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계네토기-34화 (34/238)

〈 34화 〉 소피아(33)

* * *

세프람 제국의 동쪽 히벨리에는 해양 관광 명소로 유명한 지역이다. 4대 도시라 불리우는 도시들에 비해선 그다지 큰 도시는 아니지만 휴양지로는 세프람 내에서도 손을 꼽는 명소로 유명했다.

마차에서 내려 얼마 간 걸어가자 바닷가 특유의 짠내가 기레스의 코 끝을 찔러온다.

"그런데 기레스."

"네?"

"그 가방 안에는 뭐가 들은 거니? 네 용품들은 전부 여기 들어 있잖아."

소피아는 짐을 챙길 때, 아직 어린 기레스의 짐들도 전부 챙겨 준비했기 때문에 기레스가 따로 가방을 들고 온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기레스는 소피아를 향해 살짝 미소지어 보이고는 말했다.

"그건 밤의 즐거움을 위한 비밀로 해둘게요."

"음? 으 으응."

한껏 달아오른 몸에 기대까지 더해져 소피아는 귀까지 발갛게 물들이며 대답했다.

'기레스'도' 뭔가를 준비해 온 모양이네.'

이 여행에 대한 기대를 한 것은 자신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자 괜시리 소피아의 마음은 푸근하게 데워졌다.

'기대된다.'

끈적한 밤의 정사를 상상하며 소피아는 입안에 고인 군침을 삼켰다.

"기레스 저기 봐 저기."

소피아는 돌을 쌓아 만든 둑에 올라 손짓하며 말했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아릅답게 햇살을 반사하며 끝도없이 펼쳐진 드넓은 바다가 있었다.

"엄마도 바다가 처음이에요?"

"아니. 기레스가 처음이잖아."

참으로 소피아다운 말이라 할 수 있었다. 기레스가 처음이기에 그녀는 이처럼이나 신나하고 있는 것이다. 전생에 그런 새콤달콤한 감상따위는 질색을 했던 기레스지만 상대가 소피아라면 그것조차도 그다지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지.'

속으로는 질색을 하면서도 그는 겉으로는 초롱초롱한 눈을 만들어 보이면서 과장된 제스쳐를 취했다.

"와아.. 정말 멋지네요."

"그렇지?"

소피아는 신이 났는지 훌쩍 둑에서 내려와 그대로 기레스를 잡아 들어 목마를 태우고는 한달음에 가장 높은 돌무더기까지 올라갔다.

'무 무서워.'

조교를 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는 위엄이 필요했기에 차마 그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위태위태한 돌무더기에 올라 흔들거리는 소피아의 목마까지 타게 되자 아직 어린아이의 체격에 불과한 기레스는 그 높이에 소피아의 살의 감촉을 느끼는 것도 잊은 채, 살짝 두려움을 느끼며 앞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절경이군.'

높은 곳에서 탁 트인 넓은 바다를 보는 것은 과연 절경이었다.

'어쨋든 이런 분위기는 위험해.'

소피아의 모성을 깨우는 것은 그다지 원하는 바가 아니었기에 기레스는 살짝 소피아를 간질였다.

"아힉!? 기 기레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소피아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서 당황한 체 했다.

"누가 있나요?"

주변에는 기레스도 알기 쉬울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모래사장의 해변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인적이 조금 드문 장소였던 것이다.

"어 없지만.."

소피아는 툴툴거리는 척하며 기레스를 내려 주었다. 하지만 내심 기레스의 음란한 장난이 기분 좋았는지 그녀의 입꼬리는 귀에 걸려 있었다.

"생전 처음 바다를 본 기분은 어때?"

'처음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기레스는 소피아의 심정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이세계는 자신이 전생부터 살아 온 대한민국 같은 나라는 아니다. 유페르 가문은 마을 내에서도 손을 꼽는 유력자로 사실상 귀족이나 다름 없을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 마을을 둘러다 보면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살아가는데 급급한 사람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직 어린 기레스일지라도 정신은 어른인데다 이미 이세계의 쓴맛이란 쓴맛은 볼대로 다 봤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전생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과 돈만 마련할 수 있다면 여행을 갈 수 있지만, 이세계에서는 그런 시간과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은 상당히 한정적이라 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바다를 본 일이 없는 사람 같은 것은 이세계에서는 매우 흔한 일인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게 바다를 보여준 것이 기쁜 거겠지.'

순수하게 소피아가 자신을 생각해 주는 것을 자각하면 기쁘기 한량없다.

'처음 바다를 봤을때의 기분이 어땠더라.'

그는 과거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런 풍경 따위에 의미를 가질 기레스가 아니었기에 당연히 바닷가에 오는 추억이라고는 자신이 후린 여자와의 불륜여행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기레스다. 그 검고 추잡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기레스는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음. 기레스? 뭔가 불쾌한 걸 생각한 것 같은데.."

'요새 어째 상당히 예리해 졌단 말야.'

별 트집 잡힐 행동을 한 적이 없음에도 소피아의 감각은 굉장히 날카로웠다.

