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화 〉 251. 블랙 도베르만(4)
* * *
계단에 은은히 퍼지는 담배 연기와 함께 시간은 흐른다.
류태현은 가면 너머로 말없이 오은수를 바라봤다.
오은수는 일견 평온해보였다. 적진 한복판에 갇힌 데다가 고아원 아이들을 죽게 만든 강진윤. 그 원수를 눈앞에 두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건 그도 마찬가지일 텐데. 어찌 저렇게 평온하게 있을 수 있을까.
“후우우우우우.”
허나 그의 발치에 벌써 몇 개비 째 쌓인 담배꽁초를 보고는 생각을 달리했다. 그도 심란할 것이다. 그도 부아가 치밀 것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도망쳤다뿐이지, 강진윤에게 불태우는 복수심은 그가 자신보다 더욱 뜨겁고 진하리라.
“……어?”
거기까지 생각한 류태현이 문득 그의 등을 보고 경악에 빠졌다.
“이봐, 당신…….”
오은수의 등. 그곳에는 익숙한 형상의 나이프가 반쯤 그의 살갗을 헤집고 박혀 있었다. 강진윤의 나이프였다.
“아아, 이게 있었지 참. 그만 깜빡 잊고 있었군.”
제 몸에 박힌 나이프를 잊고 있었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허나 오은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나이프를 뽁 뽑아 계단에 던졌다. 정말로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그러나 그의 등에서 흐르는 혈액의 양은 결코 별 것 아닌 수준이 아니었다.
“……등 이쪽으로 돌려.”
“오우. 지혈이라도 해주려고? 거 참 착한 용병님이시구만.”
“잔말 말고 얼른.”
“네가 걱정할 정돈 아닌데”
“빨리.”
류태현의 거듭된 지시에 오은수는 군말 없이 몸을 돌렸다. 입고 있던 셔츠 자락을 미리 찢어둔 류태현이 나이프를 뽑고 상처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상처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옆구리에도 길고 깊은 자상이 새겨져 있었으며,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자상이 잔뜩 그어져 있었다.
“등 말고도 엄청 다쳤네. 이렇게 다쳤으면서 강한 척은 왜 한 거야?”
“헷. 그깟 상처 침 바르면 낫는다. 꼬맹이 넌 네 상처나 신경 쓰지 그래?”
“참나…….”
그놈의 강한 척 좀 안 하면 어디가 덧날까. 류태현이 고개를 저으며 다른 상처를 지혈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치는 번뜩임.
“……잠깐, 뭐?”
“응?”
“꼬맹이라 그랬어 방금?”
“아.”
류태현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든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가면 아래에서 말이다. 그는 여전히 도베르만 가면을 쓴 채였다. 헌데 오은수는, 그런 그를 두고 평소처럼 ‘꼬맹이’라 불렀다.
“당신 설마”
“아하하. 내, 내가 그렇게 말했나? 애송이라고 한 것 같은데.”
“그럴 리가. 똑똑히 들었어.”
“…….”
오은수는 거짓말을 잘 하는 성격이 아니다. 조직에서 일할 때는 몰라도, 적어도 류태현이나 고아원 아이들 앞에선 조금만 거짓말을 해도 얼굴에 다 드러났다.
바로 지금처럼.
“끄응…….”
어떻게든 무마해보려다 결국 단념했는지, 오은수가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방금 전에 같이 싸우면서.”
“그 전부터 알고 있던 거 아냐?”
“그럴 리가. 그랬다면 아예 오늘 싸움에 끼어들지도 못하게 막았을 거다.”
확실히 오은수라면 그랬을 것이다. 류태현은 그 부분에 대해선 납득했지만, 한편으론 아직 여전히 의문인 부분도 있었다.
“그럼 어떻게 내 정체를 알아본 건데?”
“……가면으로 가려도 내 눈은 못 속이지. 너한테 싸우는 법을 가르친 게 누구인지 생각해봐라 꼬맹아. 마침 체격도 딱 너만한 용병 놈이 류태현 너랑 똑같은 움직임으로 싸우는데, 못 알아보면 그게 이상하지 않겠냐?”
오은수는 지난 1년 동안 류태현을 직접 가르쳤다. 덕분에 그의 움직임을 뻔히 알고 있었고, 사소한 버릇 하나하나까지 똑같은 블랙 도베르만을 보고 그가 류태현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 꽤 잘 싸우더라. 대련이 아닌 실전은 거의 처음일 텐데.”
