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계네토기-27화 (27/238)

〈 27화 〉 소피아(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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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장이 몸소 나서 준 까닭에 방금까지만 해도 소피아를 중심으로한 흉흉했던 분위기도 어느샌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마음속으로 소피아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지금에 와서 그것을 내색할 수 있는 이는 그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 마을의 진정한 실세가 누구였는지를 깨닫는 기회가 되어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소피아에게 꼬리를 흔들기 급급한 자리가 되었다.

"소피아 씨는 어떻게 관리 했길래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그리 아름다워 지시는지 모르겠어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특히나 소피아에게 아첨하는 무리들은 마을 내에서도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는 유력가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권력을 과시하고 유지하기 위해 적든 많든 기레스를 괴롭혔던 무리가 대다수였기에 그들을 대하는 소피아의 속내는 그다지 편하지 못했다.

하지만 촌장이 나름대로 수습해 준 자리를 자신이 나서서 망치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그녀는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역겨운 마음을 꾹꾹 억눌렀다.

이전의 소피아였다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의 호의를 받아 들였겠지만, 이제 그녀가 그 시절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갈 일은 없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기레스의 일처리도 끝났겠다 하이에나처럼 다가오는 마을 사람들의 질문 공세를 적당히 받아치고, 젤가에게 뒤처리를 맡긴 후에 적당히 떨어져 나왔다.

"아이고. 벌써 가시는 거요?"

"랄크?"

붉은 머리를 짧게 올려 자른 거친 인상의 남성이 소피아에게 다가왔다. 소피아와는 어려서부터 면식이 있었던 마을 토박이인 랄크 프라운이다.

"소피아 누님도 좀 자주 월례회의에 참석도 하고 그러소. 나도 눈호강 좀 하게 말이지."

"안그래도 앞으로는 나올 생각이야."

"그 순진하던 누님이 이렇게 바뀔 줄이야."

"너도 기레스를 괴롭혔다는 거 잊지 않았어."

"하핫. 남자가 고작 좀 심부름 좀 시킨 거 가지고 그런 자잘한 것까지 하나하나 챙기다 보면 기레스가 누님 의존증에 걸릴지도 몰라요?"

랄크는 소피아의 과잉보호를 비꼬듯 말했지만, 정작 랄크의 말을 듣는 소피아는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살짝 생각했다.

"그나저나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곤 하지만 소피아 누님이 이렇게까지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하핫. 뭐 지금까지의 사죄로 내 앞으로는 기레스에게 잘 대해줄테니 걱정 마슈. 좋은 경험도 많이 시켜주고 그럴테니까.."

"나쁜 걸 가르치려는 건 아니겠지?"

"음? 그건 장담 못하지. 하하. 거기에 누님이라면 몰라도 기레스에게도 나쁘리라는 보장도 없을테고."

"후우.."

소피아도 그런 붙임성 좋은 랄크의 모습을 한 두번 본 게 아니었기에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말했다.

"아무튼 앞으로는 기레스를 괴롭히지 말아줘."

"하여간 누님은 여기선 괴롭히지 말아줘가 아니지."

"응?"

"여기서 더 괴롭힌다면 이 마을에서 살아가지 못할 거라는 협박 정도는 해줘야 알아들을거 아뇨?"

"그럴건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요사스러운 미소를 띄우며 단칼에 말하는 소피아의 모습에 그 대범한 랄크도 순간 등골이 오싹해 졌다.

'그 소피아가 저런 얼굴을 할 수도 있었다니..'

"넌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사이니까 한번 더 경고해 준 것 뿐이야."

랄크는 그 말이 '다음은 없다' 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르디 무른줄로만 알았는데. 누님이 저런 얼굴을 하게 만들었다 이거지?'

"충고 고맙수다."

랄크는 실실 거리면서 소피아의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소피아는 촌장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회의장을 빠져 나왔다.

'기레스라..'

그리고 며칠 후.

"기레스. 으음.. 아아앗."

소피아는 기레스의 방에 들어와 기레스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모자 간의 사이좋은 담소지만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두 짐승의 애욕뿐이다.

