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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51화 (252/266)

〈 251화 〉 250. 블랙 도베르만(3)

* * *

싸움이란 단순 산수처럼 계산대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다.

싸움이 일어나는 곳의 환경, 싸우는 이들의 관계, 싸움에 임하는 자세와 심리 상태, 누적된 피로, 그리고 서로 간의 상성에 이르기까지.

싸움이란 수많은 변수가 개입되는 것이기에, 압도적인 실력 차가 있지라도 않는 이상 그 결과를 속단할 수는 없다. 아니, 설령 압도적인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기적 같은 확률로 이를 뒤집을지 누가 아는 일인가.

­서걱.

“크윽…….”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오은수와 류태현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강진윤의 입에서 가쁜 숨이 토해진다. 2대 1의 싸움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종횡무진 몸을 놀리며 나이프를 휘두른 그는 명백하게 자신의 한계 이상의 기량을 보이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가 몸에 꽂은 불법 약물에 의한 것.

혹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불타오르는 삶에 대한 갈망에 의한 것.

그 외에도 이유야 얼마든지 들 수 있겠으나.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싸움이 시작되고 10분 넘게 강진윤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2대 1이라는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상당히 선방하면서.

“이런 개씨부랄…. 얌전히 뒤지기나 할 것이지…….”

오은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옆구리를 감쌌다. 조금 전 강진윤에게 베인 그곳에선 적지 않은 양의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치명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심각한 부상이다. 당장 죽지는 않더라도, 아마 이대로 방치하고 있다간 실혈사로 결국 죽게 되리라.

‘요즘 소문으로 돌던 그 강화제인지 뭔지 그건가? 골치 아프게 됐구만 이거.’

오은수는 생각한다.

목표물, 복수의 대상, 고아원 습격을 명령한 장본인인 강진윤은 눈앞에 있다. 예상보다 놈이 잘 싸우기는 한다만, 2대 1로 계속 몰아붙이면 끝내 죽이는 건 어렵지 않을 터.

그러나 문제는 거기까지 걸리는 시간이었다.

이곳은 적진.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지는 건 자신들이었다. 더군다나 강진윤과 달리 자신들에게 지원이 온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빌어먹을….’

이윽고 오은수는 생각을 마친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았을 때, 지금이 무사히 몸을 내뺄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이 이상 시간을 끌었다간 설령 강진윤을 죽인다 하더라도 자신 또한 죽게 되겠지.

허나 그는 아직 죽을 수 없었다.

고아원을 습격당하고, 무고한 아이들이 희생된 건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하고, 화가 났지만.

그 외에 아직 죽지 않은, 지금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 같은 고아원의 아이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자신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부하 조직원들.

그들을 책임질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밖에 없다. 그렇기에 오은수는, 복수의 결실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가까스로 그 칼날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강진윤, 그 빌어먹을 자식은 언젠가 반드시 이 손으로 죽이겠노라고. 후일을 기약하며 물러나고자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이, 용병. 이 이상 시간을 끌면 위험해질 것 같다. 그러니 슬슬 이쯤에서 내빼는 게­”

그건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상황을 볼 수 있는 어른, 오은수의 이야기.

‘죽인다.’

그저 휘몰아치는 감정에 몸을 맡긴 채 싸우는 어린애는, 어른만큼 냉정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타앗!!

류태현이 강진윤에게 돌진했다. 그 순간 오은수의 표정에는 일순 당황이 서렸으나, 곧 그가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내가 몸을 내뺄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겠단 건가?’

아니, 아니었다. 류태현은 그저 아이들을 죽인 강진윤에 대한 복수심에 휘둘리고 있던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도베르만이 류태현이라는 걸 모르는 오은수는, 이만 후퇴하자고 했음에도 적을 물고 늘어지는 그가 마치 주인을 위해 제 한 몸 희생하는 충직한 사냥개처럼 보였다.

용병이란 본래 신뢰할 수 있는 족속이 아니다. 받은 돈만큼은 일한다고 자부하는 그들이지만, 제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돈이고 신용이고 무시한 채 제 몸만 내빼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으니.

헌데 저 용병을 보라. 자신도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도, 그저 맡은 바 소임을 다하겠다고 생면부지인 자신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려는 모습.

‘설령 놈이 날 위해 저러는 게 아니더라도, 저렇게 나서서 놈을 상대해준다면야 나야 고맙지.’

오은수는 미친개처럼 강진윤에게 달려드는 용병을 뒤로한 채 등을 돌렸다. 그러나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인상을 팍 찡그렸다.

“…………씨부럴.”

곧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난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이라니까!”

­파앗!

