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화 〉 255. 프로페서
* * *
아침에 일어나 낮에 일하고, 저녁에 퇴근해 밤에 잔다.
이른바 ‘견실한 삶’의 기준으로 여겨지는 그 법칙은 슬럼에선 전혀 통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주민의 상당수가 술집이나 업소 등, 이른바 ‘밤일’에 종사하는 곳이 바로 이곳 슬럼이었으니까.
슬럼은 범죄자들이 모이는 곳이었지만 범죄자들의 존재만으론 아무런 돈도 되지 않는다. 거리에 돈이 돌기 위해선 상업이 활성화되어야 하고, 슬럼과 같은 닫힌 사회에는 외부로부터의 자본 유입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던전 크라이시스로 낙후된 슬럼이 대한민국 최악의 우범지대임과 동시에 최대 규모의 유흥가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여기, 그 유흥가의 톱니바퀴로서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다.
“어우씨. 갑자기 웬 비야? 짜증나게시리…….”
그의 이름은 민철.
그는 주점 칼리스토로부터 조금 떨어진 어느 룸살롱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이었다.
직업을 말하자면 좋은 말로는 호객꾼, 속된 표현으로는 삐끼.
그러나 실상은 호객 행위를 포함해 가게의 온갖 잡일을 도맡은 말단 직원이었다.
한 달에 160만원이라는, 일의 강도에 비해 어째 짠 돈을 벌기 위해 그는 열심히 골목을 달리고 있었다. 손님의 담배 심부름 때문이었다.
“에라이, 김 사장 그 양반은 무슨 호사를 누리겠다고 맨날 잘 팔지도 않는 담배를 피워가지곤…….”
손님들 앞에선 늘 실없이 웃는 민철이었지만 혼자 있을 때면 그 미간에 주름이 사라질 날이 없었다.
당장 지금만 해도 하필이면 손님이 주문한 담배가 근처 가게에서 팔지 않는 담배라 멀리 나가야 했으며, 또 하필이면 갑작스레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고충은 그의 삶에 있어서 별로 드문 일도 아니었다.
“씨발, 씨발 진짜. 내가 일을 때려치든가 해야지 씨발…….”
거의 두 걸음에 한 번씩 욕을 지껄이며 그가 모퉁이를 돌았다.
“힉?!”
꽈당!
민철은 모퉁이를 돌자마자 바닥에 자빠졌다. 비 때문에 지면이 미끄러운 것도 있었지만 그게 원인은 아니었다. 원인은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이었다.
쏴아아아아…….
낡은 가로등의 칙칙한 백광만이 비치고 있어야 할 골목에 붉은 자국이 낭자했다. 골목을 가득 메우듯 쓰러져 있는 아홉 명의 청년들은 저마다 팔이며 다리에서 피를 흘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아니, 그중 몇은 의식을 잃었는지 앓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들이 죽은 건지 단순히 의식만 잃은 건지 민철은 분간할 수 없었다.
“이, 이게 뭐야…….”
슬럼에서 유혈 사태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민철이 눈앞의 광경에 당황한 것은, 그가 있는 거리가 바로 중립지대였기 때문이다.
중립지대. 그것은 슬럼을 지배하는 3개의 세력, 그리고 그 외 모든 슬럼 주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일종의 완충 지역이었다. 제아무리 슬럼에 전쟁이 한창이라지만 이곳 중립지대만은 예외였다.
중립지대 안에서는 결코 피를 보지 않는다. 그것이 슬럼 주민 거의 모두가 공유하는 불문율이자 약속이었다. 즉, 외지인은 그 불문율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뭣 모르고 중립지대에 발을 들인 외지인이 그들만을 노리는 강도에게 당해 싸늘한 시체가 되는 건 이곳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아니었다만.
그런 외지인을 전문으로 노리는 강도들이 역으로 싸늘한 시체가 되는 건 확실히 드문 일이었다. 물론 아직 이들이 시체가 된 건 아니었지만, 이들이 살아있는 건 순전히 이 광경을 만들어낸 자의 자비 덕분이었으니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어?”
허나 목숨만 빼앗지 않았다 해서 과연 그것을 자비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사람들, 다 발이…….”
민철은 쓰러져 있는 아홉 명의 청년들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 전부 두 다리의 아킬레스건이 깔끔하게 잘려있다는 것을.
저래서야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질 게 뻔하다. 포션을 쓴다면 회복할 수야 있겠다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강도들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가 없으니.
‘도대체 누가 이런 거지?’
