기뻐할까?"

기레스가 주섬주섬 가방 안에 짐을 챙기고 있을 때, 클로에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뭐?"

"아니.. 하일즈에게 다른 안마를 해주게 되면 어떨까 싶어서.."

"그야 물론 좋아하겠지. 아마 해주겠다고 하면 3000만 에보나라도 기꺼이 마련해 올걸?"

"그럴까? 그러면.. '하일즈를 위해서' 한번 다리의 안마를... 받아볼까?"

기레스에게 받은 은혜를 갚고 싶다. 하일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다른 안마를 해주고 싶다. 둘 다 클로에에게는 일말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뒤틀어 보면 클로에는 기레스의 빚을 갚기 위해서, '안마를 받기 위해' 하일즈를 변명거리로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변명의 변명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일즈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기레스의 빚을 갚기 위해서라는 부분조차도 사실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욕망을 위해서 그녀는 기레스가 만들어준 형편 좋은 변명을 들이밀어 이용해 나갔던 것이다.

"나야 좋지. 하지만 괜찮겠어? 조금 부담스러워 하던 거 같던데.."

"괜찮아. 어차피 너니까 이상한 수작을 부릴리도 없을테고."

'도마 위의 생선 주제에 말은 잘하는 구만.'

기레스는 뒤틀린 미소를 띄우며 클로에의 분홍빛이 감도는 피부에 손을 가져갔다.

"그럼 여기 의자에 다리를 올려줘."

"알았어."

의자에 앉은 클로에는 자신의 다리를 반대쪽의 의자에 올렸다. 자연스럽게 클로에는 각선미 넘치는 다리를 훤히 기레스에게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클로에는 살짝 스커트가 들춰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레스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자신의 맨다리만을 뚫어지게 쳐다 보고 있었다.

'으...'

실수로 속옷을 보게 되는 것도 쑥스럽지만, 이렇게 자신의 살을 적나라하게 내보이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저기 말야. 다리는 꼭 이렇게 안마 해야 해?"

"보통은 눕혀서 하지."

"그럼 어째서.."

"눕는 쪽이 좋은 거냐?"

기레스의 말에 클로에는 살짝 상상해 보고는 답지 않게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기레스라면 그래도 별 문제는 없을거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차마 그것을 자신이 주장하지는 못하는 것이 클로에라는 여자다.

"아니.... 이쪽으로 하자."

"그렇지? 눕혀서 하는 건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그때 하도록 하자고.."

"기회가 안 오면?"

"포기해야지 별 수 있나."

기레스는 전혀 미련 없다는 듯, 심드렁하게 말하곤 천천히 클로에의 다리를 어루만져 나갔다.

'으.. 읏..'

클로에는 간지러움에 살짝 몸을 비틀었다.

'어째서 이렇게..'

그냥 간지러운게 아니다. 기분 좋게 간질여 지는 듯한 느낌으로 다리와는 전혀 상관 없는 목구멍에서 무언가 달달한 응어리가 왔다 갔다하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 좋음이다.

"후와앗."

곧 기레스가 힘을 주자, 다리를 간질이던 그 느낌은 순식간에 상쾌함으로 가득 찼다.

"아팠냐?"

"아니. ..... 시원했어. 도대체 이런 건 어떻게 안 거야?"

클로에는 눈을 껌벅이면서 기레스에게 묻는다. 한차례 다리의 피로가 싹 풀리는 듯한 상쾌한 안마에 클로에는 다리를 주물려지고 있는데도 거부감이 상당히 사라져 버렸다.

물론 단순히 안마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쌓아 온 기레스에 대한 신뢰가 그녀의 의심을 덜어내 주고 있는 것이다.

"글세다. 하다보니까? 의외로 이런 쪽의 재능이 있나보지."

클로에의 다리는 꾹 누르면 부드럽게 푹 들어가면서도 방심하면 금방이라도 손가락을 튕겨낼 것 같을 정도로 탄력있다.

