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48화 (249/266)

〈 248화 〉 247. 슬럼 잠입(5)

* * *

“그래서, 구체적인 접선 일정은 어떻게 되는데?”

조유리와의 해프닝에 대해선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안수호는 우선 프로페서와의 접선에 대해서 생각하기로 했다. 그의 질문에 지예원이 메일의 내용을 그대로 읊었다.

“시간은 이틀 뒤 토요일 정오. 장소는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 예술극장 뒤편에 있는 카페 ‘오지만디아스’로 나오라는데.”

“왜 슬럼 안에서 만나지 않고?”

“글쎄. 우리를 경계해서 그런 거 아닐까? 슬럼 안에서는 여차할 때 유혈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잖아?”

범죄가 일상이고 범죄자들이 득실거리는 슬럼과 달리, 바깥에서는 제아무리 슬럼의 범죄자라도 함부로 일을 일으킬 수 없다. 바깥은 슬럼과 달리 공권력이 정상으로 작동했으니.

프로페서의 명성을 생각하면 의뢰를 명목으로 접근해 그를 협박하고 이용하려는 자도 있을 터. 때문에 프로페서는 이를 경계해 일부러 사람이 많은 대학가로 접선 장소를 정한 것이었다.

“아무튼, 도착 1시간 전에 미리 이쪽 인상착의를 말해줘야 하고, 또 접선 장소에는 의뢰인 한 명만 와달라고 하네. 몰래 다른 인원을 데리고 와도 자기는 다 알아본다며. 만약 자기 말을 지키지 않으면 의뢰는 받아들이지 않겠대.”

“경계심이 엄청난데.”

“이 정도는 정보상들 사이에선 흔한 일이야. 슬럼은 정보상에게 돈을 쥐어주는 것보다 멱살을 쥐는 게 더 간편하다 생각하는 악인 천지니까.”

“그럴 거면 의뢰도 비대면으로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건 또 다른 문제야. 서면이든 인터넷 메일이든 그런 건 다 기록이 남으니까. 의뢰와 관련된 건 만나서 이야기하는 편이 깔끔하다는 거지.”

묘하게 납득이 되면서도 납득이 안 되는 말이었지만 안수호는 그러려니 했다. 프로페서의 방식이 그렇다면 이쪽에서 맞춰줄 뿐이라고.

“뭐, 어차피 우르르 몰려갈 생각도 없었을 테고. 슬럼 바깥에서 만나주면 너도 편하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 그건 전혀 문제가 안 돼. 문제는 따로 있지. 바로…….”

“정보의 대가.”

안수호의 말에 지예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류태현 수색 의뢰……에 대해서 프로페서 측에서 제시할 대가가 무엇일지. 조금 전에는 어물쩍 돈 말고 다른 것도 받는다 말했지만 사실 이 부분이 문제가 될 수도 있어. 가령 정보를 주는 대신 누굴 죽여달라, 같은 부탁을 할지도 모르잖아?”

“그게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지 않아요? 그런 대가를 제시받으면 그냥 의뢰를 안 하면 되는 거잖아요.”

접선 일정을 잡았다 해서 무조건 의뢰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페서가 요구한 대가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의뢰를 취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그렇다. 분명히 안수호에게는 그러한 선택지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

강하늘의 물음에 안수호는 시선을 내리 깐 채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안수호.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그런 안수호의 의중을 살피던 지예원이 살며시 입을 열었다. 살짝 불안감에 잠긴 눈동자로.

“프로페서에게 류태현 수색을 의뢰하는 데 있어서, 너는 어디까지 할 수 있어? 어느 정도까지 대가를 감내할 생각이야?”

“글쎄, 그거야­”

“가령 조금 전 한 말처럼. 프로페서가 자기 대신 누군가를 죽여달라 한다면? 설마 들어줄 생각은 아니지?”

실종된 학생을 찾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다니 어불성설.

하물며 안수호는 국내에서 경찰과 군인 다음가는 치안조직으로 통하는 국립 아카데미의 경비대원이었다. 그런 그가 불가항력도 아니고, 대의가 있다곤 하나 결국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지예원도, 그리고 강하늘도 그 부분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지만.

