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소피아(31)
* * *
소피아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씨어드는 뷔넨에 도착했다.
'여기가 뷔넨.'
세프람의 4대도시라고 불리우는 뷔넨은 확실히 거대했다. 기레스의 마을도 작은 도시 소리를 들을 정도로 큰 마을이기는 하지만 대도시인 뷔넨에게는 비비는 것이 뷔넨에 실례일 정도로 큰 도시였다. 건물들도 상당히 빽빽하게 세워져 있어 말 그대로 도시라는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자 도착했습니다."
도시의 안에는 상당히 많은 씨어드가 존재하고 있었다.
'공항을 보는 것 같군.'
기레스의 마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지만, 이런 대도시에서 씨어드라는 생물은 흔하디 흔한 존재인 것처럼 보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노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손님들을 받는 씨어드 조련사가 보인다. 기레스와 소피아만을 태운 초로의 노인과는 다르게 안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씨어드의 위에 탑승하고 있었다.
"그럼 좋은 여행 되십시오."
노인은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해 소피아를 배웅하고는 다른 기수들처럼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기레스가 살아왔던 마을과는 또 다른 모습의 사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기레스는 뷔넨을 둘러보며 내심 놀라고 있었다. 기레스가 살았던 현대의 대도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세계에서도 대도시쯤 되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컸다.
지금은 정확하게 생각할 수 없었지만 기레스가 태어난 장소도 유목민족 같은 작은 마을부족이었고, 소피아에게 입양되어 살게 된 마을도 마을 치고는 확실히 컸지만 시골 느낌이 물씬 풍기는, 현대로 따지면 지방의 소도시라는 느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뷔넨은 이세계에 대한 기레스의 고정관념을 부술 정도로 발전된 도시였다.
'어린아이의 시점은 이런 건가.'
정신은 이미 중년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기레스였지만, 몸은 아직 어렸기에 기레스는 시선에 들어오는 광경을 대부분 올려다 보아야 했다. 머리로는 이정도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른과 아이라는 시각 차는 그에게 이질적인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정신이 육체를 이끄는 것처럼 육체도 또한 정신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저기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가는 건가요?"
"응. 전이역으로 갈거야."
'전이역?'
기레스는 처음 들어 보는 말에 고개를 갸웃 거렸다. 소피아는 기레스에게 정이 뚝뚝 떨어지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기레스는 아직 한번도 해본 적이 없겠구나. 우리 세프람의 수도를 포함한 다섯개의 도시는 서로 이동이 가능한 마법진으로 연결되어 있단다."
"이동이라고요? 얼마나 걸리는데요?"
"음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값은 조금 나가는 편이지만.."
'마법은 그런 것도 가능한 건가?'
기레스는 소피아가 말하는 것이 만화나 소설에서나 나오는 순간이동계열의 마법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세프람에 해안가는 동부쪽에 모여 있거든. 그래서 동쪽의 4대도시인 엘룸으로 향하는 마법진을 이용할 거야."
기레스는 소피아를 따라 빼곡히 세워진 건물의 숲을 거닐었다. 거리에는 자신이 살아 온 마을과는 전혀 다른 수많은 인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미남미녀들이 즐비한 이세계에서도 소피아의 외모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힐끔 거릴 정도로 아름다웠기에 기레스는 뜻하지 않은 시선의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도착했군.'
기레스는 건물의 팻말을 확인하고 소피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의 안에는 각 접수처와 전이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그 모습이 꼭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 같았다.
'세계가 달라져도 근본은 다를 게 없다는 건가?'
소피아가 접수를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레스와 소피아는 다섯번째 출구로 나왔다.
"두명이십니까?"
"네."
이세계의 남자답게 조각 같은 미남이 소피아의 신원을 확인했다. 젤가는 물론 마을 사람들 대다수도 미남미녀였지만 이렇게 개미처럼 바글바글 거리는 수많은 현지인들의 외모를 보면 기레스는 소피아를 만난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기레스는 전생에는 여자를 후릴 때, 자신의 외모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부류였지만, 그 비교대상이 연예인이나 상상 속의 엘프를 뺨치는 외모들로 넘쳐나는 세계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부분이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을 때 오징어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과 선남선녀가 넘쳐나는 세계에서의 오징어 같은 외모는 인간 취급을 받느냐 짐승 취급을 받느냐 정도로 극명한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기레스는 소피아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소피아를 향한 시선과 자신을 향한 시선의 온도 차를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괜히 이세계 그레이브가 불한당들의 무덤이라고 불리우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혹여 소피아는 기레스를 놓칠까 그녀의 고운 손으로 기레스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 손을 타고 느껴지는 정성이 기특하게 느껴진 기레스는 살짝 그녀의 손을 간질였다.
"흐읏..!?"
