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클로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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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기레스는 소피아의 치마폭에 둘러 쌓여 즐거운 나날을 한껏 만끽했다.
당장 누군가를 꼭 손에 넣어야 할 정도의 필요성은 없었기 때문에 기레스는 천천히 다른 여자를 공략하기 위한 준비시간을 가진다는 명목 하에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별다른 성과는 없었지만 기레스는 조급해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조급해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어차피 마을 내에서 이제 기레스는 괴롭힘을 당하는 존재가 아니었고, 이미 기레스의 수중에는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여자인 소피아가 들어온 상태였기에 그는 소피아를 품어가며 넉넉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소피아와 그렇게 살을 뒤섞으면서 환락에 빠졌음에도 기레스는 역시나 그녀가 전혀 질리지 않았다. 이세계의 여성. 아니 소피아라는 여성은 전생의 여자들보다 강인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기에 전생의 여자들로는 실험해보지 못한 것들도 얼마든지 이용해 볼 수 있어서 도리어 안으면 안을수록 흥미가 생길 정도였다. 그런 밤낮 없는 정사의 끝에 소피아는 드디어 임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젤가는 소피아의 임신 소식에 뛸 듯이 기뻐했다. 신혼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더욱 소피아에게 빠져버린 지금, 젤가는 사랑하는 소피아와 자신 사이의 자식이라는 것은 신이 내린 선물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비단 젤가 뿐만이 아니라, 하일즈와 티나도 다소 나이 차이는 많이 나기는 하지만 동생이 생긴다는 사실에 기대를 한껏 부풀리며 신기해 하고 있었다.
그런 경사스런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소피아는 즐거운 듯하면서도 요망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던 것이다.
"으읏.. 기레스의 아이를 임신한 것은 좋은데 기레스와 섹스를 못하게 되다니.."
소피아는 기레스의 육봉에 자신의 뺨에 대고 문지르면서 불만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보드랍고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소피아의 뺨이 자신의 육봉을 스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흥분감을 불러 일으켰다.기레스가 소피아의 여체를 탐구하듯 소피아도 기레스가 어떻게 하면 기뻐할지를 그간의 시간동안 실컷 탐구해 온 성과다.
자신이 좀 더 거근이었다면 정복감도 느낄 수 있었겠지만 그것이 배부른 소리라는 것을 기레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근데 내 아이는 맞는거야?"
"당연하지."
소피아는 기레스의 질문에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분명히 여행을 갔다 온 당일에 젤가에게 안겼잖아? 알리바이를 만든답시고."
"그 날이 안전일이었거든."
소피아는 교태스럽게 웃으며 기레스의 말에 답했다. 기레스는 안전일을 계산해서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요사스러움에 어깨를 들썩이면서 만족해 했다. 그런 기레스의 모습을 보면 절로 몸이 달아 올라서 흥분에 젖어버리는 소피아다.
"하지만 안전일이라고 해도 젤가의 아이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잖아?"
"없어. 피임 마법도 사용했으니까."
"그럼 알리바이가 아니잖아?"
"정자를 지워버리는 마법도 있거든."
'애프터 필인가.. 정말 마법이라는 건 뭐든 되는거구만. 그나저나 정자를 지워버린다니.'
소피아의 곱디 고운 입에서 튀어나온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온 젤가의 정자를 지워버렸다는 말은 어쩐지 배덕적이게 들린다.
"기레스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하고 싶어?"
"별 관심이 없다고 하면?"
소피아는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만지면서 생각하고는 말했다.
"무책임한 것이 멋지다고 생각하려나?"
"그럼 관심이 있다고 하면?"
"상냥해서 좋다고 생각하겠지?"
소피아에게 기레스의 행동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개차반 같은 인간이라면 '그렇기에' 좋고, 성실하고 착하다고 한다면 역시 '그래서' 좋은 것이다. 그녀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레스의 행실이 아니라 기레스라는 존재 그 자체였다.