“……어디 사는 누구 씨가 잘 가르쳐준 덕이겠지.”
“그거야 당연하지. 그렇지만 정말 놀랐어. 왜 부하들 사이에서 블랙 도베르만으로 그렇게 떠들썩한지 알겠더군. 그간의 활약상이 다 허투는 아니겠다 싶더라.”
“…….”
낯간지러운 칭찬에 류태현이 멋쩍게 시선을 돌렸다.
“강진윤 그 새끼 그거, 뭔 지랄을 했는지 혈관도 오돌토돌 솟아나고 눈도 시뻘겋더만. 그 새끼가 그런 편법만 쓰지 않았다면 네가 진즉에 이기고도 남았을 거다. 정말 강해졌어. 암, 정말 강해졌고 말고. 요 1년 사이에…….”
오은수는 문득 류태현과 함께 했던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러나 흐뭇한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도 잠시, 곧 그가 표정을 다잡으며 류태현에게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이다.”
“뭐가?”
“가면 쓰고 용병 행세 하는 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여기서 무사히 탈출하면 가면은 갖다 버리고 당분간은 슬럼에 얼씬도 하지 마라.”
“……전쟁이 끝날 때까진 돕게 해줘. 아저씨네도 전력이 필요할 거 아냐.”
“필요하지. 필요한데, 너한테까지 손 벌릴 정도로 쪼들리진 않아. 전쟁도 결국 서로 이익이 나야 하는 거니까. 이대로 소모전으로 끌고 가다 보면 결국 흐지부지 끝나게 되어 있어. 여태껏 그래왔으니까.”
“이대로 전쟁을 끝낸다고? 그럼 강진윤은?”
그 물음에 오은수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이내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아쉽다는 투로 내뱉었다.
“뭐어, 전쟁이 끝나기 전에 기회가 있다면 잡아 족치는 거고. 아니면 후일을 기약해야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내 개인적으로 부하들을 움직여서 죽일 수야 있다만, 그래서야 또 전쟁을 일으킬 명분만 쥐어주는 꼴이니.”
“……그게 말이야? 복수는? 놈은 고아원 애들을 죽였어. 그 복수는 어떻게 되는 건데?”
“복수라…….”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오은수가 품에서 새 담배를 꺼냈다. 돛대였다.
그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뱉는다. 길게 뻗은 담배가 타들어가는 그 모양새가 꼭, 속이 타들어가는 그의 마음을 형상화한 듯 했다.
“복수 좋지. 중요하지. 강진윤 그 빌어처먹을 놈. 마음 같아선 당장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놈이지. 근데…….”
“근데 뭐.”
“말했잖냐. 복수란 것도 결국 뒷일을 생각해야 하는 거라고. 아이들이 죽은 건 슬프지만, 이미 죽은 아이들을 기린답시고 수습하지도 못할 일을 벌였다간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다. 내 부하놈들뿐 아니라 고아원 아이들까지 위험해지겠지. 기껏 멈춘 전쟁은 다시 불거지고, 딱히 죽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들까지 잔뜩 죽게 될 거다.”
오은수가 부하들을 이끌고 대대적으로 강진윤을 습격할 수 있었던 건 조직 간의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나 가능한 일. 사적인 복수가 공적인 습격으로 여겨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은수는 그 부분을 설명했지만 류태현은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오은수도 충분히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그렇기에.
“……그러니 준비해야지.”
“뭐를?”
“놈을 잡아 족칠 준비. 확실하게 계획을 세워서. 이번처럼 도망치지 못하도록 완전히 몰아넣어 죽일 수 있도록.”
“아까는 뭐 사적으로 습격하면 다시 전쟁이라며?”
“그러니 그것까지 다 감안해서 놈을 죽일 수 있는 그림을 그려봐야지. 명분만 이쪽에 있다면 용문 놈들도 간부 하나 뒈진 걸로 다시 전쟁을 일으키진 않을 테니까. 한 달이 걸릴지 1년이 걸릴지 모르겠다만,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만 있진 않을 거다.”
오은수는 애초부터 복수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여러 사정을 고려해 잠시 뒤로 미루겠다고 했을 뿐.
“아저씨…….”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 류태현의 입가에 자연스레 웃음이 그려졌다.
