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55화 (256/266)

〈 255화 〉 254. 케빈과 제시카(2)

* * *

블랙 도베르만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고?

글쎄, 나도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 정도로 자세히 알고 있지는 않아. 난 슬럼 주민도 아니고, 놈은 4년 전에 반짝 나타났다 사라진 베일에 싸인 용병이니까.

듣자하니 같은 성철파 안에서도 놈에 대해서는 거의 파악을 못하고 있다 그러던데……. 어이쿠, 그렇게 노골적으로 실망하지는 말아줘. 아무리 내 본업이 흥신소여도 여긴 내 나와바리가 아니라고.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어.

……뭐, 그래도 남들보다야 많이 알고 있는 건 사실이지. 좋아! 모처럼 만난 동향 사람이니 특별히 무료로 알려줄게.

우선 그 용병의 활동명은 두 사람도 알다시피 블랙 도베르만. 듣자하니 얼굴에 검은 개의 형상을 한 가면을 쓰고 다닌다더군. 시야를 죄다 가리는 그런 가면을 쓰고 용병질이라니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거겠지.

실제로 강함 하나는 정평이 났다는 소문이야. 초인 등급은 추정 A급. 초능력은 불명. 눈에 띄지 않는 능력이거나, 일부러 능력을 숨기고 있거나, 아니면 전투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능력이거나 셋 중 하나겠지.

하여튼, 그 외에 놈에 대해 드러난 정보는 거의 없어. 애초에 4년 전에 잠깐 활동하다 만 녀석이고. 지금까지 참가한 전투도 단 한 번밖에 없다고 하니까.

응? 그 한 번이 무슨 전투냐고? 그냥 평범한 소규모 마찰이었어. 용문이랑 성철파 합해서 인원은 이십도 안 되는. 본격적인 싸움에 앞선 전초전이지. 그게 녀석의 재데뷔전이었고, 놈은 아주 화려하게 지 이름을 떨쳤지. B, C급으로 이루어진 용문의 유격대를 거의 자기 혼자서 다 쓰러뜨렸다더군.

아, 그래. 놈에 대해 묘한 소문이 하나 흐르고 있긴 해. 같이 싸운 성철파 녀석 말로는 놈이 불살주의라나? 제 손으로 누굴 안 죽이는 건 물론이고 포로로 잡은 조직원에게 손대는 것도 막더라고.

일개 용병이 포로를 어떻게 다루냐 마느냐에 왈가왈부할 수 있을 리가 없지만, 또 이상하게 성철파는 놈의 요망을 곧이곧대로 들어주고 있다는 모양이야.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론 말이지.

하긴, 그만한 실력이 있는 용병인데 어지간히 비위는 맞춰줘야겠지. 안 그래?

아무튼, 갑자기 등장한 용병이 실력은 A급 이상에, 얼굴은 멋진 가면으로 가리고 있고, 또 싸우는 건 엄청 잘 싸우는데 절대 적을 죽이지는 않아요. 완전 배○맨이라니까 ○트맨. 응? 뭘 그렇게 아리송한 얼굴을 하고 있어. 설마 배○맨 몰라? 뭐 대충 그런 게 있어. 별로 중요한 건 아니야.

뭐어, 내가 아는 건 이 정도지. 조사해보면 이거보다야 뭐가 더 나오긴 하겠지만 말이야. 말했잖아. 본업이 흥신소라고. 사실 싸우는 것보단 누구 뒷조사하는 게 내 전문이거든.

혹시 놈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나한테 의뢰해보는 게 어때? 특별히 싸게 해줄게. 슬럼에선 같은 외지인들끼리 돕고 살아야 하는 법이잖아?

뭘 그리 빼고 그래. 보아하니 댁들, 그냥 용병 일로 돈만 벌러 온 사람들은 아닌 것 같거든. 뭔가 목적이 있어서 여기 온 거잖아?

아마 그 목적은 성철파나 블랙 도베르만이란 용병과 관련이 있을 테고…….

