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계네토기-16화 (16/238)

〈 16화 〉 소피아(15)

* * *

한번 소피아에게 호되게 데인 기레스는 이제는 그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레스는 소피아를 느긋하게 관찰했다. 처음 소피아를 계략에 빠트렸을 때처럼 순진한 얼굴로 소피아를 다시금 처음부터 차분히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발정난 상태로 하루를 시작해 발정난 상태로 하루를 마치는 온 종일을 쾌락절임으로 지내야 하는 지옥을 살아가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어머니인 채였다.

'대단하구만.'

쾌락을 참아내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는 이제 중요치 않다. 그것이 모성이고 나발이고 이유를 떠나서 참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기레스가 심어준 쾌락은 그렇게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기레스 본인은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 도리가 없었지만, 지금까지 후려온 여성들의 반응과 소감으로 간접적으로는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있다.

단순하게 애무를 할 때, 기분이 좋아지는 섹스 같은 건 삼류에 불과하다..

섹스의 즐거움을 넘어, 육체 자체를 개조하는 것처럼 민감하게 만들어서 섹스를 하기 전부터 후까지 쾌락에 절여 기쁘게 하는 수준조차 이류의 실력에 불과하다.

육체의 쾌락을 이용해 상대의 정신마저 주무를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일류의 문턱을 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일류마저도 따위로 보는 기레스의 조교는 하루 아침에 끝이라고 단언하며 칼같이 자를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적어도 전생부터 현생까지 기레스는 여기까지 조교를 성공했음에도 제정신을 차린 여성을 본 적은 없었다.

'실력이 줄은 건 아닐테고.'

소피아의 얼굴은 이미 암캐의 얼굴이다. 겉으로는 멀쩡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그녀의 속은 전부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훤히 들여다 보인다.

여성을 저기까지 모는 것이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지, 저정도까지 몰았다면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보기좋게 거절당했지만, 기레스도 자신의 가면을 들추며 섹스를 요구했던 것이다. 애인이든, 아내든, 엄마든 옛적에 기레스의 가랑이에 이성을 잃었어야 될 쾌락의 수준조차 한참 넘어서고 있음에도 소피아는 기레스의 앞에서 여전히 자상한 어머니를 연기하고 있었다.

'저 꼴을 보아하니 젤가와의 밤은 그다지 순탄하진 않은 모양이군.'

소피아의 초췌한 꼴만 봐도 그녀의 밤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정도는 손쉽게 유추가 가능하다. 민감하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흥분하고 쉽게 몸이 달아오른다는 이야기임에도 그녀의 욕구는 전혀 풀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기레스는 필시 이미 소피아의 젤가에 대한 소피아의 마음은 멀어졌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소피아를 관찰한지도 수일 차. 유심히 보지 않으면 분명 소피아는 정숙하고 아름다운 이상적인 현모양처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상태를 알고 젤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기레스가 보면 이미 젤가와 소피아는 동상이몽의 관계라는 것이 훤히 보이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젤가의 힘을 복돋아 주는 응원을 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요사스럽게 웃으면서 젤가의 행실을 비꼬는 소피아의 모습을 기레스는 몇번이고 목격했었다. 그런 소피아의 모습에 그의 마음은 술렁이며 요동치고 있었다.

'가지고 싶다.'

자신의 쾌락에도 무너지지 않는 올곶은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이면에는 시퍼런 요사스러움이 숨겨진 요녀를 그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마음이 강하면 강할 수록 그 마음이 향하는 대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젤가가 아니라면 역시..'

자신의 쾌락을 이기기 위한 원동력으로 남은 것은 역시 모성 밖에 없다. 하일즈와 티나는 물론이거니와, 그 금단의 행위까지 했던 기레스에게도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는 자상함을 보이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면서 자신과 살을 부디끼던 여자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가면 같은 모습이지만, 여기까지 오면 기레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가면이 아니라 진심의 모성이라는 것을..

쾌락에 미쳐서 허리를 흔드는 것과, 자신의 자식들을 훌륭하게 정을 담아 키우고 싶은 것. 그 둘은 일견 섞일 수 없는 것 같이 대비되어 보이지만, 어느 쪽도 소피아의 본모습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레스는 더더욱 그녀를 가지고 싶었다.

"....."

