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8화 〉 257. 빌헬..름?(1)
* * *
빌헬름.
안수호가 그 이름을 자처한 데엔 그리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마침 머리에 쓴 것도 투구니까. 딱 생각나는 이름이 그거라서 썼다고.
“네가 빌헬름이냐?”
“……그래.”
그러나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정했다면 부끄러움은 왜 느끼는가.
모순이라면 모순이었지만 그 부분을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그가 느끼는 부끄러움조차 투구 안에서 벌어지는 일. 덕분에 그는 부끄럽긴 하되 오로지 제 혼자만의 부끄러움을 느끼며 남들에겐 태연한 척 젠체할 수 있었다.
“좋아, 빌헬름. 소문은 많이 들었다. 주제도 모르고 널 습격한 양아치 강도 녀석들을 묵사발을 내줬다지.
그 말에 안수호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175 정도의 키에 얄쌍한 이목구비. 단정하게 셔츠를 차려입고 있었지만 목이며 손목이며 드러난 피부에는 문신이 가득했다.
챠륵. 챠르륵.
손에는 트럼프 카드뭉치 하나가 쥐어져 있었는데, 무슨 버릇이라도 있는 듯 대화중에도 계속 카드뭉치를 섞어댔다.
그의 이름은 강태수.
성철파의 간부 중 한 명으로 용문으로 따지면 강진윤의 위치에 있는 자였다. 동시에 성철파의 용병 고용 총책임자이기도 했으며, 오늘 안수호의 면접을 주관할 자였다.
“그럼 본격적인 면접에 앞서……. 네가 우리 조직에 들어와 용병으로 일하려면 신용과 실력, 이 두 가지를 증명해야 한다.”
안수호가 성철파의 편이라는 신용. 그리고 성철파에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실력.
“다만 신용이야 함께 일하면서 쌓아가는 거니 지금 당장 증명하긴 어렵겠지. 오늘 면접에서는 네 실력만 보여주면 된다.”
“실력이라면 이미 보여줬다 생각하는데.”
“실버 혼 녀석들? 그놈들 가지고는 제대로 된 증명이 안 돼.”
그 말에 안수호는 순간 자신의 생각과 달리 강도단의 수준이 낮았던 건가 싶었다. 그들이 성철파의 기준에 차지 않는 자들이라면 그들을 잡은 걸 실적으로 내세워봐야 소용이 없었으니.
그러나 강태수가 말하는 바는 그게 아니었다.
“빌헬름. 외지인인 너는 모르겠지만 그녀석들은 나름대로 그 근방에서 이름을 날리던 녀석들이었다. 아무리 외지인만 노리는 강도들이라 해도, 중립지대에서 일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실력은 보증하는 셈이지.”
헌데 안수호는 그런 그들에게서 승리했다. 그냥 승리도 아니고 압도적으로. 조금의 반항도 허용하지 않은 채.
“10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는 100의 힘을 가진 사람을 시험할 수 없는 법이지. 네 실력이 비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나는, 우리는 네 진짜 실력을 보고 싶다. 간부씩이나 되는 내가 직접 면접을 주관하는 것도 다 그것 때문이야.”
즉 일종의 특별 취급이라는 소리.
안수호로선 환영할 일이었다. 성철파 안에서 그에게 해주는 대우가 좋으면 좋을수록 운신의 폭도 자유로워질 테고, 류태현을 찾아낼 확률도 올라갈 테니.
물론, 어디까지나 이 면접에서 그의 강함을 증명할 수 있다는 전제 하였지만.
“내 강함이 그렇게 궁금하다면 어디 마음껏 시험해보시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챠륵.
강태수가 카드뭉치를 섞기를 멈췄다.
직후.
스팟!!!
강태수가 손가락을 튕겨 가장 위에 있던 카드를 표창처럼 날렸다. 안수호의 머리, 세로로 길게 난 투구의 슬릿을 향해서.
탓!
허나 안수호는 곧바로 그 카드를 잡아냈다. 그가 모양을 확인하자 우연인지 스페이드 에이스였다.
“……마술이라도 보여주려고?”
안수호는 태연하게 물었지만 기실 속으론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카드를 잡아낸 손가락 피부가 살짝 베였기 때문이다.