……또, 그 목적을 이루는 데에 내가 적잖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거든. 꽤 괜찮은 제안이라 생각하는데………….

혹시 관심 있어?

***

목진우의 제안에 안수호는 잠시 고민했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굳이 정보상을 고용하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어서.”

정확히 말하면 목진우를 고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미 슬럼에서 제일가는 정보상인 프로페서와의 접선이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에잉. 이거 단물만 쪽 빨아먹고 버려진 꼴이네. 너무들 하는구만.”

“공짜로 정보를 알려준 건 그쪽이야.”

“어차피 정보랄 것도 없는 소문들뿐이지만 말이지.”

목진우는 자신이 말해준 정보의 값어치가 별로 안 된다 말했지만 안수호에겐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적어도 ‘블랙 도베르만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라는 정보는 얻었으니까.

“영업도 퇴짜 맞았으니 난 슬슬 자리를 비켜줘야겠군.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연락해줘. 여기 내 명함.”

테이블 가운데에 명함을 남겨두곤 목진우가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같은 외지인끼리 친해지니 뭐니 말했지만 결국 그도 손님을 찾기 위해 이곳에 영업하러 나온 업자들 중 한 명이었다. 안수호 일행이 자신을 고용하지 않을 걸 안 이상 더 앉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연락할 거야?”

“설마요. 이미 프로페서랑 약속을 잡았는데 굳이 검증되지도 않은 정보상을 고용할 필요는 없죠. 그쪽 의뢰가 불발나면 모를까.”

안수호는 멀찍이 떨어진 목진우를 말없이 지켜봤다. 그새 다른 테이블로 넘어간 그는 또 다른 사람들과 합석해선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안수호와의 호의적인 대화도 결국 영업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성철파나 블랙 도베르만에 대해 조사했다. 조유리를 보고 접근한 무뢰배들에게 넌지시 물어보기도 하고, 안수호가 직접 다른 테이블에 있는 용병이나 정보상들에게서 정보를 얻어내 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블랙 도베르만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나마 아는 이조차 목진우가 해준 이야기 이상은 모르고 있었다. 결국 이후 두 사람이 얻어낸 정보라곤 슬럼의 정세나 전쟁 양상 같은 거시적인 정보뿐이었다.

“선배, 뭐 수확 있었어요?”

“전혀. 그냥 나랑 어떻게든 해보려고만 하는 변태였어. 수호 너는?”

“저도 딱히 새로운 정보는 없어요. 좀 전에는 성철파 밑에서 일하고 있는 용병하고 이야기해봤는데, 그 사람도 도베르만은 멀리서 보기만 했지 이야기조차 나눠보지 못했다는데요.”

“결국 토요일에 만날 그 프로페서란 정보상한테 기댈 수 밖에 없겠네……. 근데 그 종이는 뭐야?”

“성철파의 용병 모집 의뢰서 사본이요.”

안수호의 대답에 ‘그걸 왜 들고 왔어?’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조유리.

“쓸데가 있을 것 같아서요. 돌아가서 말씀드릴게요.”

시간도 늦었고 더 이상 정보를 얻어내는 것도 무리라 판단한 두 사람은 곧장 펍을 나섰다. 모텔로 향하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하네. 그냥 단순한 실종 사건인 줄 알았는데.”

“실종 사건도 충분히 심각한 사태잖아요.”

“학년 1등 우등생이 범죄조직에서 용병으로 사람을 죽이고 다닌다는 것보단 덜 심각하지.”

“사람은 안 죽인다잖아요. 애초에 용병 일을 하는 것도 고아원을 지키려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같고…….”

“그래도 범죄는 범죄야.”

류태현과 사적으로 친한 안수호와 달리, 그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던 조유리는 칼같이 류태현을 재단했다.

“……그녀석이 한 짓이 범죄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건 아니에요. 다만 참작 가능한 범죄라는 거죠.”