다음 순간 오은수가 몸을 반전해 전투 현장으로 달려들었다. 재빠르게 뻗어진 그의 오른팔이 멱살을 콱 틀어쥔다.

강진윤이 아닌, 류태현의 멱살을.

“멍멍이! 튀자!”

“뭣­”

“강진윤 이 씹새끼야! 오늘은 운 좋은 줄 알아라! 다음에 만나면 진짜 국물도 없는 줄 알어!”

오은수는 류태현을 붙잡고 그대로 쏜살같이 내뺐다. 그러나 강진윤은 두 사람을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어딜!”

강진윤이 있는 힘껏 나이프를 던졌다. 오은수는 그에 맞춰 몸을 숙였고, 던져진 나이프는 허망하게 허공을 가르며 저 앞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 순간.

­쐐애애액!!

날아가던 나이프가 돌연 방향을 반전하더니 다시금 두 사람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강진윤의 초능력은 ‘투척’.

던진 물체를 자유자재로 조종하고 가감속하는 심플한 능력이었지만, 강진윤은 초능력에 의지하는 것보다도 직접 싸우는 편이 더 강했기에 거의 쓸 일이 없는 초능력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오은수조차 알지 못했다.

“이런!”

­쐐애애액!

반전해서 날아드는 나이프를 피하려 오은수가 류태현의 몸을 옆으로 던졌다. 멈춰선 두 사람을 향해 강진윤이 호기롭게 외쳤다.

“내가 니들을 곱게 보내줄 것 같냐?! 이리 와라! 어서 싸우자고! 오은수! 오늘 너랑 나랑 누구 하나가 뒤지든 끝을 보는 거다!!”

강화제의 부작용으로 인해 강진윤은 극한의 흥분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대로 계속 싸우는 게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는 눈앞의 적들을 기필코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저 미친 약쟁이 새끼가 진짜…!”

허나 오은수의 의지는 확고했다. 언제 적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이상 여기서 더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이대로 있어봐야 개죽음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류태현은.

“어어? 야! 멍멍이!”

오직 강진윤에 대한 복수심으로 활활 타오르던 그는 뒷일 따위 생각하지 않았다.

­타앗!

류태현의 몸이 쏜살같이 강진윤에게 달려들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오은수를 죽이겠노라 정한 게 강진윤의 포부였다면, 류태현 또한 오늘 이 자리에서 강진윤을 기필코 죽이고자 하였다.

피의 복수를.

무고한 아이들을 죽이고, 은하를 다치게 한 저 가증스러운 악당을. 기필코 자기 손으로 장사지내고 말겠다고.

­쐐애액!!

그런 류태현의 뒤로 강진윤의 나이프가 맹렬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정확히 사각을 찌르고 들어오는 그 암기를 류태현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다.

“저 멍청이가…!”

­푸욱!!

“크헉…?!”

결국 나이프는 류태현의 등에 보기 좋게 꽂힌다. 달려가던 기세 그대로 넘어진 류태현. 등에서 느껴지는 작열하는 듯한 통증에 그의 주먹에 꽈악 힘이 들어간다.

“에라이, 기껏 살려주려 했더니 제 손으로 무덤을 파기는­”

그 모습에 오은수는 미련없이 돌아섰다. 제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가겠다는데 그걸 구해줄 정도로 오은수는 호인이 아니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를 용병 나부랭이 따위 뒤지든 말든 알 바 아니라지.

……그렇게 생각했으나, 다음 순간 오은수의 움직임이 덜컥 멈춘다.

“…….”

차마 말조차 잇지 못한 채, 그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당황, 그리고 경악.

­타앗!

그러나 그 동요는 1초도 이어지지 않았다. 다음 순간, 오은수는 있는 힘껏 달려가 쓰러진 용병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러곤 냅다 달렸다.

­쐐애애액!!

­푸욱!

“끅!?”

달려가던 도중 등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지만 오은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류태현을 짊어진 채 그가 쏜살같이 골목길을 내달린다.

“허…….”

혼자 남겨진 강진윤이 그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보다 이내 핫! 하고 웃는다.

“새끼,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보지?”

그렇게 이죽거린 강진윤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자, 잠깐!”

한편 류태현은 오은수에게 목덜미를 붙잡힌 채 거칠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인적 없는 폐건물로 들어선 오은수가 그제야 멱살을 놓으며 숨을 토해냈다.

“이봐, 당신 지금 뭐하는­”

“쉿.”

왜 도망친 거냐고. 그렇게 일갈하려던 류태현의 말을 오은수가 틀어막는다. 그가 부서진 창문으로 바깥을 살피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맞은편에 용문 놈들이다. 저놈들뿐만 아니라 사방이 적이야. 들켜서 포위당하고 싶지 않거든 닥치고 있어.”