"그럼 소피아의 취향에 맡길까?"
"그럼 무책임한 쪽으로?"
소피아는 녹아내릴 듯한 요염한 얼굴로 기레스의 목에 키스를 하면서 속삭였다.
"의외인데? 내 자식이니까 잘 대해주기를 원할 줄 알았더니."
"그야... 무책임한 쪽이 좀 더 배신하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잖아? 기레스의 자식은 내가... 아니 젤가가 책임지고 기르도록 만들테니까.."
기레스조차도 등골이 오싹오싹해질 정도의 배신의 언약이었다.
"기레스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사랑을 다해 키우면 그뿐이니까."
"그럼 내가 내 자식을 괴롭히라 한다면?"
"읏..."
그 말에는 소피아도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젤가나 다른 자식들은 이미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뱃속에 있는 자식은 그 '기레스'의 자식. 그녀에게는 세상에서 기레스 다음으로 중요한 아이인 것이다. 하지만 이내 소피아는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기레스에게 말했다.
"그게.. 명령이라면.."
어쩐지 그 입가에는 그 부정의 행위를 바라는 것 같아 보이는 미소가 서려 있었다.
기레스에게 정신마저 잔뜩 조교되어 버린 소피아에게 '절대 해서는 안되는' 그리고 '하기 싫은 일'을 기레스에게 명령받는 것은 언제나 극상의 초콜릿을 맛보는 것처럼 달콤하게 느껴져 버린다.
"뭐 그럴 일은 없지만.."
소피아의 만족스러운 대답에 기레스는 어깨를 으쓱 거리면서 말했다. 기레스는 자식에 대해 일일히 애정을 가지는 성격은 아니지만 타인의 자식도 아니고 제 자식을 구태여 괴롭히는 취미는 없었다.
"아.. 그렇지?"
소피아의 말투에는 어딘지 아쉽다는 듯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그런데 기레스는 괜찮아?"
"뭐가?"
"한동안 섹스하지 않았잖아. 아쉽진 않나 해서.."
"아쉽지 않을 리가 없잖아."
기레스의 그 말에 소피아의 얼굴에는 기쁜 화색이 감돌았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성욕은 풀어주고 있고.. 나는 그다지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니까 말이지. 어떤 의미로는 좋은 휴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말야.."
"헤에.."
'생각보다 지쳐 있었던 걸까?'
소피아와의 섹스는 언제든 즐겁지만 음마 저리가라할 정도의 왕성한 성욕과 체력을 자랑하는 그녀가 진심으로 어울려 달라고 요구하면 기레스의 몸은 남아나지 못했다. 기분이 좋은 건 좋은 것이고 지치는 것은 지치는 것이다. 물론 영리한 소피아는 적당히 기레스의 체력을 보아가면서 요구해 왔기에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기레스가 지쳐서 그녀를 피할 일은 없었지만 가끔은 휴식을 취하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걱정을 할 일도 없었을 텐데.'
두고두고 이세계에서의 이 저주받은 신체는 아쉽기 짝이 없다. 앗싸리 주변에 여자가 없다면 그런 기분을 덜 느꼈겠지만 기레스의 곁에는 나라를 휘청이게 만들 수 있는 역량의 미모를 지닌 소피아가 곁에 있다. 그렇기에 아쉬움의 불길은 기름이라도 끼얹어진 것처럼 더욱 커져만 갔던 것이다.
"가이아스 구해다 줄까?"
소피아는 눈을 반짝이며 기레스의 명령만을 기다렸다.
"얻어서 뭐하게? 어차피 섹스도 못하고 집이어서 제대로 즐기지도 못할 걸."
"그래도 한가득 마실 수 있을거고."
소피아는 혀를 냘름거리며 가이아스의 마법을 이용해 기레스의 정액에 흠뻑 젖었던 여행을 떠올렸다. 기레스와의 성교는 언제나 황홀했지만 역시 그때의 여행은 소피아에게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굉장히 각별했다.
