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소피아(21)
* * *
[퍼억 퍽 퍽]
인적이 없는 깊은 숲에 고기를 때리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커허억."
평소에도 언제나 가축 이하의 취급을 받는 기레스였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하일즈님 어째서! 꾸엑."
"입 닥쳐."
하일즈는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자신의 형, 아니 짐승 이하인 기레스보다 뒤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 세계에서는 누구도 기레스보다 열등한 사람은 없었다. 하일즈의 세계에서 자신이 기레스보다 우월한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결과나 다름 없었고, 기레스보다 못한 게 있다는 것은 그게 어떤것이든지 하일즈에게는 수치나 다름 없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고작해야 안마 하나에 불과하다고 쉬이 넘겼을 지 모르지만 머릿 속이 우월감으로 똘똘 무장된 하일즈는 아침의 일을 그저 단순한 안마로 치부하고 넘어가지 못했다.
'네깟 놈이 어머니에게 인정을 받다니!'
소피아는 아들 딸들을 차별없이 대했다. 그것은 좋게 말하면 차별이 없는 것이지만, 가진 것이 많은 하일즈의 입장에서는 '못난 기레스'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것이었으며, '잘난 자신'을 소피아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젤가는 단순하지만 확실하다. 좋은 성적을 받아 오면 그 누구보다도 신이 나 들뜬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소피아의 경우는 달랐다. 물론 그녀도 아들이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좋아하는 것은 당연했지만 좋아하는 농도가 옅었다. 성적이 좋든 '나쁘든' 그녀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고 하일즈는 젤가를 닮아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를 원하고 또 원했다. 하일즈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이는 없었지만 그는 존경하는 소피아에게만큼은, 사랑은 받아 왔을지 몰라도 기레스보다 뛰어나다는 인정만큼은 받지 못했다고 생각해 왔다.
그는 그 이유를 기레스에게서 찾았다.
'너만.. 없었어도..'
소피아는 너무나도 상냥하다. 아직 어려서 세상물정에 밝지 않은 하일즈여도 그녀의 어머니가 얼마나 올곶은 인간이'었'는가를 체감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기레스가 모자르면 모자를수록 소피아는 아들이 상처를 받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더더욱 비교를 하지 않는다.
잘한 것이 있다면 칭찬은 할지라도 하일즈가 기레스보다, 아니 기레스가 아닌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는 생각해 주지는 않는 것이다.
오늘 아침 하일즈는 기레스에게 패해 버렸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느꼈을 정도의 가벼운 일에 지나지 않았지만 하일즈만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이나 하일즈가 인정을 받고 싶었던 대상인 존경하는 어머니인 소피아는 기레스의 안마를 인정해 주면서도, 자신의 안마는 명백하게 거절의 의사를 건넨 것이다. 그 아주 조그마한 열등감은 분노의 연료가 되어 이 자리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하일즈님 제발 용서해 주세요."
기레스는 손서리를 치며 뒷걸음질 쳤다.
"아직 멀었어. 돼지면 돼지답게 저항하지 말고 순응하라고."
"아아~ 불쌍하기도 해라."
티나는 빈정거리는 투로 하일즈의 말을 받아 준다.
'네녀석들이 말이지.'
"그만해. 하일즈."
청량하다 못해 싸늘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에 하일즈의 손이 멈추었다. 그것은 여기서만은 절대로 들어서는 안될 목소리였다.
'위!?'
하일즈는 즉시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가 바라 본 장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은건가?'
"아 아아.."
티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기레스를 바라 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어느샌가 기레스의 몸을 돌보는 소피아의 모습이 있었다.
"어 어머니!?"
기레스를 돌보는 소피아의 표정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거지?'
오늘은 평소보다도 훨씬 더 심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기에 하일즈의 머릿속은 복잡해 졌다. 만약 소피아가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고 한다면 변명따위는 불필요 했다.
"이게 무슨 일이니?"
기레스에게 보이던 걱정어린 시선은 하일즈와 티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소피아의 차가운 얼굴에 하일즈는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아 아아.. 아니.. 저기.."
"무슨 일이냐고 묻잖아!"
하일즈와 티나는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였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 기레스를 괴롭히는 행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손 하나 갈 것 없이 완벽했던 남매였기에 그들은 이렇게 소피아가 화가 난 것을 보는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어 어머니. 자 잘못했습니다."
