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화 〉 243. 슬럼 잠입(1)
* * *
류태현 수색에 할당된 인원은 경찰 둘에 특수대책과 경비대원 다섯으로 총 일곱.
그들은 본격적인 수색에 앞서 효과적인 수사를 위한 작전 회의를 거쳤다. 그리고 그 결과 다음과 같은 행동방침을 결정하였다.
우선 그들은 팀을 A팀과 B팀 둘로 구성하여 슬럼 바깥과 안을 수색할 인원을 나눴다. 그리고 A팀은 류태현의 가족이나 지인들로부터 그의 예상 행선지를 유추해 슬럼 바깥을, B팀은 류태현의 마지막 GPS 위치를 토대로 슬럼 안을 수색하기로 했다.
A팀에 할당된 인원은 경찰 둘과 경비대원 하나.
B팀에 할당된 인원은 경비대원 넷.
이중 안수호가 속한 건 슬럼을 수색하는 B팀이었다. 류태현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아마 슬럼과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그저 그편이 자기한테 더 골치 아픈 상황이니까. 쾌락천마가 만든 이 세상은 으레 안수호에게 불리한 쪽으로만 흘러가는 법이었으니.
‘그나저나 정말 민채령의 말대로군. 경찰은 슬럼 수색에 전혀 적극적이지 않다는 게 태도만 봐도 훤히 보이는걸.’
애초에 인원 배분부터 슬럼의 수색은 전적으로 경비대에 맡기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아마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경비대 책임으로 돌리고 자기들은 발을 빼기 위함이겠지.
‘경찰이란 놈들이 범죄조직 눈치나 보는 꼴이라니. 아니, 범죄조직과 연결된 정치인들 눈치를 보는 건가?’
민채령한테서 미리 듣긴 했지만 실망감이 큰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정지민 경위와 같은 경우 덕에 안수호는 이 나라 경찰이 죄다 이런 식으로 부패한 게 아니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뭐, 결국 류태현을 찾으려면 내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거지.’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눈앞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이렇다 할 특징이 보이지 않는 평범한 거리.
허나 이곳으로부터 조금만 깊숙이 들어가면 그때부터 슬럼이었다. 그렇다 해도 슬럼 외곽 지역은 바깥과 거의 차이가 없고, 본격적인 우범지대는 한참 더 들어가야 하지만.
“그럼 가볼까요 선배?”
“으, 응! 들어가볼……까?”
안수호의 말에 조유리가 쭈뼛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이번 수색에서 채소연 대신 안수호의 파트너로 배정된 대원이었다.
“슬럼에는 와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 아니. 처음이야. 수, 수호 너는…?”
“처음……은 아니죠. 예전에 몇 번 와본 적 있어요.”
슬럼 현지인으로 위장한 지예원과 만났을 때를 대비한 알리바이.
그러나 실제로 그가 슬럼에 와본 경험이 있는 건 거짓이 아니었다. 박지현을 죽였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으니까.
“몇 번 와봤다? 왜?”
“슬럼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요. 범죄자는 아니고요.”
“그렇구나….”
천천히 밑밥을 깔면서 나아가고 있자 어느새 주위 거리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통행하는 차량의 숫자가 줄어들고, 낙후된 건물이 하나둘 늘어가고, 지나다니는 사람들 중 험악한 인상의 남자들이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하는 등. 이제야 슬럼가다운 분위기가 풍기는구나 싶은 모습에 안수호가 마른 침을 삼켰다.
‘예원이가 말했었지. 쓸데없이 두리번거리지 말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라고. 마치 현지인처럼.’
그 조언을 받아들여 두 사람은 복장부터 제복이 아닌 낡은 구제 옷을 갖춰 입었다.
안수호는 요란한 그림이 프린팅 된 박시한 티셔츠에 무릎이 찢어진 청바지. 조유리는 쫙 붙는 티셔츠에 기장을 자른 가죽재킷과 스키니진.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슬럼가에 들어서고 나자 곧 올바른 판단이었구나 싶었다. 지예원이 프로듀스해준(조유리에겐 안수호가 말했다) 슬럼 에디션은 두 사람을 문자 그대로 거리에 녹아들게 만들어주었다.