“……정 방법이 없다면 고려는 해봐야겠지.”

“뭐?”

“네?”

이어지는 대답은 두 사람의 예상을 조금 벗어난 답이었다.

적극적으로 류태현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다!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는.

“가령 살해 대상이 슬럼 안의 범죄자고. 그 범죄자를 죽임으로써 내게 사회적인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런 경우라면 프로페서가 살인을 대가로 요구하더라도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물론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해보긴 해야겠지만…….”

“류태현을 찾는 게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이야?”

“지금 태현이가 어떤 상황인지를 모르니까. 그냥 스무살 젊은애가 일탈 느낌으로 잠적한 걸 수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 범죄조직에 의한 납치나 감금…. 아무튼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일지도 몰라. 정확한 상황을 모르니만큼 최선을 다해 그 녀석을 찾아야 해.”

혹 이것이 학생의 안전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아카데미 경비대로서의 사명감인가.

지예원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강하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안수호가 이 세상의 ‘주인공’인 류태현의 행방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아니, 지나치다는 말은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안수호가 가지고 있는 경비대 스킬은 주요 등장인물과 안수호 본인의 목숨을 연동시키니까.

행여 류태현이 범죄 따위에 휘말려 죽는다면 그 순간 안수호 또한 목숨이 다한다는 뜻. 안수호로부터 그러한 사정을 전해들은 강하늘은 그가 일견 평온해 보여도 사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지 모르는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안수호의 심정을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 입장에선 살인이라고 해도, 어차피 이 세상의 사람들은 전부 소설 속 캐릭터에 지나지 않으니.

“……그래. 네가 류태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는 잘 알겠어. 그렇지만 너무 무모한 짓은 하지 마. 그리고 뭐든간 저지르기 전에 반드시 우리랑 상담하고.”

“당연하지 그거야. 이제 너희한테 말 안하고 일 벌이는 건 그만두기로 했어.”

“그나마 다행이네. 이제야 좀 철이 든 것 같아서.”

다 큰 성인에게 철이 드네 마네가 무슨 말인지. 어처구니가 없던 안수호가 피식 웃었다. 허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전의 자신이 다소 철이 없던 것도 사실이긴 했다.

정확히는 철이 없는 게 아니라 무모했던 거지만.

“아무튼. 프로페서와 접선하고 정식으로 의뢰를 넘기면……. 아마 한 일주일 정도면 결과가 나올 거야. 그동안에는 너랑 그 직장 선배랑 알아서 탐문 수사를 하든 뭘 하든 상관은 없는데, 너무 눈에 띄는 짓은 하지 마. 특히 용문이나 성철파, 블랙스미스 같은 3대 조직은 절대 건드리지 말고.”

“그쪽에서 먼저 덤비면?”

“그쪽에서 덤벼들 짓을 하질 않는 게 첫 번째. 싸움을 피할 수 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게 두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워야 된다면……. 뭐 그땐 어쩔 수 없겠지.”

“그래, 알겠어. 그럼 그동안 너희 둘은 어쩔 거야? 일단 집으로 돌아간다든가?”

“설마. 나도 내 나름대로 류태현에 대한 소문을 조사해볼게. 정확한 목격정보는 없더라도 어디서 엄청 강한 외지인이 나타났다든가 하는 이야기 정돈 돌지도 모르니.”

“저도 언니 옆에서 같이 도울 생각이에요.”

“예원이야 그렇다 쳐도, 하늘이 네가 슬럼에서 도움 될 일이 있나?”

“말 참 심하게 하시네요! 저도 엄청 도움 되거든요!”

주먹을 꽉 쥐며 발끈하는 강하늘을 보며 안수호가 미안하다며 웃으며 사과했다. 허나 그것과 별개로 슬럼에 대해 자신보다 문외한일 강하늘이 무슨 도움이 될까 궁금하긴 하였다.

“넌 모르겠지만 하늘이가 정보 수집 같은 곳에선 은근 쓸만해.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는 초능력이란 건 활용도가 무궁무진하거든.”

