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화 〉 242. 사건 발생
* * *
류태현이 고향으로 내려간 주말 이후. 다음 주 월요일.
뚜르르르르르.
안수호는 하염없이 이어지는 신호음에 결국 전화를 끊었다. 오늘 다시 아카데미로 온다기에 언제쯤 도착하냐고 물어보려 했으나, 그는 전화도 문자도 답이 없었다.
‘고향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나?’
무슨 일, 이라고 표현했지만 심각한 걸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저 기왕 내려간 김에 친구들 만난다며 며칠 더 눌러앉았다든가 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유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을 뿐.
허나 그런 안수호의 짐작은 이틀 뒤 수요일에 산산히 부서졌다.
“예? 실종이라고요?”
집체 훈련이 끝나고 다시 사무실에 출근하길 사흘째. 전날 야간 근무로 피곤에 절은 안수호에게 들려온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민채령이 이르기를, 류태현의 부모로부터 아들이 사라진 것 같다고 아카데미에 연락이 왔노라고.
무슨 일인가 하여 듣자하니 사정을 이러했다.
먼저 지난 토요일 밤, 본가로 돌아갔던 류태현이 급하게 학교로 올라가봐야 할 것 같다며 집을 떠났다. 그의 부모님은 무척이나 아쉬워 하셨다지만, 아들이 학년 수석이니 방학에도 으레 바쁘겠거니 하며 별로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한다.
헌데 사건은 며칠 뒤 화요일에 일어났다. 어째서인지 류태현은 그날 이후 부모님의 연락을 받지 않았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부모님이 아카데미로 연락을 한 것.
그러나 그의 부모님이 마주한 사실은 류태현이 본가에서 머문다며 기숙사에 장기 외박을 신청해두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아카데미로 급히 올라가야한다던 토요일에 말이다.
부모님은 그가 아카데미에 있는 줄 알았고 아카데미는 그가 본가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 류태현은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연락조차 닿지 않는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류태현의 행방은 단숨에 사건으로 부상했다.
“안수호. 넌 류태현이랑 나름 친한 사이잖니? 혹시 연락 온 거 없었어?”
“전혀요. 저도 몇 번 연락했었는데 도통 받지를 않더라고요. 그런데 설마 부모님까지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일 줄은…….”
안수호는 혹시 자신이 잊고 있던 원작 이벤트라도 있던가 고민해보았지만 그가 기억하는 한 방학 중에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기껏 해야 학생들끼리 떠나는 여행이 전부였으니.
‘불안한데.’
요 며칠 평화롭다 싶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주인공이 실종된 상황. 반년 동안 단련된 안수호의 촉이 맹렬하게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이건 사건이라고.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되는 거죠?”
“어제 점심 즈음에 실종 신고 들어갔고, 오늘 아침부터 정식으로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어. 아카데미 학생의 실종 사건이니 우리 특책과랑 공조해서 수사할 거야.”
“저희 팀도 수사에 참가합니까?”
“안 하면 내가 이 이야기를 굳이 너한테 하겠니? 이미 우리 2팀이 이번 사건을 맡기로 다 이야기가 끝난 상태야.”
민채령이 책상 위에 있던 서류철을 휙 안수호에게 건넸다. 서류를 훑어보던 그의 눈이 돌연 이채를 띠었다.
“슬럼 잠입 수사……?”
“그래. 알아보니까 류태현의 휴대폰 GPS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게 슬럼 안쪽이더라고. 사라져도 참 곤란한 곳에서 사라졌어. 거긴 가장 기본적인 탐문 수사마저 힘든 곳이니까…….”
슬럼은 막장으로 치달은 치안에 각종 로비와 이권 개입이 얽혀 거의 치외법권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런 슬럼에서 경찰이 제복차림으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탐문 수사를 벌일 수 있을 리가 없다. 따라서 모든 수사는 경찰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이뤄지는 잠입 수사가 될 예정.
