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60화 (261/266)

〈 260화 〉 259. 열등감

* * *

그날 밤.

류태현은 광사동 사무실을 나서 곧장 남쪽으로 향했다. 지금껏 외출이라곤 한 번도 하지 않은 그가 밤중에 바깥으로 나가자 조직원들이 의아해하긴 했으나, 용병인 그가 어딜 가든 그들이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었다.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쭉 내려가 양주를 넘어서 의정부로.

이윽고 그가 도착한 곳은 세 조직의 접경지대에 있는 중립지대였다. 류태현은 군데군데 남아있는 표지판과 지도 어플에 의존해 골목 구석에 있는 어느 6층 건물로 들어섰다.

­끼이이익.

옥상에 도착해 녹이 슬대로 슬은 문을 열자 상쾌한 밤바람이 그를 반겨주었다. 옥상에 먼저 와있던 선객과 함께.

“왔어?”

선객은 까만 코트 차림의 남성이었다. 머리에는 은색 투구를 쓰고 있었는데 달빛을 받아 푸르게 빛이 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가 쓰고 있던 투구가 봄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안수호의 얼굴.

“너도 가면 벗어. 근처에 감시는 없으니까.”

“…….”

그 말에 류태현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요 며칠 바깥에선 결코 벗지 않았던 가면이기에, 상쾌한 바람이 피부에 직접 닿자 어색한 느낌마저 들었다.

“수호 형…….”

“오랜만이다 태현아. 주말만 지나면 다시 올라온다던 놈이 왜 이렇게 밍기적거려? 나랑 대련 한 판 더 뜨기로 한 거 그새 잊었어?”

별 일 없었다는 듯 친근하게 너스레를 떠는 안수호.

그러나 류태현의 표정은 별로 좋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진한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마치 그가 성철파 조직원들을 대할 때처럼.

“형이 여긴 무슨 일이야? 게다가 그 모습은 뭐고.”

“너 찾으려고 왔지. 성철파에 용병으로 속여서 들어왔어. 투구는 얼굴 가리려고 쓴 거고.”

“……그 이상한 인형은?”

“아티펙트야. 실비라고 해. 서로 인사나 할래?”

안수호의 오른손에서 꼬르륵 하고 튀어나온 실비가 그의 손 위에서 손을 휘휘 흔들었다. 앙증맞고 귀여운 모양새였지만 류태현은 그런 것에 반응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날 찾으러 왔다고……. 왜 날 찾으러 온 건데? 방학이라도 일 때문에 바쁘지 않아?”

“그 일 때문에 온 거지. 네 부모님한테서 실종 신고가 들어왔거든.”

그 말에 류태현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안수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게 왜 부모님이랑 아카데미에 말을 다르게 해놨어. 그냥 양쪽에다가 다 어디 여행이라도 떠난다고 얼버무리기라도 하지.”

“그 때는 워낙 경황이 없었거든. 조만간 말을 맞춰서 다시 연락하려고 했는데…….”

“네 부모님 행동이 한 발 빨랐다는 거네. 다행이야. 덕분에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고 곧바로 수사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경찰에서도 날 찾고 있어?”

“경비대랑 공조 중이지. 그래봐야 그쪽 태도는 미적지근하지만. 이권이니 비리니 잔뜩 얽혀서 슬럼 관련 일은 죄다 쉬쉬하는 분위기더라고.”

경찰이 적극적이지 않다는 말에 류태현이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안수호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실종 신고는 확실히 들어갔어. 돌아가면 한참 추궁당할 거다. 미리 변명 생각해두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지. 알려줘서 고마워. 이쪽 일이 정리되는 대로 나도 돌아가 볼게. 그러니 형은­”

“태현아.”

안수호가 류태현의 말을 끊으며 그를 불렀다.

“네가 거절할 거란 건 아는데, 그래도 일단 물어는 볼게. 혹시 지금 당장 돌아갈 생각은 없냐?”

“…………미안 형. 뭐라고 말은 못 하지만, 나한테는 해야 할 일이­”

“고아원 일이지? 알고 있어. 며칠 전에 들렀거든.”

