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64화 (265/266)

〈 264화 〉 263. 작전들(2)

* * *

소수 정예로 용문의 본거지를 급습해 전쟁을 끝낸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작전. 그렇기에 누구나 대비를 해뒀을 작전. 고로 누구나 성공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을 작전.

“가능하다.”

그러나 쏨밧은 그것이 가능하다 단언했다. 안수호의 표정에 의문이 떠오르나, 물론 쏨밧은 그 표정을 보지 못한다.

“어떻게?”

“그 방법을 여기서 말해줄 수는 없다. 핵심 보안이니까. 다만, 적 한 명 마주치지 않고 놈들 본부 앞까지 갈 수 있는 수단을 마련했다……고만 말해두지.”

슬럼 지하에 땅굴이라도 판 걸까. 자세한 사정은 말해주지 않았지만 어투를 들어보면 마냥 허세인 건 아닌 것 같았다.

혹 쏨밧의 말이 진실이라면 작전의 성공으로 불리한 전황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겠지. 아니, 아예 전쟁 그 자체가 끝나버릴지도 모를 일.

‘그렇지만 그런 성과가 거저 굴러들어올 리가 없지. 용문 본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곤 해도, 소수 인원으로 본거지를 급습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야. 성공해도 적진 한가운데 고립. 실패하면 그대로 몰살이니까.’

전쟁이 끝나면 류태현을 돌려보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에 류태현이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안수호는 류태현을 위험한 일에서 가급적 배제하고 싶은 속내였다. 심지어 용문에는 어째서인지 여명단 암살팀도 관여하고 있지 않은가.

‘가만히 있으면 그 작전인지 뭔지에 류태현은 거의 강제로 징용될 거야. 그 전에 무슨 수를 써야 하는데…….’

그 전까지 류태현을 슬럼에서 빼내거나, 혹은 어떻게든 작전에라도 참가하지 못하게 막거나.

어떤 방법이 있을지 고민하며 안수호가 침음성을 삼켰고.

“…….”

그런 안수호를 쏨밧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봤다.

***

“기다리고 있었나.”

안수호가 바깥으로 나왔을 때 그곳에는 류태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 류태현이 아닌 용병 블랙 도베르만으로서.

“가면서 이야기 좀 하지.”

“좋아.”

보는 눈이 있기에 일부러 말투를 퉁명스럽게 하며 두 사람이 거리로 나섰다. 이미 한밤중에 접어든 거리는 그럼에도 은근히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두 사람은 다른 이들의 이목을 피할 장소를 물색하다 불이 꺼져있는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슬럼에는 이처럼 빈 건물이 많아 편리하다며. 안수호가 그렇게 생각할 즈음 류태현이 먼저 그에게 물었다.

“위에서 무슨 이야기 했어?”

“이것저것. 연봉 협상도 했고. 또 작전에 대해서도 듣고.”

“작전?”

“그래. 안 그래도 이야기하려 했는데…….”

안수호는 쏨밧에게서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그래봐야 안수호가 알고 있는 거라곤 용문 본거지를 습격할 계획이 있다 정도였지만.

“…….”

이야기를 들은 류태현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이내 안수호에게 묻는다.

“형은 어떡할 거야? 작전에 참가할 거야?”

“아니, 정말 불가피하지 않은 이상 무조건 내뺄 거야. 적진 한복판에서 소수로 기습이라니. 목숨 버리기 딱 좋은 일이잖아.”

“그건 그렇지…….”

“뭐, 나야 고용된 입장이니 위험한 일 하기 싫다고 내빼면 되겠지만 넌 아마 거의 강제로 참가하게 되겠지. 고아원을 약점 삼아 잡혀있는 입장이니까.”

“…….”

신랄한 한 마디에 류태현이 말을 잇지 못했다.

몇 시간 전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안수호와 반목하다시피 언성을 높인 그였지만, 그라고 해서 좋아서 성철파 밑에서 일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자신의 일에 안수호의 도움을 받는 걸 꺼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시라도 빨리 슬럼을 뜨고 싶은 것 또한 그의 본심이었다.

“내가 곰곰이 생각을 좀 해봤는데 말이야…….”

이에 안수호가 류태현을 걱정하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태현이 넌 성철파 밑에서 두 달 동안 일하기로 했지. 그 기간이 끝나면 고아원의 상납금을 면제해주고 다신 손을 대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말이야. 그런데, 녀석들이 과연 그 말을 지킬까?”

그 의문은 류태현이 이제껏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던 의문이었다.

류태현은, 블랙 도베르만은 성철파에 있어서 놓치고 싶지 않은 중요 전력이다. 류태현이라면 두 달 동안 성철파 아래에서 수많은 업적을 이뤄낼 게 자명했지만, 그런 그를 더욱 오래 붙잡을 수 있다면 더더욱 이득 아닌가.