살짝 달아오른 듯, 색이 감도는 다리의 각선미는 바라만 보고 있어도 절로 음심을 들끓게 만들지만 기레스는 필사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며 클로에의 다리를 조물조물 만져 나갔다.

다리의 안마를 받을까 망설이던 것도 잠시, 곧 클로에는 어깨의 안마처럼 다리의 안마도 마음껏 음미하고 있었다. 이미 기레스에 대한 의심은 사라졌는지 눈까지 감아가면서 그녀는 기레스의 손길을 따라 의식을 이동했다.

'과연 이렇게 문지르는 거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딴에는 안마를 배우는 클로에를 보면서 기레스는 몰래 은근히 애무하는 것처럼 음흉하게 손짓을 바꾸어 본다.

정확하게 말하면 애무는 아니지만, 마냥 안마라고도 보기도 힘든 그런 미묘한 손놀림이다.

아직 성경험조차 없고 안마에 대한 지식도 없으며 기레스를 철썩같이 믿고 있는 클로에는 기레스의 그 응큼한 손놀림에 대해 의아함을 품지 않는다. 그저 이따금씩 몸의 피로가 싹 풀리는 시원함에 순진한 마음으로 기분 좋다고 감탄만 해나갈 뿐이다.

"후아.. 후.. 이걸로 오늘은 끝이다."

기레스는 한껏 감각을 몰아세운 클로에의쫄깃한 종아리를 꾸욱 주물러 안마를 마무리 지었다.

"하읏!"

기레스의 안마에 클로에는 근육 깊숙한 곳으로부터 시원하게 다리의 피로가 풀려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뭐라 형언하기 힘든 아찔한 쾌감이 그녀의 몸의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으읏... 방금 숨소리..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았겠지?'

무심결에 내뱉은 자신의 잔망스러운 숨소리를 떠올리고 클로에는 기레스의 눈치를 살폈다.

"후우우... 하아... 하아... 역시 어깨나 팔과는 다르게 다리는 좀 더 힘이 드네. 좀 더 체력을 쌓아둬야 되나.."

바라본 기레스는 정신없이 자신의 숨을 고르기에 바빠하고 있어 그녀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둔해서 다행이야.'

"후우... 그런데 클로에 다리의 안마는 어땠어?"

아직 한여름의 더위에 기레스는 머리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며 클로에에게 물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정말 안마에는 재능이 있는 것 같네."

"말을 해도.. 하일즈의 앞에서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아니지?"

물론 기레스는 클로에가 하일즈에게도 그다지 살갑게 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애초부터 상냥하게 굴었다면 하일즈가 고작 안마 같은 걸로 그렇게까지 기뻐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 뭐 그렇지.."

떨떠름한 어조로 클로에가 대답했다.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레스는 내색하지 않고 곰곰이 생각하는 척을 하면서 말했다.

"내가 보기엔 말야. 하일즈는 인정받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같았거든."

자연스럽게 기레스는 하일즈에 대한 상담쪽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갔다.

"인정..?."

클로에도 하일즈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왔다. 하일즈는 클로에와 함께 지낼 때 인정받고 싶다는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부분은 숨긴다고 완벽하게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수년 간 함께 해왔다면 더더욱 그러했는지라, 기레스의 말을 들은 클로에도 몇몇 짐작가는 부분이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그럴지도.."

"짐작 가는 부분은 있는 모양이지? 그러면 다음에 하일즈가 노력한 모습을 보이면 칭찬을 해줘보는 건 어때? 선물도 좋지만 이런 작은 것 하나 하나에도 남자는 감동한다고."

"그런가?"

"그렇다니까. 나만해도 네가 내 실력을 인정해 준 것에 지금 상당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거든."

클로에는 기레스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괜시리 자기만 쑥스러워져 불만스럽게 그를 살짝 바라보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작게 중얼 거렸다.

"칭찬.. 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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