그 말에 류태현이 ‘어떻게?’라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류태현과 고아원의 연결에 대해 아는 사람은 슬럼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 헌데 어떻게 외지인인 안수호가, 이토록 짧은 시간에 고아원에 대해 캐낼 수 있었단 말인가.

“권은하란 여성분한테서 대강의 사정은 들었어. 고아원의 상납금을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성철파 밑에서 일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연락도 끊고 잠적한 거고.”

“…….”

“얼마야?”

“…………5천만.”

“네가 그만한 저금을 가지고 있을 리는 없고. 당연히 몸으로 때우라 했겠지.”

“맞아. 두 달만 놈들 밑에서 일하면 상납금을 면제해주기로 했어.”

“두 달이라. 딱 방학 끝날 때가지네. 그럼 그때까지 사람들이랑 죄다 연락 끊고 잠적해 있을 생각이었어?”

“나라고 잠적하고 싶어 한 건 아니야. 외부랑 연락을 금지한 건 성철파의 요구야. 보안이라든가, 여러 가지 문제로…….”

여타 용병들과 달리 류태현은 성철파 사무실 내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특별한 경우였다. 당연히 그만큼 더욱 보안에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

“……형.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뭔지 대충 알 것 같긴 한데. 일단 물어나 보자. 뭔데?”

“나 대신 부모님께 말 좀 전해줄 수 있어? 형 말대로 어디 여행이라도 갔다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부모님이 안심하시면 실종 신고도 취소하실 거고, 그럼 경찰 수사도 멈출 거 아냐. 난 확실하게 두 달 뒤에 돌아갈 테니까, 그때까지만 좀 안심하시라고 형이 말 좀 잘­”

“태현아.”

그때 안수호가 류태현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너 지금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거냐?”

안수호의 날선 물음에 류태현의 말문이 턱 막혔다.

“나보고 너 대신 네 부모님을 안심시키라고? 그러니까 뭐 이러라는 거야? ‘류태현 학생 부모님. 안심하세요. 수사 결과 아드님은 자아를 찾기 위한 여행길에 올랐을 뿐, 어떠한 사건에 휘말리거나 실종된 게 아닙니다. 왜 연락을 하지도 받지도 않느냐고요? 핸드폰 GPS는 왜 슬럼에서 끊겼냐고요?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죠. 다만 제가 말씀드릴 건 아드님이 지금 안전하다는 겁니다. 아드님은 반드시 여러분의 곁으로 돌아올 겁니다.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는요. 그러니 더 이상 걱정하지 마시고 아드님이 내적 성장을 이뤄 집에 돌아오기만을 편안히 기다리시면 된답니다.’ 이렇게? 네 부모님이 퍽이나 납득하시겠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그럼 형 핸드폰이라도 빌려줘. 내가 직접 부모님을 설득할게.”

“만약 설득 못하면? 요 며칠 동안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가 대뜸 여행 중이니 찾지 말라는 아들의 말에 네 부모님이 과연 ‘어머 그렇구나 알겠다 즐거운 여행 되렴.’하고 납득하시겠냐? 곧바로 경찰에 대고 내 번호가 누구 번호인지 알아보시겠지. 아니, 그럴 필요도 없겠다. 이미 담당 수사관이랍시고 내 번호를 너희 부모님께 드렸으니까. 네가 전화를 끊으면 곧장 다시 연락이 오겠지. ‘경비대원님? 지금 제 아들과 같이 계신 건가요? 지금 어디 계신 거죠?’라고. 그럼 난 이렇게 답해야지. 죄송합니다. 현재 위치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드님의 의향입니다. 이 이상 아드님을 찾지 말아주세요…….”

속사포처럼 말을 뱉던 안수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류태현은 본래 이성적인 사내였다. 성격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리분별을 잘 할 줄 안다는 의미에서.

그러나 지금 류태현은 전혀 이성적이지 못했다. 스스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상함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그는, 명백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태현아. 솔직히 말할게. 널 찾기 위해 경비대원인 내가 위장신분까지 써가며 슬럼에 잠입한 이 상황. 이게 지금 그렇게 가벼운 상황처럼 보여? 아니잖아. 응? 너도 아닌 거 알고 있을 것 아니야.”