허나 제복차림이든 사복차림이든 슬럼이 위험한 곳인 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사건 담당 경찰서는 의정부경찰서인데……. 여기 애들은 예전부터 슬럼 범죄조직들하고 암암리에 결탁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거든. 하긴, 시장도 모자라 국회의원까지 깡패한테 로비 받다 걸린 마당에 별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그럼 수사에 있어 경찰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기는 어렵다는 겁니까?”
“바로 그 말이야. 막상 수사에 들어가도 경찰 쪽에서는 괜히 슬럼을 들쑤셔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며 쉬쉬할 가능성이 커.”
국토가 좁고 현대화된 대한민국 안에 거대 슬럼이 존재한다. 그 비현실적인 설정을 구현하기 위해선 많은 전제 조건이 따른다. 부패한 공권력 또한 그중 하나였다.
“그러니 만약 류태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그 애의 무사귀환은 우리 특책과 사람들의 손에 달렸다는 거지.”
“잠입 수사는 언제부터 시작합니까?”
“의욕이 넘치네. 친한 동생이라 걱정되나봐?”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당연히 걱정되죠.”
안수호는 류태현과의 마지막 만남을 떠올렸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열흘 전, 자신과의 대련에서 있었던 일로 의기소침했던 그의 모습을.
늘 쾌활하고 호탕하던 류태현이 고작 대련에서의 실수 한 번 가지고 그토록 의기소침할 리가 없다. 분명 무언가 더 깊은 고민거리가 있는 것일 터.
그런 와중에 류태현이 슬럼에서 사라졌다니. 안수호로선 싫어도 두 일을 연관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수사는 내일 오후부터 시작될 거야. 오늘은 각 진영에서 슬럼에 잠입할 인원을 추리고, 내일 오전에 작전 브리핑 후 잠입 시작이지. 해서 난 2팀 팀장으로서 누굴 보내고 누굴 놔둘지 정해야 하는데…….”
“가겠습니다.”
“……어련히 그러시겠지.”
안수호의 즉답에 민채령이 피식 웃었다.
“우리 팀에서 수사에 참가할 인원은 둘. 본래라면 네가 참가하는 이상 파트너인 소연이가 함께 가야 하겠지만……. 그 애는 잠입 수사랑은 안 맞으니까. 함께 가는 인원으로는 유리나 태호를 붙여줄게. 그 편이 너도 편할 거 아냐?”
“그래주신다면야 감사하죠.”
“그래. 자세한 건 내일 이야기하고. 일단 오늘은 통상 업무로 복귀하렴.”
민채령의 축객령에 안수호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팀장실을 나섰다.
‘……생각해보니 수사에 참가한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애들한테 상의했어야 했나.’
지예원이나 강하늘이 혹여 자신의 슬럼행을 걱정하며 반대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으나 안수호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들이 반대한다 한들 안수호는 슬럼으로 향해야만 했다. 원작 주인공의 실종이라는 대사건에 그가 관여하지 않는단 선택지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사후 통보는 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단톡방에 한 줄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밤,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잠시 보자고.
***
그리하여 그날 밤.
자신의 방에 모인 두 연인에게 안수호는 낮에 있던 일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그의 슬럼행에 대해 두 연인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 다 불안한 건 이해해. 그렇지만 난 반드시 가야 해. 태현이는 그동안 몇 번이고 날 도와줬어. 걔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이번엔 내가 걜 도와줄 차례야.”
그러나 이어지는 설득에 두 사람은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특히 납치 사건 당시 류태현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받았던 강하늘은 더더욱.
“……오빠. 꼭 오빠가 가야 하는 거예요? 오빠가 아니라 다른 대원이 가더라도…….”
그나마 입 밖으로 소심한 불평을 꺼내 보지만, 그 정도로 안수호의 의지가 변할 리가 없었다.