하지만 이미 단추는 잘못 끼워졌다. 한번 침입한 바이러스를 격퇴해 항체를 생성한 몸처럼 견고하게 세워진 모성이라는 벽을 부수기 위해서는 기레스로서도 그만한 각오가 필요하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지금 여기서 소피아를 가지기 위해 무리를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기레스에게 어느 정도 뒷배가 존재하던 전생의 시절 조차도, 뜻하지 않은 방심으로 그는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지금의 기레스는 딱히 그 무렵과 비교해 본다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밑바닥 중에서도 밑바닥에 내리 깔린 낙오자에 불과한 것이다.

소피아를 손에 넣지 못했다면 차선책으로 소피아의 잔정이라도 건져서 그것에 기대야 할 정도로 그의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

지금도 소피아의 비호 덕분에 이정도의 삶이나마 영위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섣부르게 소피아를 더 건드려서 그녀의 미움을 사게 되어 소피아마저도 기레스를 버린다면 그는 죽을 때까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빛을 보지 못한 채, 살아 가게될지도 모른다.

그는 하늘 위에는 하늘이 있으며 바닥에는 끝없는 나락이 있다는 것을 전생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하루에 수천만원의 돈을 써도 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돈 500원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 또한 존재하는 것이 세상사라는 것이다.

뒤가 없는 지금 소피아를 노리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실패한다면 스러지면 그뿐이다. 여기서 끝난다면 나는 그정도의 인간에 불과했던거겠지.'

소피아를 이용해 최소한의 보험만은 간직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각오하고 소피아를 손에 넣을 것인가. 이미 대답은 결정되어 있었다.

"아직 한발 남았다 소피아."

하일즈는 최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자신의 형인 기레스를 향하고 있었다. 기레스는 하일즈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소피아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기레스는 소피아에게 엉겨붙는 모습을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하일즈는 기레스를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은 무엇 하나 없는 병신이 기레스라는 인간이다. 하지만 어찌보면 그것도 당연한 일이다.

기레스보다 고작 한 살 어린 그의 시선에 항상 들어오는 것은 대다수의 마을 사람들이 기레스를 조롱하고 멸시하면서 가지고 노는 모습이었다. 심지어는 집에서조차 자신의 아버지에게 무시당하고 면박당하기 일쑤였으며 학교에서는 남들은 모두 할 수 있는 것을 혼자 따라가지 못해 놀림받는 한심한 형이다.

아버지인 젤가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도 소피아가 없을 때면, 도리어 나서서 기레스의 한심함을 가지고 조롱하기 일쑤였다. 어려서부터 쌓이고 쌓여온 기레스에 대한 인식은 어째서 그렇게까지 괴롭혀야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묵살시키고, 얼마든지 괴롭히고 멸시해도 좋은 인간이라고 하일즈를 납득시켜 버렸다.

하일즈의 작은 세계에서 기레스를 괴롭히는 것은 잘못된 행위가 아니다. 괴롭히지 않는 것이야 말로 비정상 취급을 받는 세계에서 그가 기레스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 상식의 유일한 예외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하일즈가 존경해 마지 않는 자신의 어머니인 소피아였다.

'어머니는 왜 저딴 병신을..'

완벽이라는 말이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을 정도로 소피아는 대단했다. 외모면 외모, 몸매면 몸매, 능력이면 능력, 인품이면 인품, 어떤 항목을 들이 밀어도 완벽이라는 게 가장 어울리는 여성이 어머니라는 것에 하일즈는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존경하고 있었다.

단 한가지, 자신의 형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을 빼고는 말이다.

마을 단위로 왕따를 시킨다고는 하지만, 개중에는 암묵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기레스를 동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놓고 기레스를 사랑으로 대하는 것은 마을 내에 소피아 하나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소피아라는 여성은 단순한 일개 아녀자가 아니었다. 젊었을 적에는 전장터를 누비며 수많은 전공을 쌓아왔고, 그 전공을 인정받은 그녀는 자신이 살았던 고향인 마을의 부흥을 위해 왕으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아무 것도 없이 빼곡하게 나무들로 둘러 쌓인 초라하기 짝이 없었던 마을은 소피아라는 여성 단 한 명에 의해 작은 도시 수준으로 성장하여 근방에서는 알아주는 명소가 되었다.