“……알아. 그렇지만 난 지금 못 돌아가. 내가 돌아가면 고아원이…….”

“고아원 상납금. 그 문제만 해결되면 곧장 돌아갈 수 있다는 거지?”

그 말에 류태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안수호를 바라보았다.

그래, 류태현이 지금 용병 행세를 하고 있는 건 전적으로 상납금 때문이었다.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안수호의 말마따나 그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도 아무런 탈이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뭔가 방법이 있다는 거야?”

“내가 도와줄게.”

“뭐?”

안수호의 담담한 대답에 류태현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내가 도와준다고. 고아원 상납금 버는 거. 너 혼자 두 달 일해서 벌 돈이면 둘이서 하면 한 달 안쪽으로 되겠지. 정 뭣하면 내가 성철파나 다른 조직 사무실 급습해서 현금이라도 털어와도 되고. 아, 일단 지금 한 오백만원 정도는 있거든? 나 슬럼 처음 왔을 때 습격한 강도단 놈들 주머니 턴 돈인데…….”

당연하다는 듯이 류태현을 도와주겠노라 말하는 안수호를 보며 류태현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형이 왜?”

“뭐가.”

“형이 왜 날 도와줘. 이건 내 문제고. 게다가 범죄인데…….”

“그거야…….”

괜히 네가 슬럼에서 구르다 죽기라도 하면 내 목숨도 위험해지니까.

안수호가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헌신적인 이유는 기실 대부분 주요 등장인물의 목숨과 세트로 묶여버린 그의 명줄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례에서 그랬듯, 그러한 사정을 곧이곧대로 말할 순 없는 노릇.

“……난 경비대원이잖냐. 내 역할은 너 같은 학생들이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주는 거라고. 네가 하루라도 일찍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깟 범죄 가담 쯤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나한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너 같은 학생이니까.”

결국 안수호가 입에 담은 건 이번에도 경비대원으로서의 사명감이니 책임감이니 하는 문제였다. 학생을 위해 범죄마저 마다하지 않겠다니 궤변에 가까웠으나, 당장 댈 논리가 그것밖에 없었다.

‘조유리는 사정을 설명하면 설득할 수 있을 것 같고. 하늘이야 내 목숨이 류태현한테 달린 걸 아니까 바로 납득하겠지. 예원이도 설명하면 오히려 자기도 돕겠다 나설 성격이고…….’

지예원의 도움을 받는다면 용병 일 외에도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올지도 모른다. 잘만 하면 삼주 안쪽으로 류태현을 집으로 보낼 수도 있겠다며. 안수호가 제 혼자 계산기를 굴리며 류태현에게 덧붙였다.

“태현이 넌 앞으로 전투 있으면 무조건 나랑 같이 나가. 그리고 되도록이면 싸울 때 내 옆에 붙어있고, 위험하다 싶으면 곧바로 내빼. 어차피 너야 두 달 기간만 채우면 되는 거고, 난 반대로 공을 세우면 인센티브라도 떨어질지 모르니까 그 편이 효과적이겠지. 행여 위험한 상황에 처해도 내 초능력이 너보다는 도주에 더 걸맞으니까…….”

“형…….”

자신을 위해 상당한 위험조차 무릅쓰겠다는 그 모습에 류태현은 제일 먼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안수호 입장에서 자신은 그저 친한 동생에 불과할진데, 이정도로 자신을 위해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류태현은 무거운 부담감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안수호가 위험을 부담한다는 이 상황 자체가 탐탁지 않았다. 타인을 도와준다면 모를까 그가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건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으니.

게다가, 류태현의 머릿속 한 구석에선 은연중에 이런 생각도 피어올랐다.

그의 도움은 고맙지만 이런 상황에 그에게 의지하기만 해선 결코 그를 넘어설 수 없다고.

이미 자신을 따라잡아 추월해버린 그의 등을, 결코 다시는 붙잡을 수 없게 될 거라고.

그것은 일종의 자존심 문제였다. 류태현은 본래 도움을 주는 것에 익숙하지 도움을 받는 것엔 서툴렀기에.

