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소피아(16)
* * *
기레스는 근처의 냇가에서 얼굴에 흘렀던 핏자국을 닦아 내고 집으로 향했다. 핏자국을 닦았다고는 하지만 관자놀이 윗쪽의 이마에 난 상처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기레스! 얼굴이.. 어떻게 된 거니?"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돌아오자마자 매의 눈으로 상처를 확인한 소피아는 기레스를 불러 세우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피아 뒤에는 날카로운 눈으로 기레스의 행동을 감시하는 두 남매가 있었다.
소피아는 기레스의 이마를 보면서 안절부절 못하며 걱정했다.
'정말 한결같군.'
"괘 괜찮아요. 엄마."
"어디가 괜찮다는 거야!?"
"오는 길에 발을 헛딛었는데 하필 눈앞에 바위가 있어서.. 조금 크게 다쳐 버렸어요."
기레스의 능숙한 거짓말을 보면서 하일즈와 티나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정말로 현명하다면, 본인들이 그렇게 '병신'취급하는 기레스가 어떻게 거짓말을 저리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인가?를 의아하게 여겨야 할 장면이었지만,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둘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않았다.
똑똑하다고 해봐야 어린아이는 어린아이, 큰 그림에 대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눈앞에 닥친 자신들의 위기를 잘 넘겼다고 스스로를 자축할 뿐이다. 상대가 무시해도 전혀 무해한 기레스라는 점도 그들의 방심에 한 몫을 거들었을 것이다.
소피아는 방 안에서 붕대를 가지고 와서 기레스를 치료해 주었다. 과거 전장에서 그녀는 거의 상처를 입었던 적이 없었지만, 그녀의 주변의 병사들은 언제나 상처투성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의무병은 아니었지만 상냥한 그녀의 손에는 언제나 의료용 도구와 마법서가 들려 있었다.
"음.. 얕은 상처는 아니지만,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
간단한 치료를 끝마친 소피아는 식은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레스에게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안심하자 기레스를 본 까닭에 몸이 달아오른 그녀는 살짝 손을 떨면서 홍조 띤 얼굴로 기레스와 거리를 벌렸다.
'아..'
아직 앳된 기레스의 풋내를 맡았을 뿐인데도 그녀는 정신이 몽롱해 졌다.
"자 자.. 그러면 엄마는 마법 스크롤이랑 약을 사가지고 올테니까 기레스는 방으로 올라가서 쉬고 있으렴."
"네. 고마워요. 엄마."
기레스는 힘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소피아를 피해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으.. 안돼 안돼. 엄마인 내가 착실하게 하지 않으면!'
기레스가 올라가고 나자 소피아는 자신을 자책하며 흥분으로 달아오른 몸을 부르르 떨면서 소피아는 멍하게 발정난 얼굴로 마법상점과 약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헤헤. 잘 말해줬잖아?"
"네 넷!"
"평소에도 그렇게 눈치가 좋으면 얼마냐 좋냐고!"
하일즈는 그렇게 말하면서 기레스의 복부를 발로 올려 찼다.
"쿠헤엑."
"아하핫 저 비명소리 봐. 완전 돼지 멱따는 소리 같네."
티나는 까르르 거리면서 바닥에 쓰러져서 숨만 쌕쌕이는 기레스를 비웃었다.
"자 내가 왜 이렇게 널 괴롭히는지 알겠어?"
기레스는 진심으로 겁을 먹은 것처럼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자 잘 모르겠습니다. 제발 답을 알려주세.. 우억."
"모르면 맞아야지. 앞으로 계속 네가 깨달을 때까지 매일을 패줄테니까 말야."
"으히익! 하일즈님 제발.."
기레스는 진심으로 겁 먹은 듯 비굴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손바닥을 비비며 빌었다.
"오빠. 그쯤 해둬. 집에서 패는 건 위험하잖아? 저새끼 벌써 바닥에 눈물 콧물을 칠하고 있다구?"
남매 간에 사이는 좋아서 평소 티나의 말을 잘 들어주는 하일즈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기레스 바닥을 잘~ 닦고 들어가도록 해. 어머니가 오실 때까지 일을 못 끝내면.. 알지?"
"네 네.."
