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클로에(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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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스는 클로에의 잘 갈아 바짝 날이 선 듯한 예쁜 육체를 끈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따로 불빛을 낼 수 없는 구교실은 그늘로 가득 차 있었지만 클로에의 매력은 그런 그림자로 지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클로에는 단아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소피아처럼 수수한 옷이라기 보다는 제복을 연상시킬 것 같은 깔끔한 차림새다. 기레스의 학교는 따로 복장에 대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정갈한 차림새를 선호했다.
소피아가 완숙한 아름다움의 결정체라고 한다면 클로에는 아직 완벽히 여물지 못한 과실만의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잘 익은 사과는 맛있지만 아직 덜 익은 풋사과 또한 풋사과 나름대로의 새콤한 맛이 존재하는 것이다.
기레스는 천천히 클로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안마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어깨 주무르기를 시작한 것이다.
겉은 탱글탱글하면서도 살짝 쥐면 그 안은 이루 말할 것 없이 말랑말랑하다. 언제까지고 한없이 주무르고 싶은 클로에의 야들야들한 피부를 기레스는 조물조물 능숙하게 만져 나간다.
'음? 기레스 녀석 제법인데?'
클로에는 눈을 크게 뜨고 남몰래 놀라고 있었다. 어깨를 주무르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눈이 톡 하고 트일 정도로 상쾌한 느낌이 어깨를 통해 목을 타고 그녀의 머리에 전해진다.
기레스의 말이 거짓일거라 확신했던 건 아니었지만, 평소 보여주던 그의 처참한 재능을 생각해 볼때, 그녀는 높은 확률로 기레스의 착각일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기레스가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클로에는 외간남자에게 자신의 피부를 만지게 한다는 저항감을 거의 지우게 되었다. 안마에는 문외한이나 다름 없는 클로에지만 기레스의 손에 끈적한 사심이 없다는 것쯤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소 엉망으로 어깨를 주무르는 것 같지만 그 행동에는 상쾌함을 느끼게 하는 경쾌한 절도가 있었다.
'안마라는 게 이렇게 시원한 거였구나.'
자신의 어머니에게 안마를 해준 적은 많았지만, 클로에는 안마를 받아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일반적인 안마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철썩같이 믿고 있는 기레스의 실력이 어느정도인지를 가늠하지 못하고, 당연히 그 기술의 깊이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재능의 표적을 조금 옮겨 버리는 것만으로도 기레스와 클로에의 입장은 손쉽게 정반대가 되어 버린다. 기레스의 입장에서 보면 클로에는 도마 위에 올라가 있는 생선이나, 무기력한 백치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무방비해 보인다.
기레스는 보드라운 클로에의 살을 쓸어 내려 가면서 천천히 클로에 자신도 모르는 육체를 천천히 알아나간다. 클로에의 가는 어깨선을 따라 기레스의 손가락은 물 흐르듯 유려하게 움직인다.
'이녀석..'
기레스 정도의 실력이 되면 몸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대략적인 여체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다. 척수반사처럼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작은 반응 하나 하나는 무엇 하나 버릴 수 없는 천금같은 정보다. 손 끝에 전해지는 미약한 살결의 떨림이나, 호흡소리, 표정 등 모든 오감에서 전해지는 정보로 기레스는 클로에 자신도 모르는 비밀을 훤히 풀어 헤쳐 버린다.
'이 반응..'
기레스는 클로에의 반응을 보면서 그녀가 처녀라는 것을 확신했다. 민감해도 너무 민감했던 소피아와는 다르게 클로에는 둔감해도 너무 둔감했다. 물론 기레스는 클로에의 어깨를 조금 주무른 것만으로도 그녀의 성감대가 어디인지, 또 어떻게 깨워 나갈지 이미 견적을 전부 뽑아낸 상태였지만, 어깨에 있는 성감대를 스쳐도 클로에의 반응은 너무나도 미미했다.
클로에는 섹스의 쾌락은 물론이거니와, 자위조차도 해본 적이 없는 순진한 처녀인 것이다.
'설마 하일즈가 아직도 클로에를 안지 않았을 줄이야.'
하일즈와 클로에와 알고 지낸 시간은 한 두해의 일이 아니다. 사귄 시간만 해도 수년 째, 거기에 소피아만큼은 아니라곤 하나, 이미 완연한 청년과, 숙녀가 된 둘이었기에 기레스는 이미 클로에의 처녀는 진작에 하일즈가 가져갔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 자기애의 화신인 하일즈가 지금까지 클로에를 가만 두었다는 것은 기레스로서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처녀인가..'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클로에의 처녀막을 가져가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가진 무기가 너무 부족했다.
'그래도 처녀라는 사실은 이용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군.'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그는 자신의 엄지에 힘을 가했다. 주물 거리면서 조금씩 클로에의 쾌감을 유도해 모아놓은 성감대에 힘을 가한 것이다. 그리곤 기레스는 먹이를 보는 독수리 같은 눈으로 클로에의 반응을 살폈다.