"됐어. 그런 돈이 있다면 나를 위해 아껴둬."
"뭔가 돈 쓸 일이 있는거야?"
"지금은 없지만 돈이라는 건 있으면 있을수록 좋으니까."
"그런 건가?"
기레스만 옆에 있으면 뭐든 좋은 소피아는 고개를 갸웃이며 그렇게 묻는다.
"그런거야."
"응..... 아흐으으응♥"
기레스는 그렇게 되묻는 소피아가 배가 불렀다고 생각하면서 살짝 심술을 부리며 몸을 꼬집어 절정에 이르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좀 더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옷 위로도 배가 불러온 것이 선명하게 느껴질 무렵이 되자 유달리 하일즈와 티나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덕분에 소피아는 자신의 유일한 낙이었던 기레스를 애무하는 시간조차 빼앗겨 연신 불만을 내뱉곤 했다.
'무슨 일이지?'
기레스가 보기에 곧 동생이 태어나기에 그것이 기대가 되어서라는 이유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소피아의 만삭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아니요. 최근 하일즈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티나는 의아해 하기는 했지만 크게 신경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흐음..'
티나와는 다르게 하일즈는 젤가를 닮아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소피아에게 자신의 치부를 들키는 수준이 아니라면 언제나 가면을 쓰고 평정심을 가지며 우등생을 연기하는 것이 하일즈라는 인간이다. 하일즈가 저렇게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일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클로에와 무슨 일이 있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최근 집에 많이 머무른 이유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하일즈가 집에 머무는 것은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며, 평소에도 자주 집을 들낙거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집에만 틀어박히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저기.."
기레스는 조심스럽게 하일즈에게 말을 걸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하일즈는 자신에게 딱히 해코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레스를 살갑게 대해주는 것도 아니었기에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둘의 관계는 언제나 서먹한 채였다.
"뭐야?"
평소와는 다르게 날이 서린 말투를 하고 하일즈는 아차 싶어서 표정을 풀면서 말했다.
"아.. 아니 무슨 일이야. 형."
"요즘 표정이 안 좋은 것 같아서.. 혹시 무슨 일이 있나 해서 말야."
기레스는 순간 쫄았다는 듯한 연기를 보이고는 쭈뼛거리면서 물었다.
'하 이 눈치없는 새끼..'
예나 지금이나 눈치가 없는 건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며 하일즈는 당장이라도 쥐어 패서 밟아 버리고 싶은 욕망을 꾹꾹 눌러 참아냈다.
"형이 상관할 이야기는 아냐. 그냥 좀 생각할 게 있었거든."
"그러고 보니 요즘 클로에와 만나지 않는 것 같던데.."
기레스는 눈치 없는 바보 연기를 하면서 눈치가 있다면 해서는 안될 말을 쉽사리 내뱉었다.
"하 씨.."
하일즈는 표정을 일그러트리고는 그대로 젤가의 기술을 이용해 기레스의 팔을 강타했다.
"으윽..."
기레스는 시큰 거리며 부어 오르는 것만 같은 팔을 부여 잡고 비틀거리다가 한심하게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옛날 자신을 쥐어 패던 정도로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고통에는 익숙해 질수가 없다.
"하 하일즈."
두려움에 울상을 지은 기레스를 앞에 두고 하일즈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후우. 어지간하면 참으려 했는데 정말 눈치라고는 하나 없는 머저리새끼네. 어머니에게 고자질하고 싶다면 고자질해도 좋으니까.. 성가시게 굴지 말라고!"
하일즈는 그와 동시에 주저 앉아 있는 기레스를 걷어 차려 하다가 소피아를 생각하고는 씩씩 거리면서 그대로 기레스를 지나쳤다. 바닥에 주저 앉아 팔을 움켜줘고 있던 기레스는 그런 하일즈의 태도를 보고 그가 클로에와 무슨 일이 있었다는 확신을 가지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클로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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