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화 〉 245. 슬럼 잠입(3)
* * *
“안녕.”
친근한 인사. 그러나 안수호는 도저히 그 인사를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에 진한 경계심이 떠오른다. 정체 모를 선객은 지예원의 협력자일까. 그녀의 얼굴이 평온한 걸 보면 적어도 불청객은 아닌 듯 하였다.
그렇지만 도대체, 그럼 도대체 누구냐고.
스륵.
그러던 중 여성이 살짝 고개를 기울이자, 옆머리에 가려져 있던 하늘색 브릿지가 스르륵 흘러내려왔다.
하늘색 브릿지.
하늘색.
‘아. 설마?’
안수호가 혹시나 하는 가능성에 놀란 눈으로 여성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성은 마치 문제의 정답을 맞힌 자식을 기특하다며 칭찬하는 어머니처럼 포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안수호는 생각했다.
하늘이, 정말 연기가 많이 늘었구나. 하고.
“저분은?”
“제 지인이요. 사정이 있어서 함께 다니고 있어요.”
“저분은 얼굴을 가리지 않으셨네요. 예나 씨와는 다르게.”
“가릴 필요가 없나보죠.”
지예원의 의미심장한 말에 조유리가 눈을 흘겼다. 그녀가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안수호에게 ‘이거 괜찮은 거 맞아?’ 하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안으로 들어가죠. 선배.”
그 대답에 조유리가 잠시 망설이다 이내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지예원이 한가롭게 강하늘 옆에 풀썩 걸터앉고, 두 경비대원은 눈치를 보다가 맞은편 침대에 앉았다.
단, 거의 붙어앉은 두 여성과 달리 조유리와 안수호는 꽤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조유리의 남성공포증 때문이었다. 몇 달 함께 일하며 익숙해졌다곤 해도 아직 나란히 옆에 앉는 데엔 거부감이 있었기에.
그때.
짝!
지예원이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일 이야기를 해볼까요?”
“좋아.”
“……그러시죠.”
“수호한테 대충 들었어요. 학생 한 명이 사라졌는데, 아마도 슬럼에 들어간 것 같고,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한다고. 제가 들은 게 맞다면 수호가 저한테 온 건 정답이에요 유리 씨. 슬럼 안의 일은 슬럼의 주민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니까요.”
“당신이 류태……그 학생의 소재를 알고 있다는 건가요?”
“전 몰라요. 그렇지만 그걸 알아낼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알고 있죠.”
슬럼은 넓다. 그리고 복잡하다. 이 나라의 공권력이 슬럼을 없애버리지 못하는 데엔 일부 부패한 권력자들도 있겠지만, 슬럼 자체가 없애버리기엔 지나치게 비대하게 성장한 것도 있으리라.
여하튼 그러한 복잡성 때문에 슬럼의 주민조차 슬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일부 ‘업자’들을 제외하고.
“슬럼에서 사람을 찾는다면 가장 좋은 선택지는 정보상에게 의뢰하는 거죠. 실력 좋은 정보상이라면 슬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파악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렇게 말한 지예원이 침대 옆 책상에서 명함 한 장을 집어들었다. 휘릭! 하고 명함을 날리자 조유리가 그것을 받는다.
“이건?”
“오르테가. 모두가 인정하는 현재 슬럼에서 가장 실력 좋은 정보상이죠. 옆집 저녁반찬 메뉴부터 조직 보스의 은밀한 취향까지. 합당한 액수만 지불하면 자신이 구해주지 못하는 정보는 없다 자부하고 있고, 실제로도 지금껏 단 한 번도 의뢰를 실패한 적이 없는 스페셜리스트. 물론 그 100% 성공률은 본인이 수주한 의뢰에 한해서지만요.”
오르테가는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는 듯한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지엽적인 의뢰는 수주 전에 정중히 거절해 왔다. 가령 ‘안수호가 15년 전 6월 17일에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만난 같은 학교 여학생의 신상 정보를 구해달라.’ 따위의 의뢰는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지 않는 이상 해결하는 게 불가능할 테니까.
허나 그럼에도 오르테가의 명성이 자자한 것은, 남들은 불가능하다 단언하는 대부분의 의뢰를 그가 보란 듯이 해결해왔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전운이 감도는 지금의 슬럼에서 오르테가는 삼대 세력 전부가 주목하고 있는 뜨거운 감자였다.
“그런데, 그런 대단한 정보상이 우리 의뢰를 받아주기는 할까?”
“오르테가는 지금 그 명성에 맞지 않게 거의 휴직 상태나 다름없어. 전쟁 직전인 이 상황에 삼대 세력 중 누군가의 의뢰를 받았다간 곧바로 다른 세력에게 해코지를 당할 테니까. 즉 당신들한테 있어선 지금이 찬스라는 거지. 단…….”