“……”

“그나저나 멍멍이 너, 쏨밧 말로는 한국말 못한다는데 꽤 하잖냐? 하긴, 그러지 않고서야 한국에서 용병 일을 어떻게 하겠냐만은.”

그 말에 순간 류태현은 아차 싶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다행히 오은수는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흐트러진 가면을 고쳐 쓰며 그가 말없이 거리를 벌리자 오은수가 킥, 하고 웃었다.

“조심성이 많은 친구구만. 그래, 용병 일을 하려면 그 정도 조심성은 있어야지.”

그렇게 말한 오은수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일단 올라가자고. 높은 곳에서 주위를 좀 살펴야겠어. 동의하지?”

두 사람은 그 길로 곧장 옥상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있는 폐건물은 총 9층으로, 주위의 다른 건물보다 2, 3층 정도 높았다. 덕분에 두 사람은 옥상에 서서 주위 거리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이거 좆됐구만.”

그리고 그 결과 오은수는 자신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직감했다. 조금만 내빼는 게 늦었어도 용문 놈들에게 포위당했으리라고.

허나 그렇다 해서 지금 상황이 괜찮은 건 아니었다. 놈들이 자기네 위치를 모른다 뿐이지 사방이 적들로 가득한 건 매한가지였으니.

“강진윤 그 새끼 우리가 오자마자 바로 내뺀 것도 그렇고. 주위에 부하놈들을 이렇게 잔뜩 심어둔 걸 보면 준비를 제대로 했어. 쏨밧 말로는 놈들 주력은 다 위쪽으로 빠져나갔다 그랬는데…….”

“…….”

“아무튼,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가려면 고생 꽤나 하겠어. 일단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옥상에서 옥상으로 조심히 도망쳐보자고. 저 새끼들도 생각이 있다면 옥상을 감시할 테지만…….”

“…….”

“근데 아까부터 왜 계속 묵묵부답이야? 나한테 뭐 불만이라도 있나? 있으면 말을 하라고 멍멍이 친구.”

불만. 있다마다. 그러나 곧장 말할 순 없다. 잘못했다간 목소리로 자신이 류태현이란 걸 들킬 테니까.

“……왜 도망친 거지.”

이에 류태현이 일부러 목소리를 쫙 깐 채 물었다. 남이 듣기에 어색한 목소리였지만 적어도 류태현 본인의 목소리론 들리지 않았다.

“강진윤. 그대로 싸웠다면 죽일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왜긴 왜야. 그대로 있었다간 그놈 부하들한테 포위당해서 죽을 판이었으니까 그랬지. 용병 너도 돈값 해주는 건 고마운데 일단 사는 게 먼저 아니겠냐? 그렇게 앞뒤 안 보고 달려들기만 하면 제 명에 못 살아요. 도대체 돈이 얼마나 급하기에 그렇게 필사적인 건지 원­”

“돈 때문이 아니야.”

짧은 한 마디에서 진하게 묻어나오는 복수심. 이를 느낀 오은수가 살짝 놀란 눈으로 류태현을 바라보았다.

“돈 때문이 아니다? 그럼 개인적으로 강진윤, 그 자식을 죽여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거냐?”

“그래.”

“복수?”

그 질문에 류태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은수는 마치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르고 고른 말들을 천천히 읊으며 웃었다.

“……하긴, 그 새끼가 어디 원수진 게 한둘이어야지. 설마 태국 출신 용병한테까지 원한을 샀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참 글로벌하게 노는 새끼일세 이거.”

“당신도 마찬가지일 텐데.”

“마찬가지지. 마찬가지야. 나도 그 빌어처먹을 새끼한테 복수하려고 부하가 말리는 것도 무릅쓰고 이렇게 싸우러 온 거니까. 그런데…….”

옥상 계단에 걸터앉은 오은수가 류태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복수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죽어버리면 거기서 끝이잖아. 물론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갚아야 하는 원수라는 것도 있긴 하다만, 그렇게 픽 죽어버리면 남은 사람들은 누가 돌보겠어? 응? 난 책임질 사람이 많은 몸이라고.”

“…….”

“그리고 꼬맹이. 너도 가족이든 뭐든 널 기다리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을 것 아니야. 안 그래?”

그 말에 류태현은 펄펄 끓던 머리에 찬물을 확 들이부은 듯했다. 그의 뇌리에 차례차례 가족들이, 권은하가, 그리고 고아원 아이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강진윤 그 새끼를 죽이고 나도 같이 죽는다? 그건 멍청하고 미련한 짓이지. 그 씹새끼는 다음에도 죽일 수 있어. 이번보다 더 치밀하고, 더 확실하게 계획을 짜서. 완벽하게 몰아넣은 다음 안전하게 죽일 수 있다고.”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전력적 후퇴지.