“에헴! 거 봐요. 저도 나름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거든요?”

“물론 겉모습이 아닌 말투나 행동 연기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긴 하지만.”

“…….”

지예원의 칭찬에 의기양양 가슴을 펴던 강하늘이 이어지는 핀잔에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런 어린애 같은 모습에 안수호는 강하늘이 과연 제대로 도움이 될까 싶었으나, 지예원의 말이 비단 빈말이기만 한 건 아닐 터였다.

“조심해 둘 다.”

“너가 조심해야지. 늘 사건에 휘말리는 건 우리가 아니라 안수호 너였으니까.”

그 말에 안수호가 말없이 강하늘을 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에헤헷, 하고 멋쩍은 듯 웃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저도 휘말리는 쪽이긴 한데…….”

“하늘이 넌 나랑 있으니까 괜찮아. 문제는 이 녀석이지. 혼자 싸돌아다니다 또 무슨 일에 휘말릴지 모르니까.”

“누가 들으면 내가 사리분별도 못하는 놈인 줄 알겠어.”

“다 걱정해서 그런 거야. 걱정해서. 그래서? 프로페서랑 만날 토요일까진 뭐하고 있을 거야? 평범하게 탐문 수사?”

“그래야지. 근데 그 전에 일단 어디 다녀올 곳이 있어서.”

“다녀올 곳?”

안수호의 말에 지예원과 강하늘이 동시에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 둘을 보며 안수호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어. 소매치기 여자애 한 명 잡으러 가려고.”

***

다음날.

모텔을 나선 조유리와 안수호는 곧바로 고아원으로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사람은 자신들이 향하는 곳이 고아원인지는 몰랐지만, 안수호가 태초의 은 파편을 붙여둔 지폐가 있는 곳이 바로 고아원이었기에.

“산……이네.”

“그러게요.”

“멀리서 봤을 때 산 위에 주택가가 있는 것 같진 않았는데, 정말 어제 그 여자애가 이 위에 있다고?”

산기슭에 다다른 조유리가 수풀이 우거진 산길을 바라보며 물었다. 품은 감상이야 안수호도 조유리와 하등 다를 게 없었으나, 그 순간에도 실비는 안수호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일부가 이 산 중턱 어딘가에 있다고.

“일단 올라가보죠. 혹시 모르잖습니까. 산 중턱즈음에 소매치기들이 모이는 비밀 아지트라도 있을지.”

“…….”

웃자고 던진 너스레였으나 조유리는 여전히 반신반의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안수호가 여자애에게 넘긴 지폐를 추적한 방법을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

기실 이곳에 오기 전 조유리가 그 방법을 묻긴 했으나, 안수호는 대충 관련 아티펙트가 있다 얼버무리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조유리에게 태초의 은에 대해서 밝힐 순 없으니.

“크흠…….”

어색한 공기를 뒤로한 채 안수호가 먼저 산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 뒤에 곧장 따라붙는 조유리.

두 사람이 나아가는 길은 산길이라곤 하나 아예 등산로 수준은 아니었다. 흙바닥이긴 해도 제대로 다져진 것이 자동차 한 대 정돈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수 있어 보였다.

“소매치기 여자애랑 류태현…. 만약 관련이 있다면 무슨 관계일까?”

“글쎄요. 태현이 걔가 범죄에 손을 댈 것 같진 않으니. 그 여자애를 구해줬다든가 뭐 그런 거 아닐까요? 가령 여자애가 누구한테 협박이라도 당해서 억지로 소매치기를 하고 있다든가…….”

무언가 사정이 있어 보이는 어린 소매치기와 남일에 끼어들기 좋아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주인공. 창작물에서 흔하디 흔하게 엮이는 조합이었으니 류태현과 소매치기 소녀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 한들 새삼 이상할 것도 없었다.

굳이 이상한 점을 꼽자면, 왜 슬럼의 주민도 아닌 류태현이 슬럼 안의 소매치기와 인연이 생겼나는 것 정도.