재질을 보면 평범한 종이 카드인데 그것으로 초인의 피부를 베어냈다. 즉, 강태수가 카드를 날린 스피드가 카드의 재질 따위 상관없을 정도로 빨랐다는 소리였다.
히히. 저 잘했죠?
아마 실비가 미리 낌새를 읽어 알려주지 않았다면 잡아내는 걸 불가능했겠지.
허나 강태수가 그런 속사정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대단하군. 기껏해야 피하는 정도를 생각했는데 설마 그걸 잡아낼 줄은.”
“평범한 종이 카드를 이 정도 스피드로 날리는 그쪽이야말로 대단한 것 같은데.”
“그냥 잔재주일 뿐이다. A급 초인 정도라면 연습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
즉 강태수 본인은 A급 초인이라는 소리였다. 과연 조직 간부를 맡을만한 실력이었다.
“아무튼 반사신경은 이걸로 합격. 다음은 초능력이다. 빌헬름, 네 초능력은 뭐지?”
“내 초능력은…….”
첫 단추를 좋게 꿰었다는 생각도 잠시, 곧바로 이어진 질문에 안수호가 잠시 고민했다.
그의 초능력은 검은 연기. 그러나 초능력을 곧이곧대로 말해버리면 기껏 얼굴을 가린 의미가 없어진다. 발화능력 같이 흔한 초능력이라면 모를까, 안수호의 능력은 꽤 드문 편이라 그의 신원을 특정하기 딱 좋았다.
그러나 걱정은 없었다. 안수호는 이미 그 문제에 대한 대책을 준비해두었기에.
“……몸에서 금속질 탄환을 발사하는 것. 그게 내 초능력이다.”
“몸에서 탄환을? 혹시 보여줄 수 있나?”
“지금 여기서?”
표적도 뭣도 없는 사무실 안에서 괜찮겠냐고 묻는 안수호에게 강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뒤에 서있던 조직원 한 명을 앞으로 나오게 시켰다.
다른 조직원들과 달리 누가 봐도 라틴계 인종인 게 뻔히 보이는 외모를 한 그의 이름은 카를로스.
7년 전 아르헨티나에서 7명을 살인하고 도주하다 성철파로 흘러들어오게 된 해외파 조직원이었다.
“이 녀석은 경화 능력자다. 임의로 피부 각질층을 단단하게 만들어 50구경 기관총 탄환까지는 너끈히 버텨내지. 20mm 기관포 탄환도 1, 2발은 견딜 수 있고. 게다가 총에 맞는 데엔 이골이 난 녀석이라, 대충 맞아보면 네 초능력이 어느 정도 위력인지 알 수 있을 거다.”
“인간 과녁이라는 건가. 근데 정말 괜찮겠나? 다칠지도 모르는데?”
“네 능력으로 장갑차를 뚫을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괜찮을 거다. 전력으로 쏴라.”
강태수의 자신 있는 말에 안수호는 마침 잘 됐다 싶었다. 그조차도 자신이 쏘아낼 탄환이 어느 정도 위력이 나올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부랴부랴 준비한 급조 능력, 기술이었으니까.
“그럼 사양 않고.”
안수호의 말에 카를로스가 뚜벅뚜벅 걸어나와 벽을 등지고 섰다. 안수호는 그런 그를 향해 오른팔을 쭉 뻗었다.
동시에.
‘실비.’
스르륵.
그의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코트 안쪽에 실비가 태초의 은으로 기다란 총열을 만들어냈다. 총열 깊숙한 곳에는 탄환이, 그리고 그보다 뒤에는 조리개로 개폐가 가능한 약실이 만들어졌다.
키이이잉.
동시에 안수호는 탈리스만과 초능력을 발동했다. 류태현과의 대련에서 습득한 전신 연기 발산 능력을 응용해, 팔꿈치 부분의 약실에 생성한 연기를 압축하고 또 압축했다.
총열의 형성부터 가스의 압축까지 걸린 시간은 약 2초.
안수호는 지체하지 않고 조리개를 열어 압축된 기체를 해방했다.
투훙!!!
중저음의 총성과 함께 그의 손목에서 검은 연기가 투확!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연기가 사라지기보다 더 먼저 카앙!! 하는 착탄음이 사무실에 가득 울려 퍼졌다.
툭, 떼구르르.
