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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42화 (243/266)

〈 242화 〉 241. 약속(2)

* * *

성철파.

조직 계보를 살펴보면 성철파는 두목 박성철과 부두목 오은수 두 사람을 필두로 하는 수직적 형태의 조직이었다.

허나 그런 것치고 조직 분위기는 꽤 부드러웠는데, 이는 전적으로 실무 전반을 맡고 있던 오은수의 성향 덕분이었다. 호탕한 성격을 바탕으로 그는 조직 전체를 가족 같은 분위기로 아울렀다.

힘과 공포 이외의 수단으로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능력만은 이 슬럼 안에서 그가 으뜸이겠지.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은수가 죽기 전인 2016년 이전까지의 일.

그가 죽은 뒤로 4년, 성철파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그 절반의 시간 동안 사람 사는 조직이 바뀌지 않을 턱이 있겠는가.

4년의 시간 동안 차근차근 성철파는 지극히 평범한 폭력조직으로 변해갔다.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인정이란 게 사라졌으며, 자기들 식구가 아닌 자를 자비 없이 착취했다. 고아원의 일 또한 같은 맥락.

그리고 그 급격한 변화의 배경에는 두 가지 사실이 있었다.

하나는 오은수의 방침을 존중해주던 두목, 박성철이 병환으로 인해 몸져누웠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죽은 오은수의 빈자리를 차지해, 실질적인 두목 자리에 오른 새 부두목의 성향이 오은수와는 완전히 반대였다는 점이었다.

이에 류태현은 그 새로운 부두목이라는 자와 직접 담판을 짓기 위해 성철파의 본부로 직접 찾아갔다.

“뭐냐 넌? 어디서 온 놈이야?”

“고아원.”

“고아원? 아아, 오은수가 관리하던 거기?”

본부 입구를 지키고 선 조직원의 말에 류태현의 표정이 구겨졌다.

아무리 죽은 사람이라곤 해도 한때 부두목이었던 자를 경칭조차 없이 부르다니.

“고아원 일로 부두목이랑 할 이야기가 있어. 그러니까 들여보내줘.”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를 놈을 우리가 ‘네 알겠습니다.’하고 들여보내줄 것 같아?”

“너희 부두목하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야. 내가 왔다고 하면 들여보내줄 거니까 가서 그렇게 전해.”

“네가 누군데?”

“류태현.”

그 말을 들은 조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른 조직원을 바라봤다. 그 또한 류태현에 대해선 들은 바가 없는지 오리무중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어이, 애송아. 보아하니 보호비 납부 문제 때문에 형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사정하려는 것 같은데. 좋은 말로 할 때 꺼져라. 지금 형님께선 무척 바쁘시니까.”

“그건 내가 할 소리야. 나라고 한가한 거 아니니까 당장 가서 전해. 고아원 일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조직원 한 명이 셔츠 소매를 팍 걷어붙이며 나섰다. 그의 주먹부터 시작해 팔꿈치 언저리까지의 표면이 단단한 금속으로 변했다.

“좆도 아닌 고아새끼가 건방지게!”

­후웅!!

조직원의 주먹이 류태현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터억!

그러나 기세 좋게 날아든 주먹은 너무나도 가볍게 류태현의 손에 막혔다. 류태현이 주먹을 붙잡은 손에 꽈악 힘을 주었다.

­우득. 우그작!

“끄헉?!”

그러자 류태현의 손아귀 모양대로 조직원의 주먹이 우그러들기 시작했다. 놀란 조직원이 주먹을 빼내려 했지만, 류태현은 결코 놓아주지 않음은 물론이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끄아아아! 자, 잠깐만­”

“얼른 가서 전해. 류태현이 찾아왔다고. 고아원 일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얼굴 좀 보자고.”

“이 새끼가! 너 지금 누구한테 덤비는 줄 알고는 있는 거냐?!”

“잘 알고 있지.”