그쯤 되자 민철은 이 광경을 만들어낸 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같은 슬럼 주민이 범인일 가능성이 0은 아니었으나 지극히 낮았다. 이들이 외지인을 노리는 강도단인 걸 감안하면 범인도 외지인일 확률이 높았다. 그 수가 몇 명인지는 민철로서도 알 도리가 없었으나, 강도단이 먼저 공격했다면 그 숫자가 서넛을 넘기진 않겠지.
그래, 가령 둘이라고 가정해보자.
아마도 슬럼 바깥에서 왔을 그 두 사람은, 외지인을 전문을 노리는 강도단 아홉을 문자 그대로 압도했다. 그들이 아홉 명을 일단 제압한 뒤 아킬레스건을 잘랐는지, 아니면 싸우는 도중 신들린 솜씨로 아킬레스건만 노려 그들을 제압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쪽이든 평범한 실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겠지.
그렇다면 강도단이 어중이떠중이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쓰러진 강도들 사이에는 민철이 아는 얼굴도 있었다. 그가 일하는 가게에 와서 제 무력을 과시하던 무뢰배. 분명 초인등급은 B급이었던가. 주위에 쓰러진 다른 이들도, 그 일행임을 감안하면 못해도 C급은 될 터.
고로 범인은 B급과 C급 초인으로 이루어진 아홉 명의 무장 인원에게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개인 혹은 소수. 중립지대의 규칙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알고 있음에도 이를 무시할 정도의 담력과 기개가 있는 자.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민철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머릿속에 손님이 시킨 담배 심부름 따위는 더 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
안수호와 조유리가 일으킨 중립지대에서의 유혈 사태에 관한 소문은 그렇게 조금씩 슬럼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허나 정작 그 소문의 당사자인 두 사람은 더 이상 슬럼에 있지 않았다.
그야 오늘은 토요일.
안수호가 프로페서와 접선하기로 한 날이었으니까.
“흐음.”
안수호는 당초 프로페서의 지시대로 지정된 카페의 지정된 좌석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드시 혼자 오라던 지시에 부응해 일행은 한 명도 대동하지 않은 채.
커피 잔 속 얼음을 빨대로 휘저으며 그는 하염없이 시계만 바라봤다.
5분. 3분. 1분.
그리고 마침내, 접선 시간.
저벅. 저벅.
12시 정각이 되자마자 들려오는 발소리.
안수호는 안 보는 척 하면서 은근슬쩍 계단 쪽을 바라봤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중년이 이제 막 계단을 올라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저 남자가 프로페서일까. 지예원에게 들은 것에 비해 좀 젊어 보이는데.
“말한 대로 혼자 왔군.”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안수호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안수호의 자리 바로 옆. 그곳에는 백발이 희끗희끗 보이는 초로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지예원이 말했던 프로페서의 인상착의와 일치하는 모습.
허나 안수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온 거지?’
그도 그럴 것이, 저 노인이 자신의 바로 옆까지 올 동안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못 본 사이에 곁으로 다가온 것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그곳에 있던 것인지.
“합석하지.”
그런 안수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인은 자연스러운 태도로 안수호의 맞은편에 착석했다. 어색함이라곤 하나 없이. 마치 처음부터 그와 함께 온 일행인 것처럼.
“당신은…….”
“자네가 여자친구를 통해 의뢰한 정보상이지 그럼 누구겠나. 만나서 반갑네. 이름은 말해줄 수 없고, 부르고 싶거든 그냥 교수님이라고 부르게.”
그렇게 말하곤 태연자약하게 커피를 마시는 프로페서.
그러나 태연한 그의 태도와는 반대로 안수호의 표정은 점점 당황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말문이 턱 막힌 그가 가까스로 프로페서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연락한 사람이”
“교수님.”
“……교수님께 연락한 사람이 제 여자친구인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파는 건 정보지 정보를 얻어낸 방법이 아니야. 내 장사 밑천을 캐내려는 건 예의가 아니지. 혹 내가 대답해줄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야.”
지예원과 안수호의 관계에 대해 아는 것. 그것만으로도 프로페서는 자신의 실력을 훌륭하게 증명해보인 셈이었다. 아직 의뢰 내용에 대해선 말조차 꺼내지 않았는데도.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제가 당……교수님께 연락을 드린 이유는, 제가 재직 중인 아카데미에서 한 학생이 실종됐는데”
“류태현. 그린하우스 1학년 재학생으로 이번 학기를 학년 1위로 마감한 우등생이지. 나이는 20살에 본가는 의정부. 초인등급은 올 6월에 갱신하여 A급. 초능력은 신체 강화. 경비대원인 자네와는 단순 학생과 직원 사이 이상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 중이지. 자네가 하려는 의뢰는 그 학생의 소재 파악에 대한 것이겠지. 안 그런가?”