지예원이 엄지와 검지를 말아 동그라미를 만들며 두 사람에게 내보였다.
“정보상은 자선가가 아니야. 당연하지만 정보를 얻으려면 돈을 내야 해. 이 경우 단순한 사람 찾기니 그렇게 비싸진 않겠지만…….”
“지불 예상 금액은?”
“정확한 액수야 물어봐야 알겠지만, 대충 예상해보면 선수금 200에 완수금 300은 되겠지.”
“그건 불가능해요.”
금액을 입에 올린 순간 조유리가 단칼에 그렇게 대답했다.
“실종 학생을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 해서 슬럼의 범죄자에게 경찰이나 경비대가 그만한 금전을 지불할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저나 수호가 개인적으로 지불할만한 액수도 아니고.”
“학생의 부모님한테 이야기한다면?”
“더욱 어불성설이죠. 그래서야 학생 부모님 앞에서 경찰과 경비대가 실종 학생을 찾을 능력이 없다고 자랑하는 꼴이니. 게다가 세상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을 찾는 걸 범죄자에게 선뜻 맡기겠어요? 생각이란 걸 하기는 하는 건가요?”
“……거 참 말 이쁘게도 하시네요. 저는 그저 이런 선택지도 있다 이야기해드린 것뿐인데.”
“이 선택지는 안 되겠네요.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얼른 말해보시죠.”
빠직!
고압적인 조유리의 태도에 지예원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반면 강하늘은 대화가 시작되고 지금껏 계속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
“후우우우.”
지예원이 화를 삭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곧 그녀가 조유리를 노골적으로 노려보며 두 번째 선택지를 꺼내든다.
“……금전 지불이 문제라면 이 정보상이 제격이죠. 이 사람은 좀 별종?이라서, 남한테 정보를 팔 때 돈을 절대 안 받거든요.”
“돈을 안 받는다고? 정보를 판다는 사람이 돈을 안 받으면 뭘 받는데?”
“그때그때 달라. 자신이 제공한 정보에 상응하는 또다른 정보를 요구할 때도 있고, 의뢰인이 강한 초인이라면 그 무력을 용역 개념으로 지불받기도 했대. 고작 막대사탕 하나를 대가로 성철파 부두목의 정보를 팔았다는 소문도 있는 걸 보면, 정말 신념이 투철하거나 아니면 어지간히 괴짜라는 거겠지.”
지예원의 설명, 특히 막대사탕 운운하는 부분을 듣자 조유리는 물론이고 안수호마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이 과연 사실이긴 하냐는 의심이 들었고, 설령 사실이라 한들 그런 괴짜가 주는 정보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뭐어, 걱정하진 않아도 돼. 하는 짓은 괴짜지만 실력은 확실하거든. 특히 사람 찾기에 한해서는 오르테가보다 뛰어나다는 말도 있어. 즉 어떻게 보면 이번 같은 상황에 가장 적임인 셈이지.”
“그렇다면 제일 먼저 이 정보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그랬어요?”
“돈을 지불할 수 있다면 가장 확실한 건 오르테가니까요. 실력이야 비슷하다 쳐도, 이쪽은 신원, 소속, 외모, 성별 다 불명인 미스테리한 정보상이라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긴 한 거예요?”
“믿고 싶지 않으면 믿지 마세요. 오르테가도 이 사람도 안 된다면 전 제3, 제4의 선택지를 꺼내면 될 뿐이니까. 다만…….”
지예원이 손가락을 세 개, 네 개, 다섯 개 피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 지금 모든 요소를 고려해서 성공 확률이 높은 순서대로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즉, 제3 제4로 넘어가면 넘어갈수록 소위 말하는 ‘하자’가 더 많아질 거란 뜻이죠.”
“…….”
앞선 선택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뒤에 나오는 선택지들 또한 마음에 차지 않을 거라고,
그런 지예원의 말에 조유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녀로선 단순히 안수호를 통해 슬럼의 협력자에게 도움을 받는다 정도만 예상했지, 본격적으로 정보상까지 고용하게 되리라곤 예상치 못했었으니까.
“선배.”
“히익?!”
그때 안수호가 조유리의 귓가를 향해 몸을 숙였다. 갑작스레 남성이 가까이 다가오자 조유리가 움찔 몸을 떨었다.
“뭐, 뭔데…?”
“제 생각에는 밑져야 본전이다 생각하고 한 번 맡겨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선배야 슬럼 출신인 예나가 의심스럽겠지만, 예나는 분명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슬럼의 범죄자를 옹호하는 후배의 모습에 당황에 빠졌던 조유리의 표정이 돌연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그 표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경비대에 소속된 이가 범죄자와 가까이 지낸다니 언어도단. 그러나 당장 그녀의 상사인 민채령만 해도 뒤로는 비합법적인 인사들과 온갖 연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후배는 그런 민채령이 총애해 마지않는 자.