다른 조직원의 일갈에 류태현이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며 그를 돌아봤다. 주먹을 붙잡힌 조직원은 이제 무릎까지 꿇은 채 눈물을 흘리며 꺼이꺼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는 너야말로, 지금 네 앞에 있는 게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은데. 나중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 당장 가서 전해. 전쟁이 한창인데 애먼 놈한테 조직이 박살나고 싶진 않을 거 아냐?”

“이 자식이…!”

오만방자한 류태현의 행태에 조직원이 분노했으나, 곧 그 분노보다도 더한 긴장감이 그의 몸에 엄습했다.

류태현에게서 풍겨오는 무형의 압박감.

본부의 문지기를 맡고 있는 만큼 그 조직원도 나름 실력 있는 강자였다. 그렇기에 그는 뒤늦게나마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자신들 따위론 결코 상대할 수 없을 강자라는 것을.

“얼른 가.”

“…….”

잠시 침묵하던 조직원이 결국 분한 표정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류태현이 손을 놓자 주먹이 붙잡혀 있던 조직원이 꺼억 꺼억대며 자기 주먹을 감싸며 쓰러졌다.

잠시 후.

“…………형님께서 부르신다. 들어가 봐.”

조금 전의 조직원이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단 얼굴로 내려와 류태현에게 말했다. 그런 그의 뒤에는 저마다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정예 조직원 10명이 뒤따르고 있었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어디로 가면 돼?”

“……날 따라와라.”

허나 살벌한 조직원들을 앞에 두고도 류태현은 태연했다. 그를 안내하던 문지기 조직원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만 갔다.

“여기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본부의 최상층. 본래 박성철이 사용하던 집무실이었다. 자기를 죽일 듯한 눈으로 노려보던 조직원들을 뒤로한 채, 류태현은 노크조차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벌컥.

그러자 펼쳐진 것은 척 봐도 고급스러운 향기가 물씬 나는 집무실.

영화에서 보던 조폭들 사무실이랑은 많이 다르구나~ 하며 시선을 돌리자 시커먼 정장 차림의 남성이 창밖을 바라본 채 그를 등지고 있었다.

오은수와는 달리 정장의 핏을 망치지 않는 날렵한 체형. 허나 소매 아래로 드러난 주먹에는 수많은 흉터자국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견갑까지 올법한 긴 머리를 올백으로 넘겨 머리 뒤에서 묶은 남자의 피부색은 건강미가 넘치는 구릿빛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그런 그를 보며 류태현이 말했다. 그러자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놀랍군. 네가 나에게 존댓말이라니. 그새 철이라도 든 건가.”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그새 한국말이 꽤 늘었군요.”

“이런 자리에 있으면 늘 수밖에 없다. 게다가 4년이나 지났으니까. 건방진 애송이도 예의범절을 배우는 시간. 나라고 한국말에 능숙해지지 못할 법은 없다.”

군데군데 어색한 억양만 아니었다면 한국인이라고 착각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어휘력.

과연 그의 말마따나, 4년이나 시간이 있으면 이다지도 능숙해지는 법이구나 싶던 류태현을 향해 그 남자가 몸을 돌렸다.

“So, kid. 날 찾아온 용건은?”

이윽고 드러난 얼굴은 류태현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자의 것.

오은수가 아직 살아있을 시절, 그의 오른팔이었던 태국 출신의 조직원, 쏨밧이었다.

“용건이라…….”

그가 조직의 새로운 부두목이 되었단 사실은 이미 권은하에게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놀라움보다는 그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이 먼저 치밀어 올랐다.

“제 용건이야 이미 짐작하고 있을 텐데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쏨밧, 당신이 어떻게.

“……긴 이야기가 되겠군. 일단 앉을까.”

쏨밧의 말에 류태현이 두 눈으로 형형한 살기를 띠며 자리에 앉았다.

그것이 한때는 나름 친했던 두 사람의 4년 만의 해후였다.