소피아는 권력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때묻지 않은 성격이었기에 마을 사람들의 촌장이 되어달라는 요구도 거절하고 한 가정의 어머니가 되기로 했지만, 그녀의 영향력은 모든 마을 사람들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장에 그녀라는 이름이 사라지게 되면 나라로부터 받고 있는 수많은 혜택은 연기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고, 그것만으로 발전하던 마을은 주저 앉아 버릴 정도로 소피아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그렇기에 마을 사람들은 기레스를 괴롭히더라도 소피아의 눈밖에는 안나게 하기 위해 철저하게 관리했다. 기본적으로 약자는 멸시를 당하는 세상에 아버지라는 젤가마저 나서서 기레스를 괴롭히는 것을 공인하니, 마을 사람들도 기레스를 공공연하게 가지고 놀기는 했지만, 그들도 눈치는 있었기 때문에 소피아가 있는 장소에서는 철저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기레스를 괴롭히는 것을 피해왔다.

소피아는 순박해서 사람을 잘 믿는데다, 애초에 밖을 자주 싸돌아 다니는 성격도 아니었고, 기레스마저도 자신이 괴롭힘 당하고 있다는 것을 소피아에게 철저하게 숨겼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따돌림은 해를 거듭 할수록 독해져 갔다. 개중에는 소피아가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마저 나올 정도였지만, 그 어느 누구도 소피아가 가져다 주는 막대한 이익 앞에서 기레스를 괴롭히는 도박을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을 내에서 그런 압도적인 위용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를 하일즈는 매우 존경하고 있었다. 하일즈든 티나든 쿵짝이 맞는다고 말할 수 있는 부모는 젤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마음 속 깊히 존경하는 것은 유페르 가문의 '가장'인 소피아 쪽이었다.

최근 들어 아들인데도 이따금씩 혼이 빠질 정도로 더더욱 아름다워진 자신의 어머니와, 해충이나 다름 없는 형이 정답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하일즈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소피아의 눈앞에서 기레스를 괴롭힐 수가 없었기에 그는 속을 삭히며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참기로 결심했다.

어린아이들은 어떤 의미로는 어른들보다 더 잔혹하고 영악하다. 머리가 조금 큰 무렵이 되어서는 그는 일상적으로 괴롭힘을 당해오고 있었다. 하일즈나 티나 뿐 아니라, 학급생들에게도 보일 듯 말듯 한 기레스를 향한 괴롭힘은 계속 된다.

이세계 사람들은 머리가 좋다. 계산이 빠르다. 인간적으로 우월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 사람의 인성과는 관계가 없다.

괴롭혀도 좋은 사람따위가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알텐데도, 묵인하고 지금 즐거운 괴롭힘을 이어나간다. 머리가 좋다면 좋은만큼 더 집요하고 교묘하게 괴롭힘으로 이어질 뿐이다.

[퍽 퍽]

"으허억."

"능력이 안되면 말야."

언제나와 다름 없는 참담한 학교에서의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레스는 하일즈에게 외진 곳으로 끌려와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눈치라도 있어야 되는 거 아냐?"

하일즈는 기레스의 배를 걷어 차면서 기레스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으으윽.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하일즈님?"

자신보다 한살은 어린 동생. 그것도 가족에게 님까지 붙혀가며 기레스는 비굴하게 엎드린 채로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뭘 잘못 했는지 이야기 해주시면 참고해서.."

"그런 건 스스로 생각하란 말야! 그러니 병신 취급을 당하고 살지."

인정사정 보지 않는 폭행에도 외상만큼은 나지 않는다.

'젤가 이 개새끼.'

그것이 유페르 가문, 아니 젤가의 고문술이라는 것을 기레스는 알고 있었다. 아직 어려서 따돌림을 당하지 않았을 무렵, 아이들을 모아놓고 젤가가 자랑스레 설명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때리게 되면 상처는 없이 고통만을 남기는 기술로 숙련된 사람이 사용한다면 하루 웬종일을 가격해도 가격 당하는 사람의 몸에는 고통만이 남게 되는 잔혹한 기술이다. 물론 아무리 노력해도 기레스가 그 기술을 터득하는 일은 없었지만 젤가의 그 고문술은 하일즈와 티나에게 전수되어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하일즈의 경우 기술이 어설펐기에 약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상처가 생기게 되고 때로는 힘조절을 못해서 기레스에게 상처가 나는 일도 있었지만 큰 상처가 나는 경우는 없었기에 기레스는 틈만 났다 하면 상처없는 지옥 같은 고통을 맛보아야만 했다.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용서해주세요."

바닥에 고개를 박으면서 기레스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한 바보 흉내를 내었다.

"하핫. 정말 기레스는 병신이라니까."

