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소피아(14)
* * *
소피아와 기레스가 목욕이라는 행위를 금한지도 2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기레스는 소피아가 금방이라도 다시 자신을 원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소피아가 기레스를 찾는 일은 없었다.
되돌아서 생각해 보면 그런 전조는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소피아가 기레스를 받아 들인 건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 뿐으로, 몸을 섞기 위해서는 대부분 기레스가 억지로 응석을 부려야만 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엄마."
"으응. 잘 잤니? 기레스."
소피아는 기레스를 보자마자 얼굴에 홍조를 띠며 그를 맞이했다.
"오늘은 스튜를 만들었단다."
소피아는 요염하게 달아오른 얼굴을 제외하면 누가봐도 정숙한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극과 극의 조화에 기레스를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온몸은 쾌락을 갈구하고 있을텐데도 그녀는 기레스의 앞에서는 철저하게 어머니를 연기했다.
'대단하군.'
그 모습에 기레스는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기레스는 자신의 손가락을 보면서 전생을 생각했다.
수많은 여성을 후리며 몸과 마음을 희롱해 나갔던 기레스지만, 이정도까지 몰아 붙혀 놓고도 저렇게까지 강한 마음을 지닌 여성은 달리 없었다. 특히나 소피아라는 여성은 살만 스쳐도 발정할 정도로 예민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는 소피아가 마음에 들었다.
"음. 맛있어 보여요."
기레스는 소피아의 근처에 가서 천연덕스럽게 말을 걸었다. 소피아의 하늘하늘한 천 너머로 기레스의 몸이 슬쩍 스치고 지나갔다.
"응? 으응."
그저 닿았을 뿐인데도 소피아의 몸은 발갛게 상기되었다. 온 몸에 새겨진 열락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면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몰라도, 내막을 알고 있는 기레스가 본다면 이미 옛날 옛적에 발정해서 녹아내린 표정이라는 것쯤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 다시 그때를 느끼고 싶지 않아?'
기레스는 요리를 구경하는 척을 하면서 말보다 행동으로 자신의 생각을 소피아에게 전했다.
"조금만 맛 봐도 되요?"
"음. 그래."
소피아는 기레스가 자신을 예전처럼 생각하는 기레스를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의 어리광을 받아 주었다.
그에 기레스는 소피아가 만든 요리를 받아 먹으려 하는 척 하다 실수를 가장해 자신이 조교해 둔 민감한 그녀의 허벅지에 밀착해 스치듯 몸을 밀착하고는 살짝 부비며 자극을 주었다. 순간 소피아는 자신의 입을 가로 막으면서 고개를 꺽는다.
"엄마?"
"응? 왜 그러니. 기레스."
고개를 내리는 소피아의 얼굴은 어느샌가 다시 어머니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음.. 뜨거우니 엄마가 따라줄게."
소피아는 작은 그릇에 만들어 둔 스튜를 조금 담아 주었다. 기레스의 회심의 공격에도 소피아는 좀처럼 흐드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다른 여자들이었다면 백번은 더 매달렸을 법한 쾌락이 전신에 흐르고 있을텐데도 소피아는 굴하지 않는다.
그 굴하지 않는 근간이 어디에서 오는지 기레스는 알고 있다.
'설마..'
그는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소피아가 기레스를 거부하는 것은 젤가에게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쾌락을 느끼지 않아서도 아니다.
이미 그녀의 내부는 쾌락의 포로나 다름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상태라는 것쯤은 겉으로 드러나오는 반응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는 것은 그녀가 양자에 불과한 자신을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레스가 잘못된 길에 들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녀는 지옥과도 같은 쾌락을 참아가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속여 모자 간의 목욕이, 애무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에는 쾌락에 빠져 허덕였지만 아들이 그 행위가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쾌락보다 먼저 모성을 선택한 것이다.
'흥..'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다. 이곳 이세계에서, 기레스라는 존재는 길가에 난 잡초만도 못한 존재다.'진짜 아들'이었다고해도 멸시를 받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못난 인간이라고 기레스 본인도 인정하고 있다.
그런 자신을 친자식도 아닌 양자인데도 쾌락보다 모정을 우선시해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 지금이라도 내가 느끼게 한다면!'
지금까지의 여자가 그래왔던 것처럼 소피아도 떨어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기레스는 가감없는 쾌락을 주고자 마음 먹었다.
"어 엄마!"
기레스는 소피아의 허벅지에 찰싹 달라 붙어 소피아의 몸을 만지려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성감대를 손가락이 쓸기도 전에 소피아의 몸은 연기처럼 사라져 있었다.
"어?"
[찰싹]
순간 뺨에 불이라도 지져진 것처럼 화끈한 통증이 몰려왔다.
"기레스. 엄마가 분명히 이제는 안된다고 했지?"
아까 전의 행위는 실수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방금 소피아에게 달라붙는 것은 몸을 탐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소피아는 가볍게 기레스를 뿌리쳤다.
"으 으흑."
"울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야! 다시는 이런 행동하지 말도록 해!"
태어나서 소피아에게 처음 듣는 엄한 말에 기레스는 그답지 않게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물론 엄밀하게는 소피아의 엄한 태도 때문이 아니라, 그 발정난 몸이었음에도 자신의 손길을단호히 거부한 그녀의 태도 때문이었다.
몸을 배배 꼬면서 아양을 부리는 것같은 말로 겨우겨우 거절하는 것과, 단칼에 무를 자르듯이 거절하는 것은 같은 거절이지만 그 본질은 전혀 다른 것이다.