하물며 그 상대가 며칠 전 대련에서 자신을 이긴, 본래는 자신보다 한참 약했는데도 따라잡아 추월해버린 안수호였으니 오죽하겠는가.

“……형. 마음은 고맙지만 형한테 그런 위험 부담을 지울 순 없어. 이건 내 일이니까 내가 해결할게.”

이에 류태현은 안수호의 선의를 정중하게 사양했다. 말은 그에게 부담을 지울 수 없다는 겸양의 표현이었지만, 그 결정에 치기어린 자존심 또한 얽혀있음을 류태현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부끄러운 자존심은 결코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형을 걱정해 선의를 마다하는 착한 동생인 것처럼, 류태현은 부끄럽기 그지없는 가면을 제 얼굴에 두른다.

“……뭔 소리야 그게.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은 뭐로 들은 건데? 지금 부모님도 네 친구들도 다 네 걱정만 하고 있는 거 몰라서 그래? 내가 뭐 다 내팽겨치고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잖아. 최대한 빨리 상납금을 갚으려면 내가 도와주는 편이 효과적이니까 도와주겠다는 건데­”

“말했잖아. 내 문제니까 내가 해결하겠다고. 형이 도와주지 않아도 난 잘 해낼 수 있어. 슬럼에 나보다 강한 녀석은 별로 없으니까.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부모님이나 친구들한텐 내가 잘 설명할게.”

“그러니까 그게 뭔 개소리냐고 이 미친 새끼야.”

“형…?”

안수호의 입에서 튀어나온 거친 말에 류태현이 흠칫 놀랐다. 안수호가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과 함께 이야기했다.

“……야, 류태현. 지금 네가 뭐 거창하게 내 일은 내가 책임을 지겠다, 자신의 문제에 남을 끌어들일 순 없다 이러고 있는 거. 그거 책임이 아니라, 씨발 그냥 어리광부리는 거야. 책임을 지려면 처음부터 부모님이든 아카데미에든 들키지 않게 잘 속이든가! 이미 걱정이란 걱정은 다 하게 해놓고 이제 와서 책임 운운하는 게 진짜 책임인 것 같냐? 정신 좀 차려 이 미친 새끼야!”

감정에 복받쳐 거센 말을 토해내는 안수호의 모습이 류태현은 낯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안수호가 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내보이는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안수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원작 주인공이라는 위치, 게다가 그 특유의 착한 성격 덕에 안수호는 이제껏 류태현에게 결코 악감정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당장 지금도 악감정이라기보단 그저 답답한 감정을 토로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형, 난 순전히 형이 괜히 나 때문에 다칠까봐 걱정돼서­”

“넌 씨발 네 걱정만 걱정이고 나나 네 부모님 걱정은 걱정도 아니냐? 도대체 뭐가 문제기에 이걸 거절해? 내가 도와준다잖아! 돈도 안 받고 무료로! 고아원 상납금인지 뭔지 얼른 갚고 내뺄 수 있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넙죽 받아들여야 할 제안 아니냐? 근데 씨발 도대체 왜 그러냐고! 답답하게!”

그러나 말을 이어가면 이어갈수록 그 입에선 점점 거친 표현만 나왔다. 답답한 마음에 그랬다 할 수도 있지만 무언가 조금 달랐다.

마치 가슴 속 깊은 곳에 응어리진 분노가 새어나오는 것처럼.

안수호는 욕지거리를 섞어 그에게 소리치면 소리칠수록 알 수 없는 후련함이 느껴지는 것에 의아해했다. 그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 상태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지경.

허나 그것과 별개로 안수호의 말은 하등 다 맞는 말이었다. 그가 저지른 단 하나의 판단 실수는 류태현이 지난 대련 이후 그에게 일종의 열등감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것뿐이었다.

“형, 나는……”

물론 류태현이 그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비단 100% 그의 열등감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닐 터였다.

류태현의 마음속에는 분명 안수호를 걱정하는 마음도 존재했다. 오히려 비중만 따지면 치기어린 자존심이나 열등감 따위보다 그러한, 악의 없는 걱정이나 양심 따위가 더 크게 차지하고 있겠지.