그렇게 말한 오은수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부하들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크으, 이놈의 인기란!”

곧 오은수가 쏨밧의 번호를 눌러 통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채 3번 가기도 전에 쏨밧이 전화를 받는다.

“어, 그래. 지금 여기 적진 한복판. 그 대림상사인지 뭔지하는 건물 있잖아. 거기 옆에 폐건물에 숨어 있다. 구하러 올 수 있겠냐? 응? 뜸 들이지 말고 솔직히 말해 이 새끼야.”

잠시간의 침묵 끝에 쏨밧이 대답하고, 곧 오은수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래, 힘들 것 같다 그거지. 하긴 시발, 사방에 적들이 깔린 게 내가 봐도 용문 새끼들이 작정하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구나 싶더라. 우리 사이에 쁘락치라도 있는 건지 아니면 저새끼들한테 용한 점쟁이라도 있는 건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럼 탈출은 내 알아서 할 테니까 니들은 나 가는 방향이랑 안 겹치게 어디서 소란이라도 좀 피워봐. 어어, 금오동 그쪽에서. ……그걸 내가 굳이 말해야 아냐? 뭐 봉창을 두드리든 폭탄을 터뜨리든 이 새끼들이 다 그쪽으로 몰려가게 하라고. 그럼 그 사이에 나는 휙 내빼고, 니들도 용문 새끼들이랑 안 싸우고 튀고. 그럼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다 좋은 것 아니냐, 응?”

구체적인 시간과 방식에 대해 논의한 끝에 오은수가 전화를 끊었다. 류태현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자 그가 스마트폰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밤 9시. 금오동 쪽 구역 경계에서 내 부하 놈들이 시선을 끌어주기로 했다. 우린 그 사이에 조용히 남쪽으로 내빼면 돼. 일단 슬럼 바깥으로 나갔다가 우리 쪽 구역으로 스윽 들어가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지? 아까 보니 한국말 잘 하더만.”

“…….”

“고개만 끄덕이긴 씨발 누가 외국놈 아니랄까봐 예의범절은 엿 바꿔 먹었나보구만. 아무튼, 한 3시간 남았으니까 그동안 좀 쉬자고. 3시간 안에 아래 저놈들한테 들키지 않길 빌면서.”

오은수가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자욱한 담배 연기가 계단에 화악 퍼지자 류태현이 가면 속에서 살짝 기침했다.

“……새끼. 용병이란 놈이 담배도 안 피우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오은수는 류태현으로부터 조금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그 배려 아닌 배려에 류태현이 어색한 자세로 반대편 끝에 앉았다.

­쏴아아아아아.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는 옥상 바로 아래. 두 남자가 계단에 걸터앉은 채 어색한 침묵으로 시간을 보냈다.

***

한편 그 시각. 전투가 끝난 용문 녹암사무실.

“후우. 난장판도 난장판이 따로 없군.”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강진윤은 자신의 사무실로 복귀했다. 강화제의 부작용 때문에 그의 온몸에선 식은땀이 연신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은수는?”

“아직 못 찾았습니다 형님.”

“길목은 다 막았고?”

“예. 말씀하신 대로 퇴로란 퇴로는 다 막아둔 상태입니다. 분명 아직 도망치지 못했을 겁니다.”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그대로 곧장 내뺐으면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도망쳤을 수도 있으니까.”

“설마 그랬겠습니까. 이 날을 위해 다른 형님들 밑에 있는 애들까지 싹 차출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분명 아직 우리 구역 안에 있을 겁니다.”

“그러길 빌어야지…….”

자기 자리로 돌아온 강진윤이 털썩 의자에 앉았다. 그가 서랍을 열자 서랍 안에 수도 없이 많은 핸드폰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강진윤은 그중 푸른색 폴더폰 하나를 꺼내들었다. 나온 지 족히 15년은 되었다 싶은 구식 핸드폰을 열자, 3분 전에 도착한 문자 하나가 표시되어 있었다.

“흐, 흐흐.”

곧 강진윤의 입가에 진한 웃음이 떠올랐다.

“야, 준효야.”

“예 형님.”

“아무래도 빌 필요 없겠다.”

“예?”

“애들 준비시켜라. 곧 다시 나간다.”

그렇게 말한 강진윤이 허리춤에 찬 나이프 자루를 매만졌다.

본래 한 쌍이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한 자루밖에 남지 않은 나이프 자루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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