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50화 (251/266)

〈 250화 〉 249. 블랙 도베르만(2)

* * *

고아원이 습격당했다.

용문과의 전쟁이 한창인 와중 다른 시설도 아니고, 고작해야 고아원이 습격당했다는 사실이 무슨 대수일까. 고작 전쟁에는 하등 도움도 안 되는 코흘리개 어린애들이나 있는 곳인데.

허나 그것은 성철파를, 정확히는 오은수라는 남자를 모르는 자만이 품을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를 아는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고아원 습격 사실을 들은 순간, 그리고 보고를 받자마자 뛰쳐나간 오은수를 본 순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이거, 아무래도 큰 사달이 날 것 같다고.

­타앗!!

류태현이 부리나케 고아원으로 달려왔을 때, 이미 정원에는 그보다 먼저 온 선객이 있었다.

쏨밧과 오은수, 그리고 둘 중 누가 데리고 왔는지 모를 조직원 여럿.

“꼬맹이 너…….”

류태현을 발견한 오은수의 표정에 당황이 번진다. 곧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 조직원들에게 날카롭게 물었다.

“……저 녀석한테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미안하다 은수 형. 내가 불렀다. 형이 말하기 전에. 태현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이 자식이…….”

쏨밧의 실수에 오은수가 잠시 표정을 찌푸렸지만 그 이상 나무라지는 않았다. 쏨밧과 의미심장한 시선을 교환한 류태현은 곧바로 고아원 안쪽으로 향했다.

“얘들아­”

그리고 그는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고아원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태풍이라도 한 번 쓸고 간 것처럼 잔뜩 어질러지고 부서진 내부. 곳곳에 튄 피는 이곳에서 격렬한 전투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류태현이 알기로, 고아원에 ‘격렬한 전투’가 가능한 이는 단 한 사람뿐.

“은하야!!”

“……소리치지 않아도 안 도망가. 나 여기 있어.”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걸터앉아 있는 권은하가 보였다. 팔다리에 감은 붕대에는 붉은 피가 번져 있었고, 한쪽 눈에는 피투성이가 된 거즈를 붙이고 있었다.

“은하 너, 설마 눈이…….”

“그냥 눈꺼풀만 다친 거야. 실명은 안 했어. 습격자가 좀 약했거든. 내가 그새 강해진 걸 수도 있고.”

“다행이다…….”

심각한 부상은 없어 보이는 권은하의 모습에 류태현이 안도했다.

“……다행?”

“은하야?”

그러나 권은하의 표정은 반대급부로 어두워져만 간다. 그 반응에 류태현이 당황하며 권은하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권은하가 속에서 끓어오르는 회한과 함께 힘겹게 내뱉었다.

“선아가 죽었어. 민기랑 지수도.”

“……뭐?”

그러자 류태현의 표정 또한 순식간에 창백하게 굳었다.

“선아는 적의 공격에 휘말려서. 민기랑 지수는 인질로 잡혔다가 본보기로. 원장님도 애들 구하시려다 심각하게 다치셔서 지금 병원으로 가셨고. 전혀 다행이 아니야. 전혀, 다행이, 아니라고.”

그 말에 류태현은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아이들이 죽었다.

그 믿기지 않는,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걸렸는가.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스윽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눈물을 글썽이며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잡혔다.

그리고 그 안에 권은하가 말한 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죽었……다고? 죽인, 거야? 애들을? 어째서­”

“나 때문이야.”

그렇게 말한 권은하는 죄책감에 사무치는 표정으로 자기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슬픔이 아닌 후회와 회한의 눈물이 그녀의 뺨을 따라 흘러내린다.

“나 때문이라고. 습격자가 말했어. 형님께 대든 건방진 꼬맹이를 잡아 죽여서, 본보기로 만들겠다고.”

“그럼 설마…….”

“아마 강진윤이 보낸 거겠지. 내가 여기 고아원에 있다는 걸 알고.”

그 말에 류태현은 머리를 세게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권은하가 다시금 강진윤에게 노려져서? 아니었다.

권은하가 한 말. 형님께 대든 건방진 꼬맹이를 잡아 죽여 본보기로 만들겠다.

그것은 비단 권은하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류태현 또한 강진윤에게 덤볐고 강진윤에겐 류태현도 권은하와 마찬가지로 ‘건방진 꼬마’였으니까.

즉, 고아원이 습격당하고 아이들이 죽은 것은.

“이게 다, 다 나 때문이라­”

“나 때문이야. 네가 아니라. 나. 나 때문이라고.”