그러나 비중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알량한 자존심이나 부리며 겉으로만 양심을 챙기려는 그의 모습은 결국 부끄러운 가면에 불과했다. 웃기지도 않는 기만이었다.

그렇기에 안수호는 답답한 그 모습에 분노했고.

“게다가 뭐? 내가 다칠까봐 걱정이 돼? 말은 바로 해야지. 네가 나보다 강하면 얼마나 강하다고? 오히려 걱정은 내가 해야하지 않겠냐?”

“……뭐?”

그도 모르는 사이에, 류태현의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던 열등감을 있는 힘껏 후벼팠다.

“규칙 있는 대련이라면 모를까. 이런 길거리 싸움에선 내가 너보다 나아. 난 줄곧 랭킹전만 해온 너랑 달리 연초부터 지금까지 하루하루가 계속 실전이었으니까. 너보다 내 실력이 더 낫다고.”

“…….”

“아 뭐, 그래. 하긴 너도 예전에 1년 동안 용병 일하며 산전수전 다 겪긴 했겠지. 경험은 비슷하다 치자. 하여튼 요지는 너 혼자 내 걱정할 필요 없다 그거야. 막말로 너나 나나 슬럼에서 객사할 실력은 아닌데 뭣하러 내 걱정을 하느냐 그 말이지 내 말은.”

급속도로 어두워지기 시작한 류태현의 표정에 아차 싶은 안수호가 곧바로 제 말을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덤덤하게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류태현이 안수호에게 물었다.

“형. 지금까지 날 형보다 약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뭐? 뭔 소리야 그게. 내가 왜 널 약하다고 생각해. 너는­”

“맞지? 내가 형보다 약하다고. 약해빠졌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말이 나온 거잖아. 지 강함에 취해서 발전도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제자리걸음만 하는 멍청이라고.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냐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갑자기…….”

류태현의 급발진에 안수호는 다소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가 다소 말실수를 했다곤 해도, 그게 이렇게까지 반응해야 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안수호가 모르고 있었다 뿐이지 기실 그가 후벼판 부분은 류태현의 역린이나 다름없었다. 가뜩이나 그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그 역린을 건드려버린 건 그야말로 최악의 수였다.

“저, 태현아. 내가 살짝 말실수를 하긴 했는데, 내 말은­”

­지이이이잉.

그때 류태현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쏨밧이 준 연락용 휴대폰이었다.

“무슨 연락이야?”

“……지원 요청. 용문 녀석들이 쳐들어왔대. 지금 당장 그쪽으로 가달래.”

“그래? 그럼 나도 같이­”

“형은 따라오지 마. 내 일이니까, 내가 알아서 해결해.”

그 말만 남기곤 대답도 듣지 않겠다는 듯 류태현이 몸을 돌렸다. 가면을 쓰고 후드를 깊게 눌러쓴 그가 건물 아래로 몸을 휙 던졌다.

“…….”

그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던 안수호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미간을 손으로 짚은 채 오만상을 찡그렸다.

“……대가리 터지겠네 진짜. 쟤는 또 왜 저렇게 고집불통인 건데.”

류태현을 곧장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플랜 A. 그와 함께 용병일을 하며 상납금을 빠르게 채우는 게 플랜 B.

안수호는 플랜 A는 모르더라도 플랜 B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헌데 현실은 플랜 B는커녕 류태현과의 사이마저 악화일로로 치달았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우우우웅.

그때 안수호의 휴대폰 또한 진동했다. 마찬가지로 슬럼에서만 사용하기 위해 지예원을 통해 구한 대포폰이었다.

화면을 확인하자 도착한 것은 강태수로부터 온 긴급 지원 요청.

그 지원 요청이 류태현이 받은 것과 동일한 것임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휴대폰 화면을 끈 그가 깊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따라오지 말라고 했지만…….이렇게 되면 따라가는 건 아니지?”

자기도 호출받은 입장이니 어쩔 수 없다며.

곧 안수호가 류태현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있는 힘껏 몸을 던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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