기레스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일즈와 티나가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시선 밖으로 하일즈와 티나가 사라지는 것을 보자마자 그는 건방진 얼굴을 하며 잽싸게 자신이 흘린 체액을 정리했다.
'쳇 애새끼는 애새끼구만. 모르면 맞아야 된다고? 그렇다면 얼마든지 몰라주지.'
기레스는 실실 비틀린 웃음을 띄우고 생각했다.
'제발 하루도 빼놓지 말고 날 열심히 패주려무나. 하일즈?'
다음 날도 또 그 다음날도 기레스는 비 오는 날에 먼지가 날 정도로 맞아야만 했다. 하일즈가 물어 보면 그의 대답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모 모르겠습니다. 제발 방법을 알려주세요. 도대체 왜 이렇게 저를.."
사실 하일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기레스가 모를 리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레스는 '의도적으로' 소피아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하일즈에게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본래 기레스는 소피아와 목욕을 하던 시절에는 철저하게 가족들에게 소피아와 노닥거리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더라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사람이 없을 때를 노려 아이들은 물론이고 젤가의 눈밖에 날 일조차도 철저하게 피해서 소피아를 공략해 왔다.
하지만 지금, 기레스는 소피아와 나쁘지 않은 사이라는 것을 광고라도 하듯이 하일즈의 앞에 있을때만을 골라 소피아와 과시해 왔고그 이후 하일즈의 괴롭힘이 자연스럽게 폭행으로 바뀐 것을 보면 이유야 명백하다.
소피아와 친한 척 하지 말라는 그야말로 애들다운 유치한 질투인 것이다
만약 도망칠 곳 없이 삶 자체가 괴롭힘으로 점철되어 여유가 없었다면 답은 보이지 않았을 테지만, 기레스는 이미 한번 인생을 살아 본 경험이 있는 환생자, 세상을 보는 눈은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다.
이미 한번 살아본 기레스에게 하일즈의 치기를 알아 차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째서 자신을 괴롭히는지답을 알 수 없다는 듯한 얼치기 연기를 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호 혹시.. 제가 얼마 전에 심부름을 늦었던 그거 때문입니까?"
어차피 하일즈의 앞에서 고의적으로 병신 짓을 한 것은 차고 넘친다. 자신을 괴롭히기 위한 명분따위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다.
"아 그런 일도 있었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하일즈는 다시 주먹을 기레스의 명치에 꽃았다.
"우웨엑."
"자! 여기서 돼지 군에게 질문. 바닥을 더럽히면 좋은 사람일까요? 나쁜 사람일까요?"
다른 사람들이 괴롭힐 때라면 몰라도 하일즈가 괴롭힐 때에는 항상 티나가 함께 붙어 있었다.
"어..? 아니 그.."
"나쁜 사람이잖아 그렇지?"
"네 네."
"그러니까 착한 사람이 될 기회를 줄게."
"기회라면...?
"핥아 먹어."
티나는 냉랭한 목소리로 기레스에게 선고한다.
"아 아니.."
그냥 토사물이어도 역겨울 마당에 기레스가 토한 토사물은 이미 바닥의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못하겠다면 벌을 받을래?"
티나는 소피아를 닮은 매끈한 다리를 기레스의 복부를 향해 찔러 넣었다.
"쿠허억."
기레스는 얼굴을 바닥에 쳐박아 자신이 물리적으로 내뱉게 된 토사물을 혀로 핥을 수밖에 없었다.
"아하하. 정말 돼지새끼 그자체네."
"정말 어울리는 별명이야. 이 참에 우리끼리만 사용하는 별명을 하나 지어줘 버릴까?"
"난 돼지가 좋아. 오빠."
망설임 없이 티나는 기레스를 향해 침을 뱉었다.
"티나가 그렇다면 돼지로.."
'놀고들 있네. 씹새끼들.'
"그럼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돼지새끼야? 오빠랑 나는 클로에 언니를 만나고 갈테니까 엄마한테 전해주고."
"네... 네.."
기레스는 비굴하게 토사물이 쌓인 땅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그 행동이 만족스러웠는지 티나는 요사스러운 미소를 띠며 하일즈와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팼는데 상처 하나 없다니."