실의에 빠져 중얼거린 류태현의 말을 권은하가 칼 같이 끊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류태현에게 다가와 그 어깨에 손을 얹는다.

“……태현이 넌 아무 잘못 없어.”

­으득.

어금니를 깨무는 소리와 함께 류태현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이 꽈악 들어갔다. 그러나 싸움으로 지쳤는지, 아니면 감정 문제인지 그 손아귀 힘은 약하기 그지없었다. 힘업싱 손을 떨군 권은하가 류태현을 뒤로한 채 터벅터벅 다른 곳으로 향했다.

류태현은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바라보다.

­타앗!

그는 곧바로 현관을 나섰다. 정원에서 이야기 중인 조직원들. 그 한복판을 가로지르려던 순간 오은수가 분노에 차 외쳤다.

“이 빌어처먹을 자식이!!!!”

­콰아앙!!

있는 힘껏 밟은 지면에서 거센 울림이 퍼져나갔다. 주위의 조직원들은 그에게 진정하시라는 상투적인 말조차 건네지 못한 채, 그저 착잡함을 삼키며 자신들의 형님을 측은하게 바라볼 뿐.

“강진윤, 그 인간말종 버러지 자식이 기어코 선을 넘는구나…! 감히 이딴 방식으로 날 도발해? 오냐, 도발을 당했다면 응당 응해줘야지! 당장 그 새끼 사무실로 찾아가서 그 대가리를 내 손으로 쥐어 터뜨려버리겠어!”

“은수 형. 안 된다. 참아라.”

“참으라고?!”

오은수의 거친 일갈에도 유일하게 쏨밧, 그만은 주눅들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았다. 오은수 앞에서 입을 놀리기가 겁나는 다른 조직원들을 대신해, 그가 오은수에게 진심어린 충언을 건넨다.

“은수 형은 조직의 부두목. 은수 형이 화나서 적진으로 쳐들어가는 건 놈들의 노림수다. 분명 함정을 파고 있을 것이다.”

“그럼 이렇게 당했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아니, 피에는 피로 복수해야 한다. 그렇지만 피의 복수, 무모한 돌격과는 다르다. 철저한 준비. 면밀한 계획. 놈들이 대비하지 못했을 때 놈들의 틈을 찔러야 한다.”

“그럼 그 틈을 찾아와!! 지금 당장!!”

“말하지 않아도 그럴 거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라.”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분노에 차 날뛰는 건 오은수였지만 다른 이들이라 해서 분노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특히 고아원이 오은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잘 아는 그의 측근들은 고약한 수를 쓴 강진윤에 대한 살의와 분노를 저마다 불태우고 있었다.

“아저씨.”

그리고 그건 류태현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합세할게. 힘을 보태겠어. 아이들을 죽인 강진윤 그 개자식은 내가 이 손으로 기필코­”

“……꼬맹아.”

조금의 주저도 없이 함께 싸우겠다 말하는 류태현의 모습에 오은수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표정을 다잡은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이번 싸움은 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 그러니 넌 이제 그만 돌아가­”

“나도!!”

류태현이 억하심정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나도 싸울 거야! 싸울 수 있어! 아저씨도 알잖아! 내가 얼마나 강한지!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잘 알지. 꼬맹이 네가 강하다는 건. 그렇지만 말했잖냐. 네가 낄 자리가 아니라고.”

“낄 자리가 아니긴 무슨! 아저씨가 말했잖아! 나보고 고아원을 지키라­”

“근데 못 지켰잖냐.”

“…………뭐?”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던 류태현에게 차가운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난 분명 너한테 고아원을 지키라고 했다. 아니, 네가 그랬지. 자기가 이 고아원을 지키겠다고. 그런데 고아원이 공격당할 때 넌 어디 있었지? 고아원에 있었나? 아니면 이 슬럼 어딘가에 있었나? 천만에! 너는 바깥에 있었어! 슬럼이 아니라 바깥! 저 멀쩡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따듯한 집 밥 먹고 이불 속에서 내일 학교 갈 생각이나 하고 있었겠지! 안 그러냐?!”

담담하게 시작된 말은 뒤로 갈수록 점차 거칠고 격양되어갔다. 마지막에는 숫제 다그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외쳐대는 오은수의 모습에 류태현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아저씨, 그건…….”

“내 말에 어디 틀린 곳이 있나?! 응?! 있으면 말해보지 그러냐!!”

류태현은 대답할 수 없었다. 오은수의 말에 반박할 거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탓하듯이 소리치는 그 상황 자체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차마 입으로 무언가 말을 자아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고아원을 지키겠노라 자신한 주제에 결국 지키지 못했다는 오은수의 말은, 그다지 틀린 곳도 없었으니까.