‘류태현이 슬럼 안에 자진해서 왔을 리는 없겠고. 그럼 여자애 쪽이 슬럼 바깥에서 우연히 태현이 주머니라도 턴 건가?’

고민을 거듭하던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고아원 인근까지 다다랐다. 길 중간에 보이는 모퉁이를 끼고 돌자, 저 멀리 보이는 넝굴투성이 담벼락과 낡은 양옥.

­……! ……!! ……!

철창으로 된 문 사이로 언뜻 보이는 정원에는 어린 나이의 소년소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놀고 있었다. 나이는 대략 초등학교 1~6학년 정도.

“어린이집…?”

“슬럼 안이라고 해서 교육기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산 속에 어린이집은 좀 이상한데….”

“슬럼인 걸 생각하면 고아원일 수도 있겠네요. 그럼 앞뒤도 맞잖아요. 고아원 운영비를 벌기 위해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범죄에 뛰어드는…….”

“……그런 참담한 설정은 영화 속에서나 봤으면 하는데.”

“동감입니다.”

소매치기 소녀가 자기네 사정도 알지 못하면서 훈계하지 말라던 건 이걸 말하는 거였을까. 두 사람은 괜히 입안이 씁쓸해지는 걸 느끼면서 고아원으로 다가갔다.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탐문 수사는 탐문 수사였으니.

“어?”

두 사람이 다가가자 멀리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두 사람의 존재를 눈치 채기 시작했다. 그들이 놀란 눈으로 멈춘 것도 잠시, 곧 저마다 얼굴에 두려움을 품으며 헐레벌떡 고아원 안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우릴 지나치게 무서워하는데…?”

“슬럼에선 저게 정상적인 반응……일지도 모르죠. 그래도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면 대화 정돈 해줄 겁니다.”

­끼익.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느새 정원에는 아이들이라곤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침음성을 흘리며 그가 건물을 바라보자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 아래로 빼꼼 내밀어져 있는 아이들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크흠! 흠. 저기요! 계십니까! 말씀 좀 물으러 왔습니다!”

안수호의 외침에도 저쪽은 여전히 묵묵부답. 커튼 아래로 내밀어진 눈의 갯수만 더욱 많아질 뿐이었다.

“들어가 보죠.”

“그래도 돼…?”

“그렇다고 여기 가만히 있을 순 없으니까요. 고아원이면 안에 어른 한 명, 적어도 말이 통하는 청소년 한둘 정돈 있을 테니.”

그렇게 말한 안수호가 성큼성큼 현관으로 향했다. 그의 접근에 창문 아래 드리워졌던 눈알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똑똑.

이윽고 현관에 다다른 그가 점잖게 노크했다. 아무리 그래도 무작정 열고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계십니까? 거 말씀 좀 물으러 왔다고­”

­벌컥.

그 순간 줄곧 닫혀있던 문이 반쯤 열렸다. 곧 안에서 열다섯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고개를 내밀었다. 어제의 소매치기와는 다른 소녀였다.

“아, 안녕?”

척 봐도 경계심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시선에 안수호가 멋쩍게 인사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녀는 문틈으로 안수호를,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조유리를 찬찬히 살폈다.

“………상납금이라면 어제 드렸잖아요. 또 무슨 일로 온 거예요?”

“응?”

소녀의 입에서 나온 영문 모를 소리에 안수호가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곧 그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상황을 종합하기 시작한다.

소녀의 입에서 나온 상납금이란 단어. 그리고 이 이상하리만치 외부인에게 적대적인 분위기.

‘그러고 보니 3대 조직이 자기네들이 관리하는 가게에다 보호비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한다던데. 설마 이 고아원도?’

보호비라는 건 저 산 아래 거리에서 영업하는 술집이나 성매매 업소들이나 지불하는 것인 줄 알고 있었지만, 어디 깡패조직이 돈을 뜯을 때 가려서 뜯겠는가. 어쩌면 아이들만 잔뜩 있는 고아원에서도 코 묻은 돈을 갈취하려 했을지도 모를 노릇.

“저 학생. 착각한 것 같은데 난 어디 조직에서 돈 받으려고 나온 사람이 아니야.”