그리고는 소피아에게 찰싹 달라붙어 기레스는 소피아의 몸을 훑어 그녀의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주변에는 소피아를 흘끗이며 바라보는 사람들로 넘쳐났지만 전생때부터 남들의 시선을 속이는 애무 같은 것은 이미 익숙한 기레스다. 거기에 일단은 아들처럼 보이는 못생긴 꼬마아이에 불과한 기레스가 설마하니 소피아를 애무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가 있을 리 없었다.
"기레스. 여기서는 안돼."
소피아는 작게 기레스에게 속삭였지만 기레스는 그 말을 듣지 못한 척 리드미컬하게 자신의 손을 움직였다. 발정을 위한 쾌감과는 다른 편안한, 나른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의 기분 좋음이 소피아의 몸에 퍼져 나갔다.
'이정도라면 참을 수 있을지도.'
그저 압도적으로 기분만 좋아지는 느낌에 그녀는 몸을 맡기기로 했다. 어떻게든 내색하지 않고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상쾌한 쾌감에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된다는 마음은 그녀의 욕정을 더욱 끓게 만들어 소피아에게 저항할 의지를 잃게 만들었다.
'기레스는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으읏.'
지독한 꿀과 같은 쾌감과는 다른, 너무도 은은하게 편안해지는 느낌에 소피아는 흐느끼는 신음을 내쉴 뻔 한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필사적으로 정갈하게 걸어나갔다. 그녀의 주변에 있는 남성들은 흘끗이는 것만으로도 젤가마냥 몸이 달아 올라 발정해버려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스스로의 육봉을 빳빳히 세워버렸다.
"여 여기가 엘룸행 입구 맞죠?"
"에.. 어.. 아.. 네 넷. 맞습니다."
딱히 얼굴에 홍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애욕에 젖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었지만, 사내는 어딘지 요염한 소피아의 외모와 분위기에 순간 넋을 잃고 당황하며 손을 벌벌 거리면서 소피아의 표를 받아 들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거대한 마법진이 바닥에 그려져 있는 것이 보인다. 주변에는 소피아와 기레스를 제외하고도 많은 사람들이 마법진 위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역무원은 시간과 인원수를 확인하고 소리쳤다.
"24명 확인 완료. 자 출발합니다. 마력 주입!"
순간 마법진이 빛나는가 싶더니 주변의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살짝 어지러움증을 느끼면서도 기레스는 생전 처음 보는 마법에 조금 들떠 버렸다.
'이것이 마법...'
"자 자.. 기레스 얼른 다음 장소로 가자."
매사에 느긋한 소피아답지 않게 그녀는 기레스의 손을 잡아 끌었다. 잡아끄는 와중에도 혹여나 기레스가 아파할까 힘을 가감하는 것에서 소피아의 자상함이 느껴진다.
"어 엄마?"
자상한 와중에도 그녀가 답지 않게 급한 것은 사실이어서 기레스는 소피아의 손에 이끌려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동쪽의 대도시 엘룸은 뷔넨만큼 건물이 빽빽하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휴양이라는 느낌을 주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도시였다. 썩어도 4대도시인지라 넓고 사람이 북적이는 것은 여전하다.
"어디보자."
소피아는 지도를 펴들고 눈을 재빠르게 굴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진짜 발정나 버린 모양이군. 하지만 여기서는 욕정을 풀만 한 곳이 없을 텐데..'
"이쪽이네."
소피아가 기레스를 데리고 간 장소는 마차로 가득한 장소였다.
"어서오십시.."
"히벨리에행 특실로 예약을 해뒀는데요."
"예 예엣."
숨이 턱하니 막힐 정도의 미녀의 박력있는 말에 마부는 살짝 당황하면서 목록을 확인했다.
"성함이..?"
"소피아 유페르.. 에요."
"예 옛 따라오십시오."
소피아와 기레스는 마부의 안내를 받아 멋드러지게 잘 만들어진 마차의 방에 들어갔다.
'넓다.'
원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내부는 쾌적했다. 밖에서 볼때는 관람차의 방을 연상시킬 정도로 작아 보였는데 내부의 공간은 전혀 달랐다.
'이것도 마법인가?'
"후우.. 기레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런 장난을 하면 안되잖아."
"하지만 엄마도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시던데.."
끈적한 미소를 띄우며 기레스는 여유롭게 반박했다.
"싫으시다면 앞으로는 하지 않을게요."
"싫다고는 말하지 않았잖아. 하면 안된다고 했지."
'그거나 그거나..'
소피아는 살짝 뾰루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기껏 특실까지 예약해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소피아의 말을 듣고 보니 마차는 몸을 섞기에도 충분할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기레스는 씨어드의 안에서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그건 이 뒤에..'
소피아는 이곳에서 기레스와의 질척거리는 장난을 기대했을 것이다. 슬쩍 그녀는 손가락으로 이미 흠뻑 젖어 있는 자신의 치마를 들춰 보이며 기레스를 도발했다. 유백색의 피부는 투명한 애액으로 인해 번들거리며 광택을 내고 있었다. 아직 해가 저문 것도 아닌데도 달빛에 은은히 비치는 속살을 보는 것 마냥 마차의 안에는 요염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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