***

“……즉 태현. 네 요구를 요악하자면 이건가? 앞으로 절대 고아원에 손을 대지 말고, 보호비도 걷지 않으며, 그리고 권은하나 다른 아이들이 입은 부상에 대한 보상을 지급하라?”

“정확히 알아들으셨네요.”

“부두목이란 사람이 말귀도 못 알아들으면 쓰겠나.”

­치익.

피식 웃은 쏨밧이 시가 하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평범한 담배와는 달리 한참동안이나 라이터로 불을 붙이던 그가 류태현에게 다른 시가를 건네며 물었다.

“담배는 피우나?”

“안 피웁니다.”

“그건 아쉽군. 이번에 질 좋은 쿠바산 시가를 구했는데.”

“좋은 시가는 당신이나 잔뜩 피우시고. 어서 제 요구에 대한 대답이나 해주시죠.”

“거절한다.”

­후우우우우.

그가 숨을 뱉자 자욱한 연기가 사무실 안에 퍼졌다. 4년 전에만 해도 그저 실력 좋은 용병이란 느낌이었는데, 어느새 조직 중역다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모습.

“태현. 너의 요구는 들어줄 가치조차 없다. 애초에 거래조차 되지 않으니까. 너는 이제 성인이다. 성인이라면 성인답게, 무조건 자기 이익만 요구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deal, 거래를 제시해라.”

그렇게 말한 쏨밧이 손가락 다섯 개를 펴보였다.

“오천만. 고아원의 보호비 5개월분이다. 이번 납기일까지 이 금액을 지불할 수 있다면 더 이상 고아원에 손을 대지 않겠다.”

“……그런 돈이 있을 리가 없잖아.”

“거래란 서로가 합당한 대가를 제시하는 것으로 성립된다. 네가 제시할 수 없다면 거래는 무효다.”

­뿌드득.

류태현이 주먹을 꽈악 말아쥐었다. 애초부터 예상했던 거지만 쏨밧은 고아원이나 류태현에게 호의를 베풀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었다.

“……당신, 엄청 변했어.”

“이젠 경어도 쓰지 않는군.”

“쓰고 싶은 마음이 확 달아났으니까! 내 입장이 돼서 생각해보라고! 은수 아저씨의 오른팔이던 당신이, 아저씨가 그렇게 아끼던 고아원을 상대로 깡패새끼들이나 할 짓을 한다는 게­”

“오은수는 죽었다.”

그렇게 말한 쏨밧이 차가운 눈빛으로 류태현을 노려봤다.

“오은수는 죽었다. 4년 전의 전쟁에서. 그럼에도 나는 반년 전까지 고아원에 적지 않은 액수를 후원했다. 오은수에 대한 의리는 충분히 지킨 거다.”

“……그래서, 이제는 깡패처럼 돈을 뜯어내겠다?”

“뭘 착각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애초에 우리는 깡패다. 게다가 슬럼에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착취하는 게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지?”

과거의 정에 호소하는 류태현과 칼같이 선을 긋는 쏨밧. 두 사람의 논의는 시작부터 줄곧 평행선만 그리고 있었다.

심지어 한때 형님으로 모셨던 오은수에 대해서마저 차갑게 말하는 쏨밧의 모습에, 류태현은 그를 설득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었다.

“……니들이 고아원을 착취하는 걸 내가 가만히 보고 있을 것 같아?”

“저항하고 싶다면 저항해라. 그러나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태현, 너는 슬럼 바깥의 인간. 슬럼 안의 고아원을 평생 지킬 수 없다. 네가 자리를 비우는 그 순간, 네가 지키려 했던 소중한 사람들은 전부 죽을 것이다.”

분하지만 그의 말대로였다. 제아무리 류태현이라 한들 성철파 전체를 상대로 싸워 이길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가 4년 전에 비해 성장했다 하더라도.