'우와. 기분 좋아!'
클로에는 자신의 몸에 느껴지는 기이한 기분 좋음에 화들짝 놀라며 생각했다. 섹스는커녕 자위조차 해본 적이 없는 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클로에는 기레스의 쾌락을 단순히 안마 때문에 기분이 좋은 것이라고 착각했다.
'안마라는 건 이렇게까지 기분 좋을 수 있는 거구나.'
클로에는 성에 대한 쾌감을 모르는 거지, 성욕이 없는 게 아니다. 보통의 남녀들처럼 발정해서 자위하고 섹스하며 쾌락을 탐하는 즐거움을 그녀는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클로에는 기레스의 손길에 몸을 맡겨 살짝 눈을 감았다. 자신의 손에 의심하지 않고 몸을 맡기는 그 클로에의 행동에 기레스의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서렸다.
기레스는 작정하고 마음을 먹으면 클로에의 마음에 음심이 끓어오르게 만들 수 있음에도, 단순히 안마라고 느낄 아슬아슬한 쾌락만을 고집했다.
상쾌하다고 생각하면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은 쾌락은 클로에의 어깨에서 넘실거린다.
기레스는 클로에의 어깨선을 따라 천천히 그녀의 팔 쪽으로도 손을 옮겼다. 살짝 달아올라 선홍빛을 머금은 피부를 어루만져 쓸어 내려가는 그 행위는 어깨를 주무를 때와는 달리 제3자가 본다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어 보였지만 정작 안마를 당하는 당사자인 클로에는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팔도 조금 뭉쳐 있구만."
기레스는 클로에의 팔을 펼치고 살짝 만져 보고는 수도로 그녀의 팔등을 톡 하고 쳤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 건드려진 부위에서는 응어리가 풀린 것 같은 시원함이 몰려 왔다.
기레스는 여체를 유린하는 것 외에도 실제 안마를 하는 것에도 능숙했다. 어디까지나 클로에의 입장에서는 안마로 밖에 느껴지지 않도록, 기레스는 클로에의 성욕을 살살 건드리면서도 진짜 안마를 섞는 것으로 클로에의 의심을 서서히 녹여 나갔다.
양 팔과 어깨를 마치 도기를 빚는 것처럼 원하는 대로 만지고 주무르면서 기레스는 클로에를 정성껏 안마해 주었다.
"어이. 클로에."
"엇!?"
"다 끝났어."
"벌써?"
실제로도 잠시 정신을 잃었었지만, 클로에는 뭔가 푹 자고 난 후의 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벌써라니.. 그래도 30분에 가깝게는 했다고.."
구교실에 걸려있는 옛날 풍의 구형 시계를 보니 기레스가 말한 대로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어라? 고작해야 10분 정도 받은 것 같았는데..'
하지만 시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깨부터 시작해 팔까지 엉키고 섥혀 있던 무언가가 날아가서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기분이 클로에의 상반신에 넘쳐 흘렀다.
"어때?"
"뭐?"
"뭐가 뭐?냐. 내 안마가 소질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었잖아."
"아 아아.. 그랬었지."
클로에는 어느샌가 이 안마의 목적을 잊고 있었다. 언제나 냉정하며 똑 부러진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다.
"솔직히 놀랐어. 사실 기레스 네가 잘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거든."
"그렇다는 건.."
"그래. 정말 기... 잘하더라. 자부심을 가져도 될 정도로.."
클로에는 어쩐지 '기분이 좋다' 라고 말하는 것이 살짝 꺼려졌다.
'어라? 왜지?'
안마가 기분이 좋다고 말하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의미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그것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좋았어!"
기레스는 좋아하는 기색을 숨길 생각도 없이 방방 뛰면서 밝게 웃었다.
'저렇게 웃기도 하는구나.'
클로에는 기레스를 만나 오면서 저런 미소를 지은 것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학교에서 홀로 외로히 지낼 때는 당연했지만, 자신에게 돈을 빌려줄 때나, 친구가 되어서 공부를 돌봐주던 무렵에도 기레스는 저런 웃음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 기레스의 즐거워 하는 모습에 클로에는 '처음으로' 기레스에게 빚을 갚은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정말 고맙다. 클로에. 내가 인정 받은 건 이번이 두번째야!"
태어나서 두 번 밖에 인정받지 못했다는 말을 꺼내면서도 기레스의 표정은 태양처럼 밝아서 클로에마저 흐뭇한 엄마 미소를 짓게 만들 정도였다.
"저기 그런데 말야.."
기뻐하던 기레스는 살짝 망설이며 클로에의 눈치를 살폈다.
"왜?"
"잘한다고 칭찬해 준 건 고마운데.. 혹시 이후에도 이렇게 안마를 해줘도 될까?"
"어째서?"
"사실 지금 내가 네게 보여준 안마는 아직 10분의 1도 채 보여주지 못했거든.."