다만, 안수호나 지예원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저, 수호야. 어째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계속 보는데…?”
“아마 눈에 띄어서 그런 거겠죠. 제가 아니라 선배가.”
“어째서? 복장은 잘 갖춰 입었는데…?”
조유리의 물음에 안수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복장은 잘 갖춰 입었다. 갖춰 입었다만, 기실 바로 그 복장이 문제였으니까.
지예원이 프로듀스해준 옷차림은 조유리의 몸매를 지나치게 효과적으로 부각시켰다.
타이트한 티셔츠는 몸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냈고 기장이 짧은 재킷은 가슴 부분에서 벌어져 그녀의 가슴을 강조했다. 또한 길이감이 짧은 상의를 매치한 덕에 도드라지는 허리 라인과, 걸을 때마다 유독 돋보이는 각선미까지.
게다가 애초에 그녀의 핑크색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는 평소에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 와중에 옷차림까지 몸매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입혀놨으니, 사람들의 반응이야 오죽할까.
“이야, 죽이는데!”
“거기 누님! 어디 가게 사람이야? 응?”
“이봐 형씨! 아가씨 간수 잘 하는 게 좋을 거야! 크하하핫!”
과장 보태서 열 걸음 걸을 때마다 쏟아지는 캣콜링에 조유리의 뺨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평범한 슬럼 주민을 가장하려던 두 사람은 어느새 출근 중인 아가씨와 그 보디가드로 인식되고 있었다.
당연히 두 사람으로선 그런 시선이 달가울 리 없다. 특히나 남성공포증이 있는 조유리는 더더욱.
“선배, 괜찮아요?”
“괜…찮아. 좀 울렁거리긴 하지만 세로토닌 분비량을 조절하면…….”
“평소에는 초능력 안 쓴다면서요.”
“지, 지금은 임무 중이니까…! 후우, 후우우우. 됐어. 좀, 조금 진정된 것 같아.”
초능력인 ‘대사조절’로 불안감을 완화한 조유리가 표정을 다잡았다. 그러나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한 듯 했다.
“일단 이거라도 써요.”
“아, 고마워.”
머리색이라도 가려보자는 심산으로 안수호가 쓰고 있던 스냅백을 그녀에게 건넸다. 머리 크기 차이 때문인지 조금 헐렁한 모자를 조유리가 푹 눌러썼다.
“얼마나 남았어?”
“곧 도착할 거예요. 한 300미터 남았네요.”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류태현의 휴대폰 GPS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지점이었다. 그곳은 그가 기숙사에 장기 외박 신청을 하기 위해 통화를 건 지점이었다.
“여기야?”
“네. 일단은 여기……인데.”
이윽고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의정부를 가로지르는 하천 위 다리였다. 며칠 전의 비로 수량이 잔뜩 불어난 하천 부지에는 푸르른 풀들이 거의 사람 키 높이로 자라 있었다.
“……만약 류태현이 통화를 마치고 휴대전화를 저 풀숲에다가 던졌다면 찾긴 어렵겠죠?”
“운 좋게 수풀에 걸려있을 수도 있지만 엊그제 비가 잔뜩 왔으니까 떠내려갔을 가능성이 높지…?”
그렇게 답한 조유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근데 그건 왜? 류태현이 휴대전화를 일부러 버리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싶어서요. 아카데미랑 가족에게 말을 다르게 하고 사라졌다는 건, 누가 자기를 찾아내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아마 자신이 휘말려든 일에 다른 이들이 휘말리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안수호는 류태현의 그런 속내를 어렵지 않게 예측해냈다.
“혹시 모르니까 휴대폰을 찾아볼까?”
“으음. 그건 별로일 것 같아요. 선배 말마따나 엊그제 비에 쓸려나가버렸으면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올 테니까.”
“그럼 이 주변부터 시작해서 탐문 수사 해야겠네.”