"요즘 아이들은 어떠니?"

"그러고 보면 괴롭힘은 거의 없어진 것 같아요."

"그래? 으응...읏. 다행이다."

기레스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이유를 만들어 놓고 들어오기는 했지만 사실 소피아는 기레스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이미 본인 스스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사정을 전부 파악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른 척 기레스에게 물으면서 이렇게 살을 섞는 것이 소피아라는 여자다.

'아.. 이거 습관이 들어 버릴 것 같아♥'

첫날부터 곧장 기레스의 괴롭힘이 멎을 수는 없었지만 수일도 되지 않아 곧 기레스는 생전 처음으로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아직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아이들에게 부모의 영향력이란 막대한 것이다. 개중에는 부모의 말을 듣고도 기레스의 괴롭힘을 멈추지 않은 철부지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부모로부터 기레스를 괴롭힌 것 이상의 벌을 받아야만 했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이미 그들에게 뒤는 없었다. 자신의 자식들이 계속해서 괴롭힌다면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결과물은 마을의 추방이었기 때문이다. 말로해서 고쳐지지 않으면 벌을 주어서라도 벌을 주어서도 고쳐지지 않으면 극단적으로는 잡아패서라도 그들은 자신의 자녀의 행동을 교정해야만 했다.

이미 마을의 고위층부터 시작해 선생까지 전부 포섭이 된 상태였기에 그들의 눈을 피해 괴롭힌다는 것은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돌아오는 것은 그보다 더한 지옥이라는 상황에 보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기레스를 괴롭히는 무리는 남김없이 박멸당해 버렸다.

그뿐 아니라, 되려 우호적으로 기레스에게 접근하는 무리도 생겨났다. 물론 이미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맛본 기레스는 그들의 그런 행위 뒤에 부모의 그림자가 서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소피아의 아들인 기레스와 잘 지내라는 말이라도 들었겠지.'

소피아의 자녀는 기레스 뿐만이 아니라 하일즈나 티나도 있었지만, 이미 그들은 그들만의 인간관계가 전부 구성된 지 오래였다. 주변에 친구가 득시글 거리는 무리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지만 외톨이나 다름 없었던 기레스에게 다가오는 것은 쉽다고 판단했으리라.

진짜 친해지고 싶어서든 부모가 시켰든 그런 것은 기레스와 관계 없는 일이다. 애초에 그는 친해질 마음이 없었으니까..

"하으읏."

기레스는 소피아가 입고 있는 천옷을 꼬집어 흔들면서 천이 그녀의 유두를 스치게 만들면서 애무했다.

'이래서 속옷을 입고 오지 말라고 했.. 으으으읏!'

손가락으로 직접 만지는 것과는 또 다른 색다른 느낌에 그녀의 쾌락은 점점 가파르게 올라갔다.

직접 만지는 것 없이 옷 위로만 애무하는데도 기레스의 손놀림은 너무나도 절묘해서 그녀의 쾌감을 아슬아슬한 곳까지 인도하고 있었다.

차마 가족들이 존재하는 곳에서 대놓고 섹스를 하지는 못하지만 소피아는 기레스가 가져다 주는 쾌락이라면 뭐든 즐거웠다.

'조금만 더 하면..'

유방이 찌르르 떨린다.

'아 이거..!'

소피아는 절정과 함께 모유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기레스의 손을 살짝 피하면서 표정을 굳혔다.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기레스의 방에 젤가가 올라왔다.

"소피아. 뭐야 또 여기에 있는 거야? 요즘 너무 기레스만 챙기는 거 아냐?"

소피아는 마치 남성이 사정하기 직전 사정감을 절제 당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찔한 절정을 방해받은 소피아는 젤가를 무섭게 쏘아보며 말했다.

"시기가 시기잖아요?"

가시 돋힌 소피아의 말에 젤가는 슬적 기레스를 노려보고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거에요?"

"아니 곧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니까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딴' 일 때문에..'