하물며 강하늘 또한 진심으로 한 말조차 아니었다. 안수호와 마찬가지로 빙의자인 그녀는, 류태현 실종이라는 사건이 어느 정도의 심각성을 가지는지 안수호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슬럼은 넓어.”
그때 줄곧 잠자코 있던 지예원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복잡하고. 또 험악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외지인이 발을 들였다간 눈 벌겋게 뜬 채 목이 달아날 거야.”
“설마. 슬럼이 무슨 S급 소굴도 아니고. 성유진도 이겼는데 내가 뒷골목 깡패들한테 당하겠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뒷골목 깡패들이 신사적으로 1대1 싸움만 고집한다면야 그렇겠지. 하지만 놈들은 절대 안 그래. 거긴 놈들의 홈그라운드니까. 자칫 잘못했다간 수십 대 1로, 그것도 몇날며칠을 계속 싸우게 될지도 몰라.”
“에이, 그냥 실종자 한 명 찾으러 가는 건데 그렇게까지 나올 리가”
“외지인이 웬 남자를 찾는다면서 슬럼을 들쑤시면 당연히 경계할 거야. 어쩌면 허튼 짓 하지 말라면서 물리력을 행사할 수도 있겠지. 그러다 네가 행여 덤벼든 조직원을 쓰러뜨리기라도 하면……. 그 뒤야 말 안 해도 알겠지?”
조직원과 싸움이 붙어 그들을 쓰러뜨리기라도 한다면, 그 순간 안수호는 그 조직의 적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슬럼에 있는 내내 산발적인 습격을 받게 되리라.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안수호, 넌 슬럼을 몰라도 너무 몰라. 거긴 그냥 치안 좀 나쁜 뒷골목 수준이 아니야. 이 선진국 땅에서 정부조차 어찌 못해서 방치해두고 있는 마굴이라고. 그런 안일한 인식으로 슬럼에 발을 들였다간 큰 코 다칠걸.”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정 슬럼에 가겠다면 믿음직한 가이드랑 함께 가라는 거지.”
그렇게 말한 지예원이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리고 마침 여기, 슬럼의 사정에 대해 아주 자아아알 알고 있는 이쁜 여친이 있네?”
“뭐?”
“나 여명단 첩보원 출신이잖아. 범죄자들 모이는 슬럼 사정이야 안방처럼 꿰고 있지.”
그야 지예원이라면 슬럼에 대해 잘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설마 너도 같이 가겠다고?”
“안 될 거 뭐 있어?”
“당연히 안 되지! 지금 내가 뭐 혼자 슬럼에 놀러가겠다는 게 아니잖아. 이건 정식 수사라고. 외부인인 네가 따라오고 싶다 해서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누가 정식으로 같이 수사한대? 그냥 현지에서 만난 마음씨 좋은 협력자라 퉁치면 되잖아. 얼굴이야 대충 마스크로 가리면 되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냐고. 그렇게 핀잔하고 싶었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꽤 괜찮은 방법인가 싶기도 했다. 지예원이 슬럼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수사 과정에서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
“어때? 꽤 괜찮은 생각이지?”
“……마음은 고맙지만. 슬럼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거길 가는 건 위험해.”
“지는 가면서 나는 안 돼? 너 되게 이기적이다.”
“네가 위험한 일에 휘말리는 게 싫을 뿐이야.”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나도 네가 위험한 일에 휘말리는 게 싫어.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려는 것뿐이라고. 이래도 안 된다고 할 거야?”
완벽한 논파, 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수호는 당장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반응에 지예원이 피식 미소 지으며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사실 안수호 너한테 선택지는 없어. 네가 싫다고 해도 난 슬럼으로 갈 거거든. 내가 위험한 일에 휘말리는 걸 원치 않는다면야, 나랑 같이 다니면서 날 잘 지켜줘야지 별 수 있겠어?”
“너 진짜…….”
막무가내식이지만 확실한 방법이었다. 안수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씨익 웃는 지예원을 보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때.