“…….”

차마 말조차 잇지 못하고 있는 류태현의 모습에, 오은수는 뒤늦게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자각했다. 그러나 구태여 그 실수를 정정하지는 않는다.

“……아니, 네 탓을 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 애초에 슬럼 주민도 아닌 녀석이 슬럼 안에 있는 고아원을 지킨다 한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지만, 그말을 믿고 맡긴 나도 머리가 단단히 돌아버렸던 거겠지. 결국엔 이렇게 될 일이었어. 다 내 책임이야.”

“아저씨…….”

“잘못을 알았다면 이제라도 제대로 해야지. 꼬맹이 넌 당장 집으로 돌아가. 고아원 일이든 강진윤 일이든 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저씨…!”

“슬럼과 바깥세상 사이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내 입으로 매일 그렇게 말하고 다녔으면서 정작 내가 그 선을 지키질 못했으니. 다 내 업보지 업보야.”

그 말만 남긴 채 오은수가 휙 돌아섰다. 착잡해보이는 뒷모습 너머로 곧 회색 담배 연기가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오은수가 차량쪽으로 떠나자 근처에 있던 조직원들도 그 뒤를 따랐다. 마지막까지 류태현 곁에 남아있던 건 쏨밧뿐이었다.

“태현, 은수 형을 탓하지 마라. 말은 저렇게 해도, 결국 널 걱정하고 있는 거다.”

“알고 있어.”

“그리고 태현. 나는 안다. 너도 은수 형을 걱정하고 있다는 거.”

“…….”

“피의 복수. 습격이 결정되면 알려주겠다.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알고 있어.”

피의 복수는 비단 오은수만의 것이 아니었다.

류태현으로서 복수하지 못한다면, 익명의 용병인 블랙 도베르만으로 복수하면 그만.

“꼭 연락해줘야 해.”

“그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주먹을 꽈악 쥔 채 복수심을 불태우는 류태현을 보며 쏨밧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연락할 테니.”

***

강진윤에 대한 습격이 이루어진 건 그로부터 정확히 37일 뒤의 일이었다. 고아원 습격 날짜로부터 한참 지나 강진윤이 슬슬 방심할 시기임과 더불어, 습격에 있어서 여러 가지 여건이 맞아떨어진 날짜였기 때문에.

­쏴아아아아.

칙칙한 소나기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오은수를 위시한 성철파 조직원 33명은 그렇게 강진윤이 있는 녹암사무소를 불시에 급습했다.

완벽하게 계산된 기습에 강진윤 패거리는 순식간에 와해되었고, 대가리인 강진윤은 측근들이 시간을 버는 사이 홀로 도주.

오은수는 곧바로 부하들을 풀어 그를 쫓았지만 자기네 구역 안에서 작정하고 도망치는 간부를 잡으리란 쉽지 않았다. 지리나 지형지물이 생소함은 물론, 추적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용문의 지원병력과 마주치니 추적이 쉽지가 않았다.

때문에 오은수와 그 부하들은 끝내 강진윤을 놓쳐버리고 만다. 이 날만을 기다리며 갈아왔던 복수의 칼날은 결국 강진윤의 심장을 꿰뚫기 직전에 멈춰버린다.

다만.

“찾았다.”

강진윤을 놓쳐버린 건 어디까지나 성철파 조직원들의 이야기.

그들과는 별개로, 홀로 복수의 칼날을 품고 있던 한 용병은 끈질긴 추적 끝에 복수의 대상에 다다르게 된다.

“……뭐냐. 다 떨어뜨린 줄 알았는데 아직도 벌레가 붙어있었나? 아니, 벌레가 아니라 개새끼인가? 네가 그 유명한 도베르만이구만 그래?”

건물과 건물 사이. 미로처럼 얽힌 뒷골목 어딘가.

하늘도 땅도 벽도 회색으로 물든 그 좁은 골목에서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었다.

한쪽은 용문의 간부 강진윤. 다른 한쪽은 성철파의 밑에서 일하는 용병, 블랙 도베르만.

“강진윤.”

류태현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집어삼키며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랬지?”

“……뭐?”

밑도 끝도 없는 물음.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한 강진윤이었으나 다음 순간 그의 입가에 킥, 하고 비웃음이 서렸다.

“복수인가.”