“정석적인 방법으로 가면 그렇죠. 그렇지만 여기선 편법을 쓰죠.”
“펴언…법?”
조유리가 고개를 갸웃하자 안수호가 싱긋 웃었다.
“말했잖아요. 슬럼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슬럼에서 나름 발이 넓은 사람이니까 어쩌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안수호가 말한 발이 넓은 사람이란 지예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슬럼 주민은 아니었지만 슬럼의 사정에 빠삭했다. 슬럼에 지인도 꽤 많으니 쓸만한 정보통을 알선해주는 것도 가능하리라.
“이쪽으로 가죠.”
두 사람은 하천 다리에서 그대로 동쪽으로 향했다. 구역으로 따지면 성철파가 다스리는 지역.
두 사람이 거리를 가로지르자 조금 전과는 다른 시선이 두 사람에게 꽂혔다. 단순한 관심이나 흥미가 아닌, 명백한 경계와 적의가 담긴 시선.
“……어째 분위기가 좀 흉흉하네.”
“범죄조직끼리 전쟁 중이라더군요. 지금은 산발적인 마찰만 있었지만 곧 전면 전쟁이 벌어진다나.”
“하필이면…….”
하필이면 그런 시기에 류태현이 슬럼에서 사라지다니.
조유리를 포함한 다른 이들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안수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어쩌면 하필이면이 아니라, 류태현의 실종과 범죄조직의 전쟁에는 모종의 연관이 있을지도 몰라. 그 연관이 뭔지야 모르겠지만…….’
가령 길을 가다 범죄 조직에게 노려지던 여자라도 한 명 구했다든가.
류태현은 원작에서도 그런 트러블에 쉽게 휘말리는 캐릭터였다.
만약 그 특유의 정의로운 오지랖이 이번에도 발동해서, 다른 이들이 휘말리는 걸 원치 않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슬럼에 뛰어들었다면?
꽤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휴대폰으로 지도를 확인했다.
‘예원이가 기다리고 있는 건 의정부 동남쪽 남양주시 경계 근처……. 도보로 이동하면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차라리 택시를 타는 게 나을까?’
슬럼이라도 최소한의 인프라는 존재한다. 대중교통은 기껏해야 슬럼 외곽 지역까지만 운행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슬럼 안쪽의 거리에는 그런 교통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무허가 택시가 자주 보이곤 했다.
“선배,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서 택시라도 타야 할”
타앗!
“꺄앗!”
그때 조유리가 뒤에서 달려오던 누군가와 부딪혔다. 그러나 부딪힌 사람은 사과 한 마디 없이 두 사람을 지나쳐 그대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선배 괜찮아요?”
“응. 괜찮아. 그냥 살짝 부딪힌 것뿐이야.”
“참나, 아무리 슬럼이라지만 사과 한 마디 없이…….”
안수호가 미간을 찡그린 채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사람을 노려보았다. 키가 작고 머리가 짧은 것이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같았다.
“……어?”
그때 조유리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기 엉덩이를 더듬었다. 당황했던 그녀의 표정이 점차 사색으로 물든다.
“왜 그래요 선배?”
“……없어졌어.”
“네?”
“지갑이랑 휴대폰이 없어졌다고! 방금 그 애야! 소매치기라고!”
그 말에 안수호가 다급히 다시 남자아이 쪽을 돌아보았다. 벌써 100미터쯤 달려간 남자아이는 막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일단 쫓겠습니다!”
“나도 같이!”
두 사람이 동시에 지면을 박찼다. 둘 다 실력 있는 특수대책과의 초인이니만큼, 남자아이한테서 벌어진 100미터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힐 수 있었다.
“이런…….”
그러나 두 사람이 골목에 도착한 순간, 남자아이는 이미 모습을 감추고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거라곤 샛길들이 거미줄처럼 잔뜩 뻗어있는 골목길뿐.
“세상에. 어, 어떡하지? 내, 내 지갑이랑 휴대폰…….”