“…….”
그리고 안수호는 다시 한 번 말문이 턱 막혔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한 그를 보며 프로페서가 끌끌끌, 하고 낮게 웃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알아낸 거냐고 묻지 않는군?”
“……장사 밑천을 묻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하셔서요.”
“음. 경솔하게 또 같은 질문을 입에 담았으면 실망했을 텐데, 그래도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친구로고. 허니 내 특별히 알려줌세. 자네가 입도 뻥끗 안 한 의뢰 내용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거기까지 말한 프로페서가 커피를 한 모금 느긋하게 음미했다. 노인 특유의 느릿한 동작 하나하나에도 안수호는 온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프로페서의 페이스에 제대로 말려든 형국이었다.
“정답은 간단하네. 자네 여자친구가 내게 메일을 보낸 게 목요일. 그리고 오늘은 토요일. 이틀이면 의뢰인에 대해 조사해보기엔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지. 그리고 지난 이틀간 자네의 행적을 알면 자연스레 자네의 목적 또한 짐작할 수 있음이야.”
“짐작이라기엔 거의 확신하시듯 말씀하시던데요.”
“99%의 짐작은 100%의 확신과 별반 다를 것도 없지.”
프로페서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지만, 이게 어디 그의 말마따나 간단한 일인가.
지예원은 프로페서에게 접선할 때 임시 메일을 썼다. 당연히 그녀가 쓴 메일 주소를 안다 한들 그녀의 신상과 이어지는 정보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실상은 어떠한가.
프로페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그 임시메일에서 지예원의 신원을 특정해냈고, 그녀와 안수호의 연결을 알아차렸으며, 순식간에 그의 신상과 행적을 파악해 그들의 의뢰 내용이 류태현에 관한 것임을 유추해냈다.
정리하려면야 이처럼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살펴보면 하나하나 말도 안 되는 비약으로 점철된 행적이었다. 안수호는 프로페서가 어떻게 이러한 진실에 도달했는지 도무지, 감히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허나 그가 예상을 할 수 있든 없든 프로페서는 진실에 도달했다. 그것이 눈앞의 현실이었다.
다만,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고 해도.
제아무리 실력 있는 정보상이라 한들, 정말 이런 일이 가능이나 한 일인가.
“정말 이런 일이 가능이나 한 일인가 싶은 얼굴이구만.”
생각을 읽힌 안수호가 흠칫 놀라며 프로페서를 노려봤다. 그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감에서 비롯된 경계심이 그 눈동자에 차오른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네. 난 자네의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도 아니니까. 자네와 나는 의뢰인과 수탁인. 서로 원하는 걸 주고 받으면 그만인 사이 아닌가.”
“…………그럼 말씀해보시죠. 교수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게 뭔지.”
“그래. 그거면 되는 걸세. 필요 이상으로 친해질 필요도, 반목할 필요도 없지.”
그렇게 말한 프로페서가 안수호의 오른손을 가리켰다.
“세련된 반지군. 여자친구와 맞춘 커플링이라도 되나?”
“……그냥 악세서리입니다. 별로 비싸지도 않고요.”
“그런가. 그래서 류태현도 똑같이 생긴 반지를 끼고 있었군. 학생은 돈이 없으니까. 비싼 반지를 사고 싶어도 사기 어렵겠지.”
안수호의 표정이 움찔 떨렸다. 프로페서의 말은 곧이곧대로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안수호의 손에 끼워진 반지의 정체에 대해서도, 그리고 류태현에게도 동일한 반지가 있다는 것마저 알고 있었다.
‘이쯤 되니 궁금하다 못해 어이가 없군. 어디서 설정집이라도 주워 읽은 건가? 이야기하면 할수록 정말 모르는 게 없는 노인이야.’
하도 어이가 없어 실없는 생각을 하며 안수호가 피식 웃었다. 프로페서 또한 웃었다. 안수호와는 대비되는 여유로운 웃음이었다.
“교수님이 원하시는 게 이 반지라면, 그 요망을 들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걱정말게. 나는 그렇게까지 욕심쟁이가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건 그 반지가 아니라, 그 반지를 끼고 있는 자네의 능력일세.”
“능력이라 함은?”
“힘을 빌리도록 하지.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딱 한 번. 나를 위해 싸워주게.”
“……정말 그런 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런 거’라 함은?”