“그, 그럼 저도 갈래요…!”
가만히 있던 강하늘이 그렇게 외쳤다.
이에 안수호가 생각했다.
세상에, 도대체 왜. 강하늘 너마저.
“하늘이 넌 또 왜.”
“저도 오빠 걱정되는 건 언니랑 마찬가지니까요! 저번처럼 오빠가 어디서 뭐하는지도 모른 채 오빠가 죽을까봐 전전긍긍 기다리는 건 이제 질색이라고요! 저도 언니 따라갈 거예요! 오빠가 뭐라 하든 말든! 이번엔 저도 오빠를 도와줄 거라고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
“예원 언니는 되고 저는 안 된다는 법은 어디 있는데요?”
“그거 좋네. 하늘이도 요새 꽤 강해졌잖아. 같이 다니면 여차할 때 든든할 거야.”
“맞아요! 저도 요즘 엄청 강해졌거든요? 랭킹전 성적도 학년 38위였다고요!”
지예원이 논리를 앞세운 강요였다면 강하늘은 감정만 내세운 호소였다. 거의 아이의 떼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허나 안수호는 그런 그녀를 무어라 나무랄 수 없었다. 그녀가 하는 말에서 안수호를 걱정하는 마음이 진하게 묻어나왔기에.
“……그리고 여차할 땐 저도 오빠의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요. 오빠도 잘 알고 있잖아요.”
작게 덧붙인 그 말은 비단 함께 싸워주겠단 의미만은 아니었다. 연심의 벚꽃. 자신의 스킬로 그를 보조해주겠다는 걸 은연중에 표현한 것이리라.
‘그래, 하늘이도 날 걱정하니까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 거겠지.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슬럼에 따라온다는 건…….’
두 사람이 자길 걱정하는 마음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만큼 안수호 또한 두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다. 마음 같아선 위험한 일은 자기만 하고 두 사람은 안전한 곳에서 마냥 기다려주기만 해달라 말하고 싶었다.
허나 강하늘이든 지예원이든 그런 요구를 들어줄 리가 없었다. 두 사람의 의지는 확고했고, 결국 안수호는 제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실비.”
안수호가 작게 말하자 그의 오른팔에서 자그마한 분신체 둘이 뽈록 튀어나왔다.
“앗. 실비2랑 실비3다.”
“……2니 3이니 그런 구분이 의미가 있는 거야?”
“부를 때 구분 가고 편하잖아요. 게다가 오빠가 그랬는걸요. 분신체 상태에서 습득한 정보는 따로 구분해서 저장하고 불러올 수 있다나? 즉 실비2는 앞으로도 계속 실비2라는 거죠.”
‘오랜만이야 실비투~’하며 강하늘이 인사하자 분신체 중 하나가 손을 흔들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반면 ‘실비쓰리’에 해당하는 분신체는 지예원을 보면서도 쭈뼛쭈뼛 망설이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정 슬럼에 따라올 거면 걔네들을 데리고 다녀. 단,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대외적으로 태초의 은은 실험 중 폐기된 걸로 알려져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랑 다니면 슬럼에서 쓸데없는 싸움에 휘말릴 일은 없을 테니까.”
“만약의 이야기야. 아무튼, 두 사람이 날 따라온다면 현지에서 어떻게 합류할지 말을 맞춰놔야 하는데”
“그거라면 생각해둔 게 있어. 내 생각에는 말이지…….”
진지한 태도로 합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지예원.
그 모습을 보며 안수호는 아주 약간 남아있던 반대 의사마저 깔끔하게 털어버렸다.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자기를 걱정하고 도와주려고 하는 이상, 그 호의를 받아주는 게 도리겠거니 싶어서.
그렇게 세 사람은 밤이 다 깊어지도록 슬럼 잠입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고.
다음날 아침, 지예원과 강하늘은 안수호보다 한 발 앞서 슬럼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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