칠흑빛 도베르만 가면 아래로는 표정 하나 드러나지 않았지만, 강진윤은 류태현의 목소리만으로 그의 목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냈다. 강진윤에게 있어선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폭력 조직을 이끌며 남들의 원한을 숱하게 사본 그였으니. 자신에 대한 악의에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를 용병에게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한 기억은 없지만……. 뭐 나한테 원수진 놈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왜, 내가 네 부모라도 죽였나? 아니면 연인? 아니면 자식? 짚이는 곳이 너무 많아서 그런데 좀 알려줄 수 없나? 까망 바둑이 양반?”

“……성철파가 관리하는 고아원. 너는 부하를 시켜서 거길 습격했지.”

“오호, 그래서?”

“너는 조직과 상관도 없는 무고한 아이들을 죽였어. 왜, 도대체 왜 그런 거냐…! 어째서…!!”

“흐음. 그렇군. 아이들에 대한 복수인가. 고아원. 성철파의 고아원이라. 으음…….”

강진윤이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아니, 생각에 잠기는 제스처만 취했다. 다 눈앞의 상대를 도발하기 위한 과장된 연기였다. 이를 증명하듯, 다음 순간 강진윤이 이빨을 다 드러내보이며 사악하게 웃었다.

“어째 기억에 짚이는 게 없는데? 그거 정말 내가 한 거 맞아? 혹시 생사람 잡는 거 아니야?”

“……그게 네 대답이라면 그걸로 됐다.”

­꽈악.

류태현이 주먹을 쥐며 자세를 잡자 강진윤이 키득 웃었다. 그가 손을 까딱까딱 하며 류태현에게 들어오라고 도발한다.

“죽어!!”

­타앙!!

다음 순간 류태현이 있는 힘껏 지면을 박찼다.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빗방울. 그것들을 사방으로 튕겨내며 류태현이 대포알처럼 날아들었다. 꽈악 쥔 주먹에 담긴 무게감은 1년 전 강진윤과 싸웠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벼엉신!”

강진윤은 곧바로 품에서 기습적으로 나이프를 꺼내 응전했다. 날카로운 날붙이가 류태현의 빈틈으로 부지불식간에 파고든다.

그러나.

‘그럴 줄 알고 있었어!’

강진윤이 나이프를 쓴다는 건 이미 알고있던 바, 팔짱을 낀 척 하며 품에 들어간 오른손은 진즉에 경계하고 있었다. 허리를 있는대로 뒤틀며 나이프를 피한 류태현이 그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넣는다.

­타앙!!

“끅?!”

공기가 떨리고 빗방울이 터지며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강진윤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고통에 찬 신음을 뱉었다. 그러나 공격이 제대로 성공했음에도, 류태현의 표정에는 의문이 먼저 떠오른다.

‘몸을 날려버릴 생각으로 친 건데, 고작 몸 좀 숙이고 끝이라고?’

1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해진 일격이다. 당시 강진윤의 강함을 생각해보면 그가 지금 자신의 주먹을 버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프구만 그래!!”

허나 강진윤은 버텨냈다. 버텨냈기만 한 게 아니라 반격까지. 살벌하게 날이 선 나이프가 류태현의 팔뚝 깊숙이 박혔다.

“크윽?!”

곧바로 몸을 뒤로 물리자 그 궤적을 따라 시뻘건 피가 피슛 튀어올랐다. 그러나 류태현은 부상의 아픔보다도 강진윤이 보인 이질적인 강함에 대한 충격이 더욱 컸다.

“으흐흐흐. 비싸긴 해도 효과 확실하구만. 아직 시험작이라지만 이건 당장 팔아도 불티나게 팔리겠어.”

“……그게 무슨 소리냐.”

“넌 알 거 없다.”

그렇게 이죽거린 강진윤이 류태현 몰래 주사한 주사기를 땅에 버려 발로 짓밟았다. 그 모습에 류태현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묻는다.

“불법 도핑이라도 했나?”

“……뭐 그렇다 할 수 있지.”

붉게 충혈된 눈. 발갛게 상기된 피부. 두꺼운 근육 위로 나무뿌리처럼 도드라진 혈관.

류태현의 예상대로 강진윤은 현재 특수한 약물을 사용한 상태였다.

초인용 불법 강화제, 통칭 ‘도니체티’.

사용자의 건강을 대가로 초인의 신체능력 전반과 초능력의 출력을 월등히 끌어올려주는 도핑 약물.

그것은 훗날 초인재활연구소 소장 나주용의 딸 나은주가 사용하는 강화제의 프로토타입이었다. 강진윤이 가지고 있는 건 나주용 소장이 임상실험과 더불어 연구 자금 확보를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슬럼에 푼 물량이었다.

“소문을 듣자하니 꽤 실력 있는 용병이라던데. 미안하지만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맞붙는 시대는 이제 끝났어. 앞으로는 편법과 도핑의 시대라고.”