하일즈는 자신의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소피아가 어디까지 보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오늘의 일을 전부 보고 있다고 한다면, 어설프게 변명을 하는 것은 제 목을 조이는 짓이라는 것을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마지막 부분만 봤다 해도, 소피아의 입장에서 보면 형을 남매가 쌍으로 괴롭히는 모습일 뿐인 것이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넘기지 않으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하일즈의 복부에 송곳으로 후비는 듯한 격통이 몰려왔다.
"으허어어어어아각."
눈알이 뒤집히고 온 내장이 속에서 요동을 치는 고통에 하일즈는 배를 움켜쥐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의 머릿속에선 지금까지 쌓아올린 체면이니 뭐니 하는 생각 따위는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 어머니.. 어째서?"
"어째서라니 잘못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한 거잖아."
소피아는 하일즈를 벌레 보는 듯한 차가운 눈으로 쳐다 보면서 말했다.
"정말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기레스에게 한 짓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자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안돼."
'용서 할 것 같아?'
지금까지 기레스를 괴롭히는 것을 수없이 참아 온 그녀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마음이 동했을 지도 모르는 하일즈의 저 필사적인 조아림조차도 소피아에게는 가증스럽게 느껴져서 그대로 머리를 짓밟아 뭉개주고 싶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기레스의 명령을 생각하며 가까스로 마음을 다스려 평소의 자상한 그녀의 목소리로 말했다.
"하일즈. 잘못된 것은 고쳐야만 하는거야. 그렇지?"
"네 네..."
"고치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뭔지 알아?"
선문답 같은 질문에 하일즈는 눈을 굴리면서 최선을 다해 고민했다.
"그건 말야.."
소피아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순간 하일즈의 머리는 불로 지지는 것 같은 화끈함이 몰려 왔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하일즈는 바닥에서 얼굴을 부여 잡고 있었다. 단번에 부어 올라도 이상할 게 없는 격통이었지만 고통으로 매만진 자신의 뺨은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말끔한 상태였다.
'이건 설마..'
말할 것도 없는 젤가의 고문기술이었다.
"자신이 한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가를 깨닫는 것 이란다."
"으 으아아.. 아아.. 어머니 제발.."
"기레스의 제발이라는 말에는 용서해 줬니?"
소피아는 서슬퍼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미소에 하일즈는 바로 방금 전 있었던 기레스의 제발 용서해 달라고 말했던 일을 떠올렸다.
"으 으읏..!"
그는 단 한마디도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방금 용서해달라는 기레스의 말을 잔혹하게 거절했던 것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때라도 용서해 줬다면 참작의 여지는 있었을지도 몰랐을텐데.."
소피아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그대로 하일즈의 복부를 걷어 찼다.
"꾸으으어어어억."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하일즈는 눈물 콧물을 쏟아 내었다.
하일즈는 자신의 어머니가 기레스를 괴롭히는 일을 안다면 실망을 할 것이라고는 익히 예상하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런 일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살면서 어머니의 눈 앞에서 크나큰 잘못을 해본 적이 없기에 잘못을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피하려고 몸을 비틀면 더욱 고통스러운 일격이 그의 몸에 꽃혀 나간다. 뇌가 고통에 절여지는 와중에도 몸에는 상처하나 없다. 어떻게 보면 신체가 멀쩡하다는 이야기니 안심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미지의 공포에 온 몸이 오싹해 진다. 아무리 때려도 상처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때려도 '상관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일즈는 자신이 피해자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공포를 있는 그대로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저항하면 더욱 거친 공격이 들어오기에 하일즈는 체념하고 공포와 고통에 몸을 벌벌 떨면서 끝이 나지 않는 소피아의 다음의 공격을 기다렸다.
"기회를 줄까?"
소피아의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에 하일즈는 소피아에게 매달리며 말했다. 용서를 받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네 네..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테니.."
하일즈의 그 모습은 기레스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도리어 속으로는 하일즈를 비웃었던 기레스에 비해 진심으로 굴복하는 하일즈는 어떤 의미로는 더욱 추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런 하일즈를 보면 기레스는 조소를 머금었다.
기레스의 기준으로 보면 하일즈는 능력만 있을 뿐. 개념이나 생각은 삼류 잡배에 불과했다. 자신의 강함을 무기로 삼아 잘난 척 해대지만, 더욱 강한 강함 앞에서는 한없이 비굴해지는 타입의 인간인 것이다.
"좋아. 앞으로 열번 내 공격에 단 한번이라도 '비명을 지르지 않으면' 용서해 줄게."