그 상사에 그 부하라고, 안수호 또한 회색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할 수 있다면, 또한 별다른 부작용이 없다면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하는 게 맞겠지.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조유리가 지예원을 노려보며 말했다.
“조금 전에 설명한 정보상, 이름은 뭐라고 하죠?”
“실명은 아무도 몰라요. 대신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두고 ‘프로페서’라 부르죠.”
“프로페서든 뭐든 실력만 확실하면 상관없죠. 그 정보상과 연결해주세요.”
“분부대로 해드리죠.”
지예원이 마스크 위로 씨익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더니 능글맞은 표정을 지은 채 악수를 청했다.
“이번에는 거절하지 마요. 깔끔한 비즈니스 관계에서 악수는 서로를 믿고 일을 맡기겠다는 약속 같은 거니까.”
“…….”
지예원을 못미덥다는 듯 노려보던 조유리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악수를 받았다. 시선마저 다른 곳을 향한 채 건성으로 손을 두어 번 휘휘 저은 것뿐이었지만, 지예원은 만족했다는 듯 연신 미소를 지어댔다.
“그럼 시간도 늦었으니 이제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쉬세요. 프로페서에 대한 접선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마 내일, 늦어도 모레 아침에는 접선 일정이 잡힐 거예요. 그때까진 알아서 자체적으로 실종 학생에 대한 조사를 하시든 뭘 하든 전 상관하지 않을게요.”
“상관하지 않는 게 아니라 상관하지 못하는 거죠.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당신에게 거기에 간섭할 권한은 없으니까.”
“네에. 네에. 어련하시겠어요. 댁들이 무슨 짓을 하든 전 아아아아무런 상관도 안 할 테니 얼른 가셔서 일들 보세요.”
지예원이 손을 휘휘 내젓자 조유리가 벌떡 일어섰다. 화난 낌새가 역력한 채로 성큼성큼 바깥으로 향하던 그녀가 우뚝 현관 앞에서 멈추더니, 지예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열쇠 내놔요.”
“제 돈 들여서 제가 잡아둔 방인데 내놔요는 좀 그렇지 않아요?”
“……열쇠 줘요. 얼른.”
그 말에 지예원이 TV가 올려져있는 책상을 가리켰다. 그 위에는 안수호와 조유리가 묵을 701호와 703호 열쇠가 나란이 올려져 있었다.
조유리가 그 둘을 신경질적으로 집어들더니 안수호에게 쏘아붙였다.
“너도 나와. 나가서 할 이야기 있으니까.”
선배의 날이 선 모습에 안수호는 별 수 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현관으로 나가는 그를 향해 지예원과 강하늘이 조유리 몰래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쿵.
이윽고 문이 닫히자, 줄곧 옆에서 분위기를 잡고 있던 강하늘이 표정을 풀며 지예원에게 말했다.
“……언니.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어요? 수호 오빠 직장 동료인데 미움 받아서 좋을 건 없잖아요.”
“어차피 사근사근하게 대해 봐야 나랑 친해질 생각 하나도 없는 사람인걸. 그렇다면 적어도 얕보이지라도 말아야지.”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었다만, 강하늘은 지예원이 조유리의 신경을 벅벅 긁어댄 데에 비단 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닐 거라 예상했다. 닫힌 문을 향해 꼴 좋다는 듯 흥! 콧방귀를 뀌는 모습이 이를 증명했다.
‘예원 언니한테 이런 면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는데…….’
새삼 그녀가 자신의 아군인 것에 감사하는 강하늘이었다.
***
한편 같은 시간, 숲속에 위치한 고아원.
“얘들아 우리 왔어~”
권은하는 양손 가득 찬거리를 든 채 고아원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곁에는 짐을 옮기기 위해 함께 마트에 갔던 소년 둘이 뒤따르고 있었다.
“예림이랑 민지! 이것 좀 부엌까지 옮겨줘! 영한이는 위층 올라가서 원장님께 곧 식사 준비한다고 말씀드리고! 그리도 또”
“언니.”
분주하게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던 권은하에게 한 소녀가 다가갔다. 낮에 조유리의 주머니를 털었던 바로 그 소녀였다.
“응 단비야. 왜?”
“잠깐 나랑 가서 이야기 좀 해. 중요한 이야기야.”
소녀, 이단비의 말에 권은하가 고개를 끄덕이곤 진지한 표정으로 소녀를 따라갔다. 이단비는 올해로 열셋. 사춘기에 접어들어 권은하를 멀리하던 소녀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말한 것은 분명 보통 일이 아닐 테니까.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낮에 거리에서 수상한 사람들이 태현 오빠를 찾고 있는 걸 봤어.”
“……뭐?”
소녀의 말을 들은 순간, 권은하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