그래, 오은수는 이런 사람이었노라고. 자신의 사람을 건드린 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고 끝까지 가서 물어뜯는. 그런 상사고 그런 형님이었노라고.
허나 류태현이 그의 말에 감격한 것도 잠시, 곧 오은수가 다시 한 번 차갑게 류태현을 내치듯 말했다.
“하지만 꼬맹이. 그 복수에 네 역할은 없다. 그러니 단념해.”
“……그게 무슨 소리야. 아저씨 멋대로 결정하지 마. 나한테도 놈을 죽일 권리가 있어.”
“흐핫! 그딴 권리는 어디 사는 누가 주는 거라냐? 거 알면 나도 좀 소개시켜줘라. 그 잘난 놈 상판 좀 보게.”
류태현의 치기어린 말에 오은수가 낄낄 웃으며 이죽거렸다. 분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류태현에게 오은수가 작게 이야기했다.
“……내가 마냥 네가 외지인이라고 내치는 줄 아나본데. 이봐 꼬맹아. 너 사실 지금 존나 위험한 상태라는 거 아냐? 보아하니 쏨밧이 네 뒤를 봐주고 있긴 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네가 마냥 안전할 줄 아는 건 아니지?”
“당연하지. 그렇지만 위험 같은 건 진즉에 감수하기로 했어. 나라고 아무런 각오도 없이 전쟁에 뛰어든 게”
“너야 그렇겠지. 그렇지만 네 가족은? 만에 하나 너한테 미행이라고 붙어서 네 집, 네 학교, 네 친구들 다 탄로나면 어떻게 될 것 같냐? 응?”
그 물음에 류태현은 말문이 턱 막혔다.
미행. 그것은 류태현도 당연히 경계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블랙 도베르만이라는 용병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건 성철파든 용문이든 예외가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류태현은 슬럼의 출입에 있어서 늘 세심하게 신중을 기했다. 다만 그 나름대로 미행을 경계한다 한들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미행이 붙어서, 오은수의 말마따나 가족이며 신상이며 다 까발려질 확률도 0은 아니겠지.
다만 류태현은 그 0이 아닌 확률을 지금껏 애써 무시하고 있었을 뿐.
“영웅심에 취해 슬럼 깡패들을 족치다 집에 돌아갔더니 부모님이 다 죽어있더라. 그런 상황이 정녕 절대 안 벌어지리라고 장담할 수 있나? 응? 대답해봐라 꼬맹아.”
“…….”
“거 보라지. 대답 못하잖아.”
오은수는 류태현이 애써 외면하고 있던 바로 그 부분을 집요하게 들춰냈다. 류태현 입장에선 어찌 보면 치사한 논리였지만, 그의 말에 어폐는 단 하나도 없었다.
“꼬맹이. 넌 네가 다 자랐다고 생각하겠지. 실제로 많이 자라긴 했어. 신체능력이든 머리통이든. 근데 말이다. 넌 결국 아직 어린애야. 오히려 어중간하게 자란 상태라 더 위험하지. 제대로 된 판단조차 하지 못하는데 꼴에 그 판단이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내가 멍청한 애새끼다 그거야?”
“멍청하진 않지만 어리석지.”
그의 현 행태를 관통하는 말에 류태현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분함을 감추지 못하는 그에게 오은수가 좀 더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꼬맹이. 내가 했던 말 기억하냐? 너한테는 창창한 미래가 있다는 거. 이번에 네가 블랙 도베르만이라는 용병으로서 보인 활약상. 그게 바로 네 미래의 가능성이야. 그 가능성을 스스로 망치지 말라는 거다 내 말은. 무슨 말인지 알겠지?”
“…….”
“그러니 당분간 슬럼에는 얼씬도 하지 마라. 전쟁 수습이든 복수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이래도 내 말을 안 들으면 확 고아원 접근 금지령을 내려버릴 테니까. 너도 네 여친하고 헤어지긴 싫지?”
“……여친?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면 말고! 나야 뭐 진즉에 서로 고백하고 사귀고 있는 줄 알았지.”
황당해하는 류태현의 표정을 보며 오은수가 낄낄 웃었다. 그 웃음에 경직되어있던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졌다. 덕분에 류태현도 마냥 잔소리처럼만 들리던 오은수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쳇.”