허나 류태현이라는 강자가 적으로 돌아서는 건 성철파로서도 떨떠름한 일이었다. 특히나 전쟁이 한창인 요즘 같은 시기엔 더더욱.

그렇기에.

“이쪽의 요구는 동일하다. 5개월분의 보호비 오천만원. 그 액수를 지불한다면 앞으로 다시는 고아원에 손을 대지 않겠다. 애초에 보호비를 걷은 이유는 전쟁 자금의 충당이었으니.”

“……몇 번을 말하지만 그런 돈은 없어.”

“알고 있다. 그렇지만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우면 된다.”

쏨밧은 류태현에게 새로운 거래를 제시했다.

그리고 그 거래는 류태현 또한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태현. 4년 전의 일을 기억하나. 그때 네가 오은수에게는 비밀로 하고 조직에 고용된 용병으로 일했던 것을.”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지. 그때처럼 다시 조직 밑에서 일해라. 마침 전쟁 중이라 강한 용병이 필요하던 차였다. 네가 조직을 위해 일해준다면 고아원에 대한 보호비는 면제해주겠다.”

“기간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 말이 류태현이 고민에 빠졌다. 학생 신분인 그가 슬럼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있으니까.

“두 달 안에 끝내.”

“한 달에 2500이라. 욕심이 과해도 많이 과하군.”

“그만한 값어치는 할 거야. 당신도 알고 있을 것 아냐?”

“흐음…….”

시가를 입에 문 채 쏨밧이 피식 웃었다. 그가 류태현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쭈욱 훑으며 물었다.

“……Well. 4년이 지났으니 태현 너도 상당히 강해졌겠지. 좋다. 두 달에 오천. 그 조건으로 계약하지.”

그렇게 말한 쏨밧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책상으로 향했다. 그가 서랍 안을 뒤지더니 까만 물체를 류태현에게 휙 던졌다.

“이건…….”

그것은 가면이었다. 도베르만의 형상을 한 시꺼먼 흑색 일색의 가면.

“오랜만에 보니 감회가 새롭지 않나? 아마 다른 조직원들도 그럴 거다. 4년 전 전쟁에서 대활약한 익명의 용병 ‘블랙 도베르만’. 4년 전 전쟁을 겪었던 이들 중 그 가면을 잊은 자는 한 사람도 없을 거다.”

“……이걸 왜 아직도 가지고 있는 거지?”

“네가 다시 돌아올 줄 알았으니까.”

그 말에 류태현은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그가 쏨밧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설마 애초에 고아원을 건드린 이유가…….”

“태현. 짧은 시간이라도 앞으로 함께 일할 사이에 쓸데없는 의심과 억측은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지 않나? 나는 너와 다시 한 번 잘 지내고 싶다.”

그렇게 말한 쏨밧이 사람 좋은 웃음을 띤 채 손을 내밀었다.

오은수의 호탕한 웃음과는 다른, 가식과 기만의 낌새가 넘쳐나는 기분 나쁜 웃음.

그 웃음을 본 순간 류태현은 절로 표정이 구겨졌으나.

“……그래.”

그는 결국 쏨밧이 내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쏨밧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잘 부탁한다 블랙 도베르만. 이번에도 네 활약을 기대하지.”

그의 입가에 떠오른 웃음은 명백히 약자를 멸시하는 비웃음이었다.

성철파가 고아원에 그렇게 악독한 짓을 저질렀는데도, 심지어 은하는 다리까지 잘렸는데도 결국 성철파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류태현을 조롱하는 비웃음.

그러나.

'……웃을 수 있을 때 웃어두라고. 니들이 고아원에 한 짓들은 반드시 열 배, 스무 배로 받아낼 테니까.'

다리에 대해 물어봤을 때 권은하가 지었던 착잡한 표정. 류태현은 결코 그 표정을 잊지 않았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성철파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지만, 기회가 나면 반드시 놈들에게 복수하리라.

그렇게 다짐하는 류태현의 눈빛이 형형하게 타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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