"어...?"
"에엑!?"
그 말에 하일즈와 티나는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얼굴이 창백해 졌다. 소피아의 말은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상당히 지난 이전의 일을 이제와서 꺼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머리가 좋은 하일즈와 티나가 모를 리 없었다.
하일즈의 몸은 마치 드릴이라도 된 것처럼 덜덜 떨려 오기 시작했다.
'다.. 다 알고 계셨어.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으 으아아..'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이미 외통수나 다름 없었다. 변명조차도 할 수 없다. 자신이 기레스를 괴롭힌 이유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설령 하일즈 딴에는 있다고 해도 그건 그저 개인의 억지일 뿐이다. 그저 괴롭혀도 되니까, 그것이 용납되었으니까 신이나서 괴롭혔을 뿐이다.
"어 엄마."
소피아는 차갑게 미소를 지으며 티나를 잡아 끌고는 그대로 그녀의 얼굴을 짓밟아 비틀어 돌렸다.
"꺄악."
"티나? 짐승이 아니라면 하일즈가 참을 수 있겠지? 하일즈가 참을 수 있다면 너도 같이 용서해 줄게."
"오 오빠."
방금까지만 해도 신나게 기레스를 조롱했던 티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겁먹은 티나의 얼굴을 보고 하일즈는 굳건한 얼굴로 말했다.
"하 하겠습니다. 정말 열번만 참으면 용서해 주시는 거죠?"
'여기서 용서를 받는거야. 그리고 다시...'
"우웨에에에에엑."
그의 맹세는 단 일격에 무너져 내렸다.
"물론이지 하일즈."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은 고통에 하일즈는 그대로 오늘 하루 먹었던 음식물을 전부 토해내었다. 그의 토사물은 보기 좋게 티나의 근처에 떨어졌다.
'마 말도 안돼. 이런 걸 한번이라도 참을 수 있을 리가..'
하지만 그 생각 자체가 사실 우습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 참을 수 '없었던 것'을 기레스에게 종용한 것은 다름아닌 하일즈와 티나 본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아홉번 남았네. 용서를 받고 싶다면 열심히 참도록 해?"
소피아의 냉혹한 말은 하일즈에게는 마치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읍... 끄헤에에에에에에엑."
"열."
아들의 비명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소피아는 마지막 일격을 집행했다.
"쿠헉.. 허억.."
생전 처음 겪어 보는 고통에 하일즈는 자신의 배를 움켜 쥐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전혀 관련없는 타인의 아이라고 해도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의 비참한 모습이었지만 그런 하일즈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소피아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꺄아앗.."
"분명 짐승도 학습을 한다고 했었지? 티나? 하일즈는 짐승인걸까?"
"어 엄마.."
"어때? 티나도 용서를 구해 볼래?"
쓰러진 하일즈가 꿈틀 거리는 것을 보고 티나는 겁에 질린 얼굴을 하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벌을 받아야 겠네?"
"어 엄마 잘못했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소피아는 대답 대신 자신의 늘씬한 다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벌을 주는 거란다."
그렇게 말하며 소피아는 능숙하게 티나의 가방을 뒤져 그녀가 준비해 온 오물을 꺼내 들었다.
"어 엄마.. 농담이죠?"
"그럴리가."
소피아는 어딘지 슬퍼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티나의 말에 대답했다.
"너희가 기레스를 농담으로 괴롭혔다면 좋았을텐데 말야. 그랬다면 엄마가 이렇게 너희들을 벌 줄 일도 없었을텐데."
비탄에 잠긴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는 그녀의 입꼬리는 어째선지 올라가 있었다.
"시 싫어.."
"기레스도 싫었을 거야. 그렇지?"
소피아의 그 말에는 변명 하나 할 수 없다. 쌓이고 쌓인 그들의 악행은 그대로 자신들의 목을 졸라 오고 있었다. 이 행위가 끔찍하다면 끔직한만큼 그들은 그 행위를 받아야 마땅했다는 반증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티나의 머리 위로 누런 액체가 쏟아졌다.
"우읍"
"마셔야지? 티나?"
소피아가 살짝 발을 비틀자 티나의 굳게 닫쳐 있었던 입은 저항하나 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열려 버렸다.
"으읍 으브브브 우웩.. 우웨에에엑."
하일즈와 티나는 뒤늦게 자신들의 행위를 후회했지만 후회는 언제나 뒤늦기에 후회라고 불리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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