“제 힘을 빌리는 게 정보의 대가로 지불될 만큼 가치가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구두로 나눈 약속을 제가 반드시 지킬 거라는 보장이 없잖습니까. 막말로 제가 류태현의 정보만 받아먹고 입 닦고 모른 척 하면요?”
“글쎄. 말은 그렇게 한다만 자네는 절대 그러지 않을 걸세.”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자네라는 인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고작 이틀 조사한 정도로 절 알면 얼마나 아신다고”
“고작 이틀이 아니라면?”
프로페서의 물음에 순간 안수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주름살이 피어난 가느다란 눈매 사이로 드러난 안광이 안수호의 미간을 날카롭게 꿰뚫는다.
“만약 내가 자네에 대해서도, 그리고 류태현에 대해서도 예전부터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면 어떤가? 자네의 의뢰 내용을 단번에 맞춘 것도, 본래라면 답신이 오래 걸릴 메일에 곧바로 답신을 보낸 것도 다 자네의 행적을 속속들이 꿰고 있던 덕분이라면? 그렇다면 좀 이야기가 될 것 같나?”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슬럼에서 활동하는 정보상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안수호에 대해, 류태현에 대해 평소부터 예의주시한단 말인가.
그러나 안수호는 그것을 단순한 허세로 치부할 수 없었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줄곧 불가사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노인의 말에는, 설령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도 저절로 믿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논리에 의한 설득이 아닌 기세에 의한 납득이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소리입니까?”
“그걸 내가 말해줄 의무는 없지. 다만 자네에 대해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걸 안다는 것만은 사실일세.”
“…….”
안수호는 말없이 프로페서를 노려봤다. 그것은 더 이상 긴장감에서 비롯된 경계심이 아닌, 노골적이고 형형한 살기였다. 그 차디찬 눈빛에 프로페서가 헛웃음을 삼켰다.
“눈빛 한 번 살벌하군. 당장이라도 날 죽이려 들 기세야. 그렇지만 자네는 그러지 않을 걸세. 내가 먼저 덤비지 않는 한 결코 내게 먼저 칼날을 들이밀진 않을 테야.”
“……그것도 저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리신 판단입니까?”
“그럼. 자네는 신중한 사람이야. 정체를 모르는 자에게 결코 먼저 덤비는 일이 없지. 또한 실리주의적이기도 해. 자신과 잘 맞지 않는 상대라도 이익이 된다면 배제하는 것보단 협력하는 걸 추구한다. 그것이 자네의 방식일세.”
안수호는 그 말이 단순히 바넘효과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자신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프로페서의 말대로 안수호에게는 이 자리에서 그와 적대할 생각이 없었다. 불가사의한 상대라 해도 류태현 수색에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우선은 협력해야했기에.
정말이지, 프로페서의 말대로였다.
“그래서? 나와 거래하겠나, 아니면 이대로 돌아가겠나?”
“저에 대해 잘 아신다면 제 대답도 아실 텐데요.”
“어디까지나 짐작할 뿐이지. 99% 짐작은 100%의 확증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고 말하긴 했네만, 그래도 거래 의사는 당사자로부터 직접 들어야 맞는 거니까.”
안수호의 속내를 뻔히 들여다보다 못해 제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있는 듯한 말투에 안수호의 안에서 프로페서에 대한 반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허나 반감과는 별개로 그가 꺼낼 대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거래하죠. 거래, 하겠습니다.”
“현명한 판단이네. 짧은 시간이겠지만 잘 부탁하지.”
프로페서가 안수호에게 척 악수를 권했다. 안수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지금 당장은 이 판단이 맞아. 그렇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프로페서에 대해서도 따로 조사해봐야겠어.’
민채령이나 일리아나 파우스트라면 이 불가사의한 노인에 대해 무언가 아는 바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럼 구체적으로 의뢰는 어떻게 진행하실 생각입니까? 제가 필요한 건 류태현의 확실한 소재와 그를 무사히 슬럼 바깥으로 빼내는 데에 필요한 정보인데, 이것들을 구하는 데에 얼마나 걸리실 것 같은지…….”
그렇게 생각하며 안수호가 구체적인 의뢰 진행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으나, 프로페서는 고개를 설설 저었다. 그가 옆자리에 둔 가방에서 종이다발을 꺼내들었다.
“필요한 정보라면 이미 여기 준비되어 있네.”
“예?”
“말했잖은가. 자네도 류태현도 예전부터 예의주시하고 있었다고.”
당황을 금치 못하는 안수호를 바라보며, 프로페서가 남은 커피를 홀짝 마셨다.
지극히 태연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