물론 완전히 그의 말에 납득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는 싸우고 싶었고, 강진윤에게 복수하고 싶었으며, 오은수의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 마음만은 전혀 변치 않았다.
다만, 그것이 제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치기어린 만용이라는 것을 이젠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면전에 대고 그런 말을 들었는데 어찌 뻔뻔하게 나몰라라 하겠는가.
“……알겠어. 아저씨 말대로 당분간은 슬럼에 얼씬도 안 할게. 적어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그럼 되는 거지?”
“그래. 잘 생각했다. 말 잘 들으니 얼마나 좋냐? 이래야 착한 어린이지.”
“이 양반이 진짜….”
“낄낄낄. 꼬우면 적어도 20살은 쳐먹고 와라. 그럼 동등한 어른으로 대우해줄 테니.”
어느새 다 타들어간 담배를 오은수가 발로 비벼 껐다. 그러다 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류태현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너, 쏨밧은 어떻게 꼬신 거냐? 그놈이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널 전쟁에 끌어들였다니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는데.”
“그야 내가 쏨밧을 꼬신 게 아니라 그쪽에서 먼저”
저벅.
류태현의 말이 돌연 멈췄다. 아래쪽에서 들려온 미세한 발소리. 워낙 작아서 미처 듣지 못하고 넘기기 십상이었지만, 류태현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설마.’
당황한 류태현이 오은수를 바라보자 그 또한 발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화가 멈추자 발소리 또한 약속한 것처럼 잦아들었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있다.’
갑작스레 멈춘 대화에 이쪽 상황을 살피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언제라도 응전할 수 있도록.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타악.
또 다른 발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로 스며들었다.
이번에는 아래쪽이 아닌, 두 사람이 있는 층계참 위쪽 옥상에서.
아래와 위. 양쪽에서 들려온 인기척.
졸지에 위아래로 포위당한 형국에 오은수가 주먹을 꽈악 말아쥐었다. 이래서야 낙관적으로 생각해보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이건 명백한 포위였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안 거지?’
대화를 나눴다 해도 건물 바깥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나눈 건 아니었다. 헌데 바로 아래에 올 때까지 발소리를 듣지 못한 걸 보면 애초에 건물에 들어올 때부터 발소리를 죽였다는 소리.
저벅. 저벅.
그러나 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적들……로 추정되는 이들은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위에서도 아래서도. 두 사람의 숨통을 조이기 위해 천천히 그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이미 다 들킨 마당에 뭣들하고 있냐.”
이에 오은수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어서 덤벼라. 쓸데없이 시간 끌지 말고.”
콰앙!
직후 옥상 문이 열어젖혀지며 용문 조직원들이 들이닥쳤다. 동시에 아래쪽에서도 투다다다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격렬하게 울려퍼졌다.
“내가 위! 네가 아래다!”
“알았어!”
두 사람은 층계참에서 등을 맞댄 채 각자의 방향을 경계했다.
오은수가 맡은 옥상에서 내려온 조직원, 그 숫자는 넷.
류태현이 맡은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조직원, 그 숫자는 다섯.
“으아아아아아!!”
“죽어라!!”
기합찬 함성과 함께 달려드는 적들에게 두 사람은 신중하게 대응했다. 마침 장소도 좌우 폭이 좁은 계단이었기에 적들은 수적인 우위를 제대로 살릴 수 없었다.
퍼억!! 퍼어억!!
계단에 주먹질 소리가 거세게 울려 퍼졌다. 대부분 류태현과 오은수의 주먹이 만들어내는 소리였다. 좁은 공간에 서로 뒤엉켜 난전으로 번질 법도 하건만, 두 사람은 밀려오는 적들을 한 주먹에 한 놈씩 깔끔하게 막아냈다.
퍼어억!!
“끄, 허억!”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지막으로 서있던 적의 가슴에 류태현의 주먹이 파고들어 그를 쓰러뜨렸다. 9명에 달하는 용문 조직원들이 죄다 바닥을 나뒹굴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전혀 밝지 않았다.
‘지네들이 지겠다 싶으면 지원을 요청하는 게 당연한데. 어디 연락하거나 도망칠 생각도 없이 우리한테 달려들었다는 건…….’
뇌리를 스친 최악의 가정에 오은수가 다급히 옥상으로 나갔다. 그의 시선이 곧장 건물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이런 씨이발. 좆됐네 이거.”
곧 오은수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