하물며 만약 두 달이 지나도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면?

성철파로선 당연히 류태현을 더욱 붙잡으려 할 것이다. 그를 놓아주면 곧바로 최전선에서 싸울 중요 전력에 공백이 생기는 것일 테니까.

한편 전쟁이 끝났다 해도 안심할 수는 없다. 전쟁이 끝났더라도 용문이나 블랙스미스가 건재하다면 성철파는 여전히 전력을 필요로 할 테고, 설령 그들이 슬럼을 통일했다 한들 ‘슬럼이 우리 것이 되었으니 이제 무력을 포기하겠다!’하고 나오진 않을 것 아닌가.

결국 두 달 뒤의 상황이 어떻든 류태현은 성철파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떠나려 해도 무슨 수를 써서든 그를 붙잡아두려 하겠지.

“…….”

이상의 이야기를 안수호가 묻자 류태현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류태현이라고 해서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기에 대처를 유보했을 뿐.

“이대로 가면 넌 적진 한복판에 고립될 지도 모를 위험한 작전에 참가하게 될 테고. 그 뒤로도 계속 놈들에게 착취당하게 될 거야. 너한테 고아원이라는 약점이 있는 이상 벗어나긴 힘들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렇다고 고아원 애들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건데.”

“너 혼자서라면 그렇겠지.”

그 말에 류태현이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안수호를 바라봤다.

“형이라면 방법이 있다는 거야?”

“그래.”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안수호.

“다만 그러려면 네가 내 도움을 받아들여야겠지. 아까처럼 자존심 부리는 게 아니라.”

“…….”

류태현의 표정에 갈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안수호가 선의로 류태현을 도와주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안수호에게 손을 벌리게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죄책감과 열등감. 그 둘이 섞인 오묘한 감정이었다.

“……알겠어. 형이 하자는 대로 할게.”

그러나 결국 류태현은 제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과 달리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결과, 지금 상황이 그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 잘 생각했어. 너랑 나랑 힘을 합치면 분명 놈들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말이야 쉽겠지만……. 솔직히 난 잘 모르겠어. 형이 무슨 수로 날 빼내주겠단 건데? 설마 나 대신 성철파 밑에서 일하겠다, 그런 건 아니지?”

“설마. 난 경비대가 천직이야. 직업 바꿀 생각 없어.”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할 심산이냐고.

그렇게 묻는 듯한 류태현의 눈빛을 보며 안수호가 생각을 정리했다.

현재 류태현이 당면한 문제는 고아원을 빌미로 성철파에 가담하도록 협박당하고 있는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 문제에 얽힌 요소들을 해소해야 한다. 가령 고아원이 성철파로부터 자유로워지거나, 혹은 성철파가 류태현의 전력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거나.

물론 이는 둘 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문제에 얽힌 요소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쏨밧.

성철파의 두목 대리인 그야말로 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그는 류태현을 협박하는 주체였으며,

그가 묶여있는 성철파의 구심점이었고,

무엇보다 성철파 안에서 유일하게 류태현의 정체를 알고 있는 자.

그러므로.

“쏨밧을 죽이자.”

그만 죽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게 안수호의 결론이었다.

“…………뭐?”

갑작스러운 말에 류태현은 당연히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안수호의 의지는 확고했다.

“놈만 죽이면 모든 게 해결 돼. 성철파가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당장 네 정체를 아는 자가 사라지니 넌 곧바로 해방될 수 있어. 블랙 도베르만이 너라는 걸 모르는 이상 고아원을 협박할 사람도 없겠지. 상납금만 제대로 준비해두면 별 탈 없을 거야.”

“형, 문제는 그게 아니라­”

“나도 알아. 대리라고는 해도 조직 두목이니 꽤 강하겠지. 그렇지만 너랑 나랑 둘이서 붙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야. 그러고도 못 이길 상대면 애초에 너한테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겠지. 그렇게 강하면 용병이 뭐야, 지 혼자 다 쓸고 다니면 되는데.”

류태현의 전력은 A급 중에서도 중상위. 안수호 본인은 강하늘의 백업까지 포함하면 S급은 가뿐히 넘어선다. 쏨밧이 아무리 날고 기는 초인이라 해도 그 둘의 협공을 막을 수는 없을 터.

“다행히 쏨밧은 너나 나를 특별취급하고 있어. 당장 오늘만 해도 난 그녀석과 독대했고. 기회는 만들려고 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거야. 가령 아까 말했던 극비 작전에 대해 전해줄 때라든가­”

“형.”

진지한 어투로 이야기하던 안수호의 말을 류태현이 잘라냈다.

“왜? 혹시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걸리는 거? 당연히 있지.”

“뭔데?”