소피아의 안에서 우선순위는 조금씩 바뀌어 나가고 있었다. 이미 그녀에게 기레스와의 시간에 비하면 가족의 밥상을 차리는 일은 시답잖은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알았어요. 곧 내려갈 테니까.."

"그래. 알았어."

'이건 안되겠는걸.'

소피아와 젤가의 언짢은 표정을 보면서 기레스는 심술궂은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와 사이가 별로 안 좋아지신 모양이네요."

"응?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이번에는 방해를 받았으니까.."

소피아는 옷 위로 자신의 가슴을 살짝 들어 올려 보이면서 애틋한 눈빛으로 기레스르 바라보았다.

"기레스도 젤가가 좋은 건 아니잖아?"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말투에는 '너를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이 은근히 배여 있었다.

"그건 그렇지만 저는 엄마의 부부관계가 저 때문에 망가지는 건 원하지 않거든요."

"그 그래?"

기레스의 말에 소피아는 약간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도 요즘 저를 상당히 잘 대해 주시기도 했고 말이죠."

"젤가가? 그랬나?"

"그랬어요."

'전에 비하면 말이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오늘 아버지에게 안기고 오는 건 어떨까요?"

"어째서?"

소피아는 살짝 실망한 어투로 말했다.

"그야 제가 무서우니까요. 아까도 보셨겠지만 엄마가 아버지를 피하면 피할수록 미움을 받는 건 제가 되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뭔가 문제라도 있어요?"

기레스가 능글거리면서 묻자 소피아는 눈을 이리 저리 굴리다가 뾰루퉁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이제 젤가랑 섹스하고 싶지 않단 말야."

아내를 빼앗은 남자에게는 최고의 정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말이었다.

"저도 사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안기는 건 싫어요."

"그럼...!"

"그러니 이런 건 어떨까요?"

순식간에 기대에 차 얼굴에 화색이 도는 소피아의 귀에 기레스는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날 밤. 소피아는 몸이 비치는 속옷을 입고 부부의 침실에서 젤가를 기다렸다.

"어허억. 소피아?"

백설 같은 소피아의 피부와 그녀의 속살이 은근히 비치는 새하얀 속옷은 순식간에 젤가를 흥분상태로 발정시켜 버렸다.

"웨 웬일이야? 그런 속옷을 다 입고.."

"오늘 낮에 너무 냉랭하게 대한 것 같아서요."

"아 아니 뭐.. 내가 기레스에게 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소피아의 고혹적인 모습에 젤가는 화낼 의지를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설사 소피아가 잘못했어도 그냥 자신이 잘못했다 시인하고 싶어질 정도로 젤가의 몸은 달아올랐다.

"기레스에게 들었어요."

"뭐? 뭘?"

"기레스가 요즘 당신이 자신한테 잘 대해줬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당신에게 정색이나 하고.."

"기 기레스 녀석이 그런 말을 했단 말야?"

'내가 뭘 잘해 줬더라?'

딱히 잘해준 게 없으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오는 게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기레스가 없는 사실을 지어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젤가는 기레스가 단순하게 모자르기 때문에 그저 괴롭히지 않은 것만 가지고도 고맙다고 느낀다고 지레짐작 해버렸다.

"당신이 그렇게까지 기레스를 위했다는 말에 감동해서 오늘은 둘이서 오랜만에 즐길까 해서요."

소피아는 살짝 국어책을 읽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했지만 이미 소피아에게 발정할대로 발정해 버린 젤가에게 그런 세세한 부분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저 정말이야?"

소피아를 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젤가의 호흡이 거칠어 졌다.

"왜 그렇게 놀라는 거에요?"

"아니 나는 소피아 당신이 내가 기레스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해서 싫어하게 된 줄로만 알았는데."

"그 화는 아직 풀리지 않았어요. 다만.."

"다만?"

"앞으로 노력하는 모습에 따라서는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가늘게 들어간 허리를 살짝 꺽으며 소피아는 교태스러운 자세로 젤가를 유혹했다. 그 아리따웠던 이전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워진 외모에 거들어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는 요염하기 짝이 없어서 당장이라도 겁탈하고 싶어질 정도로 젤가를 애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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