몸을 건드리면 어느 곳 하나 안 아픈 곳이 없다. 속은 뒤틀리고 목은 쓰리며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에서 느껴지는 팅팅 불어 터진 듯한 고통에 거동 하나 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런 상황인데도 기레스의 외견은 토사물이 묻어 있는 것 빼고는 말끔했다.
"퉷."
기레스는 입 안에 든 모래를 내뱉았다.
'아마 신체검사 같은 것을 한다면, 상처 하나 없는 것으로 나오겠지.'
있는 것은 오로지 고통 뿐이다. 그렇기에 저 둘은 눈치 하나 볼 것 없이 자신을 열심히 팰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이제는 한명이 폭행할 때는 한명이 기레스의 몸을 고정하는 역할을 맡아서 기레스가 고통에 날뛰다가 예상 외의 상처를 받는 일 또한 노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바보들. 이미 늦었다고.'
기레스는 하일즈와 티나가 아무리 똑똑해 봐야 머리털이 보송보송한 애송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세상사 애들을 상대로도 쉬운 게 없군.'
자신의 몸을 한껏 둘러 보고 기레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어디선가 준비한 날카로운 돌조각을 들어 올렸다.
소피아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집안 일을 하고 있었다. 기레스와의 목욕을 관둔지도 벌써 4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몸 자체는 언제나 달아오르는 채였지만 이제는 그녀도 그녀 나름의 요령이 생겨 있었다.
"아흥~"
내리쬐는 태양빛 아래에서 빨래를 널면서 그녀는 허벅지를 비비며 가볍게 쾌락을 만끽했다. 기레스의 손놀림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그녀도 나름대로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요령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여성의 스트립쇼 같아 보일 정도로 음란한 광경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못 버티니까 말야.'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변명하면서 소피아는 주변을 잘 살피면서 한낱의 음란한 행위를 즐겼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욕 해소를 해주지 않으면 온종일 머리가 돌아 버릴 것만 같았기에 언제나 소피아의 속옷은 마를 날이 없었다.
"음?"
빨래를 너는 것을 거의 끝낸 소피아는 저멀리 귀가하는 기레스를 발견했다. 그 순간 허벅지를 비비는 행위의 쾌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기 시작했다.
'아 안돼. 곧 기레스가 오는데.'
하지만 그녀 자신의 자위행위는 딱히 금단의 행위는 아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소피아는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널어둔 이불 뒤에 숨어 기레스를 반찬 삼아 격렬하게 손가락을 흔들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는 새어나오는 신음성을 틀어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기레스가 오기 전까지 그녀는 요부마냥 음탕하게 손가락과 허리를 흔들었다.
"하으으읏!"
오랜만에 그녀는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절정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건 좋을지도.'
살짝 상쾌해진 기분으로 그녀는 이불의 뒤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그런데 기레스는 왜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걸까?'
잠시 주변을 살피니 멀리서 쭈뼛거리면서 눈치를 보며 다가오는 기레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있다는 건 모르는 것 같네.'
보통 사람이라면 둔하다고 놀림거리가 될 일이었지만 콩깍지가 씌여버린 소피아는 자신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두리번 거리면서 다가오는 기레스의 모습이 그리 귀여워 보일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두리번 거리면서 천천히 오는거지?'
소피아는 자신의 발 아래를 숨길 수 있게 기껏 널어 놓은 이불 빨래를 살짝 내리며 유심히 기레스를 관찰했다.
'다리를 절고 있어?'
기레스가 다리를 절뚝 거리는 것을 보고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또 어딘가를 다친 걸까?'
걱정이 된 그녀는 나가보려 했지만 순간 기레스가 조심스럽게 집에 들어온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냥 다친거면 들어오면 되는데, 어째서? 저렇게 다친 것을 숨기려 하는 거지?'
문득 소피아는 그 이유가 궁금해 졌다
기레스는 기본적으로 천천히 걷다가 한껏 두리번 거리면서 눈치를 보고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면 절뚝거리면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집까지 도착한 기레스는 잽싸게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러고 보면 그때 머리를 다쳤을 때도, 이상했어. 조금만 더 상처가 깊게 났다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는 상처였는데.. 단순하게 넘어진 것만 가지고 그렇게까지 다칠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한 소피아는 발을 들곤 살금살금 기레스의 방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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