혹 자신이 모르는 방해 요소라도 있는 것일까. 안수호가 그렇게 생각하며 물었으나 이어지는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난 사람을 죽이는 건 반대야. 설령 상대가 쏨밧이라고 해도.”

아, 하고 안수호가 작게 탄성을 뱉었다.

그랬다. 류태현은 안수호와 달리 살인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필요악이고 불가피한 일이고 자시고 아예 상정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용병 일을 하면서도 죽인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랬지.’

돌이켜 보면 이제껏 류태현이 악인과 싸워 죽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원작에서도 그가 살인을 저지르는 건 심신이 피폐해진 중후반부 이후였다. 고로 현재의 류태현이 쏨밧을 죽이자는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태현아. 살인이라고 말하면 거창해보이지만 놈은 극악무도한 악인이야. 그녀석이 지금껏 죽인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아?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오히려 이건 응징이야. 놈의 업보라고.”

“그래도 살인은 안 되는 거야 형. 아무리 놈이 악인이라도 우리한텐 놈을 응징할 권리가 없으니까. 아니, 그 누구한테도 사람을 죽여도 되는 이유 따윈 없는 거야.”

“그야 도덕론을 따지면 그렇지만……”

무슨 소설 주인공 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 생각했으나 그야말로 이 세상의 주인공.

아직 세상의 쓴 맛을 덜 본 류태현은 올곧기 그지없었다. 안수호는 그 모습이 풋풋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답답하기도 했다.

“……넌 쏨밧한테 당한 게 많잖아. 화도 안 나? 네 친구 다리도 그녀석이 명령해서 그렇게 된 거라며. 그런데 한 번이라도,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어?”

“……………나라고 화를 모르는 건 아니야. 많이 생각해봤어. 죽여버리고 싶다고. 그렇지만 그렇다고 정말 죽여버리면, 그래서야 나도 그놈하고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야.”

류태현은 인격자였지만 미성숙했다. 그라고 해서 분노나 원한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당장 조금 전 러스티네일과 마주쳤을 때만 해도, 그는 고아원 아이들을 죽였던 러스티를 죽여버릴 각오로 달려들었으니까.

그러나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것과 정말로 죽여버리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사람의 목숨을 직접 빼앗지 않는 것. 그것은 류태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일종의 선 같은 것이었다.

한 번 넘어버리면 두 번, 세 번은 쉽지만, 그렇기에 그 한 번 넘는 것을 경계해야만 하는 선.

‘하긴, 원작에서도 한 번 사람 죽인 다음에는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듯 죽이고 다녔지. 독자들 반응도 드디어 고구마 끝나고 사이다 시작이라고 나쁘지 않았고.’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을 보는 독자였을 때의 이야기.

안수호는 한 번 사람을 죽임으로써 주인공 류태현이 얼마나 심적으로 고통을 받았는지, 심신이 피폐해진 그가 어떤 꼴이 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무심하게 살인을 권한 스스로의 행동이 뒤늦게 후회됐다.

“…………그래. 내가 좀 급진적으로 생각한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살인은 아니지. 놈을 죽이는 거 말고도 방법이 있을 거야. 한 번 생각해볼게.”

“미안해 형…….”

“미안할 게 뭐 있어. 백 번 옳은 소리인데.”

안수호가 피식 웃으며 답하자 류태현이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 류태현을 보며 안수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 태현이 없이 나 혼자라도 놈이 성유진보다 강하지 않은 이상에야 죽일 수 있겠지. 정 안 되면 놈이 간접적으로 다른 세력에 죽게끔 판을 짜도 될 테고…….’

다른 방법을 찿아보겠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실 쏨밧을 죽이는 게 가장 간편한 방법임은 여전했다. 안수호는 겉으론 류태현의 말에 설득된 것처럼 연기하며 속으론 그를 죽일 계획을 차근차근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류태현은 그런 그의 속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수 시간 후.

류태현과 헤어진 안수호는 곧장 모텔로 향했다. 방으로 들어가자 조유리와 지예원, 그리고 강하늘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확은 있었어?”

지예원의 질문에 안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침부터 밤까지 있었던 일련의 사건 흐름을 세 사람에게 상세하게 설명했다.

강태수와 접촉하여 용병으로서 면접을 본 것부터 시작해 류태현을 발견한 것. 그리고 러스티네일과 싸운 것과 쏨밧이 말한 극비 작전에 이르기까지.

단, 조유리가 있었기에 쏨밧을 죽이고자 했다는 부분은 말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니까 하루에 참 많은 일이 있었네.’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된 일에 세 사람은 다 놀란 표정이었다. 특히 조유리의 경우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을 정도였다.

“족히 며칠은 걸릴 줄 알았는데 하루 만에 류태현을 찾아내다니……. 그 프로페서란 사람 정보가 대단하긴 대단했나보네…?”