“그것도 우리끼리 조용히 류태현을 찾아서 데려갈 때의 일이지. 같은 경비대원끼리는 어찌어찌 쉬쉬하고 넘어간다 해도, 경찰한테 알려졌다간 처벌을 피하긴 어려울 거야.”

슬럼이 반쯤 치외법권 취급을 받긴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슬럼에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슬럼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가 슬럼 바깥으로 나온다면 체포하지 못하리란 법도 없었다.

“얼른 찾아야겠네요.”

“찾아서 따끔하게 한 소리 해줘. 네 친한 동생이라며.”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안수호의 대답에 조유리가 피식 웃었다.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그저 아는 동생의 가벼운 일탈 같은데, 실상은 그렇게 가벼운 사태가 아니었으니.

­멈칫.

그때 조유리를 뒤따르던 안수호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앞서가던 조유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뒤돌아본다.

“왜 그래?”

“손님이 온 것 같은데요.”

“손님?”

그게 무슨 말이냐고. 조유리가 반문하기도 전에 그녀의 표정 역시 차갑게 굳었다. 안수호의 뒤편, 골목 어귀에서 삼삼오오 모습을 드러내는 남성들 때문에.

“뭐야, 저것들은…?”

그저 우연히 가는 방향이 같았다……라고 하기엔 남성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적의가 너무 노골적이었다. 킬킬 웃어대며 이쪽을 바라보는 사내들의 손에는 저마다 날카로운 나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그중 두 사람은 어디서 구했는지 다른 손에 권총까지 들고 있었다.

“선배.”

그런 남성들의 등장에 긴장하고 있던 조유리에게 안수호가 턱짓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두 사람이 향하던 방향에서도 비슷한 행색의 남성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숫자는 앞쪽에서 넷, 뒤쪽에서 다섯으로 총 아홉.

“무슨 볼일이라도?”

안수호의 물음에 사내들이 킬킬킬 웃어댔다. 그들 중 한 명이 핏방울이 맺힌 나이프를 들이밀며 말했다.

“돈. 가진 거 다 내놔. 현금에 카드. 계좌에 있는 예금까지 전부. 순순히 내놓으면 곱게 보내주지.”

“허….”

단순히 가진 돈만 뺏는 강도라면 그러려니 하는데 예금까지 다 털어가겠다니. 슬럼은 강도도 클라스가 다르다며 안수호가 헛웃음을 삼켰다.

“어제는 소매치기에 오늘은 강도……. 슬럼이 괜히 슬럼인 게 아니네요 선배.”

“그러게.”

착 가라앉은 차분한 목소리에 문득 돌아보자 조유리의 표정은 밤중의 호수처럼 지극히 평온했다. 그녀는 이미 초능력을 통해 신체와 정신 상태를 전투에 알맞게 최적화한 뒤였다. 그곳에 더 이상 남자들 앞에서 덜덜 떠는 유약한 조유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보셔들. 그거 나이프에 피 묻은 거 보니까 이미 한 탕 뛴 것들 같은데 그냥 들어가지 그래.”

안수호는 이대로 싸우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지만, 괜한 소란을 일으켜서 좋을 게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행여 자신들의 신분이 노출되기라도 하면 이후 슬럼에서의 활동에 지대한 제약이 생길 테니까.

“그냥 들어가라고?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겠는데. 좀 전에 털어먹은 외지인 놈은 빈털터리였거든. 이래서야 손해 막심이라고.”

“칼리스토에서 온 테이블을 들쑤시고 다니기에 돈 좀 있는 업자인 줄 알았는데, 까고 보니 알거지일 줄 누가 알았겠어? 하긴, 생긴 것부터 거지꼴을 하고 다니긴 했지만.”

그 말에 안수호의 뺨이 움찔 떨렸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그가 사내들에게 묻는다.

“그 외지인, 혹시 더벅머리에 턱수염이 길게 자라난 남자인가?”