하일즈의 옆에는 싱글싱글 거리면서 자신의 붉은색 양갈래 머리를 만지고 있는 티나가 있었다. 그녀는 기레스에게 다가와 바닥에 박은 기레스의 얼굴을 곧바로 짓밟았다.

"우어억."

티나는 정이라고는 일말도 느껴지지 않게 기레스의 머리를 땅 바닥에 쳐박아 꾸깃꾸깃 짓밟는다.

"자. 대답은?"

티나는 지금까지의 교육의 성과를 과시하는 것마냥 행동과는 전혀 다른 청아한 목소리로 자신의 오빠인 기레스에게 묻는다. 기레스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쭈그러져서 티나의 신발을 핥으며 대답했다.

"어 어리석은 제게 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퍼억]

"으헉."

복부를 강타하는 충격에 오늘 먹었던 내용물이 전부 역으로 올라올 것만 같다.

"자.. 기레스 자신이 그렇게 못났다는 걸 안다면 말야. 주제 파악을 좀 하면서 살아야 되지 않겠어? 이제 알 만한 나이도 됐잖아?"

'크큭. 정말이지 젤가를 쏙 빼닮았구만.'

기레스는 속으로는 그렇게 조롱하면서도 겉으로는 바보 연기를 계속해 나간다.

"저 저기 뭐를."

하일즈는 답보다 먼저 주먹질을 시작했다. 면상에 주먹이 박히는데도 멍이 들기는 커녕 작은 찰과상조차도 나지 않는다. 오직 고통만이 기레스의 혼을 쏙 빼놓았다.

"모른다면 모르는 만큼 계속해서 맞으라고. 맞다 보면 네 행동도 언젠가 고쳐지겠지. 이제부터 네가 깨달을 때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패줄테니까 말야. 기대하고 있어."

"히힉."

기레스는 질겁하면서 도망치려는 척을 했다. 하지만 둔하디 둔한 기레스가 하일즈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딜 도망가!"

눈은 공격 따위는 파악할 수조차 없고, 몸은 보인다 해도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둔중해 빠졌지만, 하일즈의 공격이 언제 올지 정도는 수천 수만번의 폭행으로 인해 알 수 있었다.

'지금이다.'

기레스는 이를 악 물었다.

[퍽 쿵]

하일즈의 공격을 받자 마자 기레스는 그대로 고통에 못 이긴 척 나가 떨어지는 척을 하면서 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머리를 근처의 바위에 찍어 버렸다. .

"무 무슨..!"

그 행동에는 하일즈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띵하게 울린다.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 같았지만 기레스는 필사적으로 의식의 끈을 놓치 않았다. 여기서 정신을 잃게 되면 곤란하다. 아주 잠시동안 날아갔던 정신을 가까스로 챙기자 이번에는 쓰라린 고통이 기레스에게 몰려왔다.

"으헝헝헝.."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머리를 부여 잡고 기레스는 서럽게 펑펑 울기 시작했다.

"이 병신새끼. 그것도 못 참아서는.."

"저 저기 오빠. 저거 상처가 심해 보이는데."

티나는 걱정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그 걱정의 대상은 기레스가 아니다.

"야."

"으헝헝.."

하일즈는 자신의 말을 들은 체 만채 하며 우는 기레스의 옆구리를 걷어 찼다.

"우악."

하일즈는 데굴데굴 구르려 하는 기레스의 몸을 잡고 들어 올렸다.

"잘 들어. 너는 길을 가다가 잘못 넘어져서 바위에 부딪힌 거야. 알겠지?"

"아..."

"알겠어? 모르겠어?"

생 양아치처럼 주먹을 들이밀면서 하일즈는 기레스를 겁박했다.

"아 알겠습니다."

피가 철철 흐르는 머리통을 잡고 기레스는 꾸벅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우리는 먼저 갈테니까. 그 상처 적당히 수습하고 집으로 들어와.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하면 알지?"

"네 네.."

기레스는 연신 고개를 꾸벅이면서 대답했다. 누가봐도 기레스가 피해자임에도 마치 기레스가 잘못한 것같은 처참한 광경이었다.

"후훗. 병신."

티나는 굽신거리는 기레스를 비웃으면서 하일즈와 함께 그 자리를 뒤로했다. 하지만 그 심한 상처를 가지고 고개를 숙이며 굽실거리고 있는 기레스의 입가에 미소가 서려 있었다는 것을 그 둘은 알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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