“그럼 누구신데요?”

“누구……인지는 아직 말 못 해주고. 여기 고아원에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볼일이요?”

조직 사람이 아니라고 한 덕분일까, 소녀의 경계심은 그 전보다 아주 약간 누그러져 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안수호가 문제의 키워드를 입에 담았다.

“실은 내가 지금 류태현이라는 사람을 찾고 있거든. 혹시 이런 사람 어디서 본 적 없니?”

스마트폰에 띄운 사진과 함께 그렇게 물은 순간, 소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납빛으로 물들었다. 소녀는 얼음처럼 굳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보았다면 보았다, 아니라면 아니다 하는 대답조차 없이.

“빙고.”

허나 그 반응이 곧 대답이었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조유리에게 안수호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선배. 찾았습니다. 아무래도 이 고아원인지 어린이집이랑 류태현이 뭔가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처음으로 탐문한 곳에서 곧바로 단서를 찾다니 행운이라며. 씨익 웃은 안수호가 그대로 소녀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겁에 질린 채 덜덜 떨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알아차린다.

‘아차.’

뒤늦게 지금 자신의 행동이 되게 수상하게 보인다는 걸 자각한 안수호가 소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웃으며 말했다.

“저, 학생. 난 절대 수상한 사람이 아니고, 태현이 아는 친한 형이거든? 근데 태현이가 며칠 전부터 연락을 안 받아서 찾다가 여기 오게 됐는데…….”

뒤늦게 부연설명을 해보지만 이미 소녀는 잔뜩 겁에 질린 채 주춤주춤 물러서고 있었다. 이거 야단났네, 하고 안수호가 생각한 순간.

“당신들 뭐야.”

2층 계단에서 권은하가 내려오며 안수호에게 쏘아붙였다. 명백한 경계심, 그리고 적의를 두 눈동자로 드러낸 채.

‘의족…?’

한편 안수호는 안수호대로 권은하의 외형적 특징을 눈에 담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명백히 성숙해 보이는 외모, 한쪽 다리 대신 달려있는 의족, 그리고 살벌하고 차가운 분위기까지.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그 여성의 등장에 저마다 안심하는 걸 보면 아마 저 여자가 이 고아원의 관리자 같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실제로도 그 예상은 어느정도 들어맞았다.

“안녕하세요. 전 태현이 친한 형인 안수호라고 하는데요. 좀 전에 말했다시피 태현이가 갑자기 사라져서 그러는데 혹시 보신 적 있으시면 말씀 좀 묻고 싶습니다만…….”

“우린 그런 사람 몰라요. 그러니까 당장 돌아가요. 괜히 애들 겁주지 말고.”

“그 부분은 사과할게요. 제 딴에는 나름 친절하게 한다 했는데 애들이 이렇게까지 겁을 먹을 줄은 몰랐네요. 그렇지만…….”

안수호의 눈이 권은하에게. 조금 전의 소녀에게. 그리고 주위에 있는 아이들에게 향했다. 어제 만났던 소매치기 소녀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뭐 그거야 아무래도 좋은 일.

“류태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건 거짓말 같은데요? 어제 길에서 만났던 여자애도. 방금 문을 열어준 저 애도. 태현이에 대해서 뭔가 아는 눈치던데.”

“……모른다면 모르는 거야. 설령 안다고 해도 누군지도 모를 수상한 사람한테 친절히 말해줄 의무는 없어.”

눈에 쌍심지를 세우며 반말로 쏘아붙이는 권은하에게 안수호 또한 똑같이 응수했다.

“어떻게 해서든 들어내야겠다면?”

“성철파가 관리하는 고아원에서 난동을 부리시겠다? 배짱도 좋네. 자신 있으면 어디 한 번 해봐.”

역시 3대 세력 중 하나가 관리하는 시설이었나. 권은하의 말로 조금 전 소녀가 말한 ‘상납금’의 수수께끼가 풀림과 동시에 안수호는 새로운 의문에 빠지게 되었다. 성철파가 관리하는 고아원과 류태현이 도대체 어떻게 엮이게 된 것인지.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어. 여기 사람들은 류태현에 대해서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어떻게 말하게 하느냐인데…….’