갑작스런 상황에 조유리는 대사조절로 기껏 불안감을 지운 보람도 없이 말을 덜덜 떨었다. 안수호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비록 조유리가 지금은 살짝 어설픈 모습을 보여주곤 있지만, 그녀는 명실상부 특수대책과의 베테랑 대원이었다. 그런 그녀가 잠시라곤 해도 눈치 채지도 못하게 소지품을 빼돌렸다는 건 즉, 소매치기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뜻.
“미안해 수호야.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소매치기는 자신이 당했으면서도 괜히 사과하는 조유리를 뒤로한 채, 안수호가 깊게 생각에 잠겼다. 어디로 갔는지 모를 소매치기를 쫓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려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방법을 도출해냈다.
“……선배.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고 계세요.”
“쫓으려는 거야? 그러면 나도 같이”
“아뇨. 선배는 기다려주세요. 아직 누구 안은 채로 나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
“난……다고?”
투화아악!!
“꺄읏?!”
다음 순간 안수호의 발치에서 시꺼먼 연기가 거세게 일어나며 그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100미터 가량 날아오른 그가 실비에게 명령했다.
‘실비. 날개.’
네. 주인님.
촤르르륵!
안수호의 등 뒤로 한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날개를 통해 공중에서 중심을 잡은 그가 발 아래로 펼쳐진 광활한 슬럼을 내려다보았다.
‘소매치기의 인상착의는……. 신장 150 전후. 까만 머리에 숏컷. 위에는 진청색 야구점퍼에 아래는 짧은 감색 반바지.’
인상착의는 기억하고 있었지만 안수호의 시력으로는 이 높이에서 상대가 소매치기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찾아, 실비.”
네. 열심히 찾을게요…!
안수호의 등에서 십수 개의 촉수가 골목 방향으로 뻗어나왔다. 눈이나 렌즈 따위가 달린 건 아니었지만 그 촉수 전체가 실비의 감각기관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초인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찾았어요.
곧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실비가 그렇게 보고했다. 실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날아가자 곧 안수호 또한 목표를 포착할 수 있었다.
“찾았다.”
조유리로부터 한 400미터 떨어진 지점. 굽이굽이진 뒷골목 사이에서 벽에 몸을 기댄 채 숨을 고르고 있는 소년의 모습.
쫓아오는 이가 없는 걸 알자 안심했는지 소년은 지갑에서 꺼낸 돈과 카드 등을 제 주머니로 챙겨넣고 있었다. 그러곤 필요 없어진 지갑은 골목에 버린 채 유유히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딱 걸렸어.”
쐐애애애액!
그 모든 과정을 공중에서 지켜보던 안수호가 급강하했다.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이 울려퍼지고, 그 소리에 의아한 소년이 고개를 든 순간.
투화아아악!!
안수호가 지면에 착지함과 동시에 자욱한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허나 그것도 잠시, 실비를 갈무리한 안수호가 주변에 퍼진 연기를 지우더니 당황한 소년을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콰악!
“케흑!”
안수호의 손아귀가 자비 없이 소년의 목을 틀어쥐었다.
“야 이 꼬맹이 자식아. 소매치기짓을 해도 상대를 가려가면서 해야”
그렇게 말하려던 안수호의 말문이 턱 막혔다.
“뭐야, 여자애였어?”
안수호가 살짝 놀란 눈으로 소년, 정확히는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짧은 숏컷에 펑퍼짐한 점퍼 차림 탓에 소년이라 생각했던 소매치기는 소녀였다.
“크윽! 이거, 놔아…!”
나이는 한 열두셋 정도 될까. 분한 표정으로 안수호를 노려보는 소녀의 눈빛에는 반성하는 기색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 행태에 안수호의 입가에 조소가 서렸다.
“뭐, 남자든 여자든 소매치기는 소매치기지.”
그렇게 말하며 안수호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이윽고 그가 주먹을 내리치자 쌍심지를 세우던 소녀가 깜짝 놀라 눈을 질끈 감았고.
“이 짜식이. 잘못을 했으면 죄송하다고 사과부터 해야지. 어디서 눈을 부라려?”
딱콩!
“악!!!”
다음 순간, 앙증맞은 비명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