“약물 따위에 의지하면서 말은 잘 하는군.”

“글쎄, 약물 ‘따위’가 아니라니까?”

­타앗!!

비웃음으로 이죽거린 강진윤이 나이프를 앞세워 달려들었다. 류태현은 신경을 곤두세운 채 그의 공격에 대비했다.

­서걱!

그러나 그 대비가 무색하게도 강진윤의 나이프는 류태현의 살갗을 가른다.

공격을 예측하지 못한 게 아니다.

‘빨라…!’

그저 너무 빨랐다. 이제부터는 도핑의 시대라는 말을 증명하듯 강진윤의 나이프질은 1년 전보다 비교도 안 되게 날카로워져 있었다.

류태현의 압도적인 성장세가 무색해질 정도로.

“빌어먹을…!”

류태현은 분해 미칠 것 같았다. 그가 그간 강해지려고 노력한 건 고아원 사람들을 지키기 위함이었지만, 그 계기는 바로 눈앞의 강진윤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었다. 그렇기에 류태현은 강진윤이 별다른 노력도 없이(적어도 그가 보기에는) 약물만으로 자신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자 억울하고 분해 서러울 지경이었다.

­서걱!!

그러나 억울함이 기적을 만들어주진 않는다.

본연의 신체능력과 가진 기술, 그리고 전투 센스. 그 모든 것을 종합한 천칭은 강진윤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일견 서로 대등하게 치고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점점 몸에 상처가 많아지는 건 류태현 쪽이었다.

­푸욱!!

그리고 마침내 들어간 결정적인 일격.

옆구리 깊숙이 박힌 나이프에 류태현의 주먹이 주춤 멈췄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허리춤에서 새로운 나이프를 뽑아든 강진윤이 씨익 웃었다.

“그러게 상대를 봐가면서 덤볐어야지. 내가 너 따위가 무서워서 도망친 줄 아냐?”

순식간에 짓쳐드는 나이프를 보며 류태현이 어금니를 앙 다물었다.

눈앞의 죽음에 체념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 일격에 혼신의 힘을 다하기 위해서.

‘여기서 죽더라도 넌 데리고 가마!’

나이프와 주먹이 교차한다. 서로가 방어를 도외시한 채 내지른 공격. 류태현의 주먹은 강진윤의 턱을 후려칠 것이고 강진윤의 나이프는 류태현의 목덜미에 꽂힐 것이다. 누가 먼저고 나중이랄 것도 없이, 그것은 분명한 사실.

“……킥.”

그렇기에 강진윤은 승리에 미소 지었다. 날아드는 주먹. 분명 맞으면 상당한 대미지가 있겠다만 죽지는 않는다. 반면 자신의 나이프는 놈의 목을 꿰뚫고 그대로 찢어발겨, 눈앞의 주제도 모르는 용병 나부랭이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되리라.

‘이겼다!’

그렇기에 강진윤은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고.

­휙.

그렇기에, 류태현의 뒤편에서 보이지 않는 적이 다가오고 있음을 끝내 눈치 채지 못했다.

­콰앙!!

“꺼억?!”

주먹과 나이프가 서로에게 닿기 직전, 그보다 한 발 앞선 일격이 강진윤의 명치를 후려쳤다. 부지불식간의 일격에 회전초처럼 바닥을 구른 강진윤이 가까스로 기세를 죽이고 자세를 다잡는다.

“너 이 자식…!”

보이지 않는 일격.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보이지 않았기에 그 상대가 누군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강진윤의 두 눈동자에 분노가 차오르고, 그것은 보이지 않는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찾았다. 이 빌어처먹을 개자식.”

­파스스슷.

떨어지는 빗방울이 사람의 형상대로 흩어지고 있던 자리. 다음 순간 그곳에서 오은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진윤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욱 분노에 찬 표정을 지은 채로.

“아저­”

그의 등장에 무심코 ‘아저씨’라 말할 뻔한 류태현이 말을 삼켰다. 허나 이를 듣지 못했는지, 오은수는 자신의 옆에 선 까만 도베르만 가면의 용병을 보며 씨익 웃었다.

“네가 그 도베르만인지 뭔지 하는 용병인가?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구만 그래.”

“…….”

“말수가 적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나. 뭐, 말수가 많든 적든 잘 싸우기만 하면 그만이지. 자, 그럼…….”

­쾅!

오은수가 호기롭게 두 주먹을 쾅 부딪히며 말했다.

“……드디어 고대하던 복수의 시간이다. 강진윤 이 개자식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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