'그러고 보니 발이나 목 같은 부분은 아직 안마를 안했던가..?'
"하지만 그 10분의 1만으로도 훌륭하던데? 그거면 된 것 아냐?"
애초에 소질의 여부를 감평 받기 위해 시작된 안마이기에 클로에의 지적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안마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마땅찮잖아.. 클로에 너까지 인정 했다면 아마 나도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 것일 테니까.. 이 기술을 조금 더 갈고 닦아 보고 싶어서 말이지."
"그거라면 부모님에게 해도 상관 없는 것 아냐?"
기레스는 손가락을 까딱 거리면서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완벽초인인 너도 안마의 세계는 잘 모르는 모양이네."
'안마의 세계..?'
클로에는 살짝 고개를 갸웃 거리며 생각했다.
"너도 그랬지? 답이 정해져 있는 시험과는 다르게 안마는 성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기레스의 거들먹 거리는 말에 클로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마를 받기 전에 자신이 꺼낸 말이다.
"안마는 말야. 정답이 없어. 물론 어느 정도 기본적인 틀은 있지만, 사람마다 어떻게 안마를 해야 되는지는 각각 다른 법이거든. 똑같은 부위의 안마를 해준다고 해도, 부모님에게 하는 안마와 네게 하는 안마는 완전히 다르다는 거지."
실제 기레스의 안마 안에는 여성의 성욕을 깨우는 기레스 만의 끈적한 기술이 담겨 있었기에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마다 가지고 있는 성감대는 각자 다르고, 그 안에서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만져 나가느냐에 따라 성감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네가 인정해 준 게 기뻤거든. 기분 나쁘진 않았던 거지?"
"어.. 뭐 그렇지."
확실히 기분은 좋았다. 안마를 끝마쳤을 때의 그 후련함과 상쾌한 기분은 그녀가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기레스는 그녀가 충분히 쾌감이라는 끈적한 말을 떠올리게 만들 수 있었음에도 적절하게 클로에에게 쾌락을 심어 주면서도 '안마를 받은' 상쾌한 느낌이 들도록 조율했다.
"나는 그게 좋았어. 내 손으로 소중한 사람의 도움이 된다는거.. 생각보다 기쁘더라고."
기레스는 순진무구한 눈으로 전에 없던 열혈의 느낌이 드는 오글거리는 말을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소중한 사람이라니."
냉정한 클로에의 눈에 살짝 당혹감이 섞이기 시작했다.
"아.. 오해는 하지 마. 사랑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너에게 나는 수많은 친구 중에 하나겠지만 나한테 넌 유일하게 생긴 첫 친구잖아. 그런 의미로 소중하다는 거야."
그렇게 듣고 보면 기레스의 말은 일리가 있다. 오히려 특별하지 않게 생각하는 게 이상하다면 이상한 것이다.
"그런 의미라면.. 나도 네가 그렇게 소중하지 않은 건 아냐."
클로에는 기레스에게서 살짝 눈을 돌리며 말했다.
"말뿐이라도 고맙네."
겉은 냉정함을 가장했지만 내심은 꽤나 당황해하는 클로에와 다르게 기레스는 정말로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아이처럼 마냥 좋아라 하기만 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라 해도 저렇게 좋아했을지도.'
마을 전체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지옥 속에서 겨우 사귄 첫 친구라는 것은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클로에가 생각하기에도 각별해 보이긴 했다.
지금까지 어떠한 일도 제대로 못해서 무능의 낙인을 달고 살았던 소년이 소중한 친구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설사 직접적으로 겪을 수 없다고 해도, 클로에는 그 상황에서 얻을 감동의 편린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기레스가 자신의 앞에서 '처음으로' 보인 진심의 행복을 클로에는 자신의 손으로 꺾고 싶지는 않았다. 거기에 클로에도 기레스가 행복해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다는 것에 꽤나 만족하고 있었다. 비단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어서 기쁜 건 기레스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도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았고.. 한다 해도 제압하면 되니까... 아니, 애초에 그런 녀석도 아니고..'
이미 클로에의 기레스를 향한 의심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딱히 잘못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클로에는 살짝 고인 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확실히 기분은 좋았으니까..'
어느 것 하나 하지 않아야 될 이유가 없다. 딱히 안마는 부정한 행위가 아니니까.. 기레스나 클로에나 좋은 것은 존재해도, 나쁜 것은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알았어. 하지만 이전에도 말했지만, 음란한 건 금지야."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결말이 무엇일지 클로에는 전혀 알지 못한 채 순진하게 그리 대답했다.
클로에가 보송보송한 처녀라는 것을 눈치챈 기레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헛웃음이 튀어나올 대사가 아니라 할 수 없었다.
"할거면 오늘 진작에 하지 않았을까?"
'진짜 음란한 게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그렇게 기레스는 속으로 클로에를 조소하며 클로에를 어떻게 조리할까 음탕한 계획을 생각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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