“그래. 니네 테이블에서 한참 떠들다 간 그놈 맞아. 외지인 주제에 미꾸라지마냥 물을 잔뜩 흐리길래 우리가 교육 좀 시켜줬지.”

“죽였나?”

“설마! 죽이진 않고 죽기 직전까지 패줬지. 생각이란 게 있으면 다시는 슬럼에 기웃거리지 않을 테고, 멍청하게 다시 오면 또 지갑으로 만들어주면 되는데 왜 죽이겠어? 괜히 시체 처리만 귀찮지.”

“니들도 마찬가지야. 불구되기 싫으면 얼른 가진 거 다 넘기고 슬럼을 떠. 그리고 다신 오지 말라고.”

말의 내용을 들어보니 단순 금전 목적 말고도 외지인에 대한 텃세가 섞인 모양새였다. 과연, 슬럼은 외지인이 지내기 쉬운 동네가 아니구나 하며 안수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가능하면 소란은 일으키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싸워야하는가.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였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화위복이라고, 위기를 뒤집으면 오히려 기회가 되는 법이니까.

“알아들었으면 얼른 지갑부터 꺼내­”

“선배. 좀 전에 저한테 왜 성철파 용병 모집 공고를 가져왔냐고 물어보셨죠?”

남성의 말을 끊으며 안수호가 조유리에게 물었다. 호르몬 조절로 감정 표현이 거세된 조유리였지만, 안수호의 말에 ‘그 애긴 갑자기 왜?’하는 듯한 눈초리로 그를 흘겨본다.

“정보상한테서 그녀석의 정보를 얻어내도, 결국 그녀석을 빼내려면 저희가 직접 움직여야 하잖아요. 그럼 차라리 용병을 자처해서 성철파에 들어가면 좋겠다 싶었죠. 같은 용병끼리면 어쩌다 만날 기회가 있을 테니까.”

“아하.”

­스릉.

안수호의 손에서 은빛 칼날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길이 80cm 정도 되는 곧은 직검. 시험 삼아 휘휘 휘둘러본 그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베일에 싸인 그녀석을 평범한 용병이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을 것 같진 않거든요. 듣자하니 그쪽에서도 의도적으로 타인과 접촉을 피하고 있다고 하고. 그렇지만 성철파는 지금 전력이 궁한 상태. 실력 있는 용병을 어느 조직보다 원하고 있는 상태죠.”

“그래서?”

“요는 성철파에 우리 실력을 증명할 실적을 제시하면, 놈들도 저희를 ‘실력 있는 용병’으로서 나름 대우해줄 거란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녀석을 만날 확률도 조금은 올라가겠죠.”

거기까지 말한 안수호가 칼끝으로 남자들을 가리켰다.

“뭣도 모르고 덤벼든 강도 아홉을 단 둘이서 제압. 그 정도면 면접 때 제시할 실적으로 딱 적당할 것 같은데요.”

“저것들이 그냥 동네 양아치 수준이면 어쩌게?”

“슬럼에서 강도질로 먹고 사는 놈들인데 나름 실력은 있겠죠. 아니면 뭐 어쩔 수 없고.”

“이 자식들이……!”

자기네를 무슨 취업 스펙 취급하는 두 사람의 태도에 사내들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허나 두 사람은 그러거나 말거나 한가롭게 대화를 이어갈 뿐이었다.

“제가 뒤쪽의 다섯. 선배는 앞의 넷을 맡아주세요.”

“부담되면 내가 다섯 명 맡아도 되는데.”

“선배야말로 부담되시면 후배한테 다 맡기고 쉬셔도 됩니다.”

“자신만만하네. 예전엔 이런 느낌 아니었잖아.”

“그야 뭐…….”

­스릉.

안수호가 검을 쥔 채 자세를 낮췄다. 그의 입가에 피식, 하고 옅은 웃음이 떠올랐다.

“예전이랑은 다르니까요.”

­타앙!!

다음 순간 골목길에 거센 돌풍이 몰아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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