“글쎄. 프로페서도 대단하지만 ‘우리 수호’였으니까 하루 만에 찾아낸 거지.”

“우리 수호……?”

지예원의 말에 조유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쪽을 돌아봤다. 그런 그녀의 뇌리에 돌연, 며칠 전 한 방에서 그렇고 그런 짓을 하던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화끈.

물론 그녀가 안수호와 지예원이 실제로 거사를 치르는 장면을 본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 둘은 그런 짓을 하지도 않았고, 그저 함께 있던 이유를 둘러댄 것뿐이었다.

“…….”

허나 사정을 모르는 조유리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이라. ‘우리 수호’라는 낯간지러운 단어에 그녀가 얼굴을 붉히자 지예원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래서. 류태현을 찾았으니 이제 어떡할 생각이야?”

“당초 예정대로 상납금을 대신 지불하고 류태현을 빼올 겁니다. 다행히 저쪽에서 꽤 조건을 후하게 쳐줬거든요. 아마 금방 필요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놈들이 돈을 받고도 류태현을 놓아주지 않으면?”

안수호가 제기했던 의문점을 조유리 또한 당연하게 제기했다. 예상했던 바였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겠죠. 그렇지만 높진 않을 겁니다. 상납금을 냈음에도 계속 그를 붙들어두려 하면 류태현을 완전 적으로 돌리는 꼴이 될 테니까요. 게다가 저 또한 녀석 편을 들어줄 거고.”

블랙 도베르만과 빌헬름.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실력 있는 A급 용병 두 사람과 척을 지기를 성철파는 원하지 않을 것이다. 고로 적절한 합의점만 찾아내면 원만하게 일을 끝낼 수 있을 거라고.

“흐음…….”

그 답은 조금 전 안수호가 류태현에게 들려줬던 답과 일맥상통했다. 물론 실상 성철파가 정말 그 정도로 단념할지는 알 수 없었고, 그렇기에 안수호는 여전히 쏨밧을 죽이는 걸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그 부분을 구태여 조유리에게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뭐어. 아예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네. 성철파가 류태현을 붙잡아두려는 건 전력 부족 때문. 그를 적으로 돌려버려선 류태현뿐 아니라 그에게 대응할 전력까지 추가로 잃는 셈……이라는 거니까.”

다행히 조유리는 안수호의 말에 어느 정도 납득하는 눈치였다. 몰래 안도의 한숨을 뱉은 안수호가 역으로 물었다.

“이미 류태현을 찾은 마당에 별 의미 없을 수도 있지만, 선배는 오늘 하루 동안 뭐 수확 없었습니까? 아니면 예나 너는?”

“난 딱히 없었어. 내 나름대로 블랙 도베르만에 대한 소문을 조사해봤지만 이렇다 할 정보는 없더라고.”

“나도 류태현에 대해선 비슷해. 대신 수확……이라기보단 말해줘야 할 정보가 있긴 한데…….”

“뭔데?”

안수호의 물음에 지예원이 살짝 조유리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앞에서 이걸 말해도 되나 하고 고민하는 눈치.

그러나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내 말하기로 결정한 지예원이 불안한 눈초리로 안수호에게 말했다.

“아까 낮에 구역 경계 쪽을 살피다 우연히 찾은 건데…….”

그 말과 함께 지예원이 품에서 낡은 포스터 한 장을 꺼냈다. 비바람에 잔뜩 노출되었는지 여기저기 더러워진 모습.

“이게 뭔데­”

무심하게 포스터를 받아든 안수호는 다음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그것은 포스터라기 보단 일종의 현상수배지 같은 느낌이었다. 특이할 점이라면 찾는 사람의 사진 대신 몽타주가 붙어있다는 점이었는데, 몽타주에 사람 얼굴이 아닌 이목구비 하나 없는 마네킹 같은 실루엣만 그려져 있다는 점.

그러나 안수호가 당황한 부분은 그곳이 아니라 수배자의 인상착의를 적어둔 부분이었다.

신장 180 전후.

검은 머리카락의 남성.

은색 금속질 가면으로 얼굴을 감춤.

근무복 느낌의 하늘색 와이셔츠에 까만 정장 바지.

추정 초인 등급 B급 이상.

비행 관련 초능력 보유.

주의)블랙스미스의 구역에서 금지된 살인을 저지른 흉악한 자이므로 주의를 요함. 발견 즉시 블랙스미스 고객센터 15XX­XXXX로 연락할 것.

“몇 개는 아리송한 것도 있지만 신장이나 복장 같은 게 묘하게 네가 생각나는 것 같아서 가져와봤거든. 블랙스미스 쪽 구역 뒷골목에 몇 장 붙어있던데……. 이거 너 아니지?”

지예원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물었으나.

“……어?”

안수호는 그 말에 차마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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