가장 간단한 건 힘으로 협박하는 것이었다.

고아원 안에는 아이들밖에 없었고 어른이래봐야 눈앞의 여성이 전부. 그마저도 한쪽 다리가 의족인 장애인이었으니까. 설령 그녀가 초인이라한들 자신이 싸워서 질 요소는 어디에도 없다 자부할 수 있었다.

다만 아무리 안수호가 류태현 수색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 다짐했다 한들, 눈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고아들을 겁박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그는 결코 악인이 아니었기에.

‘그럼 차라리 내 소속을 밝혀?’

그렇기에 두 번째로 떠오른 방법은 자신이 류태현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아카데미 경비대임을 밝히는 것.

허나 그것은 바깥이라면 몰라도 이곳 슬럼에선 자칫 악수가 될 수 있었다. 공권력에 반감을 갖고 있는 슬럼 주민에게 있어 경비대 또한 껄끄러운 상대임은 마찬가지였으니.

운이 좋다면 그저 문전박대 당하는 것이겠으나 최악의 경우 외부에서 온 경비대가 이곳저곳 들쑤신다며 소문이 퍼질 수도 있다. 그랬다간 당연히 앞으로의 수사 활동에 지장이 생길 터. 애초에 그렇기에 수사를 시작할 때부터 제복이 아닌 사복 차림으로 잠입했던 게 아닌가.

“…….”

안수호가 고민하던 사이, 눈앞의 남성의 수상쩍은 낌새를 느낀 권은하가 천천히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벨트 등 부분에는 이럴 때를 대비해 수납해둔 짧은 나이프 한 자루가 매달려 있었다.

눈앞의 남성이 누군지는 모른다. 적어도 성철파는 아니었고, 그렇기에 수상했다. 애초에 성철파도 아닌데 류태현이 이곳 고아원을 드나들던 걸 안다는 시점에서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여차하면 내가 시간을 버는 사이에 아이들만이라도…….’

안수호도 모르는 사이에 결사의 각오를 다지기 시작한 권은하.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장 뒤탈이 없는 건 역시…….’

한편 안수호 또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강경책 쪽으로 머리가 기울고 있었다. 괜히 소속을 밝히는 건 이런저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강경책이라 해도 정말 물리력을 행사한다기 보단 힘을 과시한 공갈 정도였지만.

­…….

긴장감이 감도는 침묵 속.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안수호의 손목에서 태초의 은이 흘러나오고 권은하가 허리춤의 나이프를 뽑아들려는 순간.

“실례합니다.”

안수호의 뒤편으로 다가온 조유리가 그의 어깨 위로 경비대원증을 척 제시했다.

“국립 아카데미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소속 조유리입니다. 이쪽은 동 소속 안수호 대원이고요. 저희는 지금 아카데미 재학생 류태현의 실종 사건과 관련해 주민 여러분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진행하는 중입니다.”

그야말로 정석에 가까운 소개.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바깥세상에서나 통용되는 말이었다. 안수호가 당황한 얼굴로 조유리를 돌아보며 외쳤다.

“선배, 지금 뭐 하시는­”

그러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땡그랑.

“경비대……라고요?”

권은하가 뽑아들었던 나이프를 놓친 채 그렇게 되물었다. 그 물음에 조유리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네. 류태현 학생이 다니고 있는 그린하우스의 경비대원입니다. 혹시 류태현 학생과 아는 사이시거나 최근에 본 적이 있으시다면 몇 가지 질문을 좀 드려도 될까요?”

“…….”

그 말에 권은하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불안감과 안도, 불신과 신뢰. 상반되는 감정들이 그녀의 얼굴에 우후죽순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그리고 마침내, 기나긴 고민 끝에 권은하가 한 발 물러섰다. 종종 걸음으로 들어가던 조유리가 어안이 벙벙한 안수호를 슬쩍 돌아본다.

“뭐해? 어서 들어오지 않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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