"무슨 일이야? 소피아?"
"흐흑."
때마침 멀리서 젤가가 오는 소리에 기레스는 눈물을 훔치는 척하면서 그대로 자신의 방 안으로 뛰어 올라갔다.
"뭐야? 저녀석? 뭔 일 있어?"
"아 아니.. 아무 일 없었어요."
살짝 상기된 얼굴로 머리 칼을 귀에 걸어 넘기는 소피아의 요염한 모습에 젤가는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저 저기 말야 소피아. 오늘 밤 어때?"
"아.. 음. 괜찮아요."
"좋았어!"
큰 계약이라도 따낸 상인마냥 껑충 뛰며 좋아하는 젤가는 소피아가 치마를 살짝 움켜 들었다는 사실을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연히 그녀의 치맛자락 안에서 흠뻑 젖은 속옷이 있다는 것도..
"하아 하아!"
조급하게 헐떡이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흐응 으응."
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여성의 소리는 상대적으로 정적이다. 마치 기절한 사람이나 죽은 사람 마냥, 소피아의 신체는 미동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이따금씩 느낀다는 시늉을 내는 것처럼 신음소리만 추임새를 넣어줄 뿐이다.
누가봐도 아내가 이상해 보여야 할 상황인데도 젤가는 그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자지를 쫄깃하게 조여오는 소피아의 보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황홀감에 빠져 있었다.
최근의 섹스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소피아에 욕정한 젤가는 발정한 자신의 욕구를 풀기 위해 소피아를 이용해 성욕을 해소한다. 마치 배가 고프니 밥을 먹고, 목이 마르니 물을 마시는 것처럼 그 행위에는 미학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아.'
속으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으으응."
밖으로는 욕구불만의 신음소리를 흘린다. 유심히 들어보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티를 내는데도 젤가는 그런 그녀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소피아는 최근 언제나 욕구불만이었다. 하지만 차마 그녀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젤가에게 '느끼지 못하겠으니 좀 더 열심히 해줘요.' 같은 말을 뉘앙스로도 내뱉어서 젤가의 기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차마 대놓고 쓴소리는 하지 못한 그녀가 선택한 것은 넌지시 섹스가 부족하다는 척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섹스를 요구하면 섹스는 한다. 하지만 그다지 느끼지는 못한 것처럼 젤가에게 고의적으로 티를 내는 것이다. 젤가가 단 한번만 그녀의 태도를 보고 묻는다면 넌지시 자연스럽게 의견을 내뱉기 위한 그녀만의 사전준비다.
하지만 그녀의 소극적이면서도 야심찬 계획은 그보다도 더욱 무딘 젤가의 눈치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소피아가 죽은 개구리마냥 크게 젤가의 섹스에 반응하지 않아도 젤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쾌락만을 추구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기레스에 의해 한없이 예민해 져서 저도 모르게 남성을 유린해 버리는 소피아의 음란한 몸도 한 몫 하고 있었지만, 소피아가 그 사실까지 알 리는 없었다.
그저 자신의 무언의 외침을 알아주지 않는 젤가에 대한 실망만이 그녀의 욕구불만으로 난장판이 된 속을 한껏 더 후벼 팔 뿐이다. 부부 사이인데도 마치 자위를 하기 위한 도구 취급을 받는 것 같은 처량한 기분에 소피아의 마음은 점점 더 짜게 식어 갔다. 이전 같았으면 '느꼈으니까' 넘어갔을 젤가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소피아의 신체게 새겨져 나간다.
'단순한 사람. 더 해봐야 의미도 없을 것 같네.'
섹스를 시작한 지, 고작해야 3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살짝 허리를 흔들었다.
"우 우아아앗."
자신의 육봉에 휘감겨 오는 보짓살에 젤가는 외마디 탄성을 내지르며 그대로 정액을 발사했다.
'앗차.. 질내사정을 하면 안되는데..'
소피아의 변화는 알아차리지도 못하면서 잘못 질내사정을 했다가는 또 섹스를 못한다는 것 따위를 떠올리며 젤가는 화들짝 놀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소피아의 음부는 옛적에 자신의 자지에서 멀어져 있었다.
'어라?'
"기분 좋았어요. 젤가."
소피아는 덤덤하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나도 너무 기분 좋았어."
'나도.. 인가.'
소피아는 덧없이 피식 웃으며 젤가의 앞에서 낮에 기레스와 부딪혔던 일을 상상했다. 단순하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발정난 그녀의 신체는 애액을 흩날리며 절정에 이르렀다.
"소피아가 기분이 좋았다니 다행인걸."
그 말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소피아에게는 가증스럽게만 들려올 뿐이었다.
"네. 보세요?"
"음..? 뭐를?"
"너무 기분이 좋아서 이렇게 되어 버렸거든요♥"
기레스의 접촉을 상상하면서 애액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음부를 손가락으로 벌려 보이며 그녀는 요염하게 웃었다.
"소 소피아!"
"안돼요. 이미 한번 했으니까. 다음에.."
"아 아니 두번 정도는 괜찮잖아?"
"방금 질내사정하려고 했었죠?"
소피아는 차갑게 말투를 내리 깔았다.
"아 아냐. 그게 아니고 실수로."
"그 벌이에요♥"
하늘이 무너진 듯한 젤가를 바라보는 소피아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즐거운 듯한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소 소피아."
공처가인 젤가가 달려들리 없었지만 달려들어봐야 소피아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젤가는 발만 동동 구르며 뜬 눈으로 밤을 지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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