끝부분이 약간 찌그러진 총알이 바닥에 떨어져 안수호 쪽으로 굴러왔다. 태초의 은이 아무리 방어력이 높다지만 총알에 비견되는 속도로 사출되어 부딪혔는데 멀쩡할 순 없었다.
다만, 멀쩡하지 않은 건 총알뿐이 아니었다.
“끄, 으으으으읍…!”
자신 있게 총알을 맞았던 카를로스가 신음을 삼켰다. 풀어헤친 셔츠 사이로 드러난 가슴팍은 까만색으로 경화되어 있었으나, 그 한 가운데에서부터 방사형으로 쩌저적 금이 가있었다. 꼭 거미줄을 보는 듯했다.
“……뚫리진 않았군.”
그러나 완벽하게 막아내지도 못했다. 강태수가 이르길 50구경 기관총 탄환까지는 너끈히 막아낸다 하였으니, 적어도 안수호가 쏘아낸 탄환은 그보단 강하단 뜻이리라.
‘근데 50구경이면 어느 정도로 강한 거지?’
다만 안수호는 밀리터리 쪽으론 별다른 조예가 없었기에 그게 얼마나 강한 건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오래도록 고민하고 나서야 대 괴수용으로 사용되는 라이플이 50구경이었다는 걸 떠올릴 수 있었다.
즉, 안수호의 탄환은 인간이 아닌 괴수, 혹은 초인을 충분히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뜻.
그저 초능력을 숨기려고 만든 기술일 뿐인데 예상 외로 강력한 무기를 얻은 셈이었다. 이래서야 예전처럼 원거리 견제를 위해 연기를 억지로 압축시켜 쏘아낼 필요가 없어졌다며, 안수호가 허탈함이 섞인 웃음을 투구 안에서 흘렸다.
“위력은 20mm보다 비슷하거나 좀 약한 정도인가. 사정거리와 연사속도는 어떻게 되지?”
그런 안수호에게 강태수가 물었다. 그 질문에 안수호가 살짝 당황하며 뜸을 들였다.
사정거리, 연사속도. 둘 다 제대로 시험해본 적은 없다. 고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사정거리는 뭐 대충 일반 소총이랑 비슷……할 테고. 한 발 쏘는 데에 2초 걸리니까 연사 속도는 분당 30발? 두 팔로 쏘면 그 두 배니까 60발은 되려나?’
단순 속도만 놓고 보면 그렇겠지만 액면 그대로 분당 60발씩 탄환을 뿌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안수호의 탄화은 태초의 은의 일부를 직접 쏘아내는 것. 쏘면 쏠수록 태초의 은의 질량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소실된 부분은 마력을 통해 충당할 수 있지만 FPS 게임을 하는 감각으로 마구 쏴댈 순 없을 터.
허나 그런 속사정을 굳이 밝힐 필욘 없었다. 안수호는 당초 생각했던 대로, 유효사거리 500미터 전후에 연사속도는 분당 30발이라 강태수에게 답했다.
“500미터에 1분에 30발……. 위력을 감안하면 얼추 대물저격총 수준이라 보면 되나. 꽤 괜찮은 초능력이군. 특히 암살에 제격이야. 총이나 총알이 필요 없으니 검문검색에도 들키지 않을 테니.”
강태수는 허투로 범죄조직 간부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듯, 곧바로 안수호의 초능력이 어디에 적합한지 주르륵 나열했다. 그의 능력을 꽤 고평가하는 모습.
“다만, 용병으로서는 어떨지…….”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안수호의 초능력 자체만을 놓고 한 평가였다. 그가 성철파의 용병으로서 조직 간 전쟁에 기용될 것을 감안하면, 그러한 측면에서 그의 능력을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몸에서 대물저격총 수준의 금속질 탄환을 발사한다.
분명 좋은 능력이긴 했으나 강자에겐 통용되지 않는 능력이었다. A급 수준의 초인이라면 설령 총알을 보고 피하진 못하더라도 예비동작을 읽고 회피하는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했다. 혹은 카를로스처럼 정면에서 공격을 견뎌내는 방법도 있겠지.
‘실버 혼 녀석들을 발라버렸다기에 기대했는데, 다소 기대 이하군.’