"아 아뇨. 바다는 왜 파랄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물이 파란가요?"

기레스는 어린아이다운 순진한 질문을 하며 능숙하게 둘러댔다.

"어? 듣고 보니 그렇네. 왜 파란 걸까?"

정사때는 이미 요부나 다름 없는 소피아지만, 평소에는 아직도 풋풋한 청순함을 잃지 않은 소피아를 이번 여행으로 잔뜩 덧칠할 기대에 기레스는 연신 입가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소피아는 곧장 숙소에 가서 짐을 풀었다. 돈을 아낄 생각은 없다며 그녀가 호언장담한 대로, 그녀가 잡은 숙소는 척 보기에도 귀족들이나 사용할 것처럼 고급져 보였다.

"어서오십시오."

정갈한 차림새의 복장을 한 여주인은 소피아와 기레스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소피아는 예약 접수를 확인하고 기레스와 함께 방안으로 들어갔다.

'한여름인데도 시원하군.'

방안을 두리번 거리던 기레스는 서늘함과는 전혀 다른 확연한 시원함에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것이 마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륵]

'음?'

옷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뭐지? 설마 이런 낮부터 하고 싶은 건가?'

너무 발정 시켰나 하는 생각을 떠올리면서도 소피아의 완벽한 나신을 보지 않는다는 선택지 따위는 남자라면 고를 수 없었다.

"어엇?"

"으음.."

소피아는 얼굴을 붉히면서 굉장히 수줍어 하고 있었다. 그 짧은 사이에 그녀는 수영복으로 갈아 입은 것이다.

탱글탱글한 몸매를 가감없이 매력적이게 돋보이게 하는 멋진 비키니 차림의 수영복이다.

유방을 간신히 가려 옆가슴과 밑둥의 젖무덤이 살짝 도드라진, 말그대로 터질듯한 몸매를 뽐내는 비키니브라와, 끈팬티나 다름 없을 정도로 맨살을 보란듯이 훤히 노출하는 비키니의 하의는 절묘하게 굴곡어린 소피아의 신체의 매력을 한껏 돋보이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검은 수영복의 색은 대리석처럼 새하얗다 못해 투명히 비치기까지 하는 소피아의 피부색과 대비되어 더욱 더 선명하게 소피아의 몸의 곡선미를 뇌리에 각인시켜 준다.

소피아의 나신은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이런 수영복은 수영복 나름대로 나체와는 차별된 아름다움을 물씬 풍기게 만들었다.

[꿀꺽]

여체라고 하면 질릴 정도로 봤다 자부하는 기레스지만 소피아의 그 모습에는 과연 넋을 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 어때?"

수줍어하며 우물쭈물 거리는 자세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인 가슴을 보고 기레스는 머리에 피가 쏠리는 느낌을 받으며 말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덮쳐 버리고 싶을 정도네요."

"얘 얘는! 그런 상스러운 말은 어디서 배웠어!"

소피아는 귀엽게 성을 내며 말했지만 언성만 높았지 그녀의 표정에는 싫은 기색 따위는 한조각도 실려있지 않았다. 되려 소피아는 기레스의 말에 덮쳐져 버리고 싶은 마음에 요염한 눈빛으로 살짝 다리를 꼬면서 도발적인 자세를 취했다.

"후... 하..."

기레스는 깊게 숨을 내쉬며 금방이라도 이성을 잃고 소피아의 저 맨살에 얼굴을 파묻고 싶은 욕구를 집어 삼켰다. 안달나지 않고자 하는 사람을 안달이 나버리게 할 정도로 소피아의 몸매는 고혹적이었다.

'그나저나 소피아가 저런 수영복을 준비했단 말이지.'

소피아는 자신의 속살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기레스와 살을 섞은 뒤로 더더욱 아름다워진 그녀지만, 이미 젊었을 무렵부터 소피아는 능력때문이든 외모때문이든 어디서든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왔다. 나이가 들면서 다소 무감각해졌다고는 해도 소피아의 내면에 타인에 대한 시선의 부담감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다.

시골 아줌마나 입을 법한 펑퍼짐하기 짝이 없는 옷을 입어도 그녀의 매력에 흠집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소피아는 정말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기레스를 만나기 전, 평소의 소피아였다면 노출도가 극도로 적은 수영복을 골랐을 것이며 그조차도 달갑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런 수영복이라고 해도 소피아의 육감적인 몸매의 매력을 무디게 만들지 못했을 것은 명백했다.

기레스는 소피아가 저런 다소 야한 수영복을 고른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소피아가 그런 수영복을 고른 이유는 당연히 기레스 때문이다. 단순하게 기레스가 자신을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기레스에게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으며, 기레스라면 이런 수영복을 원할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영복을 고른 이유가 기레스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소피아에게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몸에 배인 습관이나, 수치심보다도 기레스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와서는 새삼스러울 정도의 일이지만 기레스의 부탁이나 강요가 아닌 소피아가 '스스로' 그것을 결정했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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