강태수가, 그리고 성철파가 원했던 건 적대조직의 강력한 용병, 혹은 간부에게 대항할 수 있는 전력. 반면 안수호의 능력은 액면만 보면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데에 특화된 능력이었다. 어찌 보면 오히려 전쟁에 어울리는 능력이라 할 수는 있겠으나 여하튼 그들이 기대한 바와는 달랐다.
“내 능력이 성에 차지 않는 건가?”
“글쎄. 확실히 좋은 능력이긴 하다만 다소 기대에선 벗어났군. 우리가 원했던 건 뛰어난 저격수가 아니라 강력한 전사였거든.”
“근접전투 능력을 원했다 그건가?”
“그쪽이 더 급했다는 거지. 뭐, 저격수도 써먹을 곳이 없는 건 아니다. 평상시에야 다들 저격을 경계하고 있으니 재미 보기 어렵겠지만, 전투 중에 몰래 적 간부를 노리고 쏜다면 꽤 괜찮은 전과를 얻을 수 있겠”
“아무래도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
“뭐?”
착각이라는 말에 강태수가 반문했다.
“내가 무슨 착각을 하고 있다는 거지?”
“조금 전부터 날 저격수라 전제하고 말하고 있지 않나. 그게 착각이라는 거다. 나는 저격수가 아니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당장 네 능력만 봐도”
“대물저격총이니 뭐니 한 건 그쪽의 외국인 친구가 제멋대로 말한 거고.”
꽈악.
안수호가 꽉 쥔 주먹을 내세워보이며 덧붙였다.
“애초에 내 장기는 근접전투다. 당장 내가 쓰러뜨렸던 실버……어쩌구 하던 그 강도 놈들만 봐도. 그놈들이 멀리서 총알 맞고 죽은 건 아니잖아. 안 그래?”
애초에 죽이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덧붙인 안수호가 어떻게 생각하냐며 슬쩍 턱짓했다. 그 모습에 강태수는 그야말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래, 이 녀석 말이 맞다. 실버 혼 녀석들은 총에 맞은 게 아니야. 분명 근접전투로 제압당했다고 했어. B급 초인으로 이루어진 놈들이 쪽도 못쓰고. 제대로 된 유효타도 먹이지 못한 채 아킬레스건이 잘렸지.’
자신은 도대체 무슨 멍청한 착각을 하고 있던 것이냐며. 강태수가 헛웃음을 삼키며 안수호를 바라봤다.
“뭣하면 시험해 봐도 괜찮다. 상대를 붙여준다면 그놈과 싸우지. 무기 없이 맨손으로.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상관없다.”
“……상당히 자신이 있나 보군.”
“말했잖나. 이쪽이 본래 장기라…….”
그 순간 안수호의 뇌리를 스치는 번뜩임.
“……그래, 생각해보니 마침 내 실력을 보여주기에 적당한 녀석이 이미 성철파에 있었군.”
“누구를 두고 말하는 거지?”
“블랙 도베르만.”
안수호의 말에 강태수가,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조직원들 모두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분명 녀석도 근접전에 일가견이 있다지. 녀석과 한 판 붙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줘라. 그녀석이라면 내 실력을 보여주기에 더할나위 없는 상대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물론. 허세도 거짓말도 아니야.”
블랙 도베르만의 소문은 이미 슬럼 전체에 상당히 퍼져 있었다. 슬럼에서 나름 싸움 좀 한다는 자들이라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헌데 그런 블랙 도베르만을 두고 ‘제 실력을 보여주기에 적당한 상대’라니.
이것이 그저 사정을 모르는 외지인의 객기인지, 아니면 정말 제 실력에 자신이 있어 보여주는 모습인지 강태수는 구분이 가지 않았다. 구분이 가지 않았으나, 어느새 그의 가슴은 이미 진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올라있었다.
블랙 도베르만급 전력이 한 명 더 늘어난다면 더할나위 없는 호재였다. 지금의 성철파에 필요한 인재가 바로 그런 자였으니.
만약, 눈앞의 기묘한 투구남이 정말 블랙 도베르만급의 강함을 보여준다면…….
‘그때는 다소 기대 이하였다는 평가를 전면 수정해야겠지.’
곧 강태수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좋다. 내 한 번 윗선에 건의해보지.”
그리고 